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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이게 최선입니까

류형열 기자 rhy@kyunghyang.com 입력 2011. 05. 04. 11:49 수정 2011. 05. 0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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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여왕' 김연아(21·고려대)의 최근 발언을 보자.

김연아는 지난 1일 2011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세계선수권대회서 준우승을 차지한 뒤 한국취재진과 가진 결산 인터뷰에서 "다음 시즌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심리적인 갈등을 피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느날 갑자기 내가 뭐하나 하는 생각 들 때가 많았다"고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선수로서는 지난해 모든 것을 다 이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선수로서 바라는 것은 이제 없다"는 것이었다.

또 "구체적인 목표는 아니지만 새로운 다양한 모습들 보여주면서 좀더 편안하게 즐겁게 스케이트 타고 싶다"는 말도 했다.

이런 말도 했다.

"프랑스 파리를 그랑프리 때문에 2번 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다. 경기가 아닌 여행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케이트는 버리고 가고 싶다. 링크는 근처에도 안가고."

2일 귀국회견에선 "지난 시즌처럼 다음 시즌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그랑프리 불참의사를 밝혔다.

김연아는 결코 자신의 입에 '은퇴'라는 말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일련의 김연아 발언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다 이뤘다. 이제 더 이상 선수 생활에서 추구할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김연아는 2009년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선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점 228.56점으로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바로 그 때가 김연아가 오르려던 에베레스트산의 정상이었다.

전용 링크도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혼자 점프하다 넘어지고, 다치고,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나 점프했던 그 고통의 세월, 허리 부상을 입고도 13시간을 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아 와야 했던 눈물의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정상에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꿈이 있었을 때 김연아의 연기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카타리나 비트는 밴쿠버 올림픽에서 보여준 김연아의 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연아의 연기는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진짜배기였다. 음악적이고, 때로는 드라마를 전달하는 힘이 강해서 보는 사람을 뒤흔들어 놓는다. 몸에 기술이 완전히 익숙해져서 나와 스케이팅이 하나가 되는 그런 경지를 보여줬다."

사실 김연아의 연기는 비트의 감탄 그 이상이었다.

피겨 선수의 연기가 얼마나 아름답고, 우아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지 김연아는 보여주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산의 정상에서 언제까지 머무를 수는 없다.

김연아는 정상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새로운 정상을 찾아 다시 올라가야 했다. 그러나 다시 오를 산을 찾지 못한 것, 그것이 김연아의 딜레마였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한 달 후에 개최된 토리노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따는 데 그친다. 또다른 세계선수권 정상은 그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자신의 모든 것은 던졌기에 그 목표를 이룬 뒤의 공허감도 컸을 터.

김연아는 이후 그랑프리 시리즈에 불참했고,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복귀했지만 또한번의 은메달에 머물고 만다.

김연아는 1년이 넘는 공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정상에 가깝게 있었다.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 연기의 우아함, 강렬한 포스는 기러기속 백조처럼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그런데 김연아의 연기에는 올림픽때와 같은 감동이 사라졌다. 관중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절실함과 혼을 담지 못했다. 어쩌면 점프 실수는 부차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올림픽때 물아일체의 경지는 기술과 표현의 영역으로 떨어졌다. '내가 뭐하고 있나'라는 내면의 갈등은 그대로 연기에 투영됐다. 김연아의 진짜 고뇌는 점프 실수가 아닌 이 부분에 있을 것이다.

김연아의 고뇌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김연아는 "다음 시즌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심리적인 갈등을 피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더욱 위험한 건 김연아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김연아는 다음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김연아가 아직 더 땀흘릴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피겨 스케이팅의 정규리그인 그랑프리 시즌에 불참한다는 것은 사실 동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동료들이 최선을 다해 시즌을 치르고 있을 때 한 발 떨어져 있다가 세계선수권에 나서겠다는 것은 야구로 치면 정규리그를 뛰지 않고 한국시리즈에나 출전하겠다는 것과 똑같다.

이런 어정쩡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김연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의무감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케이트를 타는 김연아의 모습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행복해하고, 그 즐거움과 열정을 보는 사람에게도 전달해줄 수 있는 '행복한 피겨여왕'을 보고 싶을 뿐이다.

<류형열 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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