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Special Interview] 임용수 캐스터

조회수 2018. 6. 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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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나는 '야구인'

“간다! 간다! 간다! 홈~런!!” 야구팬이라면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화통을 삶아먹은 듯 가슴이 뻥 뚫리는 우렁찬 목소리와 구성진 멘트로 인기를 얻고 있는 임용수 캐스터. 야구 캐스터의 3대 천왕으로 불리며 야구장에서 11년을 보냈다. 프로야구 37년 중 3분의 1을 현장에서 소식을 전한 그의 야구 이야기를 들어보자.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Kwonhyang Pyo   Location Great Media Office


돌아온 샤우팅맨

2018시즌 프로야구 중계사의 구조에 물음표를 단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까지 중계권을 가지고 있던 방송사는 사라지고 한 방송사가 두 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IPTV 중계권 협상 대행사인 에이클라와 스카이스포츠 간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프로야구의 간판 아나운서인 임용수 캐스터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프리랜서인 임용수 캐스터는 최근 6년 간 시즌을 앞두고 불안정한 사정에 한숨을 쉬었다. 프로야구 중계권이란 것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고 해서 바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소속된 방송사는 매년 정규리그가 시작돼서야 투입됐기에 다른 방송사보다 늦은 출발을 해왔다. 그래도 마이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올 시즌 프로야구 중계현장에서 그를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지만, 계속 시간만 흐를 뿐 구체적인 얘기는 아직 없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임용수 캐스터 역시 “극단적으로 올해 중계를 못 하겠구나”라며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야구장으로 출근을 안 할 뿐이지 그의 일상은 지난해와 다를 것이 없었다. 야구가 없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프로야구를 보고 있다. 바뀐 것은 야구를 보는 장소와 마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가끔 야구장을 직접 찾아 다른 시각에서 관람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프리랜서라는 신분이 야속하긴 처음이었다. “내가 능력이 안 돼서 재계약이 안 됐다면 OK! 방송사가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 해서 내가 중계를 못 한 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니 어쩔 수 없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은 해왔지만 막상 벌어지니까 ‘아, 진짜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로 끝나는 해프닝이었으면 좋겠다. 계약 관계가 달라지겠지만, 내년 그리고 후년에도 계속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상황을 보면서 정통 미디어시대의 붕괴로 예상했다. 뉴미디어 분야의 발전에만 치우치다보니 미디어의 영향이 자연스레 줄어들었다는 것. 과거 프로야구 성장에 밑거름이었던 미디어에 대한 차가운 시선에 안타까운 마음이 깊었다. 서로 간 계약서를 본 적은 없지만 만족스런 흥정이 없었다는 것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야구중계란 상품을 사는 이와 파는 이에게 명분을 줄 수 있도록 흥정꾼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 임용수 캐스터의 생각이다. 계약관계에서 의견차를 좁히려는 작업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음표를 남겼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것은 결국 피해자는 시청자인 야구팬들이라고 밝혔다. 임용수 캐스터는 “5개 구장을 다 보여주더라도 선의의 경쟁을 통해 양질의 중계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한 방송사는 비용을 줄이라는 지시 탓에 퀄리티가 좋은 중계를 위해 투자하지 못한다. 이는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며 중계권의 위기를 말했다.


그동안 속상한 마음이 컸던 임용수 캐스터는 “건전한 돈이 유입돼야 양질의 방송을 만들 수 있다. 판을 키워야지”라며 “메이저리그를 보고 다니면서 뭘 보았는지 의문이다. 몇 해 전 애리조나와 다저스는 호주에서 경기를 치렀다. 이를 위해 야구장을 짓는 데만 30억 원 이상을 썼다. 큰돈을 들여가면서 왜 했겠는가? 내년에는 뉴욕과 보스턴이 런던에서 시합한다고 한다. 결국 시장 확대를 위함이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대기업이 가진 자본이 약 6~70조라고 한다. 야구단에 투자하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프로야구 37년이다. 사람 나이로 따지면 자립하고도 남을 나이다. 안일한 사고에서 벗어나서 비즈니스 쪽으로 철저하게 계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로야구 전문 캐스터로서 자부심이 강했기에 지금의 실정이 야속했다. “딴 생각 안 하고 욕심 없이 쭉 달려왔는데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이 벌어지니 억울했다. 배신감과 상실감도 느꼈다. 내가 하는 중계를 기다린다는 팬들의 얘기를 들으면… 방송이란 것이 서비스업인데, 내 목소리를 통해 즐거움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부모님께서 야구를 좋아하시는데 내가 이렇게 되니 야구를 안 본다고 하시더라. 자식으로서 또 하나의 기쁨을 드리지 못한 것에 속상했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집에 있으면 “내가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있지”란 의문이 들어 멘탈붕괴를 겪기도 했다. 화가 나고 속상해서 다른 곳을 응시하려고 했는데 야구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여전히 아날로그적으로 각 구장별 선발투수의 기록지를 작성하고 있다. 이 시기를 보내면서 캐스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해설위원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등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스카이스포츠가 중계권을 포기하면서 그의 행보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대신 프로야구는 아니지만 IB스포츠에서 중계하는 고교야구를 통해 그의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게 됐다.


“천만다행”이라고 말한 임용수 캐스터는 “프로야구를 중계하지 못 하는 것은 위기다. 그나마 아마추어 야구를 하면서 정신 차리고 오라는 계시인 것 같다. 다시 공부하고 오라는 메시지인가 싶다”며 허허 웃었다.


임용수 캐스터는 고교야구 현장을 겪으면서 새로운 감정들을 느끼고 있다. 그는 첫 중계에서 한 예를 들어 감정을 호소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영화가 세계적인 수준이 될 수 있었던 건 영화팬들의 의무감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영화를 봐주자! 그러면서 돈을 내고 관람했다. 그랬더니 영화의 수준이 올라갔고 자본이 유입됐다. 메이저 시상식에 가서 상을 타는 등 굉장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지금은 관심이 떨어졌지만 예전엔 고교야구가 그랬다. 나도 오랜만에 봐서 부끄러웠다. 우리 선수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의무적으로 와서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아직 완벽한 선수가 아닌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실수는 다르다. 아마추어가 실수하는 건 좋은 선수가 되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박수를 쳐줘야 한다. 프로로 가는 과정이고 이러한 관심으로 좋은 선수가 나오는 것이다.


행복을 위해 꿈꾼 샐러리맨

어린 시절 임용수 캐스터는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특히 클래식에 빠졌었고 이를 장점으로 살려 중앙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고등학생 때 장례희망이 아나운서였기에 방송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과연 대한민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활이란 부분을 무시 못 하지 않는가. 방송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뒀었다”고 말했다.


졸업 후에는 금호그룹의 사회공헌 중 문화를 후원하는 재단으로 취업했다. 그곳에서 현악사중주단의 공연을 기획했다. 고 박성용 회장은 매번 직접 전화해서 질문하고 확인했다. 임용수 캐스터는 정확한 전달을 위해 모든 공연곡의 앨범과 악보를 구매해 완벽하게 외우는 등 꼼꼼히 준비했다.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던 중 심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임용수 캐스터는 “어느 순간 내 인생에도 스포트라이트가 있는가, 내 인생이라면 내가 주목을 받아야 하는데 무대 밖에서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공연 기획이 재밌었지만 오래 있으면 방송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며 방향을 틀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29세였던 임용수 캐스터는 SBS스포츠(구 SBS ESPN)의 전신이었던 한국스포츠TV의 마지막 공채 합격자로 캐스터 생활을 시작했다. 동기가 한명재·조민호·김성주 아나운서다.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스포츠 중계는 거의 다 했다는 기억이다.


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로 스트레스를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첫 중계를 마치고 멘탈붕괴가 왔다고 한다. 그는 “단어는 머릿속에 돌아다니는데 정리를 못 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란 생각에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이러다 야구중계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불안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땐 지금과 달리 클릭 하나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다. 경기 준비를 위해 임용수 캐스터가 택한 방법은 스포츠서울에 나오는 땅표(지금의 기록지)를 보면서 스케치북에 붙이는 것이었다. 여백에는 선수단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빽빽하게 적었다. 그때의 아날로그적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변에서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지만 그는 ‘임용수화’로 만들기 위해 직접 펜으로 적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색깔이 생겼다. 임용수 캐스터는 “후배들이 어떻게 만들었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난 의도적으로 만든 적이 없다. 하다 보니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어떻게 해야 만들어지는지 모르겠지만”이라며 “내 몸에 파랑색을 칠해야지라고 생각한 적 없다. 내 스타일대로 한 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색깔을 칠해준 것이다”고 대답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임용수 캐스터인지 알 정도다. 이에 대해 “야구도 엔터테인먼트다. 즐겁자고 보는 것이기에 재밌게 해주면 된다. 집에서 TV로 보지만 야구장에 가있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혹시 저 캐스터가 나랑 같은 팀을 응원하나? 아닌데, 상대팀을 좋아하나 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의 느낌말이다. 누구를 더 좋아하는 것 같지라고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당신과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진행 덕분에 재미난 일도 있었다. 2006년 WBC가 열렸을 때 한국방송광고공사를 방문했던 원음방송의 사장이 TV 중계 대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 직원들을 발견했다. 누구의 목소리인가 했더니 원음방송에서 라디오를 통해 경기를 중계하던 임용수 캐스터였다. 그날 이후 임용수 캐스터는 무한신뢰를 받으며 프로야구 중계를 이어갔다.


김진욱 감독은 임용수 캐스터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봐온 사람들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고 높이 치켜세웠다. 이 말에 “아주 좋은 립 서비스”라고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그만큼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야구한 적이 없지만 야구인들이 보는 세계가 알고 싶어 매일 그들과의 만남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소 보수적이었던 김광철 위원이 문을 열어줬다는 것에서 이미 게임오버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야구인’이라는 말을 당당하게 들었다.


한때 음악인이었던 이의 도전은 대성공이었다. 그런 그가 음악과 야구의 공통점을 논했다. 생각보다 비슷한 점이 많았다는 것에 놀랐다.


“지금 다른 형태의 음악을 한다고 생각한다. 표현방식만 다를 뿐이다. 음악에 크레셴도, 디미누엔도 피아노-피아니시모, 포르테-포르티시모가 있는데 야구도 똑같다. 몰아칠 땐 거침없이 몰아치다가 조용할 땐 조용하다. 음악은 리듬과 선율로 표현한다면 야구는 리듬에 선율만 빠진 다른 표현방식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임용수 캐스터의 왼쪽 팔에는 ‘Largo & Presto(아주 느리고 매우 빠르게)’라고 적힌 타투가 있다. 몇 년 간 고민한 끝에 그의 인생모토라고 생각하는 문구를 생각해낸 것이다. 팔을 어루만지며 “때론 천천히 해야 할 때 서둘렀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빨리 움직였어야 했는데 게으름으로 그르치기도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Largo’다. 맘 같아서는 당장 야구장으로 가고 싶지만 자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생도 자처한 성실맨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임용수 캐스터가 중계하면 연장전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실제로 연장으로 넘어간 경기가 꽤 있었다. 그가 중계했던 메이저리그 경기도 18회까지 간 적이 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임연장’이다.


임용수 캐스터는 연장전을 즐겼다. 치고받고 싸웠으면 승부를 내라는 것이다. 12회 무승부 경기는 비추라고 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원했다. 모두가 지치고 힘들지만 흔하지 않은 경기이기에 끝장승부를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긴장과 짜릿함이 공존하는 가운데 즐거움을 줄 수만 있다면 피곤하지 않다고 했다.


또 하나의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었다. ‘혹사의 아이콘’. 2016년 5월 22일 전까지 전 경기에 출장했다. 다른 이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정작 본인은 즐거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양준혁, 이숭용, 구대성, 김재현, 이종범 등의 은퇴식을 중계했다며 스스로 은퇴 전문 캐스터라고 밝혔다.


“나도 지칠 때가 있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야구다. 재밌잖아! 경기가 시작되면 뭐에 미쳐서 그러는지 조금만 말해야지 하면서도 방언 터진 것처럼 말을 잇는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 같을 때가 있다. 사람들이 재밌어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난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니까.”


일본 진출 전 아시아홈런 신기록을 쓴 이승엽의 56호 홈런이 터진 날, 이대호의 9경기 연속 홈런, 박용택의 2000안타, 조금 멀리 가면 한용덕 감독이 현역시절 삼성전에서 4타자 연속 홈런을 허용했던 날 등 역사적인 순간 현장에 있었다. 야구 캐스터하길 잘 했다는 임용수 캐스터는 “만약 이 일을 안 했다면 이런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었을까. 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감탄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뭐가 그렇게 야구가 재밌느냐고 묻는다. 매일 보는 안타, 홈런인데 말이다. 사람들은 그걸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고 TV로 중계를 본다. 무덤덤하냐고? 아니다. 마치 오늘 처음 본 것처럼 야구를 본다. 내 중계를 듣는 사람들이 저런 장면을 처음 봤나? 되게 좋아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들과 함께 호흡하려고 한다.”


임용수 캐스터는 팬들과 소통하는 것 외에 선수들과 자주 대화를 나눈다. 경기 전 선수단 정보를 위한 목적이 아니다. 그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동업자 정신으로 다가간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이에 상관없이 존경심을 느꼈다. 그는 “22살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난 철딱서니였는데”라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그러면서도 선수들의 심리상태를 걱정하기도 했다. 야구를 인간적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용수 캐스터는 “가끔 비난을 이겨내기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그냥 한마디 해준다. 팔의 각도가 좋더라는 건 내가 할 얘기가 아니다. 너 진짜 멋있다! 앞으로 10게임만 더 하자! 라고 말한다. 그러면 선수들이 피식 웃는다. 그렇게 웃고 기분 좋아지면 되지 않는가”라고 전했다.


평소 임용수 캐스터가 사전 인터뷰를 위해 더그아웃을 방문하면 그의 주위로 선수들이 모인다. 야구 외적인 인생 상담도 해주고 있기 때문에 몇몇 선수들이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서 눈길이 더 간다는 임용수 캐스터는 아쉬운 선수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과의 대화를 기억한 임용수 캐스터는 “황목치승이 조금만 더 잘했었으면… (김)재호가 손시헌에게 눌려서 못 나올 때 조금만 참으라고 말했었다. (오)지환이와 (유)희관이도 잘 됐음 좋겠다. 특히 희관이 같은 스타일이 잘 돼야 한다. 똑같은 스타일만 하면 재미없잖아”하면서 “다른 형태의 유형도 있는데 틀에서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 같다. 홈런을 치는 이승엽이 있고, 유재신처럼 대주자 전문인 선수도 있다. 스타들이 잘 되는 것도 좋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잘 되는 선수들을 보면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리빌딩에 대해 열을 올려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임용수 캐스터는 “물을 버려서 새 물을 붓는 것이 아니다. 계속 물을 부어 넘쳐나게 만드는 것이다. 판을 다 버리는 건 과거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팬들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 우리만의 문화가 없는 것에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다. 영혼 없이 숫자놀음밖에 보여줄게 없지 않는가”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 했다.


이어 “스포츠를 통해 감동, 휴머니즘을 느낀다. 인공지능이 못 해내는 것을 스포츠가 보여줘야 한다.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야구선수들도 개똥철학이라도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왜’에 대한 고민 없이 ‘많이 찾아와주고 박수쳐주세요’라고 말하면 안 된다. 사인도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해줘야 하는 것이다”


함께 걸어가는 인생선배

비시즌이 되면 대학과 기업 등으로 특강을 나간다. 주제는 ‘야구를 통해 바라본 성공과 실패’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야구가 왜 인생과 닮았는지에 대해 답을 찾으려고 고민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 둘 관계에서 공통점을 찾았다. 특별한 것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도 알고 있지만 살면서 잊고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야구와 똑같기에 재미있는 것이라고 말한 임용수 캐스터는 투수와 타자의 상관관계를 예로 들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공존관계로 절대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살 수 없다는 해답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배려 #존중 #감사를 강조했다.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가 못 해주면 이길 수 없다. 반대로 투수가 10점을 줘도 타자가 11점을 쳐주면 이기는 것이다.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124승을 이룬 박찬호도 타자와 야수가 안 도와줬다면 가능했을까? 불가능하다. 혼자는 안 된다는 것이 야구다.”


야구는 타 종목과 다른 스포츠라고 덧붙였다. 야구에는 인생철학이 담겨있다며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했다. “내가 잘 나서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산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단 0.000001%도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방을 먼저 존중하고 배려하라는 것. 바라기만 하면 소통이 단절된다고 했다. 이어 “야구하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라. 야구란, 단순히 생계의 수단이 아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가르쳐주고 인생의 지침을 알려주는 성경과 같다”며 “예를 들어, 10-0으로 이기고 있는데 홈런 쳤다고 세리모니를 한다? 우리팀 4번 타자가 빈볼을 맞았다. 상대팀 4번 타자도 다음 타석은 맞을 각오를 하고 나간다. 야구처럼 살면 각박할 이유가 없다”며 국회의원들도 야구를 해봐야 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우리 인생을 그릇에 비유했다. 중요한 건 그릇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을 채울 내용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무엇이 되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무엇만 되면 다 이룬 줄 아는데 착각이다. 무엇이 됐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정식을 먹으러 가면 각기 다른 그릇에 음식이 예쁘게 담겨있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 그런데 간장 종지에 간장이 없고 냉면이 있다면 불행한 것이다. 반대로 냉면 그릇에 간장만 있다면? 그릇에 어울리는 내용물을 담아야 한다. 다들 큰 그릇만 되고 싶어 하는데 깜냥이 안 된다면 건방진 것이다.”


임용수 캐스터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중심을 풀었다. 캐스터와 해설위원과의 관계를 얘기했다. 그는 “캐스터는 진행자이고 해설위원은 게스트다. 캐스터는 해설위원이 잘 하도록 맞춰주는 역할자다. 해설위원이 잘 못하는 건 전적으로 캐스터의 잘못이다. 그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우리도 선수를 평가하지만 해설위원도 캐스터를 평가한다. 방송사는 다르지만 ‘저 캐스터랑 하면 잘될 것 같다’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포츠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잊지 않았다. 첫 마디는 “환상들을 버려라”였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 강조한 임용수 캐스터는 “세상에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영역은 없다. 방송의 안에 하나의 섹션이다. 스포츠 아나운서가 갖춰야할 것은 없다. 방송인으로서 갖춰야하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얼굴이 예뻐야 한다? 스포츠 아나운서만 예쁜가? 헛바람을 빼고 방송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여신은 무슨! 그렇게 표현하는 건 절대 반대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앞으로 임용수 캐스터는 ‘야구 전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캐스터 이전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후배들에게 인생의 가이드 역할을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이 실수하되 시행착오를 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동시에 아마추어 선수들의 부모 교육에도 힘쓸 것을 다짐했다. 남은 인생 동안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가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최근 너무나 많은 데이터가 나온다. 그렇다보니 선수들을 사이버 세상의 오락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컨트롤해서 조종하는 기계처럼… 야구선수라는 특정인으로 보기 전에 사람으로 봐주자. 이들도 이 세상에서 당신들과 같이 호흡하고 사는 사회의 동료로, 사람으로 봐줬으면 한다. -임용수 캐스터


                                                   더그아웃 매거진 86호(6월호) 표지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6월호(86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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