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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씨름이 돌아왔다..모래판 '춘추전국시대'

입력 2013.09.19. 14:00 수정 2013.09.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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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추석장사대회 21일까지 열려

재미있는 경기 위해 규칙 손질

백두급 선수들 체중 너무 늘자

'150㎏ 상한제'로 큰 기술 유도

계체량 승부·경고패 많아지자

30초 연장전·샅바 페널티 도입

1인 천하 없는 경쟁 흥미 높여

씨름이 국민스포츠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교수님 이만기가 초대 천하장사에 오르던 1983년 대회 결승전 시청률은 61%였다. 월드컵 한국 국가대표팀 경기의 시청률이 평균 50% 안팎이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결승전이 길어져 예정된 시간을 넘기면 9시 뉴스가 미뤄지기도 했다. 씨름의 인기는 1990년대 이후에도 계속 됐다. 2000년 이전 프로야구가 최고 절정기를 누리며 500만 관중을 돌파하던 1995년, 프로씨름단은 프로야구단과 같은 8개 구단이었다.

'이만기 천하' 10년간 씨름의 인기가 시들지 않았던 이유는 기술씨름의 묘미 때문이었다. 전성기 이만기는 100㎏ 안팎의 무게와 1m82 작은 체구로 이봉걸(2m5)·이준희(1m94) 등 거구들을 모래판에 메어꽂았다. 씨름은 '역칠기삼', 몸집에서 나오는 힘이 70%, 기술이 30%를 차지하는 경기라고 한다. 이만기는 30~40㎏의 체중 열세와 힘의 차이를 기술과 순발력으로 극복하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2013 아이비케이(IBK) 기업은행 추석장사씨름대회(17~21일·경북 경산)가 옛 영광을 위해 가볍고 경쾌한 몸짓으로 명절 모래판을 달군다. 속도감을 위해 체급별 몸무게를 낮췄고, 일인 천하가 불가능한 치열한 경쟁 구도는 의외성을 높였다. 최중량급인 백두급의 3인방 정경진(26·창원시청) 윤정수(28·현대삼호중공업) 이슬기(26·현대삼호중공업)가 격돌하고, 기술씨름의 각축장인 한라급에서는 김기태(33·현대삼호중공업)와 재활중인 이주용(30·수원시청)이 대결할 가능성이 있다.

■ '초대형'이 좋은 것은 아니다 2011년 대한씨름협회는 체중 상한제라는 칼을 빼들었다. 최중량급(백두장사) 선수들의 대형화가 씨름을 '역구(九)기일(一)'로 만들면서 팬들이 경기장을 떠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해 3월부터 무제한이던 백두급 선수들의 체중을 160㎏ 이하로 제한했다. 당시 백두급 상위 선수 중엔 윤정수가 170㎏, 김상중(창원시청)이 180㎏을 유지하고 있었다. 체중 감량이 선수들의 화두가 됐다. 올해엔 '덩치 제한'을 더 강화해 백두급은 150㎏을 초과할 수 없다. 대신 한라급 체중을 105㎏ 이하에서 110㎏ 이하로 완화했다. 1990년대 말 김영현(2m17), 2000년대 초 최홍만(2m18) 등 덩치가 큰 선수들의 밀어치기식 싸움보다는 들배지기 등 허리를 쓰는 큰 기술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경기 규정도 손질했다. 경고패나 계체량 측정으로 승부를 내는 경기를 줄이기 위해 8강전부터 30초 연장전을 도입했다. 예전엔 1분 내 승부가 나지 않으면 경고를 받은 선수가 패하는 규정이었다. 바뀐 규정에 따라 경고를 받거나 공격에 소극적인 선수는 연장전에서 상대 선수에 비해 샅바를 깊숙이 잡을 수 없도록 하는 페널티를 받는다. 모래밭 밖으로 나가 시간이 연장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경기장 지름도 종전 8m에서 10m로 키웠다. 최봉진 씨름협회 사무차장은 "규정이 바뀐 이후 계체나 경고로 인한 승부가 줄어드는 효과를 보고 있다. 경고가 잦은 선수에게는 승부와 상관없이 별도의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2013 씨름판은 춘추전국시대 기술씨름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씨름판은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다. 최근 열린 4번의 지역장사대회에선 매번 다른 선수들이 꽃가마의 주인이 됐다. 백두급 정경진이 유일하게 지난 6월과 4월 대회에서 2연승을 거뒀다. 대학 때까지 한라급 선수였던 정경진은 2009년 창원시청에 입단한 뒤 백두급으로 체급을 올려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한라급 출신 특유의 기술과 순발력이 체중 관리에 시달리는 기존 백두급 선수들에 비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경진은 이번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자신의 3연승을 저지할 후보로 윤정수를 꼽았다. 올해 설날장사를 차지한 윤정수는 2012년 천하장사이기도 하다. 1년 만에 부상에서 복귀한 2011년 천하장사 이슬기도 주특기인 들배지기를 가다듬는 중이다. 이슬기는 "아직 몸상태가 50%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실전 감각을 익히기 위해 출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슬기와 윤정수가 예선전을 무난히 치르면 둘은 8강전에서 만나게 된다.

한라급에선 영원한 우승후보 김기태가 최근 4개 대회 연속 무관의 불운을 떨쳐버리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안다리, 밭다리, 들배지기 등 전형적인 '들씨름' 선수인 김기태는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라 팬들이 많다. 김기태의 대항마로는 오금당기기, 뒤집기 등 '밑씨름' 스타일의 이주용이 언제나 1순위로 거론된다. 둘은 2011년 이후 맞붙은 적이 없어서 씨름팬들은 둘의 맞대결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다만 이주용이 최근 어깨 부상을 당해 재활중이라 출전을 하더라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김기태는 "1품(2위)에 그친 대회가 많았던 만큼 이번 대회 우승이 간절하다. 이주용이나 같은 팀 조준희와 맞대결이 늘 긴장되고 힘들다"고 말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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