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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北선수들 탄광행?' 그래도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입력 2014.10.02. 15:06 수정 2014.10.0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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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한국과 북한이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맞붙는다.

36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긴장으로 다리에 쥐가 나도록 뛰었던 바로 그 경기 이후 남북축구가 맞붙은 적이 없었던 모양이구나.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벌써 36년이 지났다고 하니 너무나 많이 쓰는 말이긴하지만 정말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군.

1978년.당시 북한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두려운 존재였다. 북한 자체가 두려운 것도 없지는 않지만 매주 '수사반장'이라는 티비극을 통해 보는 사건들은 누구라도 잠깐 사람 잘못만나면 간첩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항상 심어줬다. 당시 '수사반장'은 인기가 아주 높은 TV 단막극이었다.

1974년인가?아시안게임 숙소 식당에서 형들도 없는데 북한의 박두익 감독이 혼자 밥먹는 나에게 "한복을 입으니 어른같더니 이렇게 보니 애구나!" 하면서 말을 걸어오는데 어찌나 놀래고 무서웠는지 두리번거리며 형들이 어디없나 하고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박두익 감독은 66년 영국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공격수 출신 스타 감독이어서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전쟁 전에 함께 뛰었던 친구들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던 때라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는데, 박두익 감독은 전 연세대감독이시던 김지성 선생님[? 죄송한데 정확한 성함이 맞는지....]의 안부를 물으시면서 "걔 공부 참 못했수다!"고 한마디를 하여 긴장 속에서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해 2월에 '월간축구' 라는 잡지에 한복을 입은 사진이 표지에 나갔었는데 그걸 본 모양이었다.

1974년 당시 북한은 강팀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북한팀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북한은 박두익이라는 스타감독에 당시 우리로서는 꿈도 꿔보지 못한 유럽 원정을 다니면서 실전경험을 했었고, 소문으로는 우리보다 한수 위인 강팀이라고 했다. 북한에게 지는 것은 우리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기 때문에 북한을 피해가고 싶어서 쿠웨이트전에 한골만 내주고 조 2위로 올라가자고 했는데 대량실점을 해버리는 바람에 8강에서 탈락을 하고 말았던 기억이 아직도 씁쓸하다.

우리들의 공포가 이 정도였으니 결승전에서 북한과 경기를 해야하는 중압감이 어느정도 일지는 짐작이 갈것이다. 나는 또 그 경기를 마치면 방콕에서 바로 독일로 가야했다. 분데스리가 입단을 위해 다름슈타트로 가는 것이었다. 그것 역시 설레고 긴장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내인생의 긴장도가 가장 높았던 며칠이 아니었나 짐작된다.

오늘도, 요즘도 남북대결은 긴장되는 일이다. 그러나 공포같은 것은 없다. 참 다행이다. 당시 막 20대 중반의 나는 정말 뛰고 또 뛰어도 지치지 않았는데 이 경기에서는 자꾸 쥐가 났다. 엄청나게 긴장하고 뛰었던 탓이다. 어떻게 뛰었는지 정말 기억도 없을 만큼 무조건 뛰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라이트 윙이라 감독 벤치 옆으로 공을 치고 다니는게 내 포지션이었다.

북한의 감독은 "기동하라우!!!!"를 연신 외쳤다. 선수들에게 더 뛰라는 얘기다. 아마도 긴장한 북한선수들도 나처럼 제대로 뛰질 못할게 뻔하니 감독도 답답했을 것이다. 우리 벤치라고 다르진 않았다. 소심한 김정남 감독은 90분 내내 일어서서는 "야, 앞으로 차내!!!!"라고 했다.

공을 가지고 경기를 하지 말고 무조건 상대방 진영 쪽으로만 차내라고 소리를 지르는 상황이니 양쪽 모두 정상적인 경기를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 재밌는 일이지만 당시는 그저 지면 큰일나는 심각하기만 했던 90분이었다.

결과는 무승부였다. 지금처럼 연장전을 하고 승부차기까지 해서 우승팀을 반드시 가려내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서 우리는 사이좋게 공동우승을 할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에 어느팀이라도 졌다면 우리는 비난과 꾸중이, 북한은 '탄광행'이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모두들 짐작하고 있었다. 이겨서 우승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지면 큰일난다는 생각이 훨씬 더 무겁게 우리를 눌렀다. 물론 그 와중에도 쟤네들은 지면 큰일인데....하면서 우리끼리 북쪽 선수들 걱정도 했던 기억이 난다.

시상식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북한 선수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우승컵을 누가 먼저 보관할 것인지를 추첨했는데 북한이 먼저 하는 것으로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 선수들은 그 상황을 추첨으로 우승을 가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얼마나 좋아했을지 짐작이 가실줄 믿는다.

주장인 호곤이형이 북한팀 주장과 함께 시상대에 올라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데 자기들이 추첨으로 우승이 됐다고 믿는 북한선수들이 호곤이형을 자꾸 밀쳤다. 내려오라는 뜻이다. 그걸 지켜보는 우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으니 당연히 분위기가 험악할 수 밖에.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이 36년 전이라니 나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시간이다.

오늘 SBS 오프닝에 나와서 당시 기억을 얘기해 달라고 성재가 부탁을 했다.그때 성재나 우리 딸 하나는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갓난아이 였으니 5-60대가 느끼는 이런 분위기를 공감할수 있을까? 성재와 문성이에 끌려서 오프닝을 잠깐 함께 해야한다.

이 새로운 세대의 친구들은 내말을 못 알아들을텐데 걱정이다.

물론, 성재는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고 우긴다. 그게 그렇게 해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닌데..... 하하하.

이제는 양쪽 모두 지지말아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이겨야지 하는 생각이 더 클것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이제는 북쪽 대표선수였던 정대세가 수원 삼성에서 골을 넣고 팬들과 함께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능프로에 나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세상이 되었으니 참 많이 변했다. 어마어마하게 변했다.

그래도 진보와 보수는 여전히 싸운다. 그들이 싸우면서 사용하는 단어도 점점 과격해진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얼굴이 찌푸려진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종북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했으면 하는 생각이 늘 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북쪽체제를 좋아하면 과연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좋을까? 이렇게 과격한 단어는 정말 선별해서 확인된 당사자들에게만 써야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많았다. 두리뭉실 쓰기에는 너무 위험한 단어다.

아내가 성재를 놀린다. 성재는 단호하다. '진보? 오케이입니다. 좌빨? 아니지만 진보를 빨간색으로 표현한다면 억울해도 할수 없지요. 말하는 사람 마음이니까요. 그렇지만 종북은 영 다릅니다. 저에게 그렇게 말하면 절대 안되지요.'

맞는 말이다.

오늘 남북축구. 월간축구가 전신인 베스트일레븐 잡지사에 부탁해서 표지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바로 왔다. 내가 봐도 아주 옛스럽다. 고향집 앞길에서 기자가 시키는대로 동네 애들과 손잡고 찍었다.

그때의 내 꿈은 축구를 잘해서 배부르게 먹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시절 많은 사람들의 꿈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이제 행복하다고 믿고 욕심부리지 말고 편안하게 살아야한다.

이것은 나에게 희망이 아니고 의무다. 옛날 사진을 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나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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