[한국야구 100년 7 ] 인기절정의 고교야구 (1970년대)

2005. 1. 10.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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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1970년대 서울운동장(현재 동대문 운동장)에서 고교 야구 전국대회 본선이 열리면 관중 2만명은 가볍게 넘어섰다. 서울로 몰려든 팔도 사람들은 저마다 출신 지역별로 고향팀을 응원하는 뜨거운 열기 속에 고교 야구는 70년대 황금기를 누렸다. 70년 고교 야구는 경북고를 중심으로 한 대구.경남 지역 고교가 주류(主流)였고 서울.호남세가 도전 세력이었다.

71년 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에 이어 예선전 없이 모든 학교가 참가할 수 있는 봉황대기가 가세하면서 고교 야구 인기가 상승했다. 전국에 등록된 고교 38개팀 중 37개팀(마산고는 준비 부족으로 빠짐)이 참가한 첫 대회에서 경북고는 남우식(현 롯데 그룹 이사)의 완투에 힘입어 대광고를 1-0으로 꺾고 "초록 봉황"을 품에 안았다. 남우식 황규봉 이선희 정현발 배대웅 등이 활약한 경북고는 71년 청룡, 황금사자, 대통령, 봉황, 화랑 등 전국대회를 모조리 석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72년 경북고가 대통령배, 중앙고가 청룡기, 군산상고가 황금사자기, 배명고가 봉황대기를 차지하면서 "전국 시대"를 방불케해 고교 야구의 흥미를 더욱 배가시켰다.

하지만 혼전도 잠시 73~75년에는 대구상고와 경북고가 번갈아 명성을 떨쳤다. "천재타자" 장효조가 이끄는 대구상고가 73년 대통령배서 처음 우승한 데 이어 봉황대기, 황금사자기까지 3관왕에 오르자 74~75년 경북고가 2년 연속 2관왕을 차지했다. 경남고, 부산상고도 가세해 영남 전성기가 이어졌다.

김용남(군산상고) 최동원(경남고) 김시진(대구상고) 투수 트리오는 76년 나란히 이름을 떨치면서 소속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성낙수의 경북고, 이상윤의 광주일고 등 고교 야구는 상향 평준화로 접어들었다. 77년 공주고는 처음 출전한 대통령배서 부산고를 꺾고 우승의 기쁨을 누렸으며 충암고는 봉황대기에서 창단 9년만에 전국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부산고는 양상문 김호근 안창환 조성옥 등의 활약으로 78~79년 대통령배, 청룡기, 화랑기 등 5개 대회를 우승하며 고교 야구 황금기를 주름잡았다.

이런 고교 야구의 열기는 곧바로 1982년 프로야구 창설의 원동력으로 이어졌다.

- Copyrights ⓒ 일간스포츠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군산상고는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부산고를 상대로 9회말 1-4에서 5-4로 역전승, 역전의 명수란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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