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미디어] 'DUGOUT Interview' 삼성 라이온즈 진갑용 코치

조회수 2018. 4. 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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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 진갑용 코치의 COME BACK!

길 잃은 사자군단이 여의주를 품은 용을 만났다. 삼성 라이온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갑드래곤’이 왕좌탈환을 위해 일본 연수를 돌아왔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든든함이 다르다. 현역시절 선수단에서 가장 큰 형님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진갑용 코치의 합류 소식에 야구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삼성왕조 재건을 위한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사자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Kwonhyang Pyo   Location Onnason Akama Sports Park


범상치 않았던 갑드래곤의 등장

지난 1월 31일,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이 일본 오키나와로 출국하기 위해 부산 김해공항에 모였다. 어린 선수들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베테랑들의 등장으로 금세 여유를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서로 안부를 물으며 들떠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괴성에 가까운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듬직한 풍채를 자랑하며 진갑용 코치가 서 있었다.


얼마 동안 정적이 흘렀다. 자신을 보고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선수들을 보며 꾹 다문 진갑용 코치의 입술이 실룩했다. 다 큰 성인들이 어린아이마냥 토끼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귀여웠는지도 모른다. 진갑용 코치는 “내가 나타나니까 (김)상수가 ‘허억!’하며 눈이 좀 커지는 것 같더라. 내가 갑자기 나타났거든”이라며 껄껄 웃었다. 이것이 진갑용 코치와 선수단의 첫 만남이었다.


별다른 상견례는 없었다. 일본 코치연수 후 곧바로 2군 선수단과 함께 미야자키로 마무리훈련을 떠났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마련할 수 없었다. 함께 한솥밥을 먹은 시간이 길었기에 다행히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난기가 발동해 선수들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 우연을 가장한 깜짝 만남을 준비했다. 기대 이상으로 놀란 선수들의 반응이 꽤 만족스러웠는지 그날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진갑용 코치는 정신을 차리고 반갑게 인사하는 선수들을 맞이했다.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 역시 현역시절을 함께 보냈던 멤버들이었기에 낯설지 않았다. 굳이 이전과 다른 점을 찾는다면, 호칭이 ‘형’에서 ‘코치님’으로 바뀐 것과 캠프에 임하는 자세였다. 진갑용 코치는 “선수 때보다 책임감을 더 느낀다. 선수 때는 내가 못하면 개인이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코치가 못하면 지도하는 선수부터 팀까지 모두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이에 따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金’ 합작한 베이징 인연

그라운드를 떠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선수들의 얼굴이었다. 갓 프로 유니폼을 입었던 것 같은 어린 선수들이 어느새 팀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FA와 트레이드 등으로 함께하게 된 새로운 얼굴도 보였다. 이들 가운데에서 진갑용 코치의 눈에 들어온 건 올 시즌 FA로 합류한 강민호였다.


진갑용 코치와 강민호의 인연은 한국에 야구 돌풍을 일으킨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시작됐다. 당시 진갑용 코치는 대표팀 최고참이자 주장이었고, 강민호는 백업 포수였다. 김경문 감독은 대표팀의 주전 마스크를 진갑용 코치에게 맡겼고,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강민호를 대기시켰다.


매 경기 살얼음판을 걸으며 승리를 이어갈 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진갑용 코치의 허벅지 부상이었다.


“부상은 언제든지 따라 붙으니까”라고 말했지만 진갑용 코치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상태가 심각했었기 때문이다. 햄스트링이 2cm 찢어져 시커멓게 피멍이 들어 걸을 수 없었다. 훈련하는 선수들과 달리 더그아웃에 멀뚱히 앉아있는 것이 더 불편했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개인의 욕심이 대형 참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갑용 코치는 “민호를 불러 ‘야! 네가 해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민호의 입술이 파래지더라”며 포수 장비를 넘겼던 사연을 설명했다.


쿠바와의 결승전 9회말 1사 만루 위기에 몰렸을 때 마음이 졸였던 건 더그아웃에서 지켜보던 진갑용 코치도 마찬가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민호의 퇴장. 남은 포수는 단 한 명 부상자 진갑용 코치였다.


그런데 강민호의 강한 리액션이 분위기 반전을 일으켰다. 대표팀의 집중력은 높아졌고 이겨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진갑용 코치는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라운드로 향했다. 다시 포수 마스크를 쓴 진갑용 코치는 감정적으로 나온 심판에게 보란 듯이 이 분위기를 기회로 삼아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상남자들이 만든 값진 금메달이었다.


잠시 2008년 베이징으로 돌아갔던 진갑용 코치는 “처음엔 공을 빠뜨리기도 했는데 곧 적응하더라. 그렇게 해냈다”며 강민호에게 고마웠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코흘리개 민호가 큰 경험을 했다”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선진야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훈련

2015년 8월 6일 현역 은퇴를 선언한 진갑용 코치는 구단과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진갑용 코치는 “은퇴 발표 후 구단에서 코치를 제의했지만 공부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현역생활을 마치고 곧바로 코치로 전직할 수 있었지만 지도자가 되기 위한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의 선택은 전력분석원이었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업무로 말 그대로 개고생한다는 파트였다. 관중석 중간에 위치한 전력분석원석에 앉아있는 자신을 향한 팬들의 시선이 어색했지만 무엇보다 포수 미트 대신 잡은 펜과 카메라가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자리보다 위치에 초점을 맞췄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야구를 공부하여 시야를 넓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진갑용 코치의 생각이 옳았다. 현역시절 ‘우리 팀’만 알았지만, 전력분석원이 된 후에는 10개 구단 전체를 파악하는 데이터를 갖게 됐다. 이제 그만 알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는 업무형태가 그의 시야를 자연스럽게 넓혀주었다.


직접 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진 진갑용 코치는 때를 노렸고 드디어 2017년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코치 연수를 시작했다. 기간은 일 년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야구 영역을 파악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일본에 도착한 진갑용 코치는 훈련 중 충격을 받았다. 가장 가까운 일본이라고 하지만 한국야구와 전혀 다른 구조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무엇보다 훈련 중 야구를 대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뇌리를 복잡하게 했다.


“인프라를 느꼈다”라고 운을 띄운 진갑용 코치는 “일본에서는 훈련할 때도 유니폼을 3~4벌 갈아입을 정도로 열심히 한다. 이러다가 다치겠다고 생각할 정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이러면 다치니까 저렇게까지 안 시킨다. 그런데 일본은 다쳐도 다른 선수들이 메울 수 있으니까 알아서 몸을 사리지 않고 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야구는 1군과 2군을 나누지 않고 한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자리싸움을 시켰다. 팀 내 최고참, 스타플레이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1군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의아한 부분을 발견했다. 유니폼이 까지고 터져도 부상을 당하는 확률이 낮았다. 몸을 날리면서도 영리한 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즉, 탄탄한 기본기가 이들을 부상의 위험에서 보호해주고 있었다. 진갑용 코치는 “기본기를 정말 중요시하는 것을 느꼈다. 일본이 한국야구보다 수준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기본기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아직 격차가 크다는 것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국내로 돌아온 진갑용 코치는 가장 먼저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기본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는 삼성이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젊은 선수들에게 각자 몸에 익힌 방식대로 훈련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기본기가 갖추지 못했다면 과감하게 뜯어고칠 생각이다. 기본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진갑용 코치는 이 가능성을 높여줄 본보기로 강민호와 이지영을 삼았다. 팀 내 주전 포수임은 물론이거니와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다. 또한 평소 유쾌한 선수들로 칭찬이 자자한 선수들이다. 이들의 훈련 모습이 불러올 나비효과를 기대한 진갑용 코치는 “민호도 있고 지영이도 있어 우리 캐처는 든든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들이 팀 성적에 기여할 것이라며 포수들의 예상 성과를 높게 샀다.


내가 있듯 너도 있는 것이다

삼성이 한창 상위권에 있을 때 타 구단 선수들 사이에서 ‘삼성 선수들은 평소 친하지 않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이기기 위해 하나로 똘똘 뭉친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이는 삼성 소속이 아닌 선수들의 말이었기에 진짜 속은 모른다. 겉으로 보이는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과 각자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잘했기 때문이라고 예상한다. 실제로 삼성 선수단을 고등학생으로 비유하며 ‘전교 1등’ 우등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 소문에 대해 진갑용 코치는 “언제 적 이야기냐”며 손사래를 쳤다. 이는 1등에 대한 질투에서 나온 말이라는 듯 “사실 9위를 하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겠지. 안 친했다가 뭉쳤는데 9위를 하겠는가. 우승하고 잘 나갈 때 이야기다”며 부인했다.


팀 내 경조사를 가장 잘 챙기는 팀으로 항상 삼성이 꼽힌다. 이 문화는 김기태 감독이 선수 시절 삼성에 오면서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좋은 것은 전통으로 이어가자는 마음에 진갑용 코치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진갑용 코치는 “누군가가 중간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모임을 가지는 것보다 될 수 있으면 집으로 초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팀 내 메시지가 필요하다면 과감한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다. 단, 단체보다 각자 의사에 맡겼다. 하지만 뭉칠 땐 한 명도 빠짐없이 확실히 뭉쳤다. 진갑용 코치는 “항상 이기니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 번씩 슬럼프를 타서 삭발을 많이 했다. 고참 선수가 깎으면 (이)승엽, (배)영수, (채)태인이가 이어갔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어 “단체생활을 하다 보면 밖에서는 진심을 다해 말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좋은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다 보니 감독님과 선수들이 연결됐다. 하나로 모여야 가슴에 있는 말을 하지 않겠는가”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항상 좋을 수만은 없는 법. 가끔 개인 성적으로 인한 이기주의적 행동이 나오기도 했다. 흔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잘못된 욕심으로 경기 흐름을 끊기도 했다.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비난만 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희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갑용 코치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류현진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진갑용 코치는 단골 국가대표로서 모두가 인정한 베테랑 포수였다. 반면 류현진은 한국프로야구를 씹어 먹던 ‘괴물투수’였다. 최고와 최고의 만남이라고 하더라도 각자 스타일이 있기에 호흡까지 잘 맞을 수 없다. 그런데 이들의 조합은 완벽했다.


“캐나다와의 2차전 경기였다. 현진이가 9회까지 내 사인에 대해 고개를 단 한 번도 흔들지 않았다. 공을 잡고 바로 던졌다. 오히려 내가 부담감에 손이 떨리기까지 했다”며 웃은 뒤 “중간에 현진이에게 ‘왜 고개를 안 흔드냐’고 물어봤더니 ‘편하다’고 대답하더라”고 말했다. 서로 간 배려가 믿음을 낳은 것이었다.


이 일화에는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진갑용 코치는 “경기 전 당연히 분석하고 들어가지만, 배터리 궁합이 잘 맞아야 게임이 쉽게 풀린다. 사인이 안 맞으면 공 하나를 던지면서도 5번씩 흔드는 투수가 있다. 우선 투수 위주로 가지만 이 경우 진행이 느려지면서 야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집중하고 있다가 긴장이 풀리면 안 되지 않는가”라고 꼬집어 이야기했다.


이어 “자기 성적이 깎이는 팀플레이는 누구나 하기 싫을 것이다. 기록으로는 아웃이지만 이를 성공할 경우 고과점수는 올라간다. 상황에 따라 이기기 위해 작전대로 번트를 대야 한다. 그런데 번트를 시도하는 선수는 정해져 있다. 이것 자체가 희생이다. 포수 역시 공을 받는 것 자체가 희생이다”며 배려의 필요성과 이에 따른 감사함을 잊지 말기를 바랐다.


사자군단이 원하는 위상은 무엇인가.

삼성이 진갑용 코치를 반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한마디로 무한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그의 경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삼성의 전성기에 진갑용 코치가 중심에 있었다. 1999년 트레이드로 삼성에 둥지를 튼 진갑용 코치는 입단 후 안방마님을 차지하며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2002시즌과 2005시즌, 2006시즌에는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리더십도 강했다. 6차례 주장으로서 솔선수범했으며 2011년에는 한국시리즈와 아시아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부상 투혼을 발휘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주장으로서 9전 전승을 이루는 데 공헌했다. 이는 삼성의 위상을 국제무대에서까지 보여준 본보기이기도 하다.


소름 돋는 이야기도 있다. 진갑용 코치가 정상궤도를 달릴 땐 선수단이 문제없이 운영됐다. 그런데 2009년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니 양준혁, 박진만, 권오준, 오승환, 조동찬, 박석민, 안지만 등이 줄줄이 아팠다. 이 현상을 보고 ‘기둥이 흔들리니 집안이 망할 뻔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진갑용 코치의 존재는 이 정도로 선수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그의 복귀가 간절했던 건 구단만이 아니었다. 삼성 팬들은 ‘삼성왕조의 재건’이라며 진갑용 코치를 환영했다. 진갑용의 합류로 삼성의 전성기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에 차있다. ‘국대포수와 국대포수’가 만난 진갑용 코치와 강민호의 조합을 신뢰하고 있다.


이 말을 들은 진갑용 코치는 “그 당시에는 외국인 선수들이 잘해줬고 부상선수도 없었다. 코칭스태프와의 호흡도 좋았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최근 2시즌에는 아픈 선수들이 있었기에 베스트 플레이를 못 했을 것이다”라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감추지 못했다. 진갑용 코치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의 삼성은 다른 팀 선수들이 부러워했던 팀이다. 전부 우리 유니폼을 입고 싶어 했다. 다시 그런 팀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팀으로! 오고 싶은 팀으로! 그러려면 누가 해야겠는가”라고 선수들에게 질문했다.


진갑용 코치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 5강이다. 그는 “감독님 입장에서 기분은 안 좋겠지만 우승에 대한 부담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어느 팀이 우승하느냐, 저 팀은 안 된다며 이미 정해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부담을 덜고 경기에 임해야만 조금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감은 항상 있다. 뭐라 말하기 좀 그런데… 우리는 항상 맨 꼭대기만 봤다. 목표를 두는 것이 애매했다. 프로는 무조건 우승인데 요즘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다. 항상 우승 이외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승보다 높은 것이 없다. 다음 해에 2위를 하겠다고 하겠는가”며 “시즌에 들어가면 당연히 최종 목표는 팀 우승이라고 생각한다. 우승팀 코치로 왔으면 또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진갑용 코치는 “20년도 기다렸다. 2년 부진했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 없다. 급하게 가면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올해 목표는 8위다. 한 계단씩 더 올라가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더그아웃 매거진 84호(4월호) 표지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4월호(84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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