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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미디어] 'DUGOUT Inside The Park' 박은별 기자

조회수 2018. 3. 2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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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한 명의 프로가 있다

Professional. 야구계에서 프로라고 하면 보통 선수를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잘 띄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프로라 부른다. 여기, 또 한 명의 프로가 있다. 어릴 적부터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꿈인 스포츠 기자가 된 지 10년. 첫 8년 동안 현장 곳곳을 누비다가, FA 연수를 채우고 이제는 미국에서 MLB 현장을 전해준 박은별 기자가 주인공이다. 프로에게 인터뷰는 숙명. 뒤바뀐 역할을 어색해하는 그녀에게 ‘덕업일치’ 10년의 삶을 물어보았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LEE HANEUL   Location Great Media Office


1년 만의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와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엠스플뉴스에서 MLB 특파원으로 2년간 활동한 기자 박은별입니다. 스포츠기자 생활은 10년 차가 되었고, 야구 취재를 한 지는 8년 정도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얼마 만인가요?

1년 만이에요. MLB 특파원으로 활동한 뒤부터는 항상 이맘때쯤 미국으로 가서 스프링캠프를 취재했어요. 그 후에는 시즌 내내 현지에서 취재를 하고, 시즌이 끝난 후에는 윈터미팅 등의 이벤트 취재까지 마치고 들어오거든요. (이번 겨울 한국이 유독 추워서 놀랐겠어요.) 작년에는 주로 미국 중부 세인트루이스에 있었는데, 거기는 이미 영하 20도였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오면 좀 덜 춥겠거니 하고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그래서 롱패딩 입었잖아요. (웃음)


1년 만에 한국에 들어오면 어떤 느낌인가요?

‘다르다?’ 한국은 매년 변해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한국과 미국, 어디를 가도 이방인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어요. 원래 살던 동네가 생소할 정도이니… 그런데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말로 편하게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아요. 미국에서는 언어생활 자체가 힘든데, 한국에서는 소통이 자유롭게 되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옛날 얘기도 하게 되고요. 그럴 때마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집니다. 한국 사람들이 또 정이 많잖아요. 미국에서는 ‘밥 한 끼 먹자’ 같은 문화가 없거든요. 정 넘치던 옛날 생각을 하고 있으면, 요즘에는 한국야구 취재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미국에 있을 때는 분주해서 잘 몰랐는데, 돌아오고 나니 오히려 향수병에 걸린 것 같기도 합니다.


‘밥 한 끼 먹자’ 하니, 사람이 사는데 제일 중요한 게 또 밥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미국 음식은 입에 좀 맞나요?

일단 밥은 한식 찾아 먹으려고 노력해요. 한국인은 밥심이잖아요? 그게 여의치 않으면 일식이나 아시안 음식 위주로 찾아 먹어요. 여행으로 한두 달 가 있는 거면 현지 음식들만 찾아서 먹고 다닐 텐데, 2년째 하는 일상이니 그렇게는 안 되더군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선수들도 한식 위주로 늘 찾아다녀요. 또, 제가 현지에 친구가 없으니까, 자주 가는 한국 식당이나 마트 사장님이랑 친해져요. 맨날 혼밥한다고 다들 궁금해하시더라고요.


MLB 특파원의 삶

MLB 특파원은 비시즌 기간에 어떤 일을 하나요?

10월 말에 시즌이 끝나면 아무래도 일의 양이 줄어요. 그래서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다녀야 하죠. 이번에는 가장 먼저 도미니카 윈터리그를 찾아갔어요. 12월에는 윈터미팅 취재를 하고, 그 이후에는 선수들의 계약 위주로 취재를 진행했어요. 올해는 특히 오승환, 최지만 선수의 FA가 있어서 계속 취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또 동시에 1월 말부터는 구단들이 여는 팬 페스트를 취재하기도 해요.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팬이 많고, 팬들에게 선수들이 경기 외적으로 얼마나 잘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죠. 한참 취재하다 보면 2월이 되니까, 스프링캠프를 갑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기자에게는 비시즌이라는 게 없는 것 같네요.


MLB 특파원으로서 연재한 ‘박은별의 MLB Live’는 보도기사보다는 칼럼의 느낌이에요. 어떤 걸 중점적으로 다루려 한 건가요?

저는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요즘 야구에서는 데이터나 분석, 수치가 중요하지만, 결국 경기를 하는 건 사람이거든요. 선수들이 어떤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하는지, 마운드와 타석에 오르기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 팬들에게는 가장 궁금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야기들은 클럽하우스나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의 모습을 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곳을 직접 다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현장의 냄새가 전해지는, 선수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 이야기일수록 사람을 일일이 만나면서 이야기를 들어야 할 텐데요. 미국은 땅이 넓잖아요? 미국 전역의 30개 구단 곳곳을 취재하기란 쉽지 않아 보여요.

그래서 이동이 제일 힘들었어요. 서부에서 동부로 넘어가는 날은 그야말로 죽음이에요. 평상시에 차로 이동하거든요. 매번 비행기를 타기에는 비용 문제가 있으니까요. 10시간 이상 운전하는 게 일상이에요. 게임 끝나면 바로 차로 이동하고, 졸리면 차 안에서 자기도 하죠. 그런 식으로 경기장을 이동해요. 스스로도 겁이 없다고 생각은 하는데 현지인들에게 혼자 차에서 잔다고 하면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럼 스케줄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스케줄은 대체로 직접 짜요. 제가 하는 일이 취재해서 기사 쓰는 것 말고도 많이 있어요. 우선 영상을 제공하는 매체에 몸담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또 영상 콘텐츠가 대세니까 경기 전후로 영상 촬영도 같이 진행하고요. 제 기사에 들어갈 사진도 직접 찍어요. 또 어지간하면 모든 경기의 모든 상황을 다 다뤄야 하다 보니 스케줄 관리가 꽤 어렵습니다. 스케줄 상 코리안 메이저리거가 출전하는 홈경기를 못 갈 때면 따로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경기 전후 인터뷰를 맡기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관리도 해야 합니다.


어휴, 일이 정말 많네요. 같은 역할을 하는 다른 기자는 또 없는 건가요?

그렇죠. 그런데 혼자라는 것 자체보다도 가장 막막했던 건 ‘가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전에 스포츠 전문 특파원이라는 자리가 거의 전무했던 상황이니까요. 야구장 안에서 기자실은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더그아웃에는 어떻게 가는지 같은 것도 모두 직접 부딪혀가면서 알아내야 했습니다. (선구자시군요.) 선구자는 아닙니다! (단호) 코리안 메이저리거 1세대들이 활약하던 때에 저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고생한 선배들이 또 있으니까 선구자라는 말은 큰일 납니다. (웃음)


이야기를 듣다 보니 2년을 그렇게 살면 정말 지치고 회의감이 들 것 같은데요?

실제로 많이 지쳤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원해서 한 일이기에 좋았어요. 최고의 리그인 MLB도 취재해보고 싶고, 개인적으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시작했죠. 그런데 문득 ‘내가 여기 왜 있지,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시간 운전을 하다가 허리가 아플 때, 타지에서 친구 하나 없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겨우 향수병을 달랠 때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야구장에 발을 딛는 순간에 그런 생각이 싹 없어져요. 신기하죠. (하하)


MLB 취재의 ‘프로’, 그 2년의 흔적

2016, 2017년 두 시즌 동안 MLB에 한국 선수들이 많이 진출했습니다.

네, 제가 미국으로 가게 된 가장 큰 이유죠. 같은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선수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일단 선수들이 대화를 고파(?) 해요. 선수들도 사람인지라,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면 당연히 외롭거든요. 한국어도 못쓰니 답답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 기자들이 가면 반가워해요. 서로 안부도 묻고, 다른 선수들 동향도 물어보고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갑니다. 또 한국에는 어떤 소식이 있는지도 궁금해하고요. 각자의 심심함과 외로움을 서로 달래주면서 친해지는 거죠.


2년간 한국 선수들의 부침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거군요.

그래서 선수들의 활약에 따라 제 입지도 변해요. 성적이 현장 분위기를 확 바꾸죠. 한국선수들이 잘할 때는 코치, 선수, 현지 기자 모두가 말도 많이 걸고 인사도 잘 하거든요. 한국 선수가 잘하니 덩달아 나에게도 친절한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작년의 경우에는 대부분 부진해서, 왠지 모르게 저도 눈치를 보게 됐어요. 인터뷰 요청하기 매우 힘든 상황이 오거든요. 예를 들어, 오승환 선수가 부진한 투구를 보였을 때가 정말 어려운 순간이에요. 본인도 속상할 텐데 그 심정이나 상황을 물어봐야 하는 거니까요. 더군다나 오승환 선수는 좋지 않은 경기 뒤에는 라커룸을 가장 먼저 빠져나가는 선수라서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라커룸을 가로질러 따라가다 보면 감독님 눈치를 보게 되죠.


그렇다면 2년간의 취재 경험을 살려서, MLB에 또 다른 한국 선수가 진출한다면 그게 누구일지 예측해줄 수 있나요?

누가 가장 가깝다고 섣불리 이야기하기는 어렵네요. 다만 예전부터 ‘SK 와이번스의 박종훈 선수가 오면 많은 메이저리거가 멘붕에 빠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하) 오승환 선수는 투구폼이 특이하진 않지만, 특유의 리듬 때문에 짜증을 내는 선수들이 몇 있거든요. 익숙하지 않은 것에는 메이저리거들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특이한 투구폼의 박종훈 선수가 온다면 경기 내외로 다들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네요.


MLB에는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있지만, 한국에서 온 기자가 현지 선수들로서도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아요. 선수들이 취재에 잘 응해주나요?

그럼요! MLB에는 경기 전후로 기자들을 위한 클럽하우스 개방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선수들에게 그 시간은 인터뷰가 거의 의무사항이에요. 그래서 다들 잘 응해주고, 특히 한국 선수가 잘할 때는 자기가 먼저 인터뷰하고 싶다며 와서 한국 선수와의 에피소드를 꺼내곤 해요.


특히 기억나는 선수가 혹시 있을까요?

시애틀 매리너스의 로빈슨 카노가 기억나네요. 사람 자체가 엄청 친절해서 저를 많이 챙겨줬어요. 스타플레이어는 뭔가 개인주의적이고 차가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기도 한데, 오히려 주변을 잘 챙겼어요. 낯선 한국 기자에게 힘든 건 없는지 물어보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해서 감동이었어요. 또, 워싱턴 내셔널스의 브라이스 하퍼도 인터뷰에 매우 성실하게 응해줬어요. 평소 성격이 조금 까다로운 선수로 소문이 나서 걱정을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죠. 저의 주 취재원이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들은 대체로 잘 해줬어요. 오승환의 동료여서도 그렇고, 워낙 선수들이 다 착하고 순해요.


최고의 선수들이 살갑게 대해준다니 멀었던 거리감이 좁혀지는 것 같네요. 저도 사실 MLB를 보고 싶은데 규모도 커서 진입장벽이 높은 것 같아요. MLB를 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도 미국 가기 전에는 MLB랑 거리가 멀었어요. 제가 빠져든 방법은 결국 ‘직관’이었어요. 물론 야구를 보기 위해 미국을 가는 것이 우리나라 구장 가듯이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어느 구장이든 괜찮으니 꼭 직접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최고의 리그를 경험한다는 건 야구팬 누구나의 소망이기도 하잖아요. 저도 취재했던 선수에게 정이 가고 한 번 더 관심이 가는 것처럼 직접 본 선수가 TV에 나오면 자연스럽게 눈이 갈 거예요. 그렇게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꼭 가서 직접 경험해보는 걸 추천합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전공도 체육교육이에요. ‘스포츠 없는’ 박은별을 생각하기가 어렵네요.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워낙 좋아했어요.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저런 종목을 다 건드렸죠. 초등학교 때는 농구, 중학교 때는 배구, 고등학교 때는 축구를 좋아하다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야구에 제대로 입문하게 되었어요. 입학 당시가 야구 붐이 막 다시 일던 시기였거든요. 또 고향이 전주인데 쌍방울이 해체되면서 야구를 접할 기회가 사라졌는데,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게 되면서 다시 야구와 연이 닿게 됐죠. 그래서 보기도 많이 보고, 학교에서 야구 관련 수업도 들으면서 야구와 친해졌죠.


그러면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건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제 꿈은 스포츠기자였어요. 당시에 유행하던 ‘다모임’이라는 메신저에서 닉네임을 아예 ‘스포츠기자’로 쓸 정도였으니까요. 동창들도 나중에 만나서 ‘그 어릴 때의 꿈을 이뤘다’며 신기해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바라던 야구 기자가 되고서 첫 취재가 기억나시나요?

흠… 그건 기억이 안 나요. (당황) 너무 오래됐네요. 그때는 두산 베어스의 팬이었는데 심지어 첫 담당 구단이 두산이었어요. 설레고 긴장됐을 것 같은데, 정말 기억이 안 나네요. (민망)



10년이라는 세월이 크네요. 그러면 MLB 특파원이 되기 전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가 있나요?

첫 스프링캠프 취재가 기억나네요. 2011년에 SK 와이번스의 미국 플로리다 캠프를 따라갔어요. 전 시즌이 김광현 선수가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김광현 선수가 그 당시의 상황을 담담히 이야기한 인터뷰 기사를 썼는데, 잘 봤다며 악수를 청하고 고맙다고 했어요. 당시에 그 글을 김광현 선수 부모님이 보고 우셨다고 하더군요. 아들이 이렇게 힘들었다는 걸 기사를 통해서야 아신 것 같았어요. 내색을 안 했던 거겠죠. 한편으로는 부모님께 그 기사가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제 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게 저로서도 참 감동이었어요. 잊히지 않는 순간이죠. 또 캠프 취재를 하면서 SK 선수들과 많이 친해졌어요. 그래서 담당 구단도 SK로 바뀌었고, 그 인연으로 이후에 취재할 때도 선수들한테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죠.


기자 생활 10년을 돌아봤을 때 기자로서 삶의 만족도는 몇 점 정도 될까요?

2년간 많이 지쳐서 지금 만족도가 많이 떨어진 시점인데… 80점? (떨어진 것 치고는 높은데요?) 여전히 야구장에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야구 하나만 놓고 보면 100점이에요. 하지만 강산도 변하는 시간인지라 스스로 나태해졌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고, 또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서 20점을 뺐어요.


그렇다면 야구기자로서의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몇 점 정도일까요?

와, 이거 너무 어렵네요! 제가 선수들한테 맨날 그날 상황을 점수로 물어보는데, 이런 기분이었군요. 오승환 선수가 늘 하는 단골멘트가 있어요. ‘(성대모사) 지금 제 점수를 매길 수는 없고요, 점수를 매기기에도 아직 부족하고요, 올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내년에 마운드에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이걸로 대신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질문 안 해야겠어요. (한숨)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는 걸 덕분에 알아갑니다.


질문 상황을 또 생각하는 걸 보니 천생 기자네요. 만약 야구 기자가 안 되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안 그래도 요즘 그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어디든 스포츠와 관련한 곳에 있지 않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너무 좋아했으니까요. 고민하다 보면 ‘결국 스포츠 기자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가도 막상 다른 길이 잘 안 보여요. 스포츠 아나운서? 전공을 살려서 트레이너나 멘탈 케어 트레이너? (스포츠를 떠나 살기 힘든 인생이군요.) 생각할수록 더 그래요. 예나 지금이나 다른 분야에는 이만큼 끌리지를 않네요.


그렇다면 앞으로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목표는 전 세계 모든 야구 리그를 취재해보는 거예요.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같은 중남미 나라들에도 각자 리그가 다 있잖아요. 당장 모두 가보기는 어렵겠지만, 꼭 모두 직접 취재해보고 싶어요. 또, 일본에는 국가대표 경기 때문에 자주 가는데 막상 NPB 취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호주도 마찬가지고…. 다른 나라에는 야구가 어떻게 살아있고 사람들이 어떻게 야구를 즐기고 있는지, 또 어떤 색다른 야구 문화가 있는지 세계일주하면서 취재하는 게 꿈입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역마살의 기운이 도네요.) 정확해요. 주변 사람들한테 이미 너무 많이 들은 이야기예요. 스스로 생각해도 심한 것 같아요. 분명 떠돌이 생활이 힘들기는 한데, 또 집에서 하루 이상만 쉬어도 두통이 오니 어쩔 수 없죠. (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박은별에게 야구란?

아악! 이 질문만은 정말 피하고 싶네요. 저도 많이 물어봤지만 막상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10년을 봐도 야구를 아직 잘 모르겠어요. 상대가 똑같아도 결과는 늘 다르고, 너무 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판이잖아요? 그래서 야구가 뭐다! 라고 정의하기는 정말 어렵네요. 다만 야구가 왜 좋은지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은 ‘아직도 잘 모른다’라는 그게 좋아요. 다른 종목보다 룰이 복잡하기도 하고, 오래 봐도 모르는 게 산더미라 도전 의식이 생기거든요. 또, 실패를 해도 칭찬받는 스포츠는 야구뿐이라서 좋아요. 10번 중에 3번만 쳐도 좋은 타자잖아요?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면 항상 엘리트, 만점을 향해 달려만 왔던 것 같아요. 항상 완벽해야만 했고… 하지만 야구는 그렇지 않죠. 이번에 못 치면 다음에 치면 되고, 3할의 성공만 되어도 좋으니까. 그게 위로가 되었나 봐요. 그래서 더더욱 야구에 푹 빠지게 된 것 같아요.


끝으로 독자들에게 인사해 주세요.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분이 너무 많아요. 늘 기사 나갈 때마다 SNS를 통해서 안부 물어봐 주시고 걱정해주시는 팬들이 은근 있거든요. (자랑) 기사에 달린 댓글도 다 보는데, ‘이동 동선 길어서 힘들었겠다, 건강 챙겨요’라고 격려해 주시는 게 타지에서 참 감동이고 힘이 많이 돼요. 막상 기사 안에서는 기자가 안 보이잖아요? 그런데도 기자 박은별을 기억해주시고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항상 감사합니다. 계속 좋은 얘기 많이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에필로그 – 잠깐의 쉼표

인터뷰가 끝나고 얼마 후,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MLB 특파원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터뷰 당시만 해도 이 인터뷰가 ‘기자 박은별’의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사람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선수도 영원히 그라운드에 설 수는 없는 것처럼, 프로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그녀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10년간 현장을 누비며 배운 많은 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할 계획이다. 더 이상 그녀의 기사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쉽다. 하지만 또 한 번의 도전 역시 그녀는 멋지게 성공해낼 것이라는 괜한 기대감이 든다. 그녀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더그아웃 매거진 83호(3월호) 표지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3월호(83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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