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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박현준의 참회 "그때,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다."

박동희 기자 입력 2016. 09. 12. 19:24 수정 2016. 09. 1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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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3승을 거뒀을 때의 박현준과 2016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박현준(사진 왼쪽부터)(사진=LG/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전라북도 전주. 한 사내가 휴대전화 매장 앞에 설치된 가판대를 정리한다. 손놀림이 날쌘 듯 어색해 보인다. 날쌔게 느껴지는 건 손놀림 자체가 경쾌해서고, 어색해 보이는 건 뭐부터 정리할지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사내의 이름은 박현준(31).
 
유니폼 상의에 꽂힌 명찰엔 분명 ‘LG 유플러스 점장 박현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5년 전 그의 명찰은 가슴이 아닌 등에 새겨져 있었다. ‘LG 투수 11번 박현준’이 그의 이름이었다. 
 
5년 전인 2012년 박현준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며 박현준은 역시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영구제명 징계를 받았다. 2011년 13승을 기록하며 LG 투수진의 핵으로 떠올랐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제2의 임창용’이 되리라던 세간의 예상과 달리 박현준은 KBO(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영구제명된 뒤 ‘잊힌 선수’가 됐다. 그를 찾는 이도, 그를 찾을 일도, 그를 찾아야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야구와 작별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군 복무를 마친 박현준이 도미니칸리그 진출을 시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KBO와 야구협정을 맺은 미국, 일본, 타이완 등에선 현역 선수로 뛸 수 없는 처지인지라, 박현준이 현역 지속을 위해 부득이 도미니카까지 날아갔다는 소식이었다. 테스트 피칭에서 호투했다는 추가 소식이 들리며 박현준은 도미니칸리그에서 계속 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 소식이 끊겼다. 다시 박현준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6년 9월 9일 전주에서 기자는 박현준을 만났다. 그는 여전히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야구 유니폼이 아니었다. 휴대전화 매장 유니폼이었다. 박현준은 “지난해 도미니카에서 돌아온 뒤 야구인생을 끝냈다”며 “현재는 낮엔 휴대전화 매장의 점장으로, 밤엔 호프집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2월 일본 오키나와 LG 스프링캠프에서 본 뒤 5년 만에 다시 본다. 살이 좀 붙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몸이 좋아 보인다.
 
체중이 많이 늘었다. 현역 시절엔 83, 4kg였는데 지금은 92kg이다. 
 
‘점장 박현준’이라, 지금 입은 유니폼이 낯설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열심히 하고 있다. 직원들이 잘 도와줘 계속 배우면서 일하고 있다.
 
여전히 ‘LG’다. 현역 마지막 팀이 LG였는데 지금 일하는 통신사도 LG 쪽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의도한 건 아닌데…. 야구 그만두고 얻은 첫 번째 직장이 공교롭게도 LG 쪽이 됐다. 
 
13승 투수에서 ‘휴대전화 판매왕’에 오른 박현준

박현준이 엠스플뉴스와 대화하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9월 6일 박현준과 통화가 연결됐다. 5년 만의 전화통화였다. 박현준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즈음 박현준은 SNS로 자신의 심경을 밝힌 터였다. 
 
기자는 "야구계 복권이나 복귀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도와줄 일이 없을 거 같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박현준은 "이미 야구를 그만둔 상태"라며 "야구계 복권이나 복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박현준은 "5년 동안 반성하고, 또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생 반성해도 모자를 큰 잘못을 범했다. 앞으로도 계속 반성할 것"이라며 "야구팬들과 선수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밝혔다.
 
본지는 2016년 벌어진 승부조작 사건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했다. 이런 와중에 5년 전 승부조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현준을 만나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인지 고민했다. 박현준에 발언 기회를 주는 것이 자칫 어설픈 면죄부나 동정론을 가져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숙고했다.
 
그러다 결국 2012년 1차 승부조작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과 교훈을 박현준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2015년 겨울. 도미니칸리그에서 뛰는 걸 포기한 박현준은 귀국 후 방황을 거듭했다. 2012년 4월 KBO로부터 영구제명 징계를 받고서 계속 인생의 갈피를 못 잡았으니 4년째 방황이었다.
 
박현준의 방황이 끝난 건 야구와의 질긴 인연을 스스로 끊고부터였다. 그는 도미니카에서 돌아올 때 이미 야구의 끈을 놓은 터였다. 박현준은 “야구와 작별하자 새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고 고백했다.
 
한때 극단적인 생각마저 했던 박현준이었다. 두꺼운 껍질에 둘러싸여 세상과 등을 졌던 그였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새 삶을 살고 싶다는 평범한 희망을 품자 그의 인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올 3월 박현준을 매장 직원으로 뽑은 박00 LG 유플러스 전주점 사장은 “처음엔 박현준이 누군지 몰랐다”며 “(박)현준이를 소개해준 분이 ‘박 사장 전주고 후배’라고 말해 그런 줄로만 알았지, 과거 프로야구에서 뛰던 야구선수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 씨는 나중에야 박현준을 알았다. 박현준의 과거를 알았을 때 박 씨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 형이 야구팬이에요. 현준이를 잘 알더라고요. 현준이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뭐랄까 절박함이 느껴졌어요. ‘이 친구한테 기회를 주자. 기회를 주면 반드시 잘할거다’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그래 ‘나와 함께 일해보자’고 했죠. 결과요? 보시다시피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역시 운동했던 친구라 그런지, 승부욕이 있습니다.” 박 씨의 얘기다.
 
휴대전화 매장 직원으로 새 삶을 살기 시작한 박현준. 그는 어렵게 부여잡은 새 삶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올 3월에 휴대전화 매장 직원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반년 정도가 흐른 지금 점장을 맡고 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부족한 내게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 절대 실망감을 안겨 드리고 싶지 않아 정말 열심히 일했다. 매장 직원이 됐을 때 사장님께 약속한 게 두 가지 있다.
 
그게 뭔가.
 
우수직원 못지않게 열심히 일해 휴대전화를 많이 팔겠다는 것과 매장에서 판매왕에 오르겠다는 거였다.
 
약속을 지켰나.
 
지켰다. 약속을 지키니까 사장님께서 더 큰 기회를 주셨다. 직원에서 주임 그리고 점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다른 직원분들한테 미안할 정도다. 아직 부족한 게 많은데 늘 믿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늦은 질문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얼마전 SNS 글에도 밝혔다시피…사건 터지고 고향인 전주 내려와서 매일 술만 마셨다. 술 마시면 좀 잊히니까. 사건 터지고 솔직히 1, 2년 동안엔 술에 취해도 잠이 안 왔다.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알았지만, 다른 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무작정 숨고만 싶었다. 스트레스도 너무 심했고. 멍하니 넋 놓고 살았던 거 같다. 그러다 군 입대를 하게 됐다. 
 
군 생활은 어땠나.
 
남자들은 군대 가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하지 않나. 그때 정신이 들었다. 내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걸 깨닫게 됐다. (고갤 숙이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이 바로 후회였다. 어린 나이에 돈도 많이 벌고 하니 두려움이 없었던 거 같다.  
 
도미니카로 떠난 박현준 “사건 터지고, 세상이 무서워 도망 다니며 살았다.”
 
 
SK 시절의 박현준(사진=SK)
 
제대 후 도미니카로 떠났다. 그곳에서 야구인생을 다시 시작하려 한 것으로 안다.
 
전역하고, 얼마 뒤였다. 사건 터졌을 때가 스프링캠프 기간이었다. 그때부터 공을 한 번도 던지지 못했던 게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렇다고 공을 던질 수 있던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어깨가 좋지 않아 재활 중이었다. 그때 우연히 메이저리그 스카우트한테 연락이 왔다.
 
어떤 연락이었나.
 
“도미니칸리그에서 한번 던져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음.
 
내 주제에 그런 꿈을 가지면 안 되지만…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유니폼 입고 마운드에 서보고 싶었다. 김병곤 전 LG 트레이너께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덕분에 재활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야구선수로서 다시 야구공을 잡는다라.
 
다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2015년 7월에 전역하고, 9월에 출국했다. 몸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국했지만, 다시 야구공을 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테스트 피칭에선 합격점을 받았던 거로 안다. 
 
여전히 어깨가 안 좋았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그래도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테스트 피칭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그쪽 리그에 사이드암 투수가 흔치 않다 보니 타자들이 내 공을 잘 공략하지 못했다. 
 
하지만, 도미니칸리그에서 뛰지 못했다.
 
출국 당시 굉장히 조심스럽게 나갔다.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런데 어떻게 알고, 또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컸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실질적으로 야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무산된 셈이다.
 
도미니카에 간 이유는 하나였다. 그저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서 공 한번 던져보고 싶었다. 아쉬움? 나 같은 사람이 아쉬움을 논할 자격이나 있나. 솔직히 아쉽지 않았다. 소원을 풀었으니까. 그때…야구가 내게 사치란 걸 느꼈다. 
 
도미니카에서 돌아온 뒤론 어떻게 지냈나.
 
도미니카 갔다 와서 올 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뭐 할 게 없었으니까.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마땅치 않았다. 그때도 세상 앞에 다시 선다는 게 무척 두려웠다. 
 
2016년이면 사건 터진 지 5년이 지난 세월이다. 그래도 여전히 두려웠나.
 
행여 '날 알아볼까' 하는 두려움이 늘 발목을 잡았다. ‘저놈 저기서 저러고 있네’하는 소릴 듣는 게 두려웠다. 그러다 전주고 선배이신 박00 사장님을 만나게 됐다. 덕분에 현재는 새 삶을 찾아 열심히 살고 있다. 
 
박현준의 후회 “진작 사실을 말했어야 했지만, 아버지가 떠올랐다.”
 
LG 시절의 박현준(사진=LG)
 
2012년 2월. 당시 기자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를 취재 중이었다. 마침 LG 캠프를 취재하던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LG 사이드암 투수 박현준이 승부조작에 관련됐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LG 캠프는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웠다. 선수단 전체가 동요했고, 신임 사령탑 김기태 LG 감독은 연방 한숨만 내쉬었다. 백순길 LG 단장 역시 난감해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기자들이 LG 선수단에 가장 많이 한 질문이 "박현준이 승부조작 사실을 인정하느냐"였다.
 
그때마다 김 감독과 백 단장은 "선수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일단 선수를 믿어야 하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그리고 주석을 달듯 "우리도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캠프 내내 강력하게 혐의 사실을 부인하던 박현준을 보며 기자도 생각이 복잡해졌다. 캠프에서 여느 선수들처럼 열심히 훈련하는 그를 보면 ‘일단 선수를 믿어야 하지 않느냐’는 LG 측 설명이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우연히 시선이 마주친 박현준의 눈을 봤을 때 기자는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당당했던 박현준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기 때문이었다. 경희대 시절부터 봐온 그였지만, 그가 시선을 피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걸 언제 처음 알았나.
 
일본 오키나와 캠프에서였다. 그날이 휴식일이었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불이 날 만큼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 알고 보니 ‘(승부조작) 브로커가 잡혔다’는 연락이었다. 뉴스에서도 그 내용이 계속 뜨고. ‘이거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때 사실을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그랬어야 했다. 사실대로 말해야 했었는데….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나.
 
(잠시 침묵하다가) 아버지가 생각났다. 난 절대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아들이었다. 정말 힘들게 고생하셔서 날 운동 선수로 만들어주셨는데…. 당시 혐의를 부인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일이 무마될 줄 알았다. 
 
동료 선수, 감독, 단장에게도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그랬다. (백순길 LG) 단장님께서 물으셨다. “안 했다”고 대답했다. 내가 안 했다고 하니 단장님도 날 믿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정말 많이 배려해주셨는데 지금도 죄송할 따름이다.
 
입국장 게이트를 통과하며 미소 짓는 박현준(사진=MBC)
 
당시 오키나와 LG 캠프에서 훈련 중인 걸 봤다. 캠프에선 훈련에 집중하는 것 같았는데.
 
스프링캠프에서 팀 동료와 어울려 운동을 하긴 했는데. 속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 상태였다. 공도 손에 안 잡히고, 생각이 많아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팀원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입국 당시 많은 팬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선수가 입국장에서 미소를 머금은 채 게이트를 나왔으니 팬들이 분노할 만도 했다.
 
그 부분은, 언젠가 말씀드릴 기회가 오리라 생각했다. 비행기 타고 오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괜히 (승부조작을) 안 했다고 말했나’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 와중에 공항에 ‘딱’ 도착했는데 취재진이 나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섭고 떨렸다. 그때 누가 그랬다. “뒷문으로 취재진 피해서 나갈래, 아니면 정문으로 나갈래?”
 
어느 쪽을 선택했나.
 
“정문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나갔을 때 많은 이가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
 
입국장 게이트가 열렸는데 정말 엄청나게 많은 취재진이 나와 있었다. 세상의 모든 기자가 다 나를 보러 나온 느낌이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러시가 터지고. 그때 내 눈에 양00 LG 홍보팀 대리님이 보였다. 양 대리님은 당시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형한테는 모든 걸 다 말하고 싶었다. 그 형이 오키나와에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거다. 웃으려고 웃은 게 아니라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심했던 상황에서 내 편 같은 사람을 만나니 나도 모르게 반가움의 미소가 나왔던 거 같다. 
 
음.
 
나중에 TV 보고 나도 놀랐다. 왜 저런 어리석은 미소를 지었지, 나 같아도 욕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땐 그 형 얼굴이 내겐 한 줄기 빛처럼 보였다. 그 많은 사람 중에 그 형 얼굴만 보였으니까. 휴우-.
 
입국장에서 인터뷰 중인 박현준. 박현준의 좌측에 있는 이가 양00 전 LG 홍보팀 대리다(사진=MBC)
 
함께 승부조작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김성현과 “자수하자”는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나.
 
그땐 (김)성현이나 나나 어렸다. 어리석은 생각만 했다.
 
공항에 도착한 뒤 곧장 검찰로 향했나.
 
아니다. 전주 집으로 내려갔다. 
 
그땐 가족에게 진실을 이야기했나.
 
부모님께 “무조건 전 아닙니다”라고 했다.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검찰에 가서도 처음엔 부인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는 부인할 수 없겠다 싶었다. 다 증거를 확보하셨으니까. 검사님하고 면담하다가 사실을 고백했다. 마냥 눈물만 나왔다. 
 
검사가 뭐라고 하던가.
 
“잘 결정했다”고 했다. 
 
귀가했을 때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조사받고 전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부모님 뵐 면목도 없고. 부모님도 날 가만히 놔두셨다. 대구에서 자백했을 때 아버지한테 바로 전화를 드리긴 했다.
 
아버지의 실망감이 크셨겠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셨다. (눈물을 글썽이며)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2012년 사건보다 2016년 사건 터졌을 때가 더 괴로웠다.”
 
박현준의 현역 시절 투구 장면(사진=LG)
 
2012년 4월 대구지방법원이 경기 내용 조작 혐의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 추징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그 뒤 야구계에서 사라졌다.
 
당시엔 그저 한시라도 빨리 잊히고 싶었다. 전주 내려와서 매일 술만 마셨다. 처음엔 지방이라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다녀도 다 날 알아봤다. 너무 힘들었다. 주변의 시선이…. 지나가다 욕을 들어도 다 내게 하는 것 같고, 세상이 무서웠다. 
 
지금도 꼭 궁금한 게 있다. ‘2011년 13승이나 거둔 촉망받는 투수가 왜 승부조작에 가담했을까’이다.
 
알려진 이야기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변명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어리석었다.
 
시계를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2010년이다. 내가 야구를 잘하기 직전이었으니까. 
 
5년이 지난 2016년 7월 또 한 번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2012년 사건이 다시 터졌거나 그전 사건이 뒤늦게 알려진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새로운 사건이 터졌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어떻게 됐는지 뻔히 봐놓고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참담했다. 분명한 건 그 선수들이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최근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박현준에게로 쏠렸다. 다시 관심을 받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뉴스 보고 바로 해외로 나갔다. 내 일이 터졌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이제야 겨우 조용해졌는데…이제야 새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다시 내 이름이 거론되고. 무작정 도망갔다.
 
승부조작 그리고 5년 박현준이 하고 싶었던 말 “죄송합니다. 잘못을 뉘우치면서 살겠습니다.”
 
 
휴대전화 매장 유리를 닦고 있는 박현준(사진=엠스플뉴스)
 
최근 페이스북에 심경을 밝힌 글이 화제가 됐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2012년보다 2016년 사건이 더 힘들었다.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도망가다시피 해외로 떠났다. 그러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다. 이젠 세상 앞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SNS에 글을 쓰게 됐다. 
 
격려의 답글이 적지 않았다.
 
다행히 많은 분이 격려해주시고, 힘을 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절 욕하신 분이 계셨는데, 그 욕까지도 감사히 받아들이고, 반성의 계기로 삼자고 마음먹었다. 
 
격려가 큰 힘이 된 듯하다.
 
너무 감사했다. 한편으론 너무 죄송스럽고. 이렇게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현역 시절엔 얼마나 더 날 사랑해주셨을까 생각하니…정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전까진 서울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힘들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나 날 알아볼까 봐 겁부터 났다. 하지만, 이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2012년 저지른 잘못은 씻을 수 없는 과오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그로 인해 프로야구가 큰 홍역을 치른 걸 떠올리면 지금 인터뷰도 불편해하는 야구인과 팬들이 있을 거다. 이제 야구인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갈 텐데.
 
맞다. 내가 저지른 잘못은 평생 참회하며 살아도 부족할 거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도 늘 반성하며 살 생각이다. 날 지켜보는 분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살 생각이다. 부모님, 김병곤 트레이너님, 사장님, 중대장님. 이분들의 조언과 격려가 있었기에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한 분들이다. 다신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거다.
 
‘승부조작’이라는 검은 유혹에 흔들린 후배들이 있다. 지금도 검은 유혹은 스포츠계 어디서든 선량한 선수들에게 다가설 기회를 노리고 있다. 선수들에게 해줄 말이 많을 듯싶다.
 
정말로, 정말로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다시) 그럴 일이 없겠지만, (승부조작은) 가족이 부탁해도 들어줄 수 없는 일이어야 한다. 당사자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 마음은…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더 안쓰럽다. 스스로 잘 버텨내고, 사죄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죽고 싶단 생각을 수백 번은 더했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평생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꿋꿋이 이겨내길 바란다. 
 
기자에게 연락을 줬을 때 그런 말을 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라고. 그 말이 뭘까 전주로 내려오는 내내 생각했다.
 
2012년 사건 터지고 한 번도 팬들 앞에서 정식으로 사과드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점이 늘 마음 한편에 큰 짐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 와서 사과하는 게 맞는 걸까 싶지만, 꼭 하고 싶었던 말이기에 이 자릴 빌려 말씀드리고 싶다. 그동안 잘못한 부분 뉘우치면서 새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실망시켜드린 점 너무 죄송하고,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모범이 되게끔 살아가겠다. 철없던 시절, 무심코 저지른 잘못이 평생 씻지 못할 큰 상처가 됐다. 다른 야구 선수분들도 내 경우를 잊지 말고, 각종 유혹을 떨쳐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동희, 전수은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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