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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면 그만일까? 슈틸리케 감독이 주는 씁쓸함

김태석 입력 2017. 06. 15. 09:35 수정 2017. 06. 1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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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면 그만일까? 슈틸리케 감독이 주는 씁쓸함



(베스트 일레븐)

솔직히 말하겠다. 어쩌면 한국 팬들을 향한 마지막 발언 기회였기에,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카타르전 소회와 이후 행보를 설명하는 자세는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이란전 패배 직후 귀국했을 때 했던 발언이 떠올라 씁쓸했었고, 실제로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보는 처지에서 갑갑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단을 이끌고 지난 14일 저녁 5시경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4일 새벽 4시(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8라운드 카타르 원정 경기에서 2-3으로 패함에 따라 월드컵 본선 진출에 빨간불이 켜진 터라 수많은 취재진이 인천 국제공항을 찾아 슈틸리케 감독의 입에 주목했다. 경질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된 만큼, 어쩌면 한국 사령탑으로서 가지는 마지막 발언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술위원회가 곧 열린다고 한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항상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사실이다. 결과가 안 좋으니 팬들의 반응도 당연히 안 좋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비록 카타르전 결과가 좋지 못하지만, 경기 전 상황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본다. 남은 두 경기를 잘 치러 월드컵 본선에 가야 한다. 나와 함께 가든, 아니면 다른 감독과 가든 그건 부차적 문제다. 중요한 건 팀이 다시 일어서서 월드컵에 가야 한다. 두 경기가 남아 있다. 홈에서 치른 네 경기는 모두 이겼는데 원정에서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홈과 원정의 경기력 차이가 나 아쉽다. 홈에서 치러지는 이란전에서는 이기도록 하겠다.”

슈틸리케 감독의 변이다. 그의 말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첫째는 자신이 경질 압박에 시달릴 만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경기 전 상황(한국이 여전히 2위라는 점)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위험한 상황임을 알지만 그만 둘 생각없다는 뜻이다. 이는 이미 자신의 직함을 내려놓기로 작심한 듯했던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는 완전히 다른 자세였다. 심지어 기성용은 “만약 새 감독이 오면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 좋은 경기하겠다”라고 했다. 만약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슈틸리케 감독과 결별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주변 상황은 급박하게, 그것도 대단히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온전히 자신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이해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지금 상황이 힘들긴 해도, 아직 자력 진출 가능성이 살아있는데 왜들 호들갑이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모습이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됐다. 과거 그가 보인 모습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0월 이란 원정 경기에서 패하고 돌아온 후, “나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떠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한국 축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축구 전도사’라는 느낌을 주었던 인물이 궁지에 몰리자 돌연 계약 관계에 입각해 차가운 관점에서 발언한 거라 현장에서 접하면서 꽤나 놀랐었다. 그간 알고 있었던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였는데, 슈틸리케 감독이 그간 한국 축구와 월드컵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부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 축구는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오르면서 팬들에게 ‘월드컵은 당연히 나가는 대회’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반대로 설명하자면, 월드컵 본선 진출은 한국 축구가 이후 4년을 버틸 수 있는 동력을 불어넣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모든 나라들이 월드컵 본선에 오르길 희망하지만, 한국에서는 월드컵 본선행이 단순히 ‘진출’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 마름질하기엔 담긴 의미가 너무도 크다.

한국 축구계는 물론 이들을 바라보는 팬 층과 축구 산업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쳐서다. 때문에 A대표팀의 월드컵 도전은 단순히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아저씨 공놀이’ 수준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래서 A대표팀 감독의 소임은 단순히 팀 운영과 같은 기술적 측면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한국 축구 전체의 명운을 짊어지고 있다는 인식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챙겨야 할 A대표팀의 승리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으므로, 많은 이들이 슈틸리케 감독에게 이기길 바랐다.

헌데 슈틸리케 감독의 자세는 어느 순간부터 그게 아니었다. “떠나면 그만”이라는 말이 워낙 임팩트가 커서 그랬는지 모르나, 카타르전 이후에 그가 남긴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면 대단히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종 예선 돌입 후 카타르전 패배에 이르기까지 상황과 그가 남긴 발언을 모두 감안할 때, 현재 슈틸리케 감독의 입장은 대충 이럴 듯하다.

“상황이 엄중함을 아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은 있지만, 아무튼 내가 그만두진 않는다. 자를 테면 잘라봐라. 나는 떠나면 그만이다.”

대한축구협회는 15일 오후 2시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축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NFC)에서 기술위원회를 열어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를 최종 결정한다. 이미 사임 의사를 내비친 이용수 위원장과 ‘다음 감독’을 언급한 주장 기성용의 발언을 감안할 때, 이변이 없는 한 슈틸리케 감독은 해고 통지서를 받게 될 것이다. 팀은 내부에서부터 완전히 깨졌고,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 가느냐 못 가느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은 본인이 말했던대로 위약금을 챙겨 떠나면 그만인 상황이 됐다. 이럴려고 외국인 감독을 데려온 게 아니라는 걸 떠올리면, 슈틸리케 감독의 마지막 뒷 모습을 바라보는 게 매우 속이 쓰리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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