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신은 스케이트화로도 문제 없어요"

2012. 10. 1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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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곽진성 기자]

피겨 주니어그랑프리 7차대회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 상비군 박경원 선수(13)

ⓒ 곽진성

10월 11-13일, 독일 켐니츠에서 열리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주니어 그랑프리 7차대회(이하 주니어 그랑프리)에는 13살 피겨스케이터 박경원이 출전한다. 국가대표 상비군인 박경원의 첫 국제대회 도전은 흥미를 끈다. 피겨를 시작한 지, 5년여 만에 이룬 꿈이기 때문이다.

박경원의 훈련 방식은 특이했다. 그 흔한 해외 전지훈련, 국제 대회 한번 나가본 적이 없다. 스케이트화는 신은 지 벌써 3년이나 됐다. 대회 의상도 다른 선수에게 물려 입었다. 13살 소녀에게 이런 상황이 못내 아쉬울 법도 하건만, 소녀는 오히려 가족 생각을 한다. 자신 때문에 3번이나 이사를 한 가족들 생각에 여념 없다.

재능은 열악함을 압도했다. 그러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박경원은 8월 열린 '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표 선발전'에서 쟁쟁한 국가대표 스케이터들과 경쟁하며 4위를 차지, ISU 주니어 그랑프리 출전의 꿈을 이뤘다. 4위까지는 대한빙상연맹에서 경비를 지원하기에,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노력으로 이룬 꿈. 13살 박경원은 생에 첫 국제대회에서 찬란한 비상을 꿈꾸고 있다. '땀'이 맺힌 스케이트화를 신고 감동의 연기를 꿈꾸는 박경원, 열정 가득한 스케이터의 도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13살 소녀 박경원,

나도 연아 언니처럼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 상비군 박경원 선수(13)

ⓒ 곽진성

국가대표 상비군 피겨스케이터 박경원(13. 도장중)은 2007년 3월, 피겨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우연히 틀은 TV 화면에서 한 스케이터의 연기에 반했다. 눈을 뗄 수 없는 연기는 어린 마음에 빛나는 별이 됐다. 박경원이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연아 언니의 연기 모습을 TV로 지켜봤어요. 2007년 3월 세계선수권 대회로 기억해요. 감동적인 연기를 보며 피겨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피겨여왕의 연기를 보며 당찬 꿈을 키운 소녀는 용기를 내서 피겨 스케이팅 세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첫 스승이었던 박빛나 코치(28, 전 국가대표)는 제자 박경원의 스케이팅 모습에서 재능을 발견하곤 선수의 길을 권유했다.

박경원의 스케이팅 연기

ⓒ 곽진성

하지만 선수의 부모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자녀가 피겨선수가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담도 따랐다. 피겨스케이팅은 평범한 맞벌이 가정에서는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많은 경비가 드는 운동이었다."(부모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코치 선생님이 간곡하게 꿈나무 대회까지만 해보자고 했어요. 거기서 입상을 못하면 포기하자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반대로 마음이 기우셨어요."

아버지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를 지켜보던 피겨 꿈나무의 마음은 애가 탔다. 이대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간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 한통을 썼다. '아빠 저는 너무 피겨가 하고 싶어요. 나중에 훌륭한 선수가 돼서 갚을게요'라고,

편지를 읽은 아버지의 마음이 시큰했다. 결국 반대의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든든한 꿈의 지원자가 됐다. 그 뒤 경원이의 집은 3번 이사를 했다. 훈련 경비 때문이었다. 3번째 이사 때는 집의 평수가 확연히 작아져, 경원이도, 경원이의 동생도 눈치를 챘다. 그래서일까. 연습 현장에서 경원이는 신발 끈을 더욱 단단히 동여멨다.

명품 스케이트화 신고, 은반 위를 날다

박경원 선수의 3년된 스케이트 화

ⓒ 곽진성

13살 피겨 국가대표 상비군 박경원의 훈련 방식은 특별했다. 해외 전지 훈련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여태껏 작은 규모의 국제 대회 출전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경원이는 그 이유에 대해, "별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은 달랐다. "부모가 경제적 부담이 될까, 경원이가 스스로 가지 않았던 것"이라며 미안해 했다. 어머니의 말 속에는 딸을 좋은 환경에서 훈련 시키지 못하는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중요한 시합 때마다 그런 마음은 더욱 커졌다.

"피겨는 비용이 많이 드는 운동이에요. 특히 대회 의상이 비싸다 보니 피겨 스케이터 선수들은 선배들한테 물려 입는 경우가 많아요. (선배 선수에게) 쇼트 의상, 프리 의상을 물려 받아서 입었는데, 그 다음 시즌에 의상이 없다보니 전년도 의상을 프리, 쇼트 순서만 바꿔서 입혔어요.....그럴때, 미안했죠." - 박경원 선수 어머니

그런 경원이에겐 남들이 모르는 명품 스케이트화가 있다. 스케이트화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는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경원이가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겉모습은 낡았긴 한데 안은 괜찮아요. 오랫동안 신어서 발이 편해요. 오히려 나중에 새 스케이트화를 사면 적응에 애를 먹을까 걱정이에요. 현재가 편하고 괜찮아요."

통상 선수들의 피겨 스케이트화는 짧게는 2~3달, 길게는 6개월 주기로 교체가 된다. 길어도 약 1년 정도다. 하지만 경원이의 스케이트화는 벌써 3년째다. 빛바랜 스케이트화 속에는 한 어린 스케이터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보였다.

박경원은 독일에서 열리는 주니어 그랑프리 7차 대회에서 은반 위를 유영한다. 13살 소녀는 자신의 롤 모델의 사인을 담은 명품 스케이트 화를 신고 첫 국제 무대에서 후회 없는 연기를 준비하고 있다.

꿈을 향한 도전, 스케이팅에

날개를 달다

박경원의 스핀 연기

ⓒ 곽진성

훌륭한 스케이터가 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한 번씩 찾아온다. 박경원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더블 악셀을 뛰는 과정에서다. 박경원은 2010년 2월, 더블 악셀을 연습하다가 큰 부상을 당했다. 스케이팅을 하는 도중 자신보다 몸집이 큰 선수와 부딪쳐 골절을 당한 것이다. 결국 4달이란 긴 시간을 고스란히 재활 훈련에 매달려야 했다.

2012년 6월, 스케이팅을 다시 시작했지만 박경원의 마음에는 불안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다시금 용기 내서 더블 악셀 점프에 도전했다. 그리고 성공적인 결과를 이뤄냈다

"다치고 나니깐 더블 악셀에 대한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래서 2010년 여름 처음 점프를 성공했을 때는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웃음). 드디어 뛰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2010년 여름은 박경원의 피겨스케이팅 인생에 있어 날개를 단 시간이다. 1년 동안 준비한 더블악셀 점프를 성공해 냈고, 특별한 공연에도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경원은 2010 올댓스케이트 섬머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김연아의 성장 과정을 연기할 기회를 얻었다. 이 자리에서 박경원은 김연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최선을 다해 '스파이럴 연기'를 선보였다.

"6학년 때 연아 언니의 성장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을 연기했었어요. 어린 선수부터, 저보다 언니인 선수들까지 차례로 무대에 등장했는데 저는 스파이럴 연기를 펼쳤어요. 당시 떨리긴 했지만 특별한 경험이었고 재밌었습니다."

롤 모델을 좇는 여정은 계속됐다. 2011년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던 박경원은 SBS <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 에서 '김연아의 세헤라자데' 오마주 연기를 선보이는 기회를 얻었다. 박경원은 작은 은반 위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에 매진했다. 마치 스케이팅에 날개를 단 듯 했다.

재능은 열악함을 압도한다

박경원 선수

ⓒ 곽진성

중학교 1학년때, 박경원은 피겨 인생 두 번째 스승인 한성미(32) 코치를 만났다. 당시 박빛나 코치가 개인적인 이유로 더 이상 선수반을 운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박경원은 한성미 코치의 지도 아래 고난이도의 트리플 점프를 차례로 완성해 나갔다. 트리플 살코·토룹·루프를 완성한 이후, 2012년 여름 트리플 플립까지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더블 악셀 성공 이후, 발전 속도가 눈부셨다.

2012년 8월, 박경원은 '주니어 그랑프리 대표 선발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박경원은 쟁쟁한 선배들과의 경쟁에서 3등내 진입을 목표로 했다. 이유가 있었다.

"대한 빙상연맹에서 3위까지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 출전 지원을 해준다고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꼭 3위를 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부모님께서 저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셨거든요.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웃음)"

13살 소녀의 스케이팅은 강렬했다. 김해진(15). 박소연(15)등 세계 주니어 강자들과 경쟁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연기를 펼쳤다. 결과는 4위였다. 7위까지 주어지는 '주니어그랑프리 티켓'을 얻었지만, 부모님께 선물 드리고 싶었던 '출전 경비 지원'을 받지 못해 박경원은 속상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대한빙상연맹의 출전경비 지원 범위가 4위까지 확대한 것이다. 소식을 전해들은 경원이는 뛸 듯이 기뻤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첫 국제대회 출전의꿈을 이룬 것이다. 13살 소녀답게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피겨를 하며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꿨어요. 5년 만에 꿈이 이뤄졌네요.(웃음) 몇 주 전부터 스케줄을 다 짜놨어요. 과연 대회 뱅큇이 있을까요? 기대돼요.(웃음)"

박경원은 2012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를 지켜보며 미래의 라이벌을 정했다. 미국의 피겨 유망주 한나 밀러였다. 물론 아직 큰 격차는 있다. 158.52점(주니어 그랑프리 3차)의 한나 밀러와 126.90점(한국 주니어대표 선발전)의 박경원 사이에는 31점 넘는 벽이 존재한다.

"아직 차이가 나지만, (언젠가는) 열심히 연습해서 한나 밀러와 경쟁하고 싶어요."

박경원 선수가 어머니 생신에 보낸 편지 중

ⓒ 박경원

비관론자들은 쉽게 '불가능'이란 말을 입에 꺼낼지 모른다. 하지만 박경원의 나이 이제 겨우 13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박경원의 기량을 감안할 때, 31점 차는 극복 불가능한 점수가 아니다.

박경원의 기본기(스핀)가 탄탄하고, 트리플 점프에서 발전의 여지가 남아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전체적인 연기력은 아직 미흡하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예술적인 면모는 발군이다.

기술적인 발전도 기대된다. 박경원이 이번 국제대회 경험을 발판삼아, 다음 시즌 트리플 럿츠와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 완성을 무난히 이룬다면 대한민국 피겨는 향후 2~3년내 새로운 피겨 스타의 등장을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자 피겨의 김진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박경원의 당당한 한마디가 인상 깊었다.

"해외 전지훈련은 해본 적이 없지만… 좋은 선생님들께 배우고 있어요. 한성미 코치 선생님, 안무에는 신예지 선생님, 스트로킹은 최선영 선생님이 봐주시고 계세요. 좋은 선생님들께 배우니까 언젠가는…(웃음)"

첫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전, 박경원은 어머니에게 편지 한통을 썼다. '엄마 생신에 해준 게 없어 미안해요'라며, '더 열심히 할게요'라는 내용이었다.

박경원 선수 편지 중

ⓒ 박경원

박경원 선수 편지중

ⓒ 박경원

13살 대한민국 스케이터는 굳은 다짐을 한 채, 당당히 독일로 향했다. 아직 그런 박경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선은 많지 않다. 하지만 꿈을 위해 연습에 매진하는 연습 벌레, 하루 종일 스핀을 돌아 '스핀 벌레'라는 별명이 붙은 박경원의 비상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해외 전지훈련을 가지 않아도, 경비 부담 탓에 많은 국제대회 경험을 하지 못해도, 다른 이의 의상을 입어도, 낡은 스케이트화를 신어도 13살 피겨스케이터 박경원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재능은 열악함을 압도한다. 열정은 부족함을 극복한다. 자신의 롤 모델 사인을 담은 '땀' 맺힌 스케이트 화를 신고, 소녀는 비상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핀 꽃,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가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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