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미디어] 'DUGOUT Dream' 한화 이글스 최재훈

조회수 2018. 4. 18. 10: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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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주인공 칠봉이는 좋아하는 여자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로 표현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린 이 대사는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이다. 그의 이 명언은 한화 이글스의 포수 최재훈에게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빛을 볼 때면, 시련이 찾아오는 그에게 사람들은 늘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말들 속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야구는 결국 한화에서 꽃 피우게 된다. 끝없는 좌절 속에서도 피어난 최재훈의 야구는 이제 시작이다.

Photograper Mino Hwang   Editor Subin Shin   Location Kochinda Baseball Park


자신도 몰랐던 시작

덕수고등학교 포수 최재훈은 에이스였다. 주전 포수이자 4번 타자였던 그는 덕수고의 전성기를 이끌며 기량을 뽐냈지만, 그해 드래프트 10라운드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작은 키와 왜소한 몸이 그 이유였다. 모두 최재훈이 단국대학교로 진학할 것으로 생각하던 그때, 그는 돌연 두산 베어스의 신고 선수로 입단한다.


<더그아웃 매거진>과는 오랜만이다.

이런 인터뷰가 오랜만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웃음) 하지만 이런 기회가 생겨 감사하고 자주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국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두산의 육성 선수를 선택했다.

나의 선택이 아니었고, 부모님이 결정하신 일이었다. 나는 당시 단국대에 진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입단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났다. (부모님께 화가 났다는 뜻인가?)물론 나에게 묻지 않고 결정을 내리신 부모님께도 화가 났다. 집을 나가려고도 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만일 야구를 더 잘했으면 계약금과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입단을 하는 것인데… 계약금도 받지 못했고 미래도 불투명한 육성 선수로 들어가게 되지 않았나. 야구를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정말 많이 울었다.


그렇다면 대학 진학을 더 원했던 것인가.

드래프트 전 청소년 대표팀에도 승선하지 못했고 드래프트에서는 이름도 불리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야구를 못했나 싶더라. 야구를 그만두려고 할 때 단국대에서 합격 통보가 왔다. 이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두산 입단이 결정되니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러운 상태로 프로에 왔으니 더 힘들었을 것 같다.

프로의 벽은 정말 높았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관심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시합에 나가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때는… (침묵) 정말 서러웠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무조건 이 선수들은 다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다.


2년간 1군에 단 1경기를 나선 최재훈. 그는 ‘이겨야겠다’는 독한 마음을 품고 2010년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게 된다. 입대 이후 그는 수비는 물론 부족했던 타격에서도 높은 성장을 보이며 2011년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타점왕에 오른다. 근성과 노력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경찰 야구단에서는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마음가짐도 달랐고 유승안 감독님께 많이 배웠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경찰 야구단에서 경기할 때는 관객도, 팬도 많이 없었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편안했고 자신감이 생겼다.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나 자신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잘할 때 하필 양의지(두산)가 제대 이후 활약하고 있었다.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질투가 나지는 않았다. 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또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늘 닮고 싶었던 형이기에 오히려 기뻤다.


마음을 착하게 써서 그런가. 제대 이후 이토 쓰토무 코치라는 은사가 생겼다.

아! 정말 감사한 분이다. 이토 코치님은 일본인이시다 보니 선수들과 언어의 장벽이 있다. 선수들도 지레 겁먹어서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워낙 장난기도 많고 활발한 성격이라 코치님과 가까워지려고 많이 노력했다. 코치님에게 더 많이 배우고 싶었다. 그런 내 모습을 예쁘게 봐주신 것인지 마음을 여시고 많이 챙겨주셨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최재훈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켰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 결과 그는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 팬들에게 실력으로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는다. 최재훈은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부터 양의지를 대신하여 주전 포수로서 리드했고 4차전에서는 결승 홈런을 날리며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어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홈으로 들어오는 두 명의 주자를 잡아내며 경기를 종료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도 그의 이름은 울려 퍼졌다.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 플레이에 팬들은 환호했고 그는 영웅이 되었다.


지난 2013년 포스트시즌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당시 (양)의지 형이 허리 부상 때문에 실력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큰 경기니 당연히 주전 포수인 의지 형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때부터 갑자기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내가 긴장한 것을 아는지 주변에서 ‘괜찮다. 큰 경기에도 나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많이 다독여줬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미친 척 부딪혔다. 그러니 마음이 편해졌다.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고 싶어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그렇게 몸을 날리는 플레이가 부상을 가져왔다.

오히려 육성 선수 기간보다 2015~16년이 더 힘들었다. 좋은 플레이를 했고 자신감도 높아졌다. 어깨 수술이라는 큰 시련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내가 재활을 하는 동안 좋은 선수들이 점점 많아졌다. 참 힘들었다.


주변에서도 안타까워했을 것 같다.

의지 형에게 연락이 왔다. ‘네가 형을 잡을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 부상은 나에게 가장 큰 시련이었다.


드디어 꽃 피다

작년 4월 17일 최재훈(당시 두산)과 신성현(당시 한화)의 트레이드가 결정된 날 인터넷은 뜨거웠다. 두 선수 모두 각 팀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던 타자들로 이적이 결정되자마자 팬들 사이에서는 열렬한 키보드 공방전이 오갔다. 그 무수한 불신과 의문 사이에서 최재훈은 이적 다음 날부터 한화 팬들의 마음에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찍는다. 탁월한 투수 리드와 더불어 물오른 타격을 자랑한 그는 한화의 새로운 구심점이 됐다. 뜨거운 데뷔였다.


처음 한화에 왔을 때를 생각해보자.

한화에 왔을 때 부담이 컸다. ‘신스타’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최고의 인기 선수와 트레이드되지 않았나. 내가 팀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지난 시즌에 별로 보여준 것이 없었는데 팬들에게 실망을 주지는 않을까 하고 계속 생각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열심히 노력하자는 마음이 더 컸다.


허슬 플레이가 유독 많았다.

이적생이기 때문에 팬들이 응원을 많이 해주시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말 크게 응원을 해주시더라. 그래서 더 힘을 내게 되었다. 또 몸을 다칠지라도 플레이는 끝까지 책임을 지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리 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부상을 많이 입었지만… (웃음)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팬들의 응원이 정말 컸나 보다.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느낀다. 함성과 응원 소리에서도 느끼지만,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사인을 받고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시는 팬들이 점점 늘어났다. 정말 꿈같다.


하지만 후반기에 들어서며 체력적 부분과 더불어 타격에서도 아쉬운 모습이 나왔다. (최재훈의 작년 9월 타율은 1할 대였다)

그렇다. 초반에는 증명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뛰어다니려고 했다. 과도하게 힘을 쏟다 보니 체력이 점점 떨어지더라. 방망이가 무거운 느낌이 들더니 타율이 떨어졌다. 스스로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노력했지만, 극복되지 않았다. 후반기에 들어서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오히려 팬들께서는 한화에서 보내는 첫해이기에 질타보다는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셨다. 하지만 이제는 두 번째 시즌이니 다를 것 같다. (웃음) 더 준비하려고 한다.


시즌 시작을 앞두고 어떤 준비를 했는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또 두산 시절 함께했던 코치님들을 다시 만났다. 워낙 지옥 훈련으로 유명하신 분들이다. (웃음) 덕분에 체력을 기를 수 있었다. 지난 전지훈련에서는 더 많이 배우는 것이 목표였다.


한화에 젊은 포수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이끄는 처지가 되었는데.

나는 내가 주전 포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다른 포수들도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팀의 입장으로서 보자면 이런 노력이 한화에 좋은 시너지를 낼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이 선수들에 비교하여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더 노력할 것이다.


시즌에 대한 각오가 남다른 것 같다.

작년에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래서 장종훈 타격 코치님과 강인권 배터리 코치님께 열심히 배우고 있다. 내가 더 노력하면 팬들이 이번 시즌을 재밌게 즐길 수 있지 않겠나. 더 노력하고 더 뛰고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몸이라도 부딪히며 최선을 다하겠다.


새 출발을 기대하며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00경기 넘게 소화한 최재훈. 지난 시즌이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시즌은 최재훈에게 시험대다. 앞서 성실한 모습으로는 이미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지난 시즌보다 발전한 모습까지 보여야 한다. 누구보다 뜨거운 자리에서 팀원들의 얼굴을 보는 안방마님. 최재훈이 생각하는 포수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내가 한화 팬이라는 소문이 있다.

인터넷에 그런 말들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니다. (웃음) 왜 그런 소문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이가 생겼다는 것도 소문인가. (웃음)

아니다. 아들이 1월 4일에 세상에 나왔다. 정말, 정말, 진심으로 보고 싶어 죽겠다. (울상) 시즌이 시작하여 자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영상통화를 매일 하는데 통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접 아이가 보고 싶고 안고 싶다. 아들이 생기니 야구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


포수 장비가 새롭다. 선수들이 잘 착용하지 않는 브랜드다.

윌린 로사리오의 선물이다. 조금 더 가벼운 장비인데 다른 장비보다 백가드가 편하더라. 그런데 앞판이 얇아서 맞으면 너무 아프다. (웃음) 로사리오의 선물이라 아쉽지만 바꾸려고 한다.


그 가드를 다 차고 경기에 나서려면 참 힘들 것 같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초등학교 때는 외야수, 내야수 두 포지션을 맡았다. 내가 화곡초등학교를 다닐 때 감독님이 ‘너 포수 해볼 생각 없냐’고 물어보셨다. 답은 당연히 ‘생각 없다’였다. 포수 포지션 자체가 힘들기도 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니 감독님이 훈련을 편하게 해 줄 테니 한번 해보자고 하시더라. 물론 거짓말이셨다. (웃음) 정말 힘들게 연습을 했는데 너무 재밌더라. 포수의 매력에 눈을 떴다.


어떤 매력에 눈을 뜬 건가.

도루를 잡는 것! 내가 던진 공이 주자를 잡아 아웃 카운트를 만든다는 것이 짜릿했다. 그렇게 누군가를 잡는 매력에 빠져서 포수를 계속하게 되었다. 다른 포수들은 어떤 매력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포수라는 포지션이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 참 힘든 것 같다.

그렇다. 유소년 선수들이 이 포지션을 꺼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포수 장비도 무겁고 훈련도 힘들고 무엇보다 살아남기 참 힘든 자리다.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조금 더 실력이 좋으면 자리를 잡는 것이고 부상을 입으면 자리를 또 뺏기는 것이다. 참 어려운 자리다.


포수는 팀원들의 얼굴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매력인데.

경기 중에 선수들을 바라보면 표정으로 서로 긴장을 풀어주는 모습을 많이 본다. 경기에서 위축된 선수들이나 신인 선수들을 향해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장난스럽게 구는 모습도 보인다. 그때 팀워크를 느낀다.


또 타석에 들어서는 상대 타자가 바로 옆에 있다.

친한 선수들이 오면 가끔 장난을 친다. 특히 (박)건우! 엉덩이를 때리고 가거나 ‘여기서 뭐 하냐’며 장난스럽게 툭 칠 때도 있다. 가끔 나도 집중을 방해하고 싶을 때가 있다. (웃음)


두산에서 아주 친했나 보다. 한용덕 감독도 두산에서 먼저 만났었다.

그래서 조금 더 편하다. 돼지라고 매일 놀리신다. (웃음) 그래서 나도 지지 않고 놀리려고 한다. 권위적이지 않으시고 늘 편하게 대해주신다.


새로운 투수는 어떤가.

키버스 샘슨과 제이슨 휠러는 제구도 좋지만 볼 끝이 정말 좋다. 이를 잘 활용하면 상대 타자에게 위력적일 것 같다. 두 선수와는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다.


최재훈만큼이나 한화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한다.

작년에는 실망을 많이 드린 것 같아 죄송했습니다. 올해는 더 많은 걸 보여드려서 팬들이 더 즐겁게, 더 자주 야구장을 찾아 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선수들 모두 열심히 훈련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더 좋은 성적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 늘 그러셨지만 이번 시즌도 큰 응원 보내주시면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포수는 선수 중 팬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포지션이다. 포수 뒷자리가 명당인 것도 그 이유다. 늘 팬들과 가까운 곳에서 호흡해서일까. 최재훈이 강조했던 것은 팬들이 보내준 사랑이었다. 한화에서 허슬 플레이를 한 것도, 좋은 타격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한 것도 팬들의 덕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보답할 차례라고 말한다. 자신이 팀에 자리를 잡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는 최재훈. 노력과 근성이 만들어낸 그의 다음 시즌은 그래서 더욱 빛날 것이다.


                                        더그아웃 매거진 84호(4월호) 표지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4월호(84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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