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축구팬' 박주영·이영표 안타까운 개념

2012. 3. 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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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이준목 기자]

◇ 박주영이 얻은 장기체류권의 근본 취지는 이민자를 위한 것이지, 한 개인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병역연기를 위한 수단으로 쓰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 연합뉴스

박주영(27·아스날)을 둘러싼 입영연기 논란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박주영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DLS 측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프랑스 리그1 AS모나코에서 활약했던 박주영에게 모나코 왕실은 10년간 장기체류자격을 부여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박주영은 국외여행기간 연장 허가를 받은 상태로 해외에 거주하면 군입대를 미룰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박주영은 오는 2022년 12월 31일까지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부담 없이 자유롭게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박주영이 법에 어긋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축구 실력으로 얻어낸 혜택이니 문제될 것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히려 "박주영 같은 선수가 이 기회에 해외무대에서 선수생활을 연장하고 맹활약 한다면 국내로 돌아와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국위선양에도 더 크게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왜 박주영만, 혹은 왜 축구선수만 유독 그런 특혜를 받아야하는가'에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대한민국에서 '병역의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회지도층이나 유명 인사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권리만 챙기려고 할 때, 대중은 박탈감을 느끼고 분노하게 된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만 군대에 간다'는 인식이 각인될 경우, 병역의무의 가치 또한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주영이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은' 병역을 기피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법의 빈틈을 악용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인 것이다.

박주영이 얻은 장기체류권의 근본 취지는 이민자를 위한 것이지, 한 개인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병역연기를 위한 수단으로 쓰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박주영이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고 모나코로 이민을 간다거나 그곳에서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한다면 모를까, 지금 박주영의 국적은 대한민국이고 그가 소속된 팀도 모나코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박주영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병역 의무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됐다. 이것만으로 이미 박주영은 일반 국민들이 누리기 어려운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박주영이 받은 특혜가 '축구선수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혜택으로 보기도 어려운 데다 앞으로 박주영이 아니더라도 이번 사례가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박주영 사례를 바라보는 동료 축구인들의 행태다. 옹호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부럽다'는 반응을 보인 축구선수들도 있었다. 물론 속으로는 부러울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사랑을 먹고사는 프로 선수들이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것 자체가 운동선수들에게 병역의 의무라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하찮게만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박주영이나 이영표는 유명 축구선수이고 태극마크까지 달았던 선수들이다. ⓒ 연합뉴스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영표(35·밴쿠버)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주영의 입장을 옹호하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박주영의 선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의견차이이고, 그 결정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박주영이 지금 당장 군대에 가는 것보다 축구를 통해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가장 많은 친구"라고도 주장했다.

유감스럽게도 이영표의 발언은 특혜와 '특권의식'에 젖은 엘리트주의자들의 저급한 인식을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이영표는 바로 한국 대표팀이 4강에 오른 2002 한일월드컵으로 선수단에게 주어진 병역특혜의 수혜자다. 엄밀히 말하면 당시에도 원칙이나 형평성에 어긋난 특혜였음에도, 월드컵에 대한 국민적 지지 여론을 등에 업고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영표 같은 선수들이 후일 해외무대에서 성공적인 축구생활을 이어갈 수 있던 것도 당시 받은 병역혜택의 영향이 컸다. 수혜 당사자이니 '특혜'에 유독 관대한지는 몰라도, 알고 보면 이영표가 남들과 다른 그런 특별대우를 받을 수 있던 밑바탕은 바로 국가와 국민들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영표가 정말 생각이 있는 축구인이었다면 동종업계라는 이유로 후배에 대한 어설픈 '편들기'에 나서기 이전에 남들과 똑같은 의무를 수행하고도 상대적인 박탈감을 누릴 수밖에 없는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어야한다.

자신부터 남들과 다른 과분한 특혜를 누렸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지지해준 국민들 앞에서 먼저 겸손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는커녕, 특혜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훈계할 상황은 아닌 것이다.

이영표는 "자신의 동생이 주영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 때, 동생을 비난할 수 있다면 주영이를 비난해도 그들이 맞다고 할 수 있겠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박주영처럼 병역을 연기하거나 기피하기 위해 굳이 해외에 나가 장기체류권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의 '능력자(?)'가 못되는 것이 현실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병역 의무와 평범한 국민들의 심정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함부로 내뱉어서는 곤란하다.

'국위선양'에 대한 핑계도 마찬가지다. 기업인이나 연예인 한류스타도 축구선수 이상으로 자신의 전문분야를 통해 국위선양에 이바지한다. 굳이 해외에 나가거나 유명인이 아니라도 저마다 자신의 일에 종사하면서 국가에 공헌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정 시기가 되면 생업을 잠시 중단하고 병역의무를 위해 청춘을 바치는 평범한 국민들이 훨씬 많다.

더구나 축구선수들은 생업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상무나 경찰청 입대를 통해 전문성을 인정받으면서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박주영 같은 스타급 선수들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입상하면 병역혜택을 받을 기회도 있다.

한창 나이의 운동선수에게 병역문제가 민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꼼수나 편법으로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그런 방식을 옹호해도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박주영이나 이영표는 유명 축구선수이고 태극마크까지 달았던 선수들이다. 축구로 인해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린 그들에게 지금 요구하는 것은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국민으로서 남들과 같은 최소한의 의무와 존중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축구선수라는 특수성을 앞세워 국민의 의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나 자각도 없는 언행은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치관을 지닌 축구선수들이 많다면 태극마크 가치에 대해서도 회의가 드는 것은 물론 대표선수들이라는 이유로 응원을 보내는 팬들로서도 불행한 일이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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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객원기자-넷포터 지원하기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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