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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소송' 이도형, 한국판 커트 플러드되나

입력 2011. 02. 18. 10:15 수정 2011. 02. 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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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상학 기자] 1970년의 일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커트 플러드라는 선수가 있었다. 7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고, 6번이나 3할 타율을 기록한 세인트루이스의 특급 중견수였다. 그러나 1969시즌 종료 뒤 플러드는 세인트루이스에서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됐다. 플러드의 동의를 얻지 않은 일방적인 트레이드. 플러드는 반발했다. "12년간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한 시점에서 나 자신이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사고 팔리는 한 조각 상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플러드가 당시 메이저리그 보위 쿤 커미셔너에게 보낸 서한의 내용이다.

▲ 플러드의 위대한 희생

당시 메이저리그에는 보류조항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팀을 옮길 수 있고 선수 권익을 보호받고 있지만, 플러드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랜 세월 맞서서 싸워 얻은 자유였고 그 시작을 플러드가 뗐다. 보류조항이란 한마디로 노예계약이었다. 선수가 최초로 계약을 맺은 팀 이외의 다른 팀과 계약협상을 금지했다. 한 번 지명한 선수에 대한 모든 권리를 구단이 독점적으로 갖는 조항으로 선수는 트레이드, 방출, 은퇴 전까지 한팀에서만 뛰어야 했다. 선수는 구단의 소유물이었고 선수는 구단의 결정에 군말없이 따라야 했다. 오히려 선수가 목소리를 높이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플러드는 정면으로 반발했다. 당시에만 해도 그는 10만 달러라는 거액을 받는 고액연봉자였다. 그는 쿤 커미셔너에게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오랫동안 쌓이고, 높여진 구단이라는 거대한 벽에 대한 저항이었다. 쿤 커미녀서는 이를 묵살했고 플러드는 1970년 1월16일 독점금지법 위반에 대해 메이저리그와 쿤 커미셔너에게 41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까지 가게 된 이 소송은 1972년 1월18일, 5-3 메이저리그의 승리로 끝났다. 1970년을 통째로 뛰지 못한 플러드는 워싱턴 세네터스로 트레이드된 뒤 1971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러나 플러드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오히려 위대한 것이었다. 최정상급 중견수가 1년을 그라운드 대신 법정에서 투쟁하는 모습에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비록 플러드는 패소했지만, 선수들이 구단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플러드의 투쟁으로 보류조항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고, 결국 연봉조정제도에 이어 1975년 FA 제도가 마침내 생겼다. 선수들은 보유권을 가진 팀에서 6시즌을 뛰고 나면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플러드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FA 대박으로 돈 방석에 앉은 오늘날 선수들은 누구보다도 플러드에게 감사해야 한다.

▲ 한국의 기형적 FA 제도

올해로 출범 30년째를 맞는 한국프로야구. 2000년부터 FA 제도라는 것이 생겼다. 지난 10년간 FA 제도를 통해 해외 이적 포함 총 25차례 이적이 이뤄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수를 위한 제도에 불과했다. 스타급 선수가 아닌 이상 이적은 꿈도 꾸기 어렵다. 오히려 눈치를 봐가며 FA 신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FA 자격은 10년 가까이 근속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아니다. 프로 입단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받는 선수들에게 값진 성취감을 안겨줘야 할 자격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 겨울 FA 자격을 얻은 이도형이 그랬다.

이도형은 지난해 시즌 종료 뒤 FA 자격을 신청했다. 그러나 어느 팀으로부터도 영입 제의를 받지 못했다. 원소속구단 한화마저 계약을 포기하자 결국 2011년을 선수로 뛸 수 없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이도형은 장타력이 충분해 아직 통할 수 있는 타자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턱없이 높은 FA 제도 때문에 이도형을 데려가려는 구단은 많은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KBO는 올해 FA 보상제도를 '전년도 연봉 300%에 보호선수 18명 외 1명 또는 전년도 연봉 450%'에서 '전년도 연봉 200%에 보호선수 20명 외 1명 또는 전년도 연봉 300%'를 완화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준척급 선수들이 가질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좁다.

그래서 이도형이 총대를 맸다. 그는 지난 15일 한국야구위원회(KBO)를 상대로 야구규약에 명시된 FA 제도 독소조항 등에 대한 법적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야구규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야구규약 독소조항 제161조 6항 및 제164조 1항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다. 이도형은 "잘못된 것이니까 바로 잡아야 한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도형은 과감하게 행동했다. "지금 FA 제도는 분명 잘못돼 있다. 힘들다는 걸 다들 인정하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바로 잡고 고쳐야 했다"는 게 이도형의 말이다.

▲ 이도형의 용감한 도전

야구규약 제161조 선수계약 교섭기간에 관한 6항은 '총재는 1월15일까지 어떠한 구단과도 선수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FA선수를 자유계약선수로 공시한다. 단, FA선수로 공시되어 자유계약선수가 된 경우 그 선수와는 당해년도 어느 구단과도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섣불리 FA를 신청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대다수 선수들이 FA 자격을 얻고도 행사하지 못한다. 구단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선수는 힘이 없다. 1년을 쉰 다음 다시 복귀하기는 쉽지 않다. 누가 보더라도 선수들에게 불리하다.

야구규약 제164초 구단의 보상에 관한 1항은 '직전 시즌에 다른 구단에 소속했던 FA선수와 다음년도 선수 계약을 체결한 구단은 해당선수의 전소속구단의 직전시즌 참가활동보수에서 50%를 인상한 금액에 200%와 구단이 정한 18명의 선수 이외의 1명으로 보상하여야 한다. 단, 전소속구단이 선수에 의한 보상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FA선수의 전소속구단의 직전시즌 참가활동보수에서 50%를 인상한 금액에 300%로 선수에 의한 보상을 대신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차등보상과 같은 현실적인 제도 보완이 없다면 준척급 선수들에게 FA 신청은 사치다.

FA 제도는 몇몇 선수들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줬다. 그러나 상당수 선수들에게는 또 절망과 아픔이었다. 10년 가까이 한 구단에서 근속한 선수의 자유를 억압한 현행 FA 제도는 소수를 위한 것일 뿐이다. 이도형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FA 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수들은 싸울 수 있는 여력이 안 된다. 마침 선수협의회에서 많이 도와줬다. 뜻대로 된다면 후배들에게 좋은 걸 남기는 것이고, 그렇게 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또 한 번 저처럼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주위 분들께서도 많이들 놀라셨다. 모두가 FA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에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이도형에게 남는 건 없다. 그저, 동료 선후배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선수 권리를 누리기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도형에게 "커트 플러드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플러드가 누군지 모른다. 메이저리그에서 어떤일이 있었는지도 잘 모른다"며 "어떤 결과가 나든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은 하는 것일 뿐"이라며 웃었다. 플러드의 희생이 지금의 백만장자 메이저리거들을 만들어냈듯, 이도형의 희생도 언젠가는 준척급 FA 선수들에게 빛과 소금으로 돌아올 날이 올 것이다. '한국판 플러드' 이도형의 희생과 용기있는 도전이 한국프로야구와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 그는 이미 플러드가 됐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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