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하는 손연재의 두 얼굴

이준목 2017. 2. 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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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리듬체조 역사에 한 획.. 운동 외적인 부분에선 '마음 고생'

[오마이뉴스 글:이준목, 편집:박순옥]

리듬체조 스타 손연재가 전격 은퇴했다. 손연재의 소속사 갤럭시아SM은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손연재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현역 선수로서도 완전히 은퇴할 것이라고 알렸다.

손연재는 개인 SNS에도 리우올림픽 출전 당시의 사진과 함께 "은퇴에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다. 17년 동안의 시간들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있었고 내가 얼마나 많이 배우고 성장했는지 알기에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함께 걸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며 장문의 소감을 남기고 작별을 고했다.

사실 손연재의 은퇴설은 올해 초부터 제기됐다. 손연재는 지난해 열린 전국체전에 이어 올해 국제체조연맹(FIG)이 주최한 2017 모스크바 그랑프리에도 불참했다. 리우올림픽 이후 새 프로그램 준비나 현역 생활 연장에 대하여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것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은퇴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던 이유다.

자의반 타의반 은퇴 택한 손연재?

하지만 손연재의 은퇴가 가까운 갑작스러운 결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손연재의 은퇴 배경을 살펴보면 자의반 타의반에 가까워 보인다. 진로를 놓고 고민을 거듭해온 것은 맞지만, 결국 손연재의 전격적인 은퇴 결정을 앞당긴 데는 주변 상황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손연재는 리우올림픽 이후 동기 부여를 잃은 상황이었다. 체조선수로서는 이제 적지 않은 나이가 되면서 학업이나 향후 진로를 향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파문에 연루되며 뜻하지 않게 비난의 중심에 놓인 것도 손연재를 힘들게 했다. 2014년 늘품체조 시연회 참석과 차움병원 진료 등 최순실-박근헤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두고 무수한 의혹을 양산해내며, 덩달아 손연재도 친정부적인 행태로 무언가 특혜를 누린게 아니냐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소속사는 이에 대하여 여러 차례 해명했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손연재에 대한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학업 문제도 사실상 선수 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된 이유다. 이 역시 최순실 사태와 관련이 있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승마 특기생으로 이화여대 입학과 재학 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체육특기생에 대한 관리가 예전보다 엄격해졌다. 연세대 레저스포츠학과 13학번인 손연재는 졸업까지 두 학기를 남겨둔 가운에 학업에 좀더 전념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과거처럼 해외 전지훈련과 국제대회를 오가며 학업과 병행하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어쨌든 손연재가 한국 리듬체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세계무대에서는 체조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에서 다섯 살에 리듬체조를 시작하여 17년간 각고의 노력을 거듭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선수로서의 성장과정이나 스타성에서 '피겨 여제' 김연아와 자주 비교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손연재는 지난해 열린 2016 리우올림픽에서 목표인 메달 획득에는 끝내 실패했지만 개인 종합 4위의 성적만도 한국을 비롯한 역대 아시아권 선수로서는 최고의 성적이었다. 은퇴하는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손연재의 뒤를 이을 만한 선수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김연아와 비교 오히려 '마이너스'... 개인 성취 폄하돼선 안 돼

하지만 손연재는 김연아와 같은 국민스타의 반열에까지 올라다고 평가받지는 않는다. 김연아 역시 전성기에도 극성 팬과 안티가 공존하는 선수였지만, 손연재는 오히려 김연아보다도 더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여성 스포츠 스타의 대명사였다. 손연재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팬들은, 손연재가 진짜 실력이나 업적에 비하여 애초부터 '언플'과 특혜로 과도하게 포장된 선수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김연아와 자주 비교대상에 오르내린 것 자체도 손연재에게는 마이너스였다. 해당 분야와 환경도 전혀 다르고, 손연재 스스로도 김연아와 자신을 직접 비교한 일은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손연재에게는 '제2의 김연아'라는 수식어가 끊임없이 따라붙었다.

김연아는 은퇴 직전까지 선수로서의 압도적인 실력과 성취(올림픽 금메달 등)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논란과 비난을 깔끔하게 불식시켰다. 여기에 마지막 올림픽에서의 아쉬운 은메달과 판정 논란, 최근 늘품체조 불참과 스포츠 블랙리스트 논란 등으로 '박해받는 영웅'의 이미지가 더해지며 많은 동정론까지 얻었다.

이에  비하여, 손연재는 끝내 자타가 공인한 '월드 클래스'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국내의 체육환경과 리듬체조 인프라에 비추어볼 때 손연재 개인의 성취가 결코 부족하거나 폄하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김연아에 익숙해진 대중의 눈높이에 비하여 손연재가 거둔 성과는 기대치에는 항상 부족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손연재는 희소성이 높은 여성 스포츠스타로서 국내에서 함께 성장할 별다른 경쟁자가 없었던 데다가, 아직 본인의 노력과 실력을 인정받기 전부터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는 듯했던 모습이 오히려 많은 대중들에게 '만들어진 스타'로서 손연재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어쩌면 손연재라는 선수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녀가 은퇴한 지금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른다. 손연재가 은퇴하게 되면서 한국 리듬체조계는 손연재의 뒤를 이을 스타 발굴과 함께 리듬체조를 향한 대중의 관심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가장 큰 화두가 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손연재의 활약상과 인지도가 한국 리듬체조를 알리는 데 기여한 점은 빼놓을 수 없다.

선수 손연재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몫이지만, 그녀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루머가 대부분이다. 은퇴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손연재를 향한 과도한 비난이 자칫 선입견에 근거한 일방적인 마녀사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손연재의 경험과 성취는 앞으로도 한국 스포츠계의 귀중한 자산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손연재의 은퇴 이후의 행보가 여전히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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