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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2017 한국체육⑾] 전북 현대 이동국 ① "난 불운한 공격수 아니다"

김덕중 기자 입력 2017. 01.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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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시즌도 행복하게 마친 이동국.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파주, 김덕중 기자]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10대의 나이로 혜성 같이 등장했다. 잠깐의 활약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그 이후에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는 부상으로 낙마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는 우루과이와 16강전서 득점 기회를 놓치며 팬들의 지탄을 받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는 대표 팀에 뽑히지 못했다. 정점에 섰을 때 뜻하지 않는 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래서 붙은 꼬리표가 '불운한 공격수'다.

지난해 연말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지도자 교육을 받고 있는 이동국을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표 팀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 뛸 때도 불운했던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머리와 가슴으로 배우고 느꼈다고 했다. 고난과 역경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동국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79년생으로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고 있다. 전북 현대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선수다.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컵을 품은 뒤에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엄청난 돈을 자국 리그에 쏟아붓고 있는 중국 그리고 일본 축구의 변화 속에서 K리그의 준비가 미흡하다면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음은 이동국과 일문일답.

-2016년 전북에 많은 일이 있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아무래도 ACL 우승 컵을 들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09년 전북에 와서 그해 K리그 우승하고 쭉 ACL에 진출하고 있는데 2011년 ACL 결승전에서 압도적인 경기를 하고도 홈에서 우승 컵을 들지 못했다. ACL 우승이 정말 쉽지 않구나 생각했다. 2016년에는 그 한을 풀었다. 원정에서 결승 2차전이 열렸는데 많은 팬들이 응원을 왔다. 그 앞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심판 매수 사건이 있었고 K리그 최종전 서울전에서 우승을 놓치는 등의 많은 일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 팀에서 어떤 소임을 하는지 궁금하다.

굳이 내 소임이라기 보다는 전북 모든 선수들이 위기를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있다. 굳이 내가 나서서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선수들 스스로 우리가 땀 흘려서 일궈 놓은 승점을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상황 인식이 있었다. 시즌 도중 악재가 터졌을 때도 남은 일정이 많았기 때문에 마지막 우승 컵을 품을 때까지 가 보자는 얘기를 했다. 선수들이 믿고 잘 따라왔다. K리그 우승은 놓쳤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33경기 무패 행진도 기록했다. 선수들 가슴 한 구석에는 우리가 챔피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장쑤 쑤닝과 경기 도중 하미레스에게 떠밀렸고 비슷한 상황이 수원전에서도 있었는데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본다면.

때리면 맞아야 되고 밀면 밀려야 된다(웃음). 나는 경기 외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지 않는 편이다. 상대에게 그런 행위를 유도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영리하게 플레이하면 숫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장쑤와 ACL 조별 리그 원정 경기에서 하미레스가 나를 밀쳐 내 퇴장당했다. 그 퇴장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시점에 나와서 팀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경기 초반에 일어났다면 결과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정조국이 2016년 MVP로 뽑힌 뒤 이동국을 얘기했다. 오랜 선수 생활의 비결이 있다면?

정조국 선수가 정말 눈부신 활약으로 MVP와 득점왕 등을 싹쓸이했다. 좋아하는 후배다. 잘 안됐을 때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선수였다. 2016년 시즌을 잘 보내서 나도 기분이 좋다. 오랜 선수 생활의 비결이라면 주위 동료들과 소통을 잘했던 것 같다.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선을 따라 패스를 줘라는 식의 대화를 많이 했다. 또 스피드가 뛰어난 편이 아니라 문전에서 간결하게 골을 넣는 훈련을 했고 이를 극대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플레이를 위해 필요한 기술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한 방이 필요한 순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이동국이라는 선수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이 나이에도 아직 경쟁력이 있는 선수가 된 것 같다.

-이제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현재 시점 선수로서 목표가 있는지 궁금하다.

바뀌지 않았다. 시즌마다 생각하고는 하는데 선수로서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고 많은 득점 기회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개인 타이틀도 얻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상 없는 시즌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시즌마다 하고 있다.

-그래도 선수로서 가장 아쉬운 순간은 언제였나. 지난 일이니 속 시원히 밝혀 달라.

어떻게 보면 이 나이까지 축구를 할 수 있는 이유가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해서인 것 같다. 경기에 져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다음 경기를 생각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정말 뛰고 싶었지만 밖에서 지켜봐야 했다. 크게 좌절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2002년 월드컵을 뛰지 못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이 많다. 일례로 내가 갖고 있던 나쁜 습관을 버릴 수 있었다. 또 입대해서 정신적으로 한층 강해져서 나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지만 나는 선수로서 불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동국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보낸 시간도 소중했다.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지만 축구 유학을 가서 1년 반 정도 돈까지 벌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외국 선수들의 문화, 경기 준비 자세 등을 지켜볼 수 있었다. 경기에 많이 투입되지 않았지만 그 이상 머리, 가슴으로 배우고 느꼈다.

[영상] 이동국 인터뷰 ⓒ 스포티비뉴스 촬영 한희재 기자, 편집 장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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