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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시리즈의 품격에 대하여

조회수 2017. 10. 30. 07: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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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에스키 구리엘이 눈을 찢었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 하필이면 FOX TV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MLB 커미셔너 사무국은 즉각 징계를 결정했다. 5게임 출장정지였다. 그런데 시기가 묘했다. 지금 당장이 아니었다. 내년 시즌이 대상이었다. 물음표 여러 개가 따라붙었다.

사안이 심각하긴 했나 보다.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가 직접 이유를 설명했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법률가답게 어려운 용어들을 등장시킨다. “출장 정지라는 징계는 급여 박탈과 동반돼야 한다. 그런데 포스트시즌은 연봉을 받는 시기가 아니다. 정규 시즌이라야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럴듯 하다. 하지만 뭔가 아닌 것 같다. 돈 문제라면 벌금도 같이 때리면 된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   

핵심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징계가 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다. 즉, 출장 정지에 대한 부담은 당사자에게만 적용돼야 한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로스터에 있는 다른 24명이 함께 처벌받는 것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무슨 말이냐. 구리엘이 빠지면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은 부당하다는 뜻이다. 얼핏 들으면 이것도 말이 안되는 얘기다. 잘못했으니까 출장 정지고, 그만큼 팀이 손해봐야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이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바로 월드시리즈라는 점이다.

물론 구리엘의 망동은 비열하고, 형편 없었다. 일벌로 다스려 백 사람을 경계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훼손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가치가 있다. 그게 MLB의 생각이다. 커미셔너가 부연했다. “다르빗슈가 성숙하게 대응했다. 이 사건을 뒤로 하고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했다. 아울러 구리엘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과오를 인정하고 다르빗슈에게 직접 사과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mbc sports+ 중계화면

번번이 논란이 되는 플레이들

이명기가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져나가는 공을 툭 건드렸다. 타구는 크게 바운드되면서 2루수 쪽으로 향했다. 타자의 달리기를 감안하면 내야 안타 가능성이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 투수가 용을 썼다. 온 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타구는 글러브 끝에 간신히 걸렸다. 어찌어찌 1루에 송구해서 아웃 카운트 1개를 잡았다. 그러나 중심을 잃고 그라운드에 나뒹굴고 말았다.

투수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드러누운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혹시 부상인가? 긴장이 흘렀다. 잠시 후 괜한 걱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가온 오재원이 환자(?)의 엉덩이를 '툭' 찼다. 얼른 일어나라는 뜻이었을 게다. 곧이어 곁에 있던 오재일도 똑같이 행동했다. 굳이 따지자면 조금 더 강도가 있었다.

한참 시끄러웠던 일이 있었다. 1차전 때였다. 8회 최형우가 강한 타구를 날렸다. 빠르게 구르던 공은 잔디와 경계턱을 맞고 크게 튀어 올랐다. 달려들어오던 수비의 키를 훌쩍 넘길만큼 높이 솟았다. 안타가 되자 2루수는 감정을 폭발시켰다. 글러브와 모자를 그라운드에 내팽개쳤다. 입으로는 뭔가를 혼잣말처럼 내뱉고 있었다. 양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한참을 씩씩거렸다.

다음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경우가 생겼다. 월드시리즈 2차전이었다. 주인공은 우익수 야시엘 푸이그였다. 경기 종반 안타성 타구에 몸을 날렸다. 하지만 타구는 땅에 맞고 담장을 넘어가며 인정 2루타가 됐다. 그러자 다저스의 말썽꾸러기는 글러브를 집어던졌다.

팬들에게 열띤 토론의 장이 열렸다. 한국에서 하면 매너를 따지고, 메이저리거가 하면 승부 근성을 얘기하냐고.


김인식 전 감독의 정색

흔한 일이 아니다. 김인식 (전) 감독이 정색했다. <일간스포츠> 관전평을 통해서였다. 전제까지 달았다. ‘이 한 마디는 꼭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용을 옮기면 이렇다.

1루수 오재일이 공을 넘겨주며 넘어져 있던 유희관의 엉덩이를 살짝 차더라. 꽉 찬 만원 관중, TV 중계 중에 ‘괜찮냐’고 물어보지 못할망정 발로 차는 건 아닌 것 같다. 이건 꼭 고쳐야 하는 행동이다. 보기에 안 좋았다. 긴장 풀기와 경거망동은 결코 같은 맥락이 아니다.’

혹자는 그럴 지 모른다. 그런 건 고리타분한 꼰X의 시각이라고. 뭐 그렇게 심각하고 진지하냐고.

이번 포스트시즌을 앞둔 시점이었다. 어느 선수의 각오가 인상 깊었다. 다이노스의 포수 김태군의 말이었다. “작년 한국시리즈 때 느낀 게 많았다. 우리는 갖고 있는 것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패했다. 반면 상대편 두산 선수들은 정말로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많이 배웠다.”

맞는 말이다. 베어스 (특히) 야수들의 플레이를 보면 확실히 다른 점이 많다. 제대로 알고, 맥을 짚으며 정확하게 움직인다. 큰 경기라고 얼거나 긴장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여러차례 성과를 내면서 얻은 관록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경계선이란 늘 아슬아슬한 법이다. 때로는 조금씩 넘치기도 한다.

넘어진 동료를 장난스럽게 발로 차고, 승부욕이 넘쳐 글러브나 헬멧을 집어던지고,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도 냉소를 흘리는…. 뭐 그렇다 치자. 보는 시각에 따라, 취향에 따라. 의견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옳고/그름, 잘/잘못의 관점만이 전부는 아니다. ‘품격’이라는 기준의 필터도 중요하다.

한국시리즈다. 챔피언이 가려지는 곳이다. 당연히 최고의 무대여야 한다. 미국 사람들은 ‘가을의 고전(Fall Classic)’이라는 은유로 표현한다.

이기고 지는 것, 결과만이 전부여서는 안된다. 그보다 훨씬 높은 레벨의 퍼포먼스가 필요한 자리다. 그것이 진짜 리그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소다. 열정, 헌신, 존중…. 빠져서는 안될 것들이다. 감동이라는 정서를 만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단어들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무대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당신들의 것이 아니다. 가슴으로 느끼고 환호하며, 애태우는 모두가 공유하는 곳이다.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플레이는 그 어떤 공감도 담아낼 수 없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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