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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미디어] 'DUGOUT Story' SK 와이번스 박정배

조회수 2018. 2. 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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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라는 마약

10살의 어린 소년은 막연히 야구가 하고 싶었다. 야구가 마냥 좋았던 소년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초등학교 야구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나뿐인 유니폼은 작은 고사리손으로 빨아 입었다. 아파서 야구도 제대로 못 한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어떠한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세웠던 목표들을 하나씩 이뤄나갔고 결국 그 꿈을 달성했다. 어른이 된 소년은 이제 오랫동안 야구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야구가 너무 하고 싶다고 말한다.

Photographer 황미노   Interview 윤태진  Editor 강성은   Location 인천SK행복드림구장


안녕하세요. 윤태진입니다. 요즘 독감이 유행하고 있는데 독자 여러분들은 괜찮으신가요? 저는 이번 ‘더그아웃 스토리’를 위해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지난 시즌 SK 와이번스 불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선수였던 박정배 선수입니다. 저도 박정배 선수와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겨울의 어느 날, 인천SK행복드림야구장에서 나눈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죠. 운동을 오래 쉬면 불안해하는 스타일이라 운동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어요.


올해가 황금개띠의 해라고 하잖아요. 박정배 선수도 1982년생 개띠인데 소감이 어떤가요?

그냥 야구가 빨리 하고 싶어요. 비시즌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게 야속합니다. 올해는 특히 더 빨리 마운드에 서고 싶네요. 2년 동안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공을 던져 그런가 봐요.


아무래도 2017시즌이 기록도 좋았고, 1군에서 풀타임으로 있었잖아요. 스스로도 2017년을 신나게 보냈을 것 같아요.

1군 풀타임도 처음이었죠. 예년에 비교해 좋았지만 그래도 뒤돌아보니 아쉬움이 남네요. (어떤 점이 아쉬워요?) 기복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시즌이 좋았던 걸 증명해주는 소식을 들었어요. 첫 억대 연봉에 진입을 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기분인가요?

꿈이었죠. 꿈. 프로야구 선수 유니폼 입는 게 꿈. 150km/h 던지는 게 꿈. 억대 연봉 이루는 게 꿈. 근데 이번에 그 꿈을 다 이뤘네요. 이제 다른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빨리 야구를 하고 싶은데…. (그 꿈을 다 이뤘다는 게 엄청난 것 같아요.) 안주하지 않고, 꿈을 이루고 있으니까 행복해요. 선수 생활을 좀 더 오래, 1년이라도 더 하는 게 목표예요.


지난 시즌 SK의 불펜이 불안한 모습도 자주 있었어요.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아쉬워요. 분명히 좋은 선수들인데. 조금만 뒷받침이 되어주면 좋은데 많이 무너졌잖아요. 시즌을 보내면서 저를 비롯한 선수단 모두가 힘을 모아야 좋아질 것 같은데 작년에 좀 안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지난 시즌을 아무 부담 없이 시작했거든요. 근데 갈수록 저에게 집중이 되니까 조금 부담이 되긴 하더라고요. 피로도도 쌓이고 심적으로 약간 흔들리고… 그래도 후반기에 다른 선수들이 회복세를 타 다행이었죠. 올해에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해야죠.


옛날 얘기를 잠깐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산 베어스 시절로 돌아가 볼게요. 2군에 있을 때 제구도 좋았고 기록도 좋았어요. 그런데 1군에 올라오면 그 기량이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웠을 것 같아요.

많이 아쉬웠죠. 당시 눈앞에 아른거리는 작은 벽만 넘으면 될 것 같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부담이었을까요?) 부담이 컸죠. 일단 올라가면 시야가 좁아지고 안 맞아야겠다, 점수 안 줘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이를 극복하고 마운드에 선 지금과 그때는 차이가 많이 나죠. 마인드 컨트롤도 안 됐고. ‘야, 그렇게 던져서 먹고 살겠냐?’ 주변에서 핀잔도 많이 들었어요. 가장이었으니까요. ‘그래. 나는 애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마운드에서 잡념이 많았어요. 던지는 데 집중해도 모자랄 판인데. 별생각 다 했죠.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니 답답하고… 과욕이었던 것 같아요.


결국은 팀을 나오게 됐고 그때 공주고 코치로 간다는 말도 있었어요.

고등학교 감독님이 박찬호 선배랑 동기예요. 한양대 선배시고. 마침 투수코치 자리가 비어있었어요. 같이 밥 먹으면서 생각이 정리되면 연락 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두산에서도 전력분석원 얘기를 했고요. 근데 이 일들은 나중에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을 했어요. 저는 일단 더 던지고 싶으니까 여기저기 알아보고 아는 코치님들한테도 전화를 했죠. 받아주는 곳이 없으면 그만둔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어요. 지금 드는 생각은 거기서 포기를 했다면… (큰일 났겠죠.) 그렇죠. 끝난 거죠. (웃음)


그때 이만수 감독님이 2군에서 눈여겨봤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얘기를 직접 앞에서 해주셨어요. 컴퓨터를 보여주셨죠. 저장해 놓으신 것들을. (되게 이만수 감독님답네요.) 선수마다 폴더가 있어요. 거기 딱 들어가서 보여주셨죠. 열심히 하겠다고 했어요. (웃음)


기분 좋았을 것 같아요.

네. 그렇게 12년도에 SK에 입단하게 되고 상황도 많이 좋아지고 둘째도 태어났죠. 둘째가 생겼다는 사실을 SK와 계약하러 가는 날 듣게 됐어요. 와이프가 초음파사진을 보여주더라고요. 당시 제가 방출되고 그랬으니까 말을 못 하고 있었던 거죠. 많이 미안했어요. 그래도 둘째가 건강하게 잘 태어나서… 근데 요즘 말을 너무 안 들어요. (웃음) (그래도 아빠를 많이 좋아하죠?) 그럼요. 같이 축구도 하고요.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이적 후 박정배 선수의 모습이 좋아졌어요. 스스로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에 와서 시범경기를 하는데 결과가 안 좋았어요. 감독님이 부르셔서 막 혼내시는 거예요. 그렇게 ‘쫄보’처럼 하면 되겠냐고. 그러면서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고 중앙대학교 교수님을 소개시켜주셨어요. 선생님도 그러시는 거예요. ‘어디 더 내려갈 데 있어요?’, ‘어디 땅 파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갈 데 없잖아요.’ 라면서 다 내려놓고 ‘그래, 쳐봐라’하고 던지래요. ‘하나 두~울 셋’ 하고 던지래요. 그래서 진짜 그렇게 했어요. 시합 때 위기가 왔는데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르는 거예요. 될 대로 돼라! ‘하나 두~울 셋’하고 던졌어요. 근데 결과가 좋았어요. 그러면서 ‘어? 이거 봐라?’ 하면서 자신감이 붙었죠. 다른 생각 안 하고 던지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대범해진 거네요. 조심성이 많다가) 가끔 ‘모르겠다’ 하고 던지고 그래요. 진짜 의외로 결과가 좋아요.


이적하고 첫 승 기억하세요? 의미 있는 승리일 것 같아요.

그 공은 딸 방에다가 올려놨어요. 특히 선발 투수로 등판해 첫 승을 했을 때와 중간 계투로 나와 승리했을 때가 기억이 많이 나요.


당시 기분이 어떠셨나요?

이적 첫 승보다 선발 첫 승했을 때가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어땠어요?) 라커룸에 들어가 옷 갈아입고 신발 벗고 있는데 트레이너가 막 박수를 쳐주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두 손에 주먹을 불끈 쥐고서 ‘야!’ 하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되게 좋았죠. 그런데 승리 인터뷰에서 한참 멍을 때렸어요. 말도 이상하게 나오고. 와이프 껴안고 운다고…. (웃음) (이불킥할 말을 하셨군요.) 그렇죠. (웃음)


SK로 이적하고 나서 포스트시즌도 처음 나갔고 데뷔 첫 선발승도 하셨고 올스타전도 감독추천으로 나갔어요. SK가 완전히 야구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네요.

그렇죠.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진행형으로 가야 하고요.


그런데 SK에 와서도 2014시즌에 어깨부상으로 수술을 했어요.

2013년에 재활캠프를 갔다가 돌아왔는데 팔이 잘 안 들리더라고요. 던지려고 하는데 팔이 제대로 안 움직이는 거예요. 병원을 세 군데 돌았는데 수술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고민을 하다가 마음을 바꾸고 재활을 선택했어요. 2013시즌 후반, 2014시즌 초반에는 괜찮았어요. 근데 또 나빠진 거예요. 일본에 가서 검진을 받았어요. 수술을 권유하더라고요. 결국 수술실에 눕게 됐죠. 운동선수에게 수술이라는 게 민감하잖아요. 하지만 당시의 결단이 지금 생각해보면 긍정적이라 할 수 있었죠. 수술을 받고 이튿날부터 팔 움직임이 편해졌어요. 복귀까지 1년 정도 소요됐는데 브레이크가 없었어요. 근데 (복귀전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힘들었던 게 생각나서 눈물이 낫던 거죠?

재활 기간은 매일 똑같음의 반복이에요. 마운드에 못 올라가니까 그리움 같은 게 생기죠. 아무도 없는 야구장의 마운드를 멍하니 쳐다봤어요. 그리고 한 번씩 올라가 보기도 했죠. 결국 꿈에 그리던 마운드로 돌아와 아웃 카운트를 잡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데 (이)재원이가 안아주더라고요. 모든 선수가 박수 쳐주고 잘했다 해주고. 화장실에 가서 물 틀어놓고 엉엉 울었어요. (웃음) 사람들이 막 놀리는데 안 해봐서 그래요. 겪어봐야 힘든 걸 알 거예요.


분위기를 바꾸어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떻게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야구부가 없는 학교에 들어갔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가 하고 싶어서 전학을 가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집과 거리가 있었지만 상관없었죠. (어떻게요? 그냥 ‘야구가 하고 싶어요.’ 그랬어요?) 하고 싶다고 했대요. 기억이 안 나는데. (웃음) 초등학교 때 고생을 많이 했죠. 부모님은 식당 일이 바빠 집에 거의 오지 못하셨고요. 야구부 유니폼이 하나밖에 없어 혼자 빨래해서 입고 그랬어요. 누나가 챙겨주지 못했다고, 지금 그걸 미안해하더라고요. 그때 누나도 중학생이었는데… 제가 별소리를 다 하죠. (웃음)


힘들었던 아마추어 시절을 버티고 프로 구단에 지명을 받았어요.

저는 지금도 새 유니폼을 받고 새 용품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그때가 최고였죠. 뒤에 내 이름이 새겨진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받았을 때. 아버지가 프로 입단 첫해에 돌아가셨어요.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유니폼을 챙겨서 보여드렸죠.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쉽고 죄송한 게 참 많아요. 제가 던지는 모습도 제대로 못 보여드린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약주를 좋아하셨는데, 철없던 저는 그 모습이 마냥 싫었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술 한 잔 제대로 못 따라드린 게 후회가 되네요.


지금 박정배 선수가 잘하는 모습 보시면서 흐뭇해하실 거예요. 맞다! 박찬호 선수와 초·중·고·대학교 직속 후배라 들었어요.

중동초-공주중-공주고 직속 선배세요. 그런데 9살이나 많으세요. 제가 야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때 박찬호 선배는 고등학교 3학년이셨죠. (학창 시절) 실제로 만난 일은 없었어요. (그래도 엄청 친할 것 같아요.) 엊그제인가 *톡 친구 목록에서 사라졌길래 다른 메신저로 연락했더니 바로 *톡으로 답장을 보내주시더라고요. 가족사진을 보내셔서, 저도 똑같이 가족사진으로 응수(?)했어요. (웃음)


힘이 되는 존재인가 봐요.

겨울에 기회가 있어서 운동을 같이 한 적이 있어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말씀하시는 거 되게 좋아하시잖아요.) 좋아하죠. 좋아하는데 막 혼자 떠드는 사람이 있고, 자기가 겪은 경험을 진솔하게 전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박찬호 선배는 후자예요. 진짜 가슴에 와닿는 게 많았어요. 한 번씩 장문으로 이런저런 얘기도 해주세요. 저는 운이 좋은 거죠. 그렇게 경험 많고 대단한 일을 하시는 분이 선배로 있으니까요.


두산 시절에 등 번호가 61번이었어요. 일부러 선택했던 건가요?

제가 원래 50번이었는데 제대를 하고 오니까 (김)현수가 50번인 거예요. 달라고 못 하잖아요. 김현수인데. (웃음) 그때 마침 선배님하고 같이 훈련하는데 거기서 조금 힘을 받아보자고 달았죠. 근데 얼마 못 갔죠. (웃음) (이거 박찬호 선수도 알아요?) 집에 있는 유니폼 찍어서 보내줘야죠. (웃음)


지금은 등 번호가 32번이에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처음 SK에 왔는데 번호를 안 물어보는 거예요. 제가 유니폼 받을 때 되게 기분 좋다고 했잖아요. 엄청 기대하고 받았는데 82번이었어요. 80번대는 코칭스태프 번호잖아요. 그걸 2012~2013시즌 2년을 달았어요. 2014시즌을 준비하는데 (김)선우 형이 은퇴를 했어요. 근데 좀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선우 형한테 얘기를 했죠. 제가 형 번호 달고 뛸게요. 되게 고마운 형이에요. 엄청 자상해요. (웃음) 지금도 가끔 연락해요. 1년 넘게 연락을 못 하다 전화를 해도 어제 만난 것처럼 고민을 들어주는 선배예요. ‘이렇게 해봐’ ‘너 잘하고 있어’라고 격려도 많이 해주세요. 그때 32번 선택을 잘 한 것 같아요. (61번보다는 32번이 낫다? (웃음)) 에이 ‘보다’는 아니고요. (웃음) 다 좋아요.


박정배 선수에게 별명이 있어요.

윤희상을 때려줘야지. (피콜로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어요. 어떻게 하다가 윤희상 선수가 지어주게 된 거에요?) (윤)희상이가 그림을 잘 그려요. (정말이요?) 그래서 특징을 잘 잡아요. 제가 두상이 뾰족하거든요. 피콜로도 뾰족하고. 그래서 닮았대요. (웃음) 제가 그랬어요. 추천 선수 말고 투표로 올스타에 뽑히면 내가 피콜로 분장한다고. 근데 투표로 어떻게 뽑히겠어요. (시무룩) (그건 모르는 거예요. 더듬이까지 붙이는 건 어떠세요?) 일본에서도 재일교포선수가 한 적이 있는데 잘 했더라고요. 올스타전에 뽑혀서 피콜로 분장하고 더듬이 붙이고. (꼭 한번 해보고 싶다?) 투표로 뽑히면요.


아, 너무 기대돼요. 똑같을 것 같아요. (웃음) 영상도 보셨어요?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박정배 선수 나올 때 뒤에 피콜로 영상이 나왔잖아요.

그 장면은 사람들이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몸을 풀 때 분위기를 느끼잖아요. 등판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구장 분위기가 이상한 거예요. 그때 저는 영상을 못 봤어요. 뭘까 싶었는데, 인터넷에 난리가 난 거예요. 공 던지고 내려와서 영상을 봤는데 장난처럼 느껴져서 하지 말라고 그랬죠. 근데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왜요?)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이 친근하게 ‘피콜로’라고 불러주시는 거잖아요. 팬들이 한 번 더 웃고 할 수 있는 건데, 제가 너무 꽁하게 군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가만히 있으려고요. (웃음)


친근하고 좋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팀에서 친하게 지내는 선수는 누군가요?

박정권 형. (웃음) 배울 점이 엄청 많아요. 딱 캡틴 스타일이에요. 저한테는 그런 능력이 없어서 많이 배우고 따라다니죠. 한 살 차이지만… 본받을 게 많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제가 2012년 겨울에 SK 입단이 확정됐을 때 (박)정권이 형이 캐치볼을 하다가 저를 딱 보고서 ‘잘 왔다’ 하면서 웃어주는 거예요.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그냥 좋아요. 항상 좋아요. 어떻게 하든 그냥 따라가려고요.


박정배 선수는 평소 후배들 잘 챙겨주는 스타일인가요?

제 거 챙기기도 바빠서… (웃음) 저는 업다운이 좀 심한 편이라. (감정 기복이요?) 욱하면 질러대고 평소에는 또 하하하 하고…. 이 성격 때문에 정권이 형한테 배울 게 많죠.


박정배 선수가 아끼는 후배가 있나요? 이 후배는 참 내가 아낀다.

윤희상! 많이 장난치고 까불고 하는데 같이 진지한 얘기도 하고, 육아 정보도 공유하고, *톡도 자주 해요. 희상이가 낚시를 좋아하는데 제가 따라가면 준비도 다 해줘요. 굉장히 귀찮은 일인데, 배려심이 많아요. 똑똑하고 예의도 바른 친구예요. (그림도 잘 그리고 별명도 잘 짓고) 네. (윤희상 선수는 별명 없나요? 서로 부르는 애칭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윤희쨩’ 그러고 (‘콜로형’ 그러나요? (웃음)) ‘콜로형’ 그러면 안 되죠. (웃음) 그냥 ‘형~’ 이러면서 다정하게 불러줘요.


아내 분이랑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저랑 동갑이에요. 신입생 환영식을 하는데 신입생이 13명이었어요. 근데 그 중에 5명이 파트너가 없는 거예요. 환영식에는 파트너가 꼭 있어야 해요. 파트너가 없으면 벌금을 내요. 미팅에 빨간 추리닝을 입고 갔어요. (박정배 선수가요?) 어마어마했죠.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자신감이었나요?) 누굴 만나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라 그냥 파트너를 찾으려고 나갔죠. (그렇게 만나서 쭉 연애하고 결혼하신 거예요?) 네. 그래서 제가 폭탄 제거 했다고… (아니죠. 아내분이 빨간 추리닝을 제거한 거죠.) 살려줬어요. (웃음) 벌금도 살려주고 인생도 살려주고.


박정배 선수 야구 인생에서 롤모델로 삼고 있는 선수가 있나요?

제 야구 인생에서 롤모델은 딱히 없어요. 시련을 극복하고, 끈기 있는 사람은 누구든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최영필 선배, 한화 이글스의 박정진 형이 대단한 것 같아요. 제가 그분들이 했던 것만큼 하려면 앞으로도 6~7년을 더 마운드에 올라가야죠.


그렇다면 박정배 선수에게 야구란?

마약이다. 마약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웃음) 안 하면 엄청 하고 싶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끊을 수가 없고. 뒤늦게 이 같은 감정을 느끼니까 생각해보면 아쉬워요. 어렸을 때 야구에 집중하고 더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근데 그걸 늦게 깨달아서 절실함이 더 커진 것 같아요.) 그죠? (눈 반짝) 사람들이 좀 빨리 잘했으면 벌써 FA(자유계약)하고 그랬을 거라고 하는데 저는 그럼 벌써 그만뒀을 것 같다고 해요. 저 몇 년 더 할 것 같아요? 올해 37살입니다. (그래도 한 10년은 더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와이프랑 똑같은 소리하시네요. 55살까지 하래요. 공이 18m나 날아가겠냐고요. (웃음) (10년은 앞으로 더 하셔야죠. 하실 수 있습니다. 절실함만 있다면.) 감사합니다. 기록을 깨봐야겠어요.


새해 소망이 있다면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우선 무조건 첫 번째는 건강. 가족들의 건강, 주변 사람들의 건강이고요. 두 번째는 포스트시즌에서 더 높은 무대를 밟고 싶어요. 한번 해보니까 너무 좋았는데 이제 가물가물해졌어요. 올 시즌 에이스도 오고 팀 전력도 좋아질 것 같은데 높은 무대까지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팬들께 한마디 남겨주세요.

많이 찾아와 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보다 좀 더 나은 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팀에 도움이 되도록 할 테니까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올스타전에서 만나요.) 투표하세요. (소곤) (웃음)


                                   더그아웃 매거진 82호(2월호) 표지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2월호(82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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