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김주성, 박수 받을 때 떠난다

이상헌 기자 입력 2017. 12.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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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슈터'로 불리며 3점슛의 대가인 문경은 서울 SK 감독은 지난 1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원주 DB전에서 상대 팀 김주성에게 혀를 내둘렀다.

만 38세 노장 김주성이 4쿼터에만 3점슛 3개를 성공시키며 팀의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당시 TG삼보 선수였던 허재 농구대표팀 감독은 팀이 김주성을 지명하자 현장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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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DB의 베테랑 김주성이 지난 9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주 KCC와의 2017-2018 프로농구 정규리그 경기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2002-2003 시즌 TG 삼보(현 DB)에서 프로에 데뷔해 16시즌 동안 한 팀에서만 활약한 김주성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예정이다. 원주 DB 홈페이지

2017-18 시즌 끝으로 정든 농구 코트와 이별 선언

큰 키에 스피드·탄력 겸비한 빅맨
2002·2014 亞게임 금메달 견인
KBL서 유일하게 1000블록 넘겨
최근엔 3점포 장착… 승부처 활약
시즌 약체 평가 DB 상위권 이끌어

‘람보슈터’로 불리며 3점슛의 대가인 문경은 서울 SK 감독은 지난 1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원주 DB전에서 상대 팀 김주성에게 혀를 내둘렀다. 만 38세 노장 김주성이 4쿼터에만 3점슛 3개를 성공시키며 팀의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문 감독은 경기를 마친 후 “김주성이 저렇게 슛을 넣는 건 기적이에요. 기적”이라고 말했다.

기적 같은 김주성의 플레이도 올 시즌을 끝으로 볼 수 없게 됐다. DB는 18일 김주성이 올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나 은퇴한다고 밝혔다. 205㎝의 장신 김주성은 프로농구(KBL)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국제대회에서도 한국 농구의 대들보 역할을 해왔다.

프로 데뷔 전 그는 송영진, 박지현 등과 함께 대학 무대 주요 대회를 휩쓸며 중앙대 전성시대를 열었다. 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DB의 전신인 TG삼보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TG삼보 선수였던 허재 농구대표팀 감독은 팀이 김주성을 지명하자 현장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 환호성은 2002-2003시즌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TG삼보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어졌다.

KBL 데뷔와 함께 팀에 우승을 선사한 김주성은 이어 2004-2005시즌, 2007-2008시즌에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가 건재하던 시절 동부(2005-2006시즌부터 팀명 변경, 현 DB)는 ‘동부산성’이라고 불리면서 높이의 농구로 다른 팀을 압도했다.

김주성은 기록의 사나이였다. 이날 현재 정규리그 통산 출전 경기수 3위(711경기), 득점 2위(10124득점), 리바운드 2위(4366리바운드) 등 주요 지표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통산 블록에서는 1028개로 유일무이하게 1000블록 고지를 밟았다. 2위 찰스 로드(전주 KCC·531블록)와 큰 격차여서 이 기록은 KBL 역사에서 깨지기 힘들 전망이다.

또 김주성은 올 시즌 승부처에서 득점을 해주는 조커 역할에, 후배 선수들을 다독이는 맏형 역할까지 하며 약체로 평가받던 DB를 상위권에 올려놓는데 일조했다.

김주성은 골밑 싸움에서 밀리던 한국 대표팀에도 한줄기 서광이었다. 큰 키에 스피드와 탄력까지 갖춘 그는 2002 부산아시안게임·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쾌거를 견인했다. 혹사 논란이 제기될 정도로 KBL과 국제대회에서 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그는 불만을 내비치기보다 선수로서의 책임감을 먼저 생각했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김주성에게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와 등이 굽은 장애를 가진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아들 뒷바라지에 헌신적이었다. 김주성도 자신이 농구선수로 성공하는데 부모님의 힘이 컸다고 늘 말해왔다. 지금도 김주성의 부모님은 지방 원정도 마다하지 않고 아들의 경기를 보러 간다. 또 허재 국가 대표팀 감독은 중앙대 후배이자, 팀에서 한솥밥을 먹던 김주성을 끔찍이 아껴 자신이 먹던 보약까지 챙겨줬다.

중앙대 시절 김주성을 지도했던 스승 김태환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박수 받으며 떠나는 주성이가 정말 대견하다”며 “감독이 모자라서 질 경기도 주성이 덕으로 이긴 적이 있다”며 제자를 칭찬했다. 이어 “본인의 기량이 탁월했고 농구 센스도 있었다. 또 ‘법 없이도 살 사람’처럼 착하고 성실한 선수”라고 덧붙였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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