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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미디어] 'DUGOUT People'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

조회수 2018. 3. 1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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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도 내가 박병호다

1차 지명 출신 거포 기대주, 터지지 않는 유망주에서 4년 연속 홈런왕, 단일 시즌 최다 타점, 리그 최초 2년 연속 50홈런 타자가 됐다. 그를 ‘하늘이 내린 4번 타자’라고 칭하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초심자의 입장으로 더 큰 무대를 향했다. 그리고 후회 없이 도전했던 2년의 시간을 마쳤다. 하지만 돌아온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그아웃 매거진>이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를 다시 만났다.

Photograper Mino Hwang   Editor Hyeong Seok Kwon   Location Arizona Surprise Stadium


재도전의 시간

2017년 11월 27일, 넥센 히어로즈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 해지에 합의한 박병호와 연봉 15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애초에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해서 메이저리그를 준비할 계획이었지만, 고심 끝에 미네소타와 2019년까지 보장된 계약 내용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친정팀이었던 넥센 유니폼을 입게 됐고, KBO리그 역사를 다시 써나가는 시작점이 됐다.


박병호는 지난 시즌 이후 잠잠하지만 분주하게 시간을 보냈다. 미네소타와의 계약이 정리되지 않아 한국 복귀 기자회견 이후에 다시 미국으로 향했고, 이후 트리플A에서 연을 맺은 트레이닝 코치와 함께 몸을 만들었다. 다시 찾은 미국은 날씨가 조금 추워졌지만 운동을 하기에 부족한 점은 없었다.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입을 뗐다.


“미국에서의 2년은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리그답게 좋은 선수들이 많았고, 마이너리그에서도 그 무대에 도전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매 경기가 기억에 남아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여느 때처럼 야구를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고요.”


힘들었을 타지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인 동료들과 한국어로 소통하며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빅리그에 재도전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도전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동안 박병호는 과거 함께 좋은 기억을 만들었던 넥센으로 돌아오게 되어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제가 느낀 한국과 미국은 서로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어요. 언어, 문화 혹은 지역적인 특색이나 야구를 하는 방식까지요. 특히 제가 부진할 때는 우리말로 소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힘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새로운 무대에 도전한다는 자체로 즐거웠고, 만약 2015년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또다시 도전할 생각이에요. 원한다고 언제든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저에게 정말 값진 기회였어요”라며 도전 자체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었다.


만약 박병호가 2016시즌을 KBO리그에서 뛰었다면 FA(Free Agent : 자유 계약)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없고, 40~50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타자에게 구단들이 얼마나 큰 금액을 투자할 것인지는 추측하기조차 어렵다. 한 차례 선택의 갈림길에 섰던 박병호가 그렇게 했다면 그의 야구 인생에 이만한 시련이나 굴곡이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도전은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먼 땅이지만 미국에서도 박병호는 한국 팬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장에 나서면 현지의 한국인 야구팬들이 찾아와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응원의 한마디를 남기는 순간이 그에게 힘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마이너리그 경기장은 대도시에 위치해 있지 않은데, 그럼에도 찾아와주신 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힘이 되었던 이들에 대한 고마움 역시 잊지 않았다.


달라져야만 했다

미국에서의 첫해였던 2016시즌을 마친 박병호의 성적은 초라했다. 12개의 홈런 모두가 무시무시한 비거리를 기록하며 힘을 뽐냈지만 타율이 0.191에 그쳤다. 결국 시즌 도중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다. 타율보다 높은 삼진 비율을 기록했고, 언론은 그의 속구 대처 능력을 약점으로 꼽았다. 벽을 만난 그에게서 KBO리그에서 빛나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박병호는 변화를 결심했다.


“미국에서 생활한 2년은 타이밍을 빠르게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숫자로만 본다면 5km/h 정도는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지만 날아오는 공을 상대하는 타자에게 요구되는 반응속도는 훨씬 빨라진다. 때문에 빅리그에서 고전하는 박병호를 두고 ‘빠른 공에 취약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고, 본인도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2017시즌을 준비하며 노력한 덕에 시범경기에서부터 속구 대응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다른 부분이 맞물리며 좋은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빠른 공만이 문제는 아니었단 얘기죠. 사실 엄한 곳에 초점이 맞춰졌단 생각도 들었어요.” 무턱대고 달려들지 않았다. 첫해의 실패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박병호를 향하는 비난의 내용은 일관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화를 반복했다.


2년. 운동선수로서 절정의 신체능력을 보일 나이에 짧지 않은 시간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한국 복귀에 대한 생각을 하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의 3번째 해를 준비하려던 그에게 먼저 제안을 한 것은 넥센이었다.


“처음 미국에 도전할 때 기회를 주었던 구단이기도 하고, ‘그간 힘들었던 이야기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다’며 원한다면 돌아올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힘든 거 다 안다. 네가 원할 때 돌아올 수 있게 해주겠다. 다만 네가 지금 편한 환경에서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라고요.”


박병호는 그렇게 한국 복귀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 자신을 원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기뻤고,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지금은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다가올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2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이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 “넥센만 해도 선수층이 크게 달라졌죠. 정도는 다르지만 다른 팀도 바뀐 부분이 있을 테고, 예전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들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이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렇게 박병호는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속구에 대한 대처능력을 키웠다. 경험하지 못했던 빠르면서 움직임이 많은 공을 상대하기 위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없던 동안 KBO리그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수많은 선수가 팀을 옮기고, 구단의 새 주축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2018년, KBO리그라는 익숙한 무대에서 그들이 다시 맞붙는다.


돌아온 넥센에서 박병호는 고참 선수가 됐다. 나이로 치면 4번째다. 야구 외적으로도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생겼다. 타선의 스타일 역시 ‘홈런 군단’이던 과거와 달리 주루와 수비 같은 부분에도 더 많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돌아와 보니 팀이 많이 달라졌지만 넥센의 분위기는 변함없이 좋아요. 함께 훈련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누가 주전인지도 모르겠지만 (웃음) 다들 젊고 밝은 것 같아요. 고참들도 젊은 선수들이 스프링캠프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나 힘든 부분을 알기 때문에 운동할 때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올해 넥센의 1군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는 선수는 32명. 그중 8명은 박병호가 미국으로 떠난 이후 프로에 입단했거나 데뷔한 선수들이다.


지난해부터 구성된 새 코칭스태프와 만나봤는지 묻자 장정석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는 형이라 부를 정도로 친밀했던 분이거든요. 감독님이라 부르는 게 처음엔 많이 어색했어요. 그런데 앞으로는 그런 점도 선수단과의 소통에 장점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선수로 알게 되어 코치로 재회한 브랜든 나이트 투수코치에게서는 ‘한국식의 코치-선수 관계는 되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래도 기존부터 계시던 코치님들이 자리를 지켜주셔서 팀의 큰 틀이 바뀌진 않은 것 같다”라며 달라진 넥센이 예전과 같은 분위기임을 이야기했다.


박병호가 꼽은 가장 많이 변한 선수는 바로 김하성이었다. 2015년 1군에서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내며 박병호와 원정 숙소 룸메이트이기도 했던 김하성은 이제 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유격수가 되었다. 그는 달라진 김하성의 입지에 대해 “첫 시즌을 보면서 ‘나는 저 나이에 저렇게 못 했는데’ 싶을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선수답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7시즌 뒤 APBC 대회에서 대표팀의 유격수 겸 4번 타자 자리를 맡아 짙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초심. 그 때와 같은 목표를 세우다

2018년 1월 9일. 박병호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그리고 곧이어 열린 복귀 기자회견에서 2018년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 경기 출장’이라 답했다. 많은 홈런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을 알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병호에 대한 기대감이 지금보다 덜하고, ‘플루크’ 시즌인지에 대한 의문이 붙던 2012년의 그와 똑같은 목표를 설정한 것은 왜일까.


“사실 매번 시즌을 앞두고 저에게 첫 번째는 전 경기 출장이라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팀이, 팬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저도 알고는 있죠. 많은 홈런이요. 의식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목표라 밝히지는 않지만 늘 생각은 하고 있어요.”


전 경기 출장이란 기술, 체력, 그 외의 관리 측면까지 기본적인 부분이 완성된 선수만이 이룰 수 있다. 성적이 떨어져도 반등할 거란 믿음을 받는 선수가 기회를 얻는 것이다. “지난 경기는 잊고 집중하다 보면 성적은 따라올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아마 앞으로도 시즌 목표는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진출했던 선수들과 같은 해에 KBO리그로 복귀하게 되었다. kt 위즈로 향한 황재균과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 김현수가 그렇다. “가끔 경쟁 구도로 언급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의 성패는 각자가 선택한 도전의 결과고, 지금은 다시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에 여기서 잘할 생각뿐이거든요. 아마 두 선수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서로가 자기 자리에서 잘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한국에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뒤에, 해외 진출 이후 KBO리그 복귀 전례이신 이승엽(현 KBO 홍보대사) 선배님께서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미국 생활을 정리하는 저의 마음에 많은 공감과 격려를 해주셨고, ‘돌아온 너를 향해 사람들이 비난을 할 수도 있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우리는 프로야구선수고, 다시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고 해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실제로 이승엽과 박병호는 ‘홈런왕’들의 연 이상으로 각별한 선후배 사이다. 이승엽 홍보대사는 국가대표 4번 타자, 그리고 자신의 통산 최다 홈런(467개) 기록에 도전할 선수로 박병호를 꼽기도 했다.


박병호는 2015시즌까지 KBO 리그에서 210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중 173개의 홈런은 홈런왕에 오른 4년(2012~2015시즌)간 쏘아 올린 것이었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박병호는 최다 홈런 갱신 기대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웃음) 저는 뒤늦게 터진 선수고, 여태 겨우 210개를 넘겼잖아요. 제 목표는 앞으로 10년간 평균 20개씩이고, 그렇게 410개의 통산 홈런 개수를 기록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이승엽 선배님의 기록 경신’이라는 목표는 가져본 적 없어요. 한국 야구에서 ‘선수 이승엽’은 이미 단어 자체로 충분한 존재감이 있잖아요. 저는 물론이고 누구도 거기에 견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선배의 사랑에 화답하는 후배의 존경이 담긴 답변이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갈 준비

2005년 프로에 입단한 박병호지만 연차에 비해 많은 시즌을 2군을 오가며 보냈다. 2011년 트레이드 이후 기량이 만개했고, 5년 만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 도전에 나섰다. 1986년생으로 이제 막 서른 중반에 접어들기 시작한 나이.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와 늘 그랬듯 다시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 박병호는 과거에도 <더그아웃 매거진>과 한 차례 만남이 있었다. 2012시즌 커리어 첫 홈런왕이 된 박병호가 본지 25호의 표지를 장식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세 차례 홈런왕을 석권하고 더 큰 무대에 도전한 뒤 돌아온 현재 재회하게 됐다. 목동야구장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고, 인터뷰 경험이 많지 않아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뱉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지금 이 순간 가장 감사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넥센 관계자분들이죠. 제가 미국에 갈 때 도전을 도와주셨고, 복귀 과정에서는 계약 기간이 남아있고 별 볼 일 없는 성적을 기록한 저를 받아주셨잖아요.” 도전 이후 부진했던 것에 대해 의식한 듯 말했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얻은 것이 없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투수들 대부분의 구속이 빠르고, 150km/h 미만의 투수들은 똑바로 오는 공을 거의 던지지 않아요. 투심이나 커터, 싱커를 스트라이크존 안팎으로 던질 수 있는 거죠. 그보다 구속이 빠른 선수들이 흔히 말하는 ‘직구’를 무기로 쓰고요.”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움직이는 빠른공’을 꼽았다.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빠른공 대응에 초점을 맞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고전했던 기억이 전부는 아니다. 박병호에게 미국에서 기록한 첫 홈런의 기억에 대해 묻자 만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웃음) 메이저리그 첫 홈런이요. 당연히 기억하죠. 팀이 연패에 빠져있었고, 그날도 8회까지 2-2 동점인 경기였어요. 그 상황에 제가 홈런을 때려낸 거죠. 맞는 순간 직감할 정도로 느낌이 좋았어요. 그라운드를 돌면서는 KBO 데뷔 첫 홈런처럼 ‘와. 내가 미국에서 홈런을 치다니’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공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고요. 경기는 결국 패했지만 아마 앞으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에 하나일 것 같아요.”


“약 2년 전에,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많은 분께서 제 도전을 응원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온 것을 반가워하시는 분도, 아쉬워하시는 분도 계실 거란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결정을 내린 만큼 저 스스로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 합니다.”


박병호의 미국 진출부터 KBO리그 복귀까지 모든 과정이 많은 에피소드를 낳았다. 그중에는 부정적인 이야기도 많았다. 그는 경기장에서 묵묵히 보여주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듯 이렇게 덧붙였다. “앞으로는 KBO리그를, 그리고 넥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라운드 안에서 보여드려야 팬들의 믿음을 다시 얻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작년의 아쉬운 성적에 아쉬우셨을 히어로즈 팬들을 위해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상의 자리에 올라서도 겸손했다. 도전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쌓아온 기록들에 연연하지 않았다. 도전을 마치고 돌아온 현재도 자만하지 않고 있다. 박병호의 마음가짐은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달라진 넥센과 돌아온 그의 시너지 효과를 향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예정이다. 돌아온 박병호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더그아웃 매거진 83호(3월호) 표지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3월호(83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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