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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어이할꼬?

정윤수│칼럼니스트 입력 2012. 08. 24. 13:42 수정 2012. 08. 2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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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성·김연아 소동으로 본 '국위선양'의 함정

"가장 위대한 곳에서 엄청난 특권을 누렸다."

↑ 문대성 의원이 당선자 시절이던 4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예고했던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하고 국회를 빠져나가려다 기자들이 쫓아오자 차에서 내려 자신의 거취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박지성은 8년 동안 정들었던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떠나 새로운 시즌부터 퀸즈파크레인저스(이하 QPR)에서 뛴다. 그는 호날두, 긱스, 스콜스, 루니, 퍼디낸드 등 주급이 3억 원 넘는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8년을 함께했다. 박지성은 팀을 옮기면서 맨유의 홈페이지에 "위대한 팀의 일원으로 뛸 수 있었던 것과 특별한 동료, 훌륭한 감독과 함께한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다"고 썼다.

맨유의 '특권'

그 특권이란 무엇인가. 고액 연봉·고급 주택과 근사한 스포츠카·환영 인파·퍼스트클래스, 그런 건 겉으로 보이는 특권이다. 그러면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면서 '고급 주택과 차량을 제공받아 기뻤다'고 했을까. 아니다. 그 특권은 좀 더 상징적인 것이다.

첫째, 그 특권이란 맨유라는 팀의 일원으로서 갖는 지역사회 내의 드높은 명예다. 유럽에서 축구 선수는, 그것도 축구 클럽의 선수는, 더욱이 맨유 같은 유서 깊은 클럽의 선수는 그 지역사회나 유럽 전체에서 엄청난 영향력과 명예를 갖는다. 저 19세기 중엽 빅토리아 왕조 때의 고조할아버지부터 대를 이어 지역사회의 명예와 역사를 상징하는 맨유라는 팀의 응원석에 앉아온 사람들은 8년 동안 늠름하게 자기 지역 팀을 위해 헌신한 박지성을 진실로 사랑하고 존중한다. 우리의 열악한 스포츠 환경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선수가 그저 운동이나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람 정도로 취급받고 그렇게 성공하지 못한 선수는 낙오자처럼 평가받는 이 사회의 열악한 스포츠문화를 박지성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맨유에서는 대우가 달랐고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박지성이 표현한 '특권'이란 바로 이런 존중의 시선이 아닐까.

둘째, 맨유의 비범한 성적은 철저한 선수 관리 시스템의 결과다. 스카우터들이 지금도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망주를 선별하고 그렇게 영입한 선수들은 한 치의 빈 틈 없는 시스템 속에서 운동을 한다. 단지 고급 주택을 제공하거나 원정 경기 때 전세기를 띄운다는 식의 외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 두 가지 사례가 있다. 2010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위해 한국 대표팀은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 캄플 구장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그 장소에 맨유의 의료팀이 와 있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한국 대표팀으로 소속이 바뀐 박지성에 관한 신체 활동 능력 분석 자료를 우리 코치진에게 알려줬을 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도 1년 내내 자기 팀 소속인 박지성의 신체 활동을 점검했다. 이런 과학적인 시스템이 박지성이 최고 클럽에서 받은 특권이다.

다른 사례로는 2009년, 맨유가 내한했을 때를 떠올릴 수 있다. 당시 맨유는 국내 K-리그의 정상급 클럽인 FC서울과 친선 경기를 했다. 박지성을 비롯해 긱스, 호날두, 루니 등이 친선경기임에도 최선을 다해 뛰었다. 루니는 거의 우격다짐처럼 보이는 돌파를 시도했는데, 정규 시즌에서 보여주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 경기장에서 내가 본 것은 그런 경기력만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난 후, FC서울 선수들은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맨유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 남아 있었다. 팬들을 위한 답례나 사인회 때문에? 그게 아니었다. 맨유의 피지컬 트레이너가 선수들을 분류했다. 풀타임을 소화한 선수와 중간에 교체된 선수들로 나누어 회복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풀타임을 소화한 선수들은 주로 스트레칭을 했고 절반 정도 뛴 선수들은 가볍게 달리기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기를 뛰지 않은 선수나 골키퍼처럼 활동량이 많지 않았던 선수들도 따로 모여서 회복 훈련을 했다. 관중이 다 빠져나간 후에도 그들의 회복 훈련은 좀 더 지속되었다. 철저한 프로 정신과 과학적인 시스템!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입은 '특권'은 바로 그것이다.

차범근과 박지성

그런 박지성이 2011년 1월, 대표팀을 은퇴했다. 이후, 감독이 두 차례나 교체됐고 박주영은 슬럼프를 겪고 있으며 재기한 이동국이 분투하고 있지만 대표팀에서 박지성의 은퇴 공백은 확연해 보인다. 그는 단지 한 명의 유능한 공격형 미드필더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시한을 최대 3~4년으로 보고 이에 잉글랜드 최상위 프로 리그에 몰입하는 것으로 타깃을 재설정하면서 대표팀 은퇴를 결정했는데, 이 결정에 대해 당시 축구계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 5월 8일 김연아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진선여고에서 교생으로 교단에 섰다.

먼저 축구협회 수뇌부의 반응.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은 "진의 파악이 중요하다. 깊은 얘기를 들어보겠다"고 했다. 당시 카타르에서는 아시안컵 대회가 개막될 무렵이었고 이미 협회 안팎에서 그 대회를 끝으로 박지성이 은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진 상태였다. '진의 파악'이라는 미묘한 표현은, 협회 측에서 은퇴를 만류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섭섭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회택 부회장은 "그의 몸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라고 말했다. 한 선수의 고뇌에 찬 은퇴 결심이 '국위 선양'이라는 애국주의 신화에 휘둘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박지성은 "은퇴는 대표팀은 물론 나를 위해서도 좋은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점을 생각해보자. 당시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은 인터넷에 매우 침통한 자기고백적인 글을 남겼다. 그 첫머리는 이렇다. "환갑이 별로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했는지 생각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아니, 천하의 차범근 아닌가. 그는 무엇을 왜 부끄럽다고 했는가. 당시 그가 남긴 글을, 그 핵심을 정리해 다시 새겨보자.

"초등학교 선수가 기초공부조차 하지 않고 축구만 하는 나라. 10세도 안 되는 선수들이 하루에 세 번씩 프로선수처럼 훈련하는 현실. 합숙을 하던 어린 선수들이 불에 타서 세상을 떠나고 지도자에게 맞아서 세상을 떠난 적도 있습니다. 너무 거칠고 비인간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성이가 어딘가에서 스피치를 하면서 우리나라처럼 맞으면서 축구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선수들이 그들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기를 강요당하면서 축구를 합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던 최고의 선수를 겨우 서른 살에 국가대표에서 은퇴시키는 안타까움 앞에서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성이의 은퇴는 나에게 묻습니다. '한국 축구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그래서? 후배들에게 해준 게 뭔데?'나의 용기 없음이, 비겁함이 부끄럽습니다."

차범근 감독의 이 절절한 글 속에는 자신과 아들 차두리 선수의 성장 과정에 대한 회고도 나온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해 한국 선수들의 몸 상태를 점검했을 때, 무릎이나 발목이 온전한 선수는 오직 차두리가 유일했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은 유능한 주전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혹사' 당해서 온전치 않았다. 차두리는 중학교 때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차범근 역시 중3 때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유소년의 성장기를 제대로 보낸 후에 선수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무릎이나 발목의 예민하고 섬세한 근육이나 신경이 온전할 수 있었다.

차범근은, 박지성이 맨유에서 겪었던 것처럼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합리적인 시스템을 배우고 돌아왔다. 그 자신은 '후배들에게 해준 게' 없다고 썼지만, 그의 '차범근 축구교실'은 하나의 모범이었다. 평일에는 주로 공부를 하고 오후에 한두 시간 정도 훈련을 하며 주말에 리그식 경기를 갖는 방식이다. 반드시 공부를 병행할 것, 성장기의 육체에 과도한 긴장과 무리를 주는 훈련을 삼갈 것, 지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토너먼트가 아니라 리그 식으로 전반적인 기술 수준을 향상할 것. 이 세 가지가 차범근 축구교실의 모토였으나 안타까운 것은 그 무렵 그렇게 하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더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

어쨌든, 1988년 시작한 차범근 축구교실은 미래형 모델이었고 해마다 수여하는 차범근 축구상의 제5회 수상자가 바로 1993년 당시 수원 세류초등학교 6학년 박지성 어린이였다. 그렇게 성장한 선수가 서른도 채 못 돼 무릎이 아파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 차범근 감독의 참담한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은퇴'를 하겠다는 박지성에 대해 '진의를 모르겠다'거나 '너의 몸은 너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라고 강변하는 축구협회 수뇌부의 '비장한 관료적 국가주의'야말로 진실로 퇴행적인 장면이었던 것이다.

'국위선양'의 신화

자,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2009년 8월 7일,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은 중앙 일간지에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이란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당시 몇몇 국회의원이 '학교체육법안'을 발의했는데 이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스포츠 교육 문화 여건을 개혁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이 전개되고 있었다. 나 자신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개한 '학생선수 인권 향상과 공부하는 학생상 정립'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다. 고질적인 비리, 폭력적인 위계질서, 잠재된 채로 만연해 있는 폭력 및 성폭행 근절, 공부와 운동의 병행 등이 프로그램의 주요 골자였다. 나는 전국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특강을 했고,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도 참여했는데, 국가인권위원회의 전반적인 의욕 저하와 더불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스포츠계의 반발로 인해 의제만 제시한 상태에서 프로그램은 종료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그러한 흐름 속에서 스포츠 교육 문화 개선을 위한 법안이 제출됐는데 그 골자는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합숙 훈련을 금하고 훈련도 방과 후와 주말에만 할 수 있으며, 일정 학력 수준에 미달하는 선수는 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를 박 회장은 '논란거리'라고 일축했다. 다른 단체도 아니다. 대한체육회의 수장이 학생 선수들의 인권(행복추구권, 신체 결정권, 학습권 등을 모두 포괄한) 향상과 선수 생활 종료 후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화 과정에 대한 의견을 논란거리로 일축했던 것이다.

예의 칼럼에서 박용성 회장은 우리 사회가 1970년대 이후 누누이 들어온 '선진국'을 여러 번 강조했다. 스포츠 선진국도 태릉선수촌과 같은 시설을 갖고 있으며 그 선진국 선수들도 훈련에 매진한다는 것이다.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 점이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예의 선진국에서 모두 하고 있는 일을 우리는 하지 않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학생 선수들도 공부를 하면서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 이 나라의 사람 대부분이 받고 있는 '권리'이며 동시에 '운동 선수'만이 박탈당한 권리다.

문제의 그 선진국을 보자. 이른바 선진국이 대부분인 유럽연합(EU)에서는 2007년 'EU 스포츠백서'를 발간했다. 유럽 전체 차원에서 포괄적인 스포츠 정책 및 전략적 목표를 담은 것인데, 그 안에는 스포츠의 공공성, 교육성, 환경성, 직업성, 소수자 보호 등 무려 41가지 지침이 제시돼 있다. 스포츠는 특별히 유능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가혹한 선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누려야 할 공공적 권리이며 그 조건 속에서 특출한 재능으로 선발된 선수라 해도 교육의 기회와 직업의 평등성을 누려야 하며 스포츠나 그 시설이 지속가능한 환경과 어긋나서도 안 되며 인종, 장애, 성별 등에 의한 그 어떤 차별이나 배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백서는 명시하고 있다. 이를 거울로 삼아 우리 스포츠 문화를 돌아보면, 금세라도 그 거울을 깨뜨리고 싶을 만큼, 우리는 후진적이다.

스포츠 선진국이 올림픽에서 몇 등을 했느냐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우리나라는 종합 7위를 했다. 이번 런던에서도 한 자릿수 이내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존중한다. 이를 위해 땀흘리는 선수들을 격려한다. 그런 목표가 잘 성취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보다 포괄적이며 장기적인 전망을 봐야 한다. 우리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7위를 했지만 선진국들은 그러지 못했다. 네덜란드(19위), 덴마크(30위), 핀란드(44위), 스웨덴(56위) 등도 우리보다 뒤였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스포츠 선진국인가?

공부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은퇴 후에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일러주지 않고, 오로지 연습에 또 연습, 그러다가 성적이 안 나오면 혼나고, 그것이 심해지면 구타당하고, 어떤 고약한 지도자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폭행과 성폭행을 방조하거나 직접 행하기도 하고, 매우 불합리한 진학 시스템인 특기자 제도는 비리의 온상이 돼 있는 현실을 책임지는 대한체육회와 그 수장이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개발도상국 시절에나 통용될 법한 '국위선양 대한건아'를 되풀이하고 있으니, 이런 고질도 달리 없는 것이다.

문대성과 김연아

'박사 학위 파문'을 낳은 문대성의 경우나 '교생실습 쇼' 논란의 주인공이 된 김연아의 경우는 한국 스포츠 문화의 장·단점을 잘 보여준다. 문대성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대학교수에 더해 국회 진출까지 성공했다. 다른 논문을 베낀 '복사(複寫) 학위'로 인해 그 성취의 절반은 빛이 바랜 상태다. 그는 국위선양 덕분에 많은 것을 누렸으나 도덕적 해이와 결함 투성이의 스포츠 구조 때문에 '일그러진 영웅'으로 전락했다. 또 운동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학위 논문'을 요구하는 폐쇄적인 대학 구조도 한몫을 했다. 그가 자기성찰력과 도덕성을 좀 더 갖고 있었더라면, 논문이 아닌 현장의 성취를 평가해 전임교수로 채용하는 열린 대학 문화가 있었더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스포츠 교육 구조가 정착돼 있었더라면, 문대성처럼 뛰어난 선수가 삽시간에 일그러진 영웅으로 추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연아도 마찬가지다. 그가 교생실습을 '쇼'나 '이벤트'로 여기거나 천하의 김연아이니 한두 번 나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을 리는 없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이수 과정이었으니 김연아로서도 여러모로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생실습을 몇 번 했느냐, 그저 시늉이나 한 것은 아니냐 하는 '팩트'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가 과연 중·고교나 대학 수업을 정상적으로 이수하면서 교생실습 과정에 이르렀는가 하는 점이다. 김연아는 중학교 시절 피겨스케이팅 기량이 탈아시아 수준이었고 고교 시절에 세계 정상급이었으며 고교 졸업과 대학 입학 사이에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올라갔다. 이런 수준의 선수가 통상적인 학업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기 어렵다. '교생실습 쇼' 논란은 사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와 결부된 것이었다. 그런데 밴쿠버를 넘어 소치를 거쳐 평창의 '아이콘'이 되고자 하는 김연아와 그러한 김연아와 동행함으로써 스스로의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정계, 재계, 스포츠계의 거물들은 왜 김연아 선수가 논란거리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2002년 5월의 일이다. 여자 수영의 장희진 선수가 50m 한국 최고기록을 세우며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당시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장희진은 정상적으로 공부하면서 운동을 하고 싶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국위선양'을 이데올로기로 떠받드는 이 나라의 스포츠 권력자들은 외면했다. 중학교 2학년 장희진은 태릉선수촌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수영협회는 장희진의 대표선수 자격을 정지시켰다. 결국 장희진은 이듬해 6월 미국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2년 뒤인 2005년 '보스턴 글로브'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수영선수'에 뽑혔고 텍사스대 경영학과에도 입학했다.

우리 스포츠계는 도대체 왜 이러한 '선진국'을 꿈꾸지 않는가. 안타깝게도 대다수 운동 선수는 공부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절대 다수의 운동 선수가 한두 명의 스타 선수 뒤에서 고된 훈련만 반복하다가 어느덧 성인이 되거나 어쩌다 큰 대회에 몇 번 참여했다가 부상이나 슬럼프를 이기지 못하고 은퇴한 뒤 사회로 '방출'된다. 그 후로는 속수무책이다. 수많은 학생 선수가 이 외롭고 고된 길을 걸어간다.

그 와중에 한국 스포츠를 주름잡는 거물들은 극소수의 스타 선수를 아낌없이 지원하고 그들의 후광이 되고자 하며 그 몇몇의 고결한 성취를 독단적으로 편취해 유무형의 스포츠 권력을 누린다. 20세기 중엽에 형성된 개발도상국 상태의 스포츠 관행이나 이념이 21세기 초엽에 진입했음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상태다. 방송에서는 연일 '애국심'의 깃발이 다시 펄럭인다. 사람은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낀다.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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