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 스토리] 어머니 새기고 아버지 위해 던진 노경은의 0623

입력 2015. 10. 31.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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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조인식 기자]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노경은(31, 두산 베어스)이 다시 잠실의 박수갈채를 독차지했다.

노경은은 30일 잠실구장에서 있었던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5⅔이닝 2피안타 5탈삼진 2볼넷 무실점 호투해 팀의 4-3 승리 속에 승리투수가 됐다. 그가 경기를 지배한 두산은 3승 1패로 우승을 눈앞에 뒀다.

다시 가을의 영웅이 되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지는 아무도 몰랐다. 2013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로 승리를 따냈던 노경은은 2년간 추락했다. 지난해 최악의 시즌을 보낸 뒤 부활을 다짐했던 올해엔 아픈 일들만 계속 일어났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타구에 턱을 맞아 그간의 준비가 물거품이 되기도 했고, 어렵게 돌아온 뒤엔 모친상 전후로 다시 마음고생을 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겹치며 원했던 공이 나오지 않았다. 모친의 병환이 위중할 때도 노경은은 성적이 부진했다는 이유로 전후 사정을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아 더욱 힘들었다. 평소 노경은의 착한 성품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만 품을 뿐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노경은은 "2013년엔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에 승리투수까지 됐는데 (지금 상황이) 비참하기도 했다"며 달라진 자신의 위상에 잠시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문득 어제 (3차전) 경기 끝나고 그냥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던졌다. 2년 전보다 더 빛나는 피칭이었다.

4차전 중엔 작은 사건도 하나 있었다. 3회초 노경은의 팔찌를 본 김풍기 구심은 주의를 줬다. 그때를 돌아보며 노경은은 "심판께서 '경은아, 기분 나쁘더라도 빼야 될 것 같다"라고 말씀하셔서 따랐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어머니의 기일인 0623(6월 23일)이 새겨져 있어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팔찌였는데, 이것이 노경은의 독기를 깨웠다.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시점까지 그는 삼성의 강타선을 압도했다.

노경은은 안정된 피칭으로 두산 벤치까지 마음 편하게 만들었다. 유일하게 아찔했던 순간은 좌측 폴대 바깥쪽으로 날아간 야마이코 나바로의 파울홈런. 이에 대해 노경은은 "홈런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휘어서 나갔다. 하늘이 도와준 것 같다. 어머님이 도와주셨나보다"라며 웃었다.

무엇보다 이현승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 기분 좋은 일이다. "롱 릴리프다 보니 언제 올라가든 최대한 길게 던진다는 생각밖에 없다. (투수조에서) 형인데 하는 게 너무 없어 속상했다. 현승이 형 혼자 하는데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떻게든 덜 힘들게 도와주고 싶었는데 오늘 이런 결과가 나와 부담을 좀 덜었다"는 것이 노경은의 생각이다.

노경은은 0623을 팔찌는 물론 모자에도 적었다. 항상 어머니를 생각하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어머니를 새기고 아버지를 위해 던진다. 평소 노경은은 "아버지는 내가 던지는 것을 보는 게 삶의 낙이다"라며 아버지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자주 말해왔다.

가을에 품었던 작은 바람도 이제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준플레이오프가 진행될 당시 노경은은 "어머니가 안 계신 것은 아쉽지만, 아버지가 오늘도 경기를 보러 오셨다. 잘 던지고 싶다"고 전했다. 만약 어머니가 계셨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묻자 그때 그는 "시즌 끝나고 같이 여행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하기 힘들 것 같다. 우승한 뒤에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꿈꾸던 우승까지도 단 한 걸음만 남았다. /nic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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