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구 30년 책임질 '김행직 VS 조명우'

입력 2017. 8. 26. 08:38 수정 2017. 8. 2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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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주고 밀어주는' 매탄고 7년 선후배
김, 포르투WC 우승..조, 성인대회 첫 정상
둘 다 기록 파괴자..최연소 국내 1위·최연소 우승
한국 당구계는 행복하다. 월드 챔피언이 5명이나 되고, 주축 선수인 최성원(40) 허정한 (40)조재호(37) 강동궁(37)이 모두 30~40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4대 천왕이 40대 중반~50대 중반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10년 이상 정상의 실력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실력파 선수들이 즐비하다.

무엇보다 김행직과 조명우라는 두 명의 걸출한 선수가 한국 당구의 미래를 더 밝게 해준다. 이미 둘은 객관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입증했다. ‘당구천재’ 김행직(전남연맹/LG유플러스·25)은 지난달 열린 ‘2017 포르투월드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뒤질세라 조명우도 최근 춘천에서 열린 ‘2017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전국당구대회’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공교롭게도 둘은 비슷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여섯 살 위인 김행직이 먼저 길을 닦으면 조명우가 쫓아가는 모양새다. 미래 한국 당구를 이끌어갈 ‘천재’와 ‘신동’, 둘의 얘기를 풀어본다.

‘당구 천재’와 ‘당구 신동’은 별명만 비슷한 게 아니다. 두 사람의 같은 듯 다른 행적은 세계주니어 3쿠션 선수권 우승 이력에서 시작된다. 만22세 이하 선수만 참가할 수 있는 세계주니어 챔피언 첫 타이틀을 김행직은 2007년, 조명우는 2016년에 획득했다. 둘 다 ‘당구 명문’ 수원 매탄고를 나왔고, 한국체육대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세계 당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 당구를 시작해서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란 선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섯 살 위인 김행직이 먼저 조명을 받은 것은 당연지사. 2007년 스페인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최연소 챔피언’ 타이틀을 딸 당시 김행직은 15살이었다. 1년 후인 2008년, 이번에는 조명우가 주목을 받았다. 아버지(조지언 씨)를 스승으로 둔 ‘당구 300점 신동’이 SBS 모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 TV를 본 경기도당구연맹 회장이 신동을 찾아가 프로 선수의 길을 제안했다. 그 신동이 바로 조명우다.

▲‘타박타박’ 김행직, ‘성큼성큼’ 조명우

큐는 조명우보다 김행직이 더 어린 나이에 잡았다. 당구장을 운영하던 부모님 영향으로 김행직은 걸음마를 떼기도 전인 3살 때부터 큐를 갖고 놀았다고 한다. 온 가족이 당구장 안에 마련된 별채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린 김행직에게 당구장은 놀이터였다.

“7~8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당구를 배우느라 친구들이 ‘공을 찰 때’ 나는 ‘공을 쳐야 했다’”는 조명우와는 당구에 대한 접근법이 달랐다. 당구 스승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행직은 “5~6살 때 처음 당구를 시작해서 5학년 때부턴 부모님이나 동네 어르신들한테 조금씩 배웠다”면서 “중학교 들어가서는 본격적으로 혼자 연습했다”고 답했다. 두 선수 모두 자연스럽게 정식 당구부가 있는 매탄고에 진학했다.

세계 주니어 챔피언에게 한국체육대학교가 문을 열어줬으나 김행직은 유럽으로 향했다. 그는 2010년 독일 호스터에크 팀의 일원이 돼 당구 분데스리가 1부 리그에 진출했다. 이어 2010~2012년 세계주니어선수권을 3연패하며 ‘당구 천재’라는 별명을 확고히 했다.

김행직의 매탄고 7년 후배인 조명우는 고교졸업 후 진로는 다른 길(한체대 진학)을 선택했다. 대회도 일반부보다 학생부 경기에 주로 참가하며 실력을 다졌다. 당시 몇몇 인터뷰에서 조명우는 자신의 롤 모델을 다니엘 산체스라고 밝혔다. 그리고 올해 7월, 그는 세계최고 당구클럽 FC포르투에 입단하며 다니엘 산체스와 한솥밥 먹는 사이가 됐다. 이 클럽에는 산체스를 비롯 딕 야스퍼스, 토브욘 브롬달 등 세계 4대천왕 중 3명이 몸담고 있다.

이제 조명우의 팀 동료가 된 다니엘 산체스는 “10년 전에 김행직이 있었다면 지금은 조명우가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김행직은 2015년 아시아선수권대회서 23살의 나이로 우승, 최연소 국내랭킹 1위에 올랐다. 고 김경률 선수가 26살에 이뤘던 것을 3년이나 앞당긴 기록이다. 동시에 국내 선수 최초로 대기업(LG유플러스)과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 모든 당구선수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때 얻은 별명이 ‘당구계의 손흥민’이다.

그 동안 조명우는 대회 경험을 쌓으며 조금씩 성장했다. 특히 지난 18일엔 춘천에서 열린 ‘2017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전국당구대회’ 3쿠션 남자부 우승컵을 들며 최연소 국내대회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재 조명우의 나이는 만 19세 5개월. 이는 2002년 3월 15일, 만 20세 11개월의 나이로 SBS배 대회에서 우승한 조재호의 기록에 18개월 가량 앞선 것이다.

김행직 (Billiardsphoto.com 제공)
▲세계 랭킹, 김 5위 조 21위

둘은 각자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김행직은 “나는 천재가 절대 아니다”고 한다. 그는 “내가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실제로 연습량이 엄청 많다”고 했다.

조명우도 “(신동이란 별명은) 어릴 때 어른들이 불러주던 별명인데 이제 신동이라고 불리기엔 나이를 많이 먹은 것 같다. 하하”며 “나도 신동보다는 천재로 불리고 싶다”고 밝혔다.

조명우의 현재 세계 랭킹은 21위, 김행직의 세계 랭킹은 5위로 한국 선수 중 가장 높다. 김행직은 또한 허정한(랭킹 12위)과 더불어 한국에선 두 명밖에 안 되는 월드컵당구대회 시드권자다. 성인무대 출발이 늦었던 조명우는 불과 1년 전부터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발전했다. 김행직은 2015년에 이어 2016년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2연패를 이뤘다. 조명우는 2016년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한데 이어 구리월드컵에서 ‘역대 최연소 4강 진출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뒤질세라 김행직도 보르도 세계선수권에서 역대 최연소로 결승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고, 올해 7월엔 ‘2017 포르투월드컵’ 챔피언이 되며 한국인 6번째 ‘월드컵 챔프’가 됐다.

조명우 (코줌코리아 제공)
▲김행직이 보는 조명우, 조명우가 보는 김행직

두 선수는 서로를 어떻게 평가할까. 김행직은 “나는 벌써 늙었고 (웃음) 명우가 워낙 훌륭한 선수라 내가 명우보다 나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겸손해하며 “남들에 대한 생각을 잘 하지 않아서 (명우의) 장단점이랄 게 딱히 안 떠오른다”고 말했다.

단지 그는 조명우와 달리 한체대 대신 호스터에크를 택한 것과 관련해 “네덜란드, 독일, 포르투갈 등에서의 경험은 다른 선수가 해보지 못한 값진 것이라 실전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밝혔다.

조명우는 “솔직히 행직이 형의 대기업 후원은 부럽다. 행직이 형 사례가 계기가 되어 저나 다른 당구선수도 그런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명우는 스스로 자신감이 강점이라고 했다. 그는 “시합 전에 긴장을 하더라도 시합이 시작되면 떨리지 않는다”며 “행직이 형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선수와 붙어도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두 선수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것은 2016년 구리 월드컵대회 예선에서다. 경기 결과는 32:40으로 조명우의 승. 조명우는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행직이 형을 이기고, 100위권 밖에 있던 세계 랭킹도 48위로 올랐으니 여러 가지로 나에게 중요한 경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행직은 “나도 잘 했는데 명우가 너무 잘 했다”고 했다.

올해 룩소르 월드컵에선 두 선수 모두 당시 세계 랭킹 1위인 야스퍼스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8강에선 김행직이, 4강에선 조명우가 야스퍼스에게 패했다. 둘은 한 달 뒤 호치민 월드컵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도 40:28로 조명우의 승리.

당구판에서는 흔히 가장 어려운 상대로 ‘나이 어린 선수’를 꼽는다. 이기면 당연한 거고, 지면 온갖 말들이 나온다. 이런 이유로 김행직으로서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조명우다.

▲‘세계 챔프’와 ‘국내 챔프’…밀어주고 끌어주고

2017 포르투월드컵 챔피언 김행직에 대해 조명우는 “행직이 형이 월드컵에서 상대한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우승 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러웠다”며 웃었다.

평소 바쁜 일정에 또 수줍음 많은 성격 탓에 축하인사를 못한 조명우는 MK빌리어드뉴스를 통해 인사를 전했다.

“행직이 형,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멋졌고 부러웠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해 형처럼 월드컵 우승해보겠습니다. 당장 다음달 청주월드컵에서 최선을 다해 볼게요. 하하”

성인무대 첫 우승을 한 조명우에 대해 김행직은 “시간 문제였지 명우의 우승은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안에 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김행직도 친한 동생이자 후배인 조명우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명우야. 성인부 첫 우승 정말 축하한다. 앞으로 ‘조명우의 시대’가 올 거야. 하하.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널 응원할게.”

7년 터울로 등장한 한국 당구의 천재와 신동. 김행직은 형답게 듬직하고, 조명우는 동생답게 톡톡튀며 발랄하다. 둘이 있어 한국 당구는 더욱 행복하다.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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