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경의 포토카툰] FC안양의 서울 원정 뒷이야기.. 그들에게도 축구는 삶이다

조회수 2017. 4. 21. 13: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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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포토카툰 <누구도 그들 삶에 '오물'을 던질 수 없다>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의 땀과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승부의 세계에서 몸이 부서져라 뛰고 또 뛰는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포토카툰은 눈이 오나 비가오나 늘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원정석에서 열정적으로 응원을 펼치는 안양 서포터스 이곤 씨

"마음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2004년 팀이 (서울로)떠날 때 모두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이렇게 다시 만났네요... 저쪽(FC서울)은 우리에게 뭐라 할 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저쪽이 절대 인정하지 못할 팀입니다...(생략)"


인터뷰에 응하던 이곤 씨의 눈가에 어느덧 눈물이 맺혔다.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어찌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안양LG가 연고지를 옮기기 전부터 안양을 응원했던 서포터스 이곤 씨는 "여기 있는 대부분이 연고이전 전부터 응원한 사람들"이라며 "FC안양과 서포터스 친구들이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안양 서포터스에는 이곤 씨 처럼 안양과 젊은 시절을 함께 한 중장년층이 꽤 많다. ​

손을 잡고 축구장을 찾던 어린이는 청년이 되었고, 여자친구와 함께 축구장을 찾던 청년은 아버지가 됐다. 

주말이면 축구장을 찾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17년4월19일, 무심하게 떠난 '옛 애인(前 안양LG, 現 FC서울)'과 드디어 마주했다. '이별'로 막을 내린 줄 알았던 안양극장은 길고 긴 기다림 끝에 2막 '복수'편의 막을 올렸다. 그들의 역사적인 첫 만남을 사진으로 돌아본다.

원정석 곳곳에 붙여진 연고이전에 반대하는 스티커

경기 시작 전 안양 서포터석은 보랏빛 걸개로 뒤덮였다. 눈에 띄는 '안티 걸개'는 없었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았을 뿐 곳곳에 연고이전과 관련된 퍼포먼스가 준비돼 있었다.

접혀있던 걸개는 경기 시작과 함께 펼쳐졌다. 보라빛 의상을 입은 궁사가 빨간 치타를 향해 활을 겨누는 그림은 어떤 외침보다 전달력이 강했다.
개인적으로 피켓을 준비한 팬도 볼 수 있었다.
경기중 펼쳐진 연고이전 반대 피켓

이번 극장의 주제가 '복수'인 만큼 내심 더 강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연고이전과 관련한 '직접적인 퍼포먼스'는 여기까지였다. 그들은 응어리진 그것을 눈살 찌푸리는 응원이 아닌 커다란 목소리로 대변했다.

선수 입장 이후 안양 서포터석은 굉장히 분주해졌다. 한바탕 서포팅으로 열기가 뜨거워진 원정석에 "시작하자!"라는 외침이 들렸고, 팬들은 일제히 무언가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홍염이었다.

그들은 어떠한 의식을 치르듯 비장했다. 홍염이 꺼지자 어디선가 '수거반'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홍염을 수거하는 인원까지 배치했던 것이다.

"수거반"을 외치는 소리에 몇몇 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불꺼진 홍염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홍염이 정리되자 곧이어 보라색 연막탄이 터졌다. 쉴틈없이 이어지는 퍼포먼스에 지켜보는 팬들은 환호했고, 곁에 있던 보안요원은 소위 말하는 '멘붕'에 빠졌다.

뜨거운 연막탄을 손으로 잡으려다 놓친 보안요원이 망연자실 멈춰 서있다. 

보안요원은 결국 연막탄을 발로 차 관중석 밖으로 이동시켰고, 그 과정에서 연기는 더 넓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전반전이 진행되는 동안 소방관이 출동해 직접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펼쳐진 퍼포먼스는 커다란 함성이었다.

분노와 증오, 설움에 찬 목소리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울려퍼졌다. ​

이날 서포팅을 주도한 유재윤 FC안양 서포터스 회장은 "처음 조편성을 봤을 때는 다들 '잘 만났다. 때려 부수자'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응원하는 것은 선수를 위한 것이지 증오하기 위한 것이 아니더라. 팬들에게 최대한 분노를 누르고 오늘만큼은 선수들에게 에너지를 주자고 했다. 만약 우리가 증오만 한다면 응원이 안된다"며 이날 응원이 복수가 아닌 우리 팀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경기중 서포팅을 펼치는 유재윤 FC안양 서포터스 회장    

다음은 유재윤 FC안양 서포터스 회장 인터뷰 전문이다.​


-언제부터 안양을 응원했나.

1998년 안양LG시절부터다. 중학생 때부터 시작해 20년 가까이 됐다.  


-오늘 FC서울과 만난 것에 대한 소감은.

우리가 아직 신생팀에 가깝지만 1부 리그에 올라가면 계속 마주칠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FA컵을 통해 처음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오늘 경기에 대한 준비 과정은 어땠나. 

조추첨 끝난 뒤부터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각 소모임 대표로 구성된 TF팀을 꾸려서 퍼포먼스, 응원가, 걸개 세팅, 이동문제까지 준비를 많이 했다. 


-비용이 꽤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조추첨 결과가 나오자 요청하지 않았는데 후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홍보를 시작한 이후에는 안양 축구협회, 조기 축구회 등 여러 곳에서 후원금이 들어왔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천과 대전팬도 후원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무기명으로 입금한 분들도 많았다. 상대가 연고이전을 주도했던 팀이기 때문에 같은 마음으로 십시일반 모아 주신 게 아닌가 싶다. 


-안양팬들 분위기는 어땠나.

처음 조편성을 봤을 때는 다들 '잘 만났다. 때려 부수자'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응원하는 것은 선수를 위한 것이지 증오하기 위한 것이 아니더라. 팬들에게 최대한 분노를 누르고 오늘만큼은 선수들에게 에너지를 주자고 했다. 만약 우리가 증오만 한다면 응원이 안 된다. 다들 생각이 조금씩 변해서 오늘 만큼은 선수들을 위해 응원하자는 분위기가 됐다.  


-경기 중 누군가의 욕설이 나오자 제지하는 모습을 봤다. 사전에 '안티콜'은 하지 않기로 했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상대 선수에게 욕을 하나. 저들도 월급쟁이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폭력도 없어야 한다. 선수를 응원하는 분위기로 가야지 안티콜을 하거나 욕을 하면 주변에도 나쁜 영향이 가기 때문에 제지를 하는 편이다. 


-홍염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선은 엇갈릴 것 같다.

논란이 될 수도 있다. 화약을 터트리지 말라는 규정을 알고 있고, 평소에는 잘 지키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우리의 한을 풀 수 있는 하나의 향이라고 생각한다. 벌금도 모아뒀다. 각오하고 나왔다.  


-FC서울과 다음 만남에도 이런 퍼포먼스를 펼칠 것인가.

오늘은 '너네 그때 도망갔던 것 기억하니'라는 의미였고, 다음에는 더 멋진 것으로 준비할 것이다. 한두 번 붙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보여드릴 것이 많다. 



다짐대로 FC안양 팬들은 이날 자신들의 팀을 위한 열정적인 응원을 펼쳤다. 경기는 예상대로 FC서울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결과를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9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버텨 팀을 창단하고, 무려 13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 끝내 이 자리에 섰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팀 창단을 위해 스스로 집회를 열고, 전단지를 배부하며 꾸준히 안양 축구가 살아있음을 알렸다. 정치권에서 축구팀 창단에 대한 이윤을 따지며 공방을 벌일 때 느낀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참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축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2007년8월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삼성과  FC서울 경기 전반전 안양팬들이 '안양은 죽지 않는다'는 걸개를 걸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안양의 역사가 담긴 이 걸개는 이번 FA컵 32강전에도 등장했다. 
FC안양 팬들이 FC서울의 두 번째 득점을 지켜보고 있다.   

그라운드에 미련하게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있다면 그라운드 밖에는 더 미련하게 지켜보는 팬들이 있다. 선수들이 더 이 악물고 뛰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있다. 그들에게도 축구는 삶이다. ​


글 사진=구윤경 기자 (스포츠공감/kooyoonk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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