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축구환상곡] '축구특별시' 대전, 강등은 굴욕이 아니라 역사다

한준 2013. 11. 2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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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대전시티즌이 2013시즌 강등팀으로 가장 먼저 결정됐다. 27일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39라운드 경남FC와의 원정 경기에서 1-1로 비겼다. 5경기 연속 무패를 이어갔음에도 잔류를 위한 희망의 촛불은 마지막 홈 경기를 앞두고 꺼져 버리고 말았다.

대전시티즌은 K리그 클래식(1부)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더욱 더 발전해야 할 K리그 챌린지(2부) 무대를 선도해나갈 또 다른 주인공이 된 것이다. 모두가 꺼리는 궂은 일,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을 떠맡게 된 것이다. 대전시티즌은 운명을 피하지 않았다.

하나로 물든 자줏빛 열정

대설주의보와 더불어 영하까지 떨어진 매서운 추위, 평일 저녁 7시, 경기장을 찾기 시간에도 경남 창원축구센터까지 원정 응원에 나선 대전시티즌 서포터즈는 30여명 남짓이었다.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그 열정의 크기는 경기장 전체를 채우고도 남았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그라운드 위에 선 선수부터 구단 프런트와 서포터즈 모두 하나였다. 그 염원은 후반 32분 한경인의 선제골로 결실을 맺었다. 2007년 기록한 팀 최다 연승(5승) 기록을 재현하며 잔류 가능성을 높이는 듯 했다. 앞서 열린 강원FC와 대구FC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면서 대전은 경남을 잡을 경우 최종전에 12위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 종료 8분을 남기고 강종국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내줬다. 끝내 강등이라는 결과가 놓였을 때도 대전시티즌을 둘러싼 모든 이들의 자줏빛 열정은 여전했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다. 잘잘못을 가리는 질책도, 힐난도, 야유도 없었다. 대전시티즌은 하나였다.

선수들은 경기를 마치고 주저 않았다. 7월 여름 이적 시장에 합류해 겨울 4개월 남짓 대전 유니폼을 입었던 콜롬비아 출신의 임대 공격수 아리아스도 펑펑 울었다. 구단 관계자들도 마음 속의 먹먹함을 감추지 못했다. 매 경기 빠짐없이 대전시티즌의 사진을 촬영하는 서혜민 기자도 감정을 절제하는 데 실패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지난 2012시즌 대전유니폼을 입었던 김형범은 대전의 잔류를 이끈 해결사였다. 올 시즌에는 대전이 강등을 당하는 데 일조한 잔인한 운명을 마주했다. 그는 이날 경기에 경남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경기를 마친 뒤에야 복잡한 심경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털어놨다.

"타 팀선수이지만 내후배들이기도하다. 경기 끝난 후 울먹이며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내 후배들. 오늘 정말 후회없는 경기를 했을거라 생각된다. 팀이 어떤 위치에 있던 너희들의 뒷모습까지 지켜주는 팬들을 위해 항상 같은 마음이길 바란다. 고생했다..이놈들아.."

강등이 되었다고 세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경기를 마치고 나서는 선수단을 향해 원정 팬들은 응원의 구호를 외쳤다. "그들이 가는 곳, 우리가 있다! 대전, 대전, 우릴 위해 골을!" 자줏빛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1부 소속으로 치를 2013시즌의 마지막 홈 경기가 남아있다.

2003-2013, 축구특별시의 요동치는 역사

2003년, 대전은 평균 관중 1위(19,082명), 홈 승률 1위를 기록하며 연고 정착의 모범사례로 손꼽혔다. '축구특별시'라는 별명을 얻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2013시즌 대전은 평균 관중 5,863명으로 14개 구단 중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챌린지로 떠나는 길, 30일 전남드래곤즈를 상대하는 마지막 홈 경기는 대전이 넘어질지언정 다시 일어나 뛰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시즌 내내 이어진 강등의 위협에도 대전시티즌은 미래를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투자 자금을 유치한 결과 2013시즌부터 사용할 수 있는 클럽 하우스를 완공했다. 대전, 충남 지역에 광범위한 유소년 아카데미를 진행하며 저변 확대에 나섰다. 선수 육성뿐 아니라가족 경기 운영 요원 체험, 축구 직업 체험 기회 제공 등 시민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전시티즌의 구단주인 염홍철 대전 시장은 이미 지난 10월 강등 여부와 관계 없는 지원과 투자를 약속했다.

"강등된다고 해도 대전 시티즌에 대한 시와 시민의 지원은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내 자식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나.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강등이 된다고 해도 충분히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만큼 대전 시티즌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내년도 예산이 반토막 났다는 소문도 있는데 이는 사실무근이다. 시 의회에서도 대전시티즌의 가치를 인정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격려하고 성원을 보내는 것이 시와 시민의 도리다."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강등은 굴욕이 아니라 역사다. 대전시티즌은 다시 클래식(1부)으로 돌아오기 위한 특별한 도전에 임한다. 최근 5경기에서 보여준 힘은 대전의 저력에 대한 믿음을 갖게 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도 2부리그에 강등됐던 적이 있다. 일본 최고의 인기 구단 중 하나인 우라와레즈도 강등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들의 강등이 2부리그를 더욱 흥미진진한 무대로 만들었다. 최근 스페인 라리가에선 '노란잠수함' 비야레알이 강등 한 시즌 만에 돌아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전도 K리그 승강제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 바닥을 친 대전 축구는 이제 더 큰 반등을 준비하고 있다.

글=한준 기자사진=대전시티즌 제공

:: 환상곡은 형식에 구애됨 없이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로이 작곡한 음악 작품을 뜻한다. 영어로는 환타지(Fantasy)다. '한준의 축구환상곡'은 축구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때로는 환타지 소설처럼 풀어낸 하는 한준 기자의 컬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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