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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5년전 류현진이 오타니에게 끼친 결정적 영향

조회수 2018. 1. 18. 09: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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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게티 이미지

사례 1 : 초고교급이라는 수식이 딱 맞았다. 야탑고 시절에는 군계일학이었다. 3년간 OPS가 1.007이나 됐다. mlb.com 국제 유망주 랭킹이 13위까지 올라갔다. 뉴욕 양키스가 사이닝 보너스 116만 달러를 제시했다. 2015년 시즌을 앞두고 박효준은 날개를 활짝 폈다.

최근 <osen>이 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솔직히 첫 2년간은 야탑고 시절보다 못했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 박효준이 미국의 박효준보다 월등했덤 셈이다. 나와의 싸움에서 100% 완패했다.”

여전히 상위 싱글 A에 머물고 있다. 물론 그렇다. 아직 실패라는 말을 쓰기는 한참 이르다. 하지만 처음 예상보다 고생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사례 2 : 역시 고교 특급으로 불리던 배지환이었다. 이영민 타격상도 수상했다. 그가 KBO를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육성 선수 자격을 인정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불과 3개월 전과는 전혀 딴판이다. 신인 2차 드래프트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했다는 오피셜이 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계속 문제가 불거졌다. 애틀랜타 구단이 국제 스카우트 계약 과정에서 부당한 접촉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MLB 사무국의 중징계를 받게 됐다. 계약서는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덩달아 KBO에서도 해외 진출 선수에 대한 규정을 적용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따라 운명이 갈리게 됐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최소 1년은 무적 선수로 지내야 한다. 만약 받아들여도 문제다. KBO가 정식 소송으로 절차를 계속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지 모른다.

사진 제공 = 게티 이미지

니혼햄의 과감한 드래프트

2012년 10월 18일. 드래프트가 불과 일주일 앞이다. 모두가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그 때 결정적인 폭탄 선언이 터졌다. ‘꿈이 어쩌고, 도전이 어쩌고….’ 기자회견에서 나온 복잡하고 우아한 말 다 빼자. 그래서 정리하면 딱 이런 뜻이었다. “저 찍지 마세요. 그래봐야 소용없어요. 미국 갈거예요.” 이미 LA 다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 레드삭스와 접촉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닭 쫓던 개. 니혼햄 파이터스가 딱 그런 꼴이었다. 다르빗슈를 미국에 보낸 뒤 오매불망 그리던 슈퍼 루키였다. 침은 잔뜩 발라놨는데, 쳐다볼 생각도 안한다.

비상이 걸렸다. 저걸 어떻게 하나. 그냥 찍자니 바보될 게 뻔하다. 귀중한 드래프트 1번을 공중에 날리는 꼴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자기 일에 목숨까지 거는 게 일본식 문화 아닌가. (1998년 오릭스 스카우트 부장 미와타 가쓰토시 자살 사건.)

며칠 동안 답도 없는 회의가 계속됐다. 결국 결단은 내려졌다. D-2일이었다. 야마다 마사오 GM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우리의 계획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곁에 있던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약간 상기됐다. “오타니 군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틀 뒤. 물은 엎질러졌다. 드래프트 회의에서 니혼햄은 1순위로 단독 지명했다. 그리고 교섭권을 얻었다. TV 중계로 지켜본 당사자는 시큰둥했다. “약간 놀랐습니다. 잠깐 마음의 동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평가해주신 것은 고맙지만, 미국에 가서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68세의 야마다 단장은 이튿날 학교로 찾아갔다. 의전이나 예우의 의미다. 18살짜리 1순위 지명 선수를 ‘알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만나주질 않았다. 대신 고교 감독 얼굴만 보고 돌아가야 했다.

사진 제공 = 게티 이미지

30페이지짜리 파워포인트, 마음을 돌리다

일주일 쯤 지났다. 야마다 GM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집으로 찾아갔다. 이와테현이다. 일본 본섬에서 가장 북쪽의 춥고, 외딴 곳으로 날아갔다. 정성에 감동했을까. 드디어 당사자와 마주 앉았다. 양친도 함께였다.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받았다. 대략 50분 정도였다. 그러나 지극히 의례적인 자리로 끝났다.

마치 남북대화 같다. 일단 물꼬가 트이자, 금세 눈에 띄는 진전이 이뤄졌다. 3차, 4차 회동이 연이어 성사됐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3차 교섭이다. 구리야마 감독이 동석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회심의 카드가 제시됐다. 니혼햄 구단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30페이지짜리 PPT(파워포인트)였다.

제목부터 뭉클하다. ‘오타니 쇼헤이군 꿈에 대한 이정표(大谷翔平君 夢への道しるべ~).’ 스카우트팀 전체가 매달려 며칠간 밤샘 작업 끝에 탄생했다. 젊은 선수들의 해외 진출의 성과를 분석한 내용이었다. 야구뿐 아니다. 축구, 탁구, 테니스, 농구, 스키 등등. 모든 종목을 망라해서 샘플을 분석했다.

결국 이것이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미디어로부터 ‘가능성 제로를 바꾼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후에 언론을 통해 파일 전체가 공개되기도 했다.

여기에 따르면 해외 진출 전에 고려돼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리그의 경기력 ▶육성 시스템 ▶코치, 훈련장 등 인프라 구성 등등이다. 아울러 일본의 1,2군 시스템이 미국의 복잡한 팜 시스템에 비해 생존에 유리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니혼햄 화이터스 제작 <오타니 꿈에 대한 이정표> 중에서
                  니혼햄 화이터스 제작 <오타니 꿈에 대한 이정표> 중에서

직행하면 성공 확률은 5.6% '희박'

마치 연구 논문을 방불케했다. 30쪽 하나하나는 치밀하기 그지없었다. 명확한 데이터와 논리적인 분석이 뒷받침됐다. 근거 제시도 확실했다. 하지만 역시 복잡하다. 숫자와 그래프에 골치가 지끈거린다. 맞는 말 같기는 한 데, 아리송하다. 한참 듣다보면 머릿속에 안개가 피어오른다.

그러던 중 정신이 번쩍 드는 부분이 있었다. 11페이지였다. 작은 타이틀이 이랬다. ‘2장 7부 - 일본ㆍ한국야구 메이저(리그)에 대한 활약상황 중점 정리’.

                                   니혼햄 화이터스 제작 <오타니 꿈에 대한 이정표> 중에서

핵심 포인트였다. 자국 프로 리그를 거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했다. 그렇게 걸러낸 통계는 분명한 사실을 제시했다. (2012년이라는 점을 감안하시라)

① (일본) 프로 실적이 있는 선수 : 42명 중 29명이 메이저리그 활약 = 69.0% 확률

② (한ㆍ일) 프로 실적이 없는 선수 : 108명 중 6명이 메이저리그 활약 = 5.6% 확률

② 항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분류하면 이렇다. 한국은 48명 중 5명(10.4%), 일본은 60명 중 1명(1.7%)의 성공률이다. 유일한 1명은 매리너스에서 잠시 뛴 투수 맥 스즈키였다.

그러니까 PPT의 결론은 이런 얘기다. ‘마이너리그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다는 의도는 좋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일본에서 경력을 쌓고 가는 게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제까지의 통계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PPT가 실증하는 케이스 - 류현진의 ‘꽃길’

세치 혀의 공격은 맹렬했다. 단호하던 ML 지원자는 슬슬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그는 후일 그렇게 기억을 더듬었다. ‘솔직히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그날부터 다시 고민하게 됐죠.’

몇가지 콤비 블로우가 연타로 들어왔다. 백넘버 11번을 주겠다는 제안이 보태졌다. 가장 존경하는 선수라고 꼽았던 다르빗슈 선배가 달던 번호였다. 구리야마 감독은 칼 2자루를 주겠다고 설득했다. 이른바 타자와 투수를 겸업하는 ‘이도류(二刀流)’ 육성 플랜을 제시한 것이다. 18세의 도전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4차 회동까지 타임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 무렵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상기하시라. 일련의 과정들은 2012년 11월에 일어난 일들이다. 당시 전세계 야구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이 있었다. SBS <런닝맨> 녹화장에서 생생함이 전해졌다. 출연자 하나가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다가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이런 자막이 떴다. ‘축, 한국프로야구사상 역대 최고액으로 메이저리그 포스팅 입찰’. 유느님과 기린이 이름표 떼는 것도 잊고 축하 인사를 건넨다. 추신수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SBS TV  <런닝맨>

니혼햄이 열변을 토하던 바로 그 얘기였다. 생생한 케이스가 실제로 일어난 것이었다. ‘그냥 가면 X고생이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착실하게 자국 리그에서 실적 쌓는 게 현명한 일이다.’ 99번 투수가 정확하게 일치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일본 이와테현에서는 결국 18살 도전자가 기자 회견을 자청했다. 그리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빨리 가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앞섰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 혼란을 드려서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첫 해부터 활약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급기야 미국 진출 계획은 철회됐다.

일본 기자들이 노트북 자판에 불꽃을 튀길 무렵이었다. LA발로 또다른 빅 뉴스가 전해졌다. 다저스가 최초의 KBO 출신 투수와 6년짜리 빅 딜을 성사시켰다는 소식이었다. 30일 교섭권이 마감되기 직전이었다. 메이저리그 ‘꽃길’을 보장하는 계약이었다.

오타니의 잔류 선언, 그리고 류현진의 역사적 계약 성사는 같은 날 일이었다. 2012년 12월 9일이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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