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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리스트]한국의 3쿠션 당구 레전드 탑5

입력 2015. 05. 26. 08:57 수정 2015. 11. 1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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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 요즘 한국 3쿠션 당구는 최전성기다. ‘승부사’ 최성원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래 세계 랭킹 1위를 달리고 있고, ‘한국당구의 미래’라는 김행직은 아시아선수권대회 제패와 3쿠션 월드컵 대회 준우승으로 더 나은 미래를 예견케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 3쿠션 당구는 1200만 명에 달한다는 국내 당구 인구를 고려할 때 세계무대에서 통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년 전부터다. 그만큼 우물안 개구리였고, 기술의 진보는 더뎠던 게 사실이다. 척박했던 한국 3쿠션 당구를 지금의 위치까지 끌어올렸고, 지금도 끌어올리고 있는 한국 당구 레전드 5인방을 순위를 매겨 꼽아봤다. 만약 이들 5명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면, 열혈 당구 마니아다.

아시안게임 3쿠션 당구 금메달리스트 황득희 프로

▶5위: 아시안게임, 아시아실내대회 우승 황득희=황득희(48)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3쿠션 부문 우승으로 한국인 첫 우승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더욱이 결승전 상대는 세계적인 기량의 재미교포 스타플레이어 이상천이어서 의미가 깊었다. 이전까지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변변한 성적 한번 내보지 못 했던 실정이었다. 이를 계기로 ‘적어도 아시아 무대에서는 해 볼 만 하다’는 자신감을 한국에 심어줬다. 그는 11년 뒤인 지난 2013년 인천실내무도아시안게임에서는 3쿠션이 아닌 1쿠션 부문에서 다시 우승하며 또 한번 아시아를 놀라게 했다.

황득희는 대개 조기 교육으로 당구에 입문하는 선수들과 달리 재수생 시절 당구에 입문한 케이스다. 태권도 공인 4단으로 태권도 특기생으로 대학에 들어가려 했으나 고배를 마신 뒤 여흥으로 접한 당구에 푹 빠져버렸다. 입문 3년 만에 4구 1000점 실력이 된 그는 아예 당구장 개업, 선수 등록을 하며 태권도복을 벗고 큐대를 들었다. 황득희는 현재도 후배선수들과 경쟁하며 활발히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선진 일본 당구를 국내에 도입한 '명예 2만점' 고 양귀문 옹

▶4위: 선진 당구 도입ㆍ후학 양성 ‘명예 2만점’ 양귀문=4구 당구 ‘명예 2만점’으로 유명한 고 양귀문 옹은 한국 당구계를 이끌어온 거목이자 역사 자체였다. 1936년 7월17일 출생으로 목포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양 옹은 일제시대 때 당구를 익힌 부친이 집 거실에 당구대를 놓아준 영향으로 대학 1학년 때부터 당구에 입문했다. 1972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한일친선당구대회에서 그의 뛰어난 활약에 반한 일본측 단장의 제안으로 일본으로 유학 길에 올랐다.

당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양 옹은 ‘묘기 대행진’이란 인기 TV쇼에 여러 차례 출연해 묘기 당구를 선보여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5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30여회의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84년엔 대한당구경기연맹 초대 회장을 맡았다. 현역에서 물러난 후에도 98년 방콕,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팀 총감독, 한국당구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하는 등 후진 양성에 매진해 왔다. 양 옹은 제자들을 상대로 당구 기술 강의를 하던 중 쓰러져 1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지난 해 2월 향년 77세로 별세했다.

'추격자' '승부사'로 통하는 세계선수권자 최성원

▶3위: 끝없는 도전의 결실, 한국인 최초 세계 1위 최성원=‘승부사’란 별명이 잘 아울리는 최성원(38)은 세계최고 상금규모의 아지피(AGIPI) 대회와 연간 4~5회 열리는 3쿠션 월드컵 대회(2012년), 그리고 매년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모두 석권한 그랜드슬래머다. 특히 아지피(2011년), 세계선수권(2014년) 우승은 한국선수로는 유일하다. 최성원은 또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앞세워 1월 13일 기준 세계당구연맹(UMB) 세계랭킹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5개월째인 현재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최성원은 이를 발판으로 최근 방영되고 있는 세계 최초의 당구용품 TV CF인 가브리엘 당구대, 몰리나리 당구큐의 모델로도 활약하고 있다. 수려한 외모와 번듯한 몸가짐, 정연한 말씨 등 모든 면에서 타 선수들의 모범사례로 귀감이 되고 있는 살아있는 레전드다. 3쿠션 당구는 40대, 50대에도 정상권 기량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10년, 20년간 한국 당구를 지탱할 든든한 버팀목이다.

당구천재 고 이상천 전 대한당구연맹 회장

▶2위: 혈혈단신 미국행, 월드스타 오른 ‘당신’ 이상천=서울대 출신의 또 한명의 당구 명인이 있다. 한국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선구자 고 이상천이다. 1954년생인 그는 33살이던 1987년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8개의 국내 타이틀을 쥔 채 더 이상 상대를 찾지 못 해 택한 선택지였다. 그는 1990년부터 2001년까지 12년 연속 전미당구선수권 챔피언을 지냈다. 1993년에는 현재는 없어진 세계프로당구협회(BWA) 챔피언에 올랐고 세계 3쿠션 월드컵에선 91, 92, 93, 94년 각 한 차례씩, 그리고 9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대회까지 무려 총 다섯 차례나 우승했다. 현 세계랭킹 1위 최성원이 월드컵에서 딱 한번 우승했다는 점만 비교해 봐도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알 수 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99년 그에게 ‘당구계의 마이클 조던’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그를 미국 최고의 당구 선수로 소개했다. 그의 플레이는 정석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신출귀몰한 진로를 택해 감쪽같이 성공한다. 작은 눈의 동양인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난구를 풀어내며 상대선수를 주눅들게 하는 모습은 경탄을 자아냈다. 2003년 이상천은 3쿠션 당구의 올림픽 종목 진입을 목표로 조국인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듬해 대한당구연맹 회장직을 맡았지만 발병한 위암과 투병하다 그해 10월19일 별세했다.

한국 당구 100년의 개척자 고 김경률 선수

▶1위: 100년 한국당구의 개척자, 당구천재 김경률=만 35세가 되는 생일인 올해 2월 23일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고 김경률. 12년간의 선수 생활동안 한국 당구에 획을 긋는 지대한 업적과 이력을 남겼다는 게 당구계의 평가다. 그는 지난 2003년 2월 선수로 정식 등록한 뒤 만 2년여 만인 2005년 5월 한국 랭킹 1위에 올라선다. 초스피드로 정상을 찍은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6년 말 한국 국적의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랭킹 12위에 오르며 국제대회 시드권을 획득한다. 이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로 100년을 넘게 보낸 한국 당구계가 마침내 ‘우물 밖’ 세계를 향해 진출하는 일대 전환점이 된다.

이후로도 승승장구한 그는 2009년 세계 랭킹 8위로 뛰어올랐고, 2010년 2월 터키 안탈리아 월드컵에서 딕 야스퍼스를 꺾고 드디어 우승을 차지한다. 이는 한국 국적의 선수로는 사상 최초의 일이다. 2010년 세계 3위로 올라선 김경률은 2011년 첫 월드컵인 그 해 2월 터키 트라브존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 역시 한국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세계 랭킹 2위에 등극하게 된다.

그의 활약은 국내 다른 선수들에게도 큰 귀감이 됐다. 최성원 조재호 강동궁 허정한 등 국내 탑랭커들이 해외 진출을 결심하도록 교두보 역할을 했다. 연맹 측은 “시드권이 주어지는 세계 12위 안에 들기 위해서는 3년간 꾸준히 국제 대회에 출전하면서 성적을 내야 한다. 그는 당시로서는 아무도 도전하지 않던 해외 대회에 거의 매번 자비로 출전하면서 험난한 도전을 계속했다”면서 “이런 면에서 그는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헌신적인 한국 당구의 개척자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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