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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미디어] 'DUGOUT People' NC 다이노스 왕웨이중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8.05.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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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야구 '대만특급' 왕웨이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곳, 대만에서 특급 좌완투수가 한국에 상륙했다. 대만 출신 외국인 선수 1호! 출중한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성적으로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화제의 인물, NC 다이노스의 왕웨이중이 그 주인공이다. 거침없이 상대 타자의 몸 쪽으로 강속구를 뿌리는 겁이 없고 대담한 투수로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메이저리그를 거쳐 KBO리그에 도전장을 던진 그는 점점 자신의 그라운드를 넓히고 있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Kwonhyang Pyo   Location Masan Baseball Stadium


마산에 꽃이 피었네

2018년 1월 NC 다이노스가 또 한 번 돌풍을 몰고 올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다. KBO리그 사상 처음 등장한 대만 출신 왕웨이중이었다. 첫 만남은 예상치 못한 분위기였다. 그의 이력보단 외모가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배우 이민호를 닮았다는 이유로 관심이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하지만 야구 선수는 역시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왕웨이중은 KBO리그 데뷔전인 지난 3월 24일 LG 트윈스를 상대로 7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잡고 1실점 했다. KBO리그에 지각변동을 예고한 경기였다. 그날 승리를 거머쥐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이후 호투를 계속하며 ‘야구선수’ 왕웨이중의 이름을 알렸다.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한국 생활에 적응했는가.

일단 지금까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개막 전부터 기자들의 인터뷰가 쇄도했다. 공항에서부터 놀랐을 것 같다.

부담이 조금 되기도 했다. 아직 야구장에서 공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기대치가 큰 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왕웨이중의 등장으로 대만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내년에 더 많은 대만 선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대만 출신 1호 선수로 한국에 와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더 많은 대만 선수가 와서 함께 야구를 하게 된다면 기쁠 것 같다.


한국은 물론 대만 언론의 관심도 굉장하다. 대만 내 KBO리그 중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한류야구’의 선구자다.

대만팬들은 보통 해외야구를 보면 미국과 일본의 야구를 봤다. 이젠 나로 인해 한국 야구도 보게 됐다니 감회가 새롭다. ‘한류’라는 단어가 나와서 그런데, 나 역시 대만에 있을 때 한국 드라마를 봤다. 대만팬들에게 ‘한국 오빠들’이 야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


잠깐 삼천포로 빠지면, 배우 이민호를 닮았다는 말이 많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 생각엔 안 닮은 것 같다.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은가?) 당연히 배우 이민호 씨가 더 잘생겼다.


선수단과의 첫 만남은 어땠는가.

스프링캠프 출국을 위해 모인 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아무도 모르고 한국말도 몰라서 어색했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한 후 야구장에서 훈련하면서 점점 가까워졌다. (특히 누구와 친한가?) 이재학, 강윤구, 이민호, 장현식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출퇴근할 때 많은 팬을 만난다. 인기 때문에 야구장에 오는 것이 즐거울 것 같다.

팬들 덕분에 즐겁다. 내 스케줄이 있어서 모든 분께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해드리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초반 몇 분만 해드리는데 그 점이 항상 죄송하다.


연예인 말고 야구하러 온 대만 미남

왕웨이중은 아마추어 FA 신분으로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미국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위기를 맞았다. 토미 존 수술이 필요하단 소식에 계약이 무효 처리됐다. 시작부터 삐끗했던 그가 느꼈을 좌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긴 재활의 터널에 갇혀 앞날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젊었다. 무너져버린 자아를 다시 찾으려고 노력했다. 야구에 대한 간절함과 소중함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고, 그의 바람대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사실 메이저리그의 시작은 좋지 못했다. 토미 존 수술 소식에 피츠버그가 계약을 무효화했다. 그때 심정이 어땠는가.

피츠버그에서 수술과 재활을 했던 그 시간이 어려웠고 힘들었다. 좌절감도 느꼈었다. 그래서 수술 경험이 있는 선배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 재활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힘들었다. 이 기간엔 야구가 하고 싶어도 못 하니까…. 다행히 밀워키에서 나를 받아줬다. 방출을 당했다기보다 다시 야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에 그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예외적으로 룰5 드래프트 대상자로 허용돼 미국에 남게 됐다. 기적과도 같았을 것 같다.

행운이 많이 따랐다. 또 많은 사람이 도와줬다. 힘든 과정을 보낸 후 밀워키로 둥지를 옮겼는데 그때부터 모든 게 잘 풀렸던 것 같다. 밀워키에 가서 트리플A나 더블A 과정 없이 루키에서 바로 메이저리그로 직행했다.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2014년 4월 14일,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기억하는가.

긴장이 많이 됐다. 불펜에서 몸을 풀 때부터 언제 나갈까란 생각을 했다. 첫 등판이었는데 성적이 괜찮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KBO리그 데뷔전은 어땠는가. 한국에 오기 전부터 각오가 남달랐을 것 같다.

데뷔전이 바로 개막전이었다. 한국과 대만의 미디어에서 관심을 가진 경기였기에 부담이 컸다. 하지만 부담감을 이겨내고 평상시 마음가짐으로 한 이닝 한 이닝 집중해서 한 타자씩 상대하려고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마이너리그 생활이 길었지만, 한국행을 결심했다. 메이저리그가 아닌 KBO리그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한국에서 선발 투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선발 투수로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선발 기회를 얻기 힘들었다. 만약 얻는다고 해도 거쳐야 할 과정이 많았다. 다른 시각으로는 그동안 한국에서 대만 선수가 뛴 적이 없었기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국제대회에서도 한국을 상대해본 적이 없어서 기대가 컸다.


본인이 생각하는 선발 투수의 조건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다. 두 번째가 제구력이고, 세 번째가 이닝이터가 되는 것이다. 팀에 보탬이 돼야 하며 많은 이닝을 소화하여 불펜 투수들의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자신 있는 공과 장점은 무엇인가.

상대 타자를 위협할 수 있는 몸 쪽 공을 던질 수 있다. 장점은 위기상황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상에 주자가 있을 때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최대한 땅볼을 유도해서 이닝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황재균과 트리플A에서 만났었다. 한국에서 만난 황재균은 어땠는가.

부담이 있었다. 황재균 선수는 힘이 좋고 타격 기술이 뛰어나며 스윙 속도도 빠르다. 언제든지 홈런을 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더 신경 썼다.


황재균과의 재회가 반가웠을 것 같다.

사실 미국에서 만나긴 했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다. 말해본 적도 없다. 미국에 있을 때 팀 동료들이 상대팀에 아시아 선수가 있다고 해서 봤다. 그를 처음 보고 일본 선수라고 생각했다. 이후 검색해보니 한국 선수였다. 정말 좋은 선수다.


미국, 대만에 이어 한국의 야구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 야구만의 다른 느낌이 있는가.

한국팬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굉장하다! 미국의 경우 안타를 치는 등 나이스 플레이가 나왔을 때만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한국은 1회부터 9회까지 치어리더와 팬들이 쉬지 않고 응원해준다. 선수보다 더 수고하는 것 같다. (웃음)


한국 야구에서 왼손 투수가 귀하다고 한다. 본인이 해줘야 할 역할이 클 것 같다.

한국에 좌완 투수가 없다고 하는데, 아니다! 좋은 투수가 많다. 강속구 투수는 물론 구속이 안 나오면 제구와 컨트롤로 상대 타자들을 제압한다.


지금까지 NC 외국인 선수들의 실력이 대단했다. NC 스카우트들이 인정받는 이유다.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앞세우지 않겠다. 등판하는 경기마다 최상의 플레이를 보여드려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오! 영원한 친구 ‘왕과 솔’

가까운 이웃 나라지만 다른 점이 많은 한국이다. 이젠 제법 한국 생활에 적응해 숙소에서 야구장까지 혼자 전동 퀵보드를 타고 출근하지만,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의 어색함은 감출 수 없었다. 국제대회 경험은 있지만 한국 선수와의 만남이 없었기에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때 팔을 걷어붙이고 물심양면으로 그의 적응을 도와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강마루솔 매니저다. 강 매니저는 왕웨이중의 옆에 딱 붙어 그의 입과 귀, 손과 발이 돼주고 있다. 왕웨이중은 잠시라도 그와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면 “오랜만이야”라며 반가워했다. 강 매니저는 왕웨이중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었다.


한국에 적응하는데 누구보다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강마루솔 매니저일 것이다. 그는 어떤 존재인가.

나 때문에 수고를 많이 하는 것 같다. 통역의 도움이 없었으면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강 매니저는 야구장에서 통역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나를 먼저 생각해주고 희생한다. 평소 개인 스케줄도 있을 텐데 내가 전화통화를 해야 하는 소소한 일까지 꼼꼼하게 도와준다.


강 매니저와 함께한 추억이 있는가.

얼마 전 진해 군항제에 벚꽃을 보러 다녀왔다. 야구가 없는 월요일이었다. 강 매니저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는데 힘들어서 가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가고 싶다고 말하니 대만에서 온 친구까지 데리고 같이 가줬다.


즐겨 먹는 한국 음식은 무엇인가.

고기를 좋아한다. 삼겹살 등 돼지고기를 좋아해서 고깃집에 많이 간다.


선발 등판 전날 꼭 삼겹살을 먹는다고 하던데. 이 기분 좋은 징크스는 어떻게 생겼는가.

개막 하루 전날 우연히 삼겹살을 먹었는데 다음날 잘 던져서 시작됐다. 두 번째 경기도 그랬다. 하지만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까먹고 있다가 못 먹었다. 경기 후 ‘아, 그랬었지’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웃음)


완전히 징크스로 자리 잡은 것인가.

미국에서도 어떤 행동을 한 이후 좋은 기운이 야구로 이어지면 매번 그대로 행동했다. 샤워장에 들어가면 샤워기가 쫙 있는데 내가 쓰던 것만 썼다. 누군가 그 샤워기를 쓰고 있으면 기다렸다가 씻었다. 다음 등판 전에 삼겹살을 기억한다면 꼭 먹을 것이다. (강 매니저가 상기시켜줘야 할 것 같다) OK!


시도해보고 싶은 한국 음식이 있는가.

새로운 건 다 시도해보고 싶다. 며칠 전 임창민 선수의 주도로 투수조 회식이 있었다. 그날 삼계탕을 먹었다. 보양식이라고 들었는데 맛있었다. 또 하루는 박석민 선수가 외국인 선수를 모두 데리고 횟집에 갔었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가보고 싶은 곳도 있는가.

특별히 생각나는 곳은 없다. 여러 군데 갈 만한 곳을 추천해주면 찾아가고 싶다. 대만에서 한국으로 여행을 많이 온다. 서울도 좋지만 관광하기 좋은 명소들이 많다고 들었다. 또 어떤 이들은 ‘한국 오빠들(=아이돌)’을 보러 오는 것도 좋아하고. (이젠 왕웨이중 오빠를 보러오겠다) 나는 가짜 오빠고! (웃음)


‘왕서방’ 다이노스를 부탁해

왕웨이중의 인기는 야구장 안팎 어디든 실감할 수 있다. 그가 출현하는 곳마다 팬들의 환호가 대단하다. 팬들과의 만남이 언제나 즐겁다는 왕웨이중은 그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짧은 대화라도 팬들과의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는 왕웨이중. 그 소원이 조만간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팬들이 ‘왕서방’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kt 위즈의 더스틴 니퍼트가 두산 베어스 시절 최고의 피칭을 보일 때 얻은 별명인 ‘니서방’과 같다. 그만큼 팬들의 기대가 대단하다.

맨 처음에는 쑥스러웠다. 그런데 뜻이 좋더라. 나를 좋게 봐주고 또 나에게 친근함을 느껴 그렇게 불러준다는 것을 알았다. 이젠 만족한다. 맘에 든다.


‘왕서방’이 좋은가, 아니면 ‘왕오빠’로 불리길 원하는가.

솔직히… 오빠가 좋은 것 같다. (웃음) 처음 오빠란 소리를 들었던 건 애리조나 투산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다. 숙소 근처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초밥집이 있었다. 그 식당의 한국 여사장님이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웃음)


마운드에 오를 때 팬들의 함성을 느끼는가. 기분이 짜릿할 것 같다.

등판할 때 팬들이 “파이팅!”, “짜요!”라고 응원해주는데 큰 힘이 된다. 나의 원동력이다. 팬들의 응원을 들으면 야구장에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려고 노력한다.


팬들에게 다가가는 나만의 방식이 있는가.

팬들과의 만남을 좋아한다. 그래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거나 같이 사진을 찍는 것에 열려있다. 최대한 많은 분께 해드리고 싶지만 한 분 한 분 다 해드리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시간이 허락되고 여건이 된다면 정말 모든 분께 다 해드리고 싶다.


소통이 중요한데,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가.

계속 배우고 있다. 가끔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팀 동료와 여러 사람에게 하나씩 배우고 있다. (할 줄 아는 한국어가 있다면?) 오랜만이야! 오빠!


선수들이 가르쳐준 한국어는 무엇인가.

인터뷰에서 말하기엔 위험할 것 같은데…. (웃음) 기억에 남는 건 스프링캠프에서 이런저런 미팅이 많았다. 그때 선수들이 ‘만날 모이래’라고 말하는 것을 옆에서 많이 들어서 기억하고 있다. 또 하루는 친선경기 중 투수가 타자를 공으로 맞힌 적이 있다. 투수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왔을 때 선수들이 장난으로 ‘왜 그랬냐고’라며 핀잔을 줬는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웃음)


한창 야구를 할 나이지만, 앞으로도 오래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본인만의 관리법이 있다면?

특별히 관리법이 있기보다 오래 야구하려면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관리를 받고 있다.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훈련 중에도 대충대충 하지 않고 더 열심히 집중하려고 한다.


올해 그리고 앞으로의 한국 무대가 더 기대된다. 내가 그리는 한국 생활은 어떠한가.

마이너리그 생활이 정말 힘들었다. 원정길이 멀고 차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했다. 숙소 주변에는 식당도 없어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반면 한국은 어딜 가나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곳이 많고 환경도 좋다.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대단히 만족한다.


올 시즌 목표가 있다면.

건강하게 한 시즌을 마치는 것이다. 예전에 부상 경력이 있기에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하이! 안녕하세요. 한마디 하라고 해서 진짜 한마디 했다. (웃음) 농담이고 팬 여러분, 항상 응원과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V에서 보든 야구장에서 보든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더 힘내고 야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야구장에 오셔서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한다. 개개인이 경험한 환경이나 배경에서 묻어나오는 성격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는 모두 같은 신분의 ‘선수’가 된다. 야구장에서만큼은 ‘다름’이 없다. 한글로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순간 외국인 선수가 아닌 ‘우리’ 선수가 된다. 올 시즌 함께 할 이곳에서 그의 ‘같음’이 증명받길 바란다.


                                            더그아웃 매거진 85호(5월호) 표지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5월호(85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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