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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명규 부회장 이제는 말해야 한다

권종오 기자 입력 2014. 02. 17. 10:15 수정 2014. 02. 1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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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0일 보도전문채널인 YTN은 한국체대 쇼트트랙 A코치가 자신이 지도하던 여자선수를 상대로 성추행을 시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성추행의 당사자인 A코치는 아무런 조사나 처벌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지난해 국가대표 쇼트트랙팀 코치로 발탁돼 현재까지 선수를 지도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A코치의 스승이면서 빙상경기연맹 고위 임원인 한국체대 B교수는 추행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고 YTN은 보도했습니다.

이 소식이 나간 지 5일 뒤인 지난 1월15일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선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성추문 전력이 이미 빙상계에 널리 알려진 코치가 대표팀 코치로 발탁된 배후에는 빙상연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교수의 힘이 작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안씨는 "한체대 지도교수이자 (빙상)연맹의 고위 임원으로 있는 그분의 묵인 아래 (문제의 코치가) 대표팀 코치로 발탁된 것"이라며 "연맹에서는 이분의 말씀이면 문제가 있어도 모든 것이 다 승인된다"고 말했습니다. 안씨는 또 "빙상연맹 회장은 모든 행정을 부회장과 이사들에게 일임하고 연맹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데, 이사들 모두가 이 교수의 측근인데 누가 거역하겠느냐?"라며 반문했습니다.

이보다 하루 전인 1월14일에는 한국 빙상계 원로인 장명희 아시아빙상경기연맹(ASU)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현 대한빙상경기연맹 집행부를 공개 비판했습니다. 장회장은 이날 빙상연맹의 한 고위 임원을 '원흉'으로 지적하며 "추종하는 세력은 잘못도 용서해주고, 눈 밖에 나면 출전 선수를 수시로 바꾸는 등 불이익을 준다"면서 "제왕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선수가 불이익을 당해도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강하게 성토했습니다. 장회장은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의 사례 등을 거론하며 이 임원이 전횡을 부렸다는 다른 의혹을 줄줄이 제기했습니다.

YTN 보도에서 나오는 한국체대 B교수, 안현수 아버지 안기원씨와 장명희 회장이 지적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고위 임원은 동일 인물, 즉 같은 사람입니다. 한국체대 교수이면서 빙상경기연맹의 고위 임원을 하고 있는 인물은 현재 한 사람 밖에 없기 때문에 그동안 언론에서 B교수 또는 B임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B임원의 실명을 공개하겠습니다. B임원은 '한국 쇼트트랙의 대부', 또는 '한국 빙상의 대부'로 불리는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입니다. 그는 감독시절에 4차례의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금메달만 11개를 이끌어낸 전설적인 지도자입니다. 김기훈, 이준호, 전이경, 김동성, 안현수까지 우리가 아는 쇼트트랙 스타들이 모두 그가 길러낸 선수들입니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는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등 '빙속 3총사'가 금메달을 획득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2002년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안현수를 발탁할 만큼 유망주를 미리 내다보는 안목은 거의 '매의 눈'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동계올림픽은 그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TV와 신문 등 모든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명감독으로 오랫동안 권위를 누렸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현재 소치동계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몸을 극도로 낮추고 있습니다. 언론과의 접촉도 가능한 피했습니다. 며칠 전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인 아들러 아레나에서 그를 봤을 때 얼굴은 거의 흙빛이었습니다. 표정이 너무 어두워 20년 넘게 그를 알고 있는 저로서도 간단한 인사말조차 붙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만큼 사면초가에 몰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로서는 서울로부터 최악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러시아에 귀화해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쇼트트랙 안현수 선수와 관련해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 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문체부에서는 선수들이 실력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체육비리와 관련해서는 반드시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구체적 인물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체육계에서는 결국 전명규 부회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박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전명규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은 "지금은 올림픽에 출전 중인 선수들을 관리하는 데 모든 걸 집중하고 있다"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전명규 부회장과 가까운 사람들은 이렇게 항변하고 있습니다. "전명규 부회장이 한국 빙상의 실력자는 맞다. 한국체대 출신을 끔찍이 아끼는 것도 사실이다. 영향력이 크다 보니 음해도 많다. 안현수 부친 안기원씨는 능수능란한 언론플레이로 계속 전 부회장을 깎아내리고 있다. 안현수가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던 것이 왜 전명규 잘못인가? 장명희 회장의 비난은 전 부회장을 연맹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실권을 잡겠다는 노욕(老慾)에 불과하다." 결국 전명규 부회장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공과(功過)가 있기 마련입니다. 안현수 사태를 비롯해 현재 제기되고 있는 비리에서 책임이 있다면 솔직히 인정해야 되고 그렇지 않다면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고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전명규 부회장의 입장 표명은 소치동계올림픽이 끝난 직후가 적기라고 판단됩니다. 그는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물쩍' 넘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전명규 부회장은 한국 빙상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공인 중의 공인입니다. 현재 그에게 결코 '침묵은 금'이 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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