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오리새끼 최성국의 눈물

배병문 선임기자 2013. 4. 1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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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전화만 받지 않았어도, 좀더 용기있게 잘못을 인정했더라도···. 이미 기억조차 희미해 졌지만 십수년 쌓아왔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그날을 어떻게 잊을수 있을까.

최성국(30). 한때 한국축구의 기대주로, K리그의 스트라이커로 푸른 그라운드를 적토마처럼 내달리던 그는 지금 그라운드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주홍글씨로 낙인찍힌 미운 오리새끼로만 남았다.

"지금와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스스로 안고 가야죠.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봄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달 27일 그는 시흥의 청담종합사회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옥상에서 삽으로 흙을 퍼날라 화분을 만들고, 어린이 놀이방을 쓸고 닦았다. 그는 법원판결에 따른 봉사명령은 모두 완료했다. 이날은 프로축구연맹에서 시행하는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후배들과 함께 열심히 땀을 흘렸다. 봉사활동에는 이력이 붙었다. 그동안 각 복지관을 돌며 치매를 앓는 어르신과 장애인들을 손수 씻기고 보살피다보니 이런 청소 정도는 어려울 것이 없단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말하기를 부담스러워 했다. 혹시 자신의 말이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수 있기 때문이었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봉사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최성국이 3월 27일 서울 시흥동 청담종합사회복지관 내 놀이치료실 바닥을 닦고 있다. 강윤중 기자"참 힘들었습니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지만 길거리에 나서면 손가락질 하는 것 같기도하고. 두문불출하며 집에만 있었죠. 우울증에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어찌 그렇지 않을수 있을까. 평생을 축구만 했던 그가 검찰에 불려가고, 수십시간을 취조받고, 한순간에 범죄자로 전락 했으니….

하지만 그는 과거보다는 현재, 현재보다는 미래를 이야기 하고 싶어 했다. "지금은 운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후배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경기도하고 곽경근 축구클럽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에게 지금이 소중한 것은 여전히 자신을 믿어주고 격려해주고 지켜봐 주는 가족 때문이다. "저혼자 였으면 아마 많이 타락했을 겁니다. 아내는 항상 운동만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하고 아이들은 아직도 제가 경기에 나가는 줄 알아요."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최성국이 3월 27일 서울 시흥동 청담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한국프로축구연맹 축구선수들과 사회봉사활동으로 흙을 퍼담고 있다. /강윤중 기자가장 가슴아픈 일은 자신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상처받았을 때다. 8살짜리 아들을 집근처 축구교실에 가입시키려고 했지만 갑자기 축구교실이 쉰다는 통보가 왔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알아보니 문제는 아빠인 자신 때문이었다. "왜 자중하지 않고 돌아다니느냐"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결국 자신 때문에 아들은 원하던 축구교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야했다. 아들의 실망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 거린단다. 5살짜리 딸은 지금도 운동하러 나가는 아빠가 K리그나 국가대표 경기에 나가는 줄 안다. 항상 집을 나설때 마다 "파이팅"을 외치는 딸이다. 그리고 TV에 아빠가 비치지 않으면 "아빠 언제 경기에 나가?"라고 묻는다. 그때마다 최성국은 "응, 아빠 조금있으면 나갈거야"라고 대답한단다. 갑자기 최성국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당장 급한 것은 가장으로서의 자리. 아내가 따로 벌지 않기 때문에 가정경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당연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운동도 운동이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분당의 한 병원에서 일하며 간간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번다. '프로생활 하면서 꽤 많은 돈을 모았을 텐데'라는 질문에 그는 "말못할 사연이 있다"며 "집도 팔고 처가로 들어간 그 정도만 밝힐 수 있다"고 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최성국이 3월27일 서울 시흥동 청담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인터뷰하던 중 아이들 얘기에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강윤중 기자고통은 사람을 철들게 하는 힘이 있는가 보다. 그는 봉사활동과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축구선수 였을 때가 행복했구나. 그걸 몰랐구나. 지금은 10만원 벌기도 힘든데 툭하면 감독에게 불평하고 건방지게 팬들을 대하고, 너무 어리석었다 "라고 했다. 그는 이런 깨달음이 2년 가까운 힘든 시간이 자신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마침 전날 밤 브라질 월드컵 최종에선 카타르전이 있었다. 경기를 봤느냐는 질문에 "물론 봤다"며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당연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아직 그라운드에 다시 들어서려면 3년여라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것도 그때가서 프로축구 연맹이 복귀를 결정해야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막연한 미래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주말이면 모교인 고려대에서 훈련도 하고, 조기축구회도 나가면서 단 한순간도 축구로부터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이다.

그는 "기회가 올지 안올지는 모르지만 기회가 올거라고 믿고 지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수가 없습니다"라며 "단 1분 1초를 그라운드에 서더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라운드에서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그라운드를 통해 풀어드리고 싶다는 말이었다.

최성국은 지금 힘들고 고통스런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저멀리 나타날 불빛만을 바라보며 그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이제 팬들이 그를 한번쯤 품어주는 아량을 보여주면 안될까.

그러면 이 미운 오리새끼는 반드시 호쾌한 날갯짓으로 보답할 텐데….

< 배병문 선임기자 bm1906@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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