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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부의 1983년..프로야구 농락하다

입력 2008. 02. 15. 08:51 수정 2008. 02. 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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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이정래 기자]프로야구 원년이었던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승률은 2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0.188였다. 80경기에서 거둔 승리는 고작 15승(65패)에 불과했다.

그해 OB 박철순이 혼자 24승을 챙겼고, 삼성 이선희-권영호-황규봉 트리오가 나란히 15승씩 따냈다. 아무리 꼴찌였다고는 하지만 민망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82년 삼미가 이처럼 처참하게 무너진 가장 큰 원인은 팀 평균자책점 6.14(리그 평균 3.88)를 기록한 형편없는 투수력에 있었다. 팀 타율 0.240(리그 평균 0.265)인 공격력 역시 한심한 수준이었지만, 투수진의 '몰락'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시즌이 끝난 후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삼미의 허형 사장은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바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던 재일교포 투수를 거금을 들여 영입하기로 한 것. 삼미의 야심찬 프로젝트에 의해 한국 땅을 밟은 투수는 히로시마 카프에서 뛰었던 후쿠시 히로아키. 바로 장명부다.

프로야구를 농락했던 장명부

◇ ⓒ 한국야구위원회

73년부터 82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뛴 10시즌 동안 91승 84패 9세이브, 평균자책점 3.69라는 빼어난 성적을 올린 장명부는 82년 3승을 거두는 부진을 겪자 32살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마지막 시즌 기록을 보면 한물간 투수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장명부가 불과 2년 전인 80년엔 15승을 거두며 센트럴리그 승률왕에 올랐다는 것을 감안하면 82년 부진만으로 그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거물투수' 장명부를 모셔오기 위해 삼미가 쏟아 부은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외부에서 추정한 계약금은 1억원에 연봉 4000만원 이상. 당시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입단 기자회견에서 장명부는 "30승을 목표로 하겠다. 20승도 못 거두면 옷을 벗겠다"고 호언장담 했다. 마치 한국 야구를 얕잡아 보고 있는 듯했다.

"괜히 호기 부리다가 망신이나 당하지 마라!" 적어도 그때까지 야구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단 한 명의 투수에게 한국프로야구가 지배당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치 못했다.

장명부는 83년 숱하게 마운드에 올랐다. 한 시즌 100경기를 소화했던 당시 장명부가 마운드에 오른 경기는 60번이었다. 그의 손으로 끝낸 경기는 51번이다.

60게임 출장, 44게임 선발 등판, 427.1이닝 투구, 30승 16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4. 모두 83년 장명부가 만들어낸 기록이다. 36번 완투했으며 그중 5번은 완봉승으로 장식했다. 388개의 안타를 맞고 106개의 볼넷을 허용했지만, 워낙 많은 이닝을 소화한 까닭에 WHIP은 1.16에 불과했다. 탈삼진은 220개였다.

다승, 탈삼진, 투구이닝, 등판 게임, 선발 출장, 완투, 완봉, 피안타, 볼넷, 몸에 맞는 공. 장명부가 83년 시즌 1위에 이름을 올린 부문이다. 장명부가 투수 부문 가운데 1위에 오르지 못한 부문은 평균자책점(2위), 세이브(3위), 승률(3위) 세 부문뿐이다.

그해 장명부의 427.2 이닝은 삼미의 모든 투수들이 소화한 총 투구이닝 908.2이닝의 47%에 해당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대 1위다.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44번을 선발로 출장한 것이나 전문 마무리 투수가 아닌 선발 투수가 51번의 경기를 마무리 한 것도 장명부가 유일하다.

1983년 장명부의 가장 위대한 기록은 무엇보다 30승이다. 장명부는 자신이 장담한대로 30승을 달성했다. 당시 사실상의 투수 코치의 역할을 병행했던 장명부는 지나친 욕심으로 간혹 동료들의 승리를 가로채는 무리한 투수 교체를 하기도 했지만, 편법을 동원했다고 비난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엄청난 대기록이다.

82년 삼미가 거둔 전체 승리보다 두 배나 많은 승리를 83년 장명부 혼자 따냈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농락'이다. 1983년 프로야구는 장명부라는 '몬스터'에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1983년 프로야구가 꾸었던 달콤한 꿈

◇ ⓒ 한국야구위원회

장명부가 괴물의 괴력을 뿜은 시즌은 1983년 단 한해뿐이었다. 장명부는 83시즌을 마친 후 30승 보너스 문제와 무절제한 사생활로 인해 급격한 하향세를 걸었다.

84년 장명부는 13승(20패)을 기록하는 데 그쳤으며, 85년에는 무려 25패를 당하기도 했다. 장명부는 86년 빙그레 이글스에서 1승 18패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영웅의 말로는 비참했다. 1991년 마약복용 사실이 발각돼 한국 야구계에서 추방당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던 장명부는 2005년 4월 13일 일본 와카야마현 미나베초의 자신이 운영하는 마작점에서 54세를 일기로 쓸쓸히 숨을 거뒀다. 그의 임종을 지켜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를 꼽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동열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고, 최동원에게 엄지를 치켜드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야구에서 가장 '놀라운 시즌'을 보낸 투수를 꼽으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장명부가 만들어 낸 1983년은 프로야구가 꾸었던 달콤한 꿈이었다. 절대로 잊을 수 없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그런 꿈.

장명부는 1983년과 함께 우리의 추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너구리같은 미소 속에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불을 숨긴 채 그는 오늘도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기록 제공=이닝(Inn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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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스포츠/ 데일리안 이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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