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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현의 쫄깃한 축구] 보아스를 위한 슬픈 변명

입력 2012. 02. 27. 17:20 수정 2012. 02. 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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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표팀 감독 자리를 흔히 '독이 든 성배'라고 칭한다. 잠깐 방심하고 삐끗했다간 짐을 쌓아야 하는 자리다. 이는 비단 일부 대표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의 갑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소유하고 있는 첼시도 그렇다. 지난해 여름 첼시에는 만 34살의 젊은 감독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가 부임했다. FC포르투의 리그 무패 우승과 유로파리그 정상을 차지한 이 젊은 감독에게 첼시의 구단주는 많은 기대를 걸었다. 보아스는 첼시가 필요로 하는 요건을 충족시킬만한 능력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단번에 유럽대항전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능력으로 보아,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에 대한 희망도 품어 볼만 했다. 공격적인 4-3-3 전술 운영도 로만 구단주가 원하는 축구를 해줄 것 같았다. 또 그는 무리뉴 감독 시절 첼시에서 일한 적이 있어 첼시의 장기 플랜과 구조조정 단계에 있는 현 클럽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리그 12경기를 남겨 놓고 있는 현재, 보아스의 현주소는 기대치를 밑돈다. 팀은 정규리그 26경기중 단 13번의 승리만 챙기면서 리그 5위로 떨어져 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탈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여기에 일부 베테랑 선수들과의 불화로 인해 잉글랜드 언론의 먹잇감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현재 첼시의 감독은 그 어떤 누구에게도 쉬운 자리가 아니다. 로만 입성 이후 라니에리 감독의 후임으로 들어온 무리뉴 감독은 현재 보아스와 비교하면 엄청난 혜택을 받고 들어온 감독이다. 무리뉴의 감독 지휘봉은 말 그대로 도깨비 방망이였다. 전성기에 돌입하는 최고의 선수들을 원하는 대로 영입할 수 있었고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보아스의 지휘봉은 엄청난 무게를 지니고 있는 녹슨 쇳덩어리다. 날을 갈거나 교체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휘두르기엔 너무 무겁다. 그렇다고 철퇴축구를 하기엔 홈팬들이 시선이 무섭다.

제한적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첼시

2007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던 첼시의 전 CEO 피터 캐년은 2014년까지 첼시를 세계최고의 클럽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클럽의 가치를 올려 놓는 것과 함께 클럽 재정의 경영도 건전화시켜, 명실공히 최고가 되자는 플랜이다. 당시 예산의 73%정도였던 선수 주급 수준을 2014년까지 55%로 내리겠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올시즌부터 심사에 들어간 FFP룰(클럽의 적자가 일정수준에 도달했을 경우, 유럽대항전 출전금지 등 여러 제재를 가하는 UEFA의 룰)과 25인 스쿼드 제도로 인해 첼시는 무분별한 스타 선수 영입을 단행하기 힘들다. 물론 첼시는 지난해에도 TV중계권료와 스폰서 그리고 UEFA챔피언스리그 참가에 따른 부가 수익으로 매출 상승을 이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적자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고, 팀 내 구조조정을 현실화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역시 고액 주급자들에 대한 지출이다. 2007년에 70% 초반 수준이었던 선수 주급 비율은 2010년에 82%까지 올라갔다. 40%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50%대를 유지하고 있는 아스날에 비해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인건비를 줄이려는 노력은 사실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 2010년 여름 발락과 카르발류, 데코, 조 콜과 같은 고액 주급자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올여름 지르코프 등을 이적시키고, 배나윤을 아스날로 임대해줬다. 올 겨울에는 아넬카와 알렉스를 추가로 정리했다. 그것도 모자라 카쿠타와 매키크런, 브루마, 얀홀트 같은 실력있는 유망주들을 모두 임대로 내보냈다. 그리고 올 겨울 영입한 선수는 루카스 피아존과 케빈 데 브라이네 등인데, 모두 주급이 낮은 유망주들이다.

보아스는 정치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재작년부터 작은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있지만 현재 팀에는 고액 주급자들이 여전히 많다. 15만파운드 이상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토레스와 존 테리 그리고 램파드가 있으며 올여름 계약이 끝나는 드록바를 비롯해 애실리 콜과 체흐 그리고 에시앙이 12만 파운드 이상의 주급을 받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구단의 재정적은 측면만 고려한다면, 대기업의 구조조정처럼 돈 값을 못하는 일부 늙은 선수들을 정리해고 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와 마타, 케이힐 등 6만에서 8만파운드의 주급을 받고 있는 젊은 선수들과 고액 주급자들의 빈자리에 새롭게 기용되는 젊고 능력 있는 선수들로 팀을 재편했을 것이다. 사실 보아스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밝혔던 3년 플랜은 큰 골자에서 이러한 팀의 재정적 건전화와 함께 경기 내적인 리빌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축구클럽은 기업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첼시에 입단해 9년 연속 두자리 골을 기록한 램파드와 첼시에서 통산 150골을 기록한 드록바는 이미 팀의 레전드가 돼 버렸다. 그들의 주급엔 첼시라는 클럽을 대표하는 상징적 가치가 상당금액 포함되어 있고, 팀을 정신적으로 리드하는 보이지 않는 힘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보아스는 힘들다. 마치 총수의 신임을 받은 젊은 구조조정본부장이 들어와 칼을 휘두르는 것과 같은 모양새를 줄 경우 베테랑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현재 보아스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를 할 줄 아는 능력이다. 또 그것이 부족할 경우 윌킨스 전 코치처럼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레전드를 옆에 앉혀 두어야 했다. 현 디 마테오 코치는 첼시에서 활약했던 선수이긴 하지만 영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인물이다. 게다가 보아스의 경우 첼시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무리뉴 감독 시절 그는 전력분석관 겸 스카우팅 보조 역할을 했다. 선수들에겐 코치라기 보단 무리뉴의 일개 수행원으로 비춰졌던 사람이다. 현재 뛰고 있는 베테랑 선수들을 장악할만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스타 감독 로날드 쿠만 이 2008년 발렌시아에서 개혁을 단행하려다 성적부진과 베테랑들과의 불화 등이 겹치며 시즌 중 경질됐던 사례는 현재 첼시의 감독이 얼마나 힘든 상황임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하나의 방증이다.

하나의 전술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보아스는 4-3-3 전술을 좋아한다. 첼시 스탭 시절에도 무리뉴와 함께 4-3-3 전술을 팀에 입히는 데 큰 공헌을 했고, 포르투에서도 이러한 전술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보아스의 전술이 실현되기 위해선 수비력을 겸비한 젊고 기술적인 윙포워드가 필요하며 전체적으로 측면 수비와 허리라인에서 많은 활동량이 요구되어야 한다. 또 공수간격을 좁힌 공격적인 운영을 좋아하기 때문에 포백수비진은 라인컨트롤을 확실히 유지할 수 있는 노련미와 조직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첼시의 선수 구성은 이러한 것을 만족시킬만한 요소가 현저히 부족하다. 수년 전부터 야기됐던 문제이긴 하지만, 여전히 베테랑들을 중심으로 꾸려나가야 할 첼시에게 많은 기동력이 요구되는 4-3-3 전형은 한번 재고해 볼만하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홈경기에서의 수비다. 올시즌 정규리그 13번의 홈경기를 치렀는데, 무려 19골을 내줬다. 첼시는 로만이 입성하기 훨씬 이전부터 홈구장에서만큼은 실점을 잘 하지 않는 팀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홈경기 실점이 지속될 경우 아마도 수십년만에 최다 홈 실점을 기록하는 시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홈에서만큼은 공격적인 운영을 해야 했던 보아스가 갖고 있는 딜레마다.

거기엔 허리라인에서의 느리고 단조로운 공격 빌드업 과정과 힘에 부치는 수비전환이 있다. 그것은 결국 상대에게 수비를 준비할 시간을 주고 있고, 첼시에게 많은 패스미스를 유발시킨다. 중앙과 측면 뒷공간이 열린 채로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게 되고 허리와 공격진의 빠른 수비 전환은 꿈도 꾸기 힘든 상태다. 결국 뒷공간이 열려진 채로 센터백들과 측면 수비수들은 무리한 수비를 하다 실책을 남발하고 있다. 허겁지겁 달려온 선수들이 수비수를 도와주기엔 밸런스가 이미 흐트러져 있다. 이러한 현상은 측면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의 활동영역을 억제하고 공격지원에서의 힘도 떨어뜨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4-2-3-1 전형을 병행하고 있지만, 보아스는 시즌 초반 일찌감치 상대에 따라 더 다양한 전술을 시험해볼 필요가 있었다.

보아스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보아스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다. 1차전으로는 나폴리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정규리그 4위 이상의 성적으로 시즌을 종료해야 한다. 예전 같으면 챔피언스리그 우승 집착증에 시달리고 있는 로만 구단주가 보아스의 후임 감독을 찾아보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을 경질하는 데에만 여태껏 7천만 파운드의 수업료를 낸데다 FFP룰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위약금까지 물고 데려온 감독을 또 다시 돈을 주면서 내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탈락과 함께 올시즌 정규리그 4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무산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챔피언스리그에 출전에 따른 직간접적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떠나 클럽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될 수 있다. 일부 베테랑들이 팀을 떠날 경우에는 상황이 더 악화된다. 클럽의 가치 하락은 클럽의 생중계 횟수의 감소로 이어지고 TV 중계권료의 기타 부가 수익도 줄어든다. 이는 전력 보강 예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당분간 첼시는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보아스에게는 챔피언스리그보다 현실적으로 리그 순위가 더 중요하다. 지난 주말 볼튼과의 홈경기에서의 3-0 승리는 그래서 의미가 크다. 베테랑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팀 내 분위기 쇄신에 들어갔고 램파드와 드록바는 골로 화답했다. 불안했던 수비는 홈에서 무실점 경기를 치러냈다. 보아스는 앞으로의 2년을 내다볼 여유가 없다. 클럽의 중장기 정책이나 FFP룰을 고려하기 보단 일단 팀 스피릿을 끌어올리고 한 경기 한 경기 선수들에 맞춰 전술을 구성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위기의 팀을 구원해주는 길은 눈 앞에 닥친 경기에서의 승리 밖에 없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되새겨볼 때다. 화장실에 쓰여져 있는 명언처럼 말이다. "큰 일을 먼저 하라, 작은 일은 저절로 처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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