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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Report] 경남고등학교 서준원

조회수 2018. 6. 2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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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로 향하는 '괴물투수'

2019시즌 프로 무대에서 맹활약할 유망주로 꼽혔던 그가 롯데 자이언츠의 부름을 받았다. 사이드암이라는 희소성으로 가치를 높인 것은 물론, 최고구속이 152km/h라고 하니 기대가 더해진다. 여기에 승부욕과 자신감이 첨가됐다면 게임 끝 아닌가. 고교리그 전국 랭킹 1위로 마운드 위에서는 무시무시하지만 유니폼을 벗으면 영락없이 수줍음 많은 10대다. 삶 자체가 야구로 다져진 경남고등학교 서준원의 반전 매력에 빠져보자.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Kwonhyang Pyo   Location HOTEL BERNOUI


#탈고교급 괴물투수의 등장

서준원은 아직 앳된 외모와 달리 이미 프로선수의 자태를 갖췄다. 신장이 187cm인 그의 몸무게는 90kg. 떡 벌어진 어깨는 여성의 평균 허리둘레만 한 허벅지를 거들 뿐이었다. 야구선수로서, 특히 투수로서 축복받은 체격은 그의 장점을 돋보이게 했다. 만 18세에 철저한 자기관리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경남고의 괴물투수를 만나서 반갑다. 친구들은 뭐라고 부르는가.

그때그때 다르다. 완전하게 정해진 별명은 없다. 그냥 ‘서사모’라고 말한다, 서준원을 사랑하는 모임! (웃음) 작년부터 밖에서 장난으로 불러주고 있는 별명이다.


피지컬이 굉장하다. 평소 어떻게 관리하는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땐 재활 후였기에 몸무게가 110kg 정도로 많이 나갔었다. 학교에서 제대로 운동하기 시작했고 그때 많이 빠지면서 키도 더 컸다. 90~91kg이 되니 적당한 것 같아서 유지하고 있다. 평소에는 적당히 움직이면서 컨디션 조절을 한다. 많이 먹으면 그만큼 더 뛴다. 식단조절이나 웨이트 트레이닝보다 평상시 훈련강도를 조절하는 편이다.


직구 최고구속이 153km/h라던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가.

지난 황금사자기 야탑고와의 경기에서 152km/h까지 나왔다. 153km/h라는 말도 있는데 사실상 최고구속은 152km/h가 맞다. 처음에는 나도 스피드를 보고 놀랐고 신기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오른팔의 유연성이 좋아져서 몸이 잘 따라주면서 스피드가 잘 나오는 것 같다.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한다. 그중 가장 자신 있는 구종은 무엇인가.

변화구로 자신 있다고 하면 슬라이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장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건 빠른 직구가 맞다.


체인지업이 잘 안 먹히면 포크볼을 던진다던데. 어떻게 포크볼을 구사하게 됐는가.

체인지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투수 코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지금은 잘 통하는데, 안 통하는 날이 있으면 휘는 변화구도 있지만 떨어지는 변화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가락 감각으로 던질 수 있는 것이 그나마 포크볼이라 던지게 됐다. 계속 연습 중인데 아직 완벽하게 던지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판단해서 더 연마한 뒤 시즌 중반이나 후반기에 활용할 계획이다.


프로에서도 포크볼을 구사하는 투수가 흔하지 않다. 나만의 무기를 장착한 것이다.

직구에 강점이 있다 보니 상대 타자들이 내가 빠른 직구를 더 많이 던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슬라이더 하나만 있으면 공략당하기 쉬워 체인지업도 있어야 했다. 안 되면 포크볼을 던져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이다. 직구처럼 오다가 직각으로 떨어지니까 그나마 많은 타자를 속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점은 사이드암 투수가 된 계기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정식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부산 북구리틀야구 시절 초반에는 오버스로 투수로 시작했다. 그런데 공이 너무 가운데로 들어가서 잘 맞았다. 당시 진병국 감독님과 많이 의논해서 사이드암으로 바꿔서 가운데로 던졌는데 여기까지 왔다.


사이드암 투수가 된 후로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다.

맞다. 야구하는 투수 중 오버스로 투수가 제일 많은 반면 사이드암은 그나마 적은 편이다. 남들과 다른 스타일의 야구를 함으로써 내 인생도 조금 밝게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이드암 투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께 감사하다.


그 가운데 누가 가장 생각나는가.

첫 번째는 어떻게든 야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께 제일 감사하다. 그리고 처음 길을 걷게 해준 북구리틀 진병국 감독님이다. 가장 많이 도와주셨고 내 야구인생에서 처음 스승님이시라는 것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가끔 정통으로도 던지던데. 어느 폼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두 가지의 폼을 골고루 사용할 것인가.

이미 작년에 팔을 밑으로 내렸다가 올렸는데 올해부터는 하나만 하자고 다짐했다. 사이드암에서 조금 더 높게 올려 스리쿼터 형식으로 장착시켰다. 완전히 그 투구폼으로 하나를 완성시켰다.


#소신 있었던 아들의 자신감

어린이 서준원은 또래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그저 눈에 띄었던 건 그때나 지금이나 꾸준히 큰 키였다. 또 하나는 놀이가 스포츠였다. 특히 구기 종목에 소질을 보였다. 그중 야구의 매력에 빠진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확실히 야구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서준원은 야구를 통해 영원할 동료를 만나 ‘함께 사는 사회를 알았고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배웠다.


많고 많은 스포츠 가운데 왜 야구를 선택했는가.

아버지와 자주 야구와 축구를 했다. 농구도 해보고 탁구, 테니스 등 거의 공으로 하는 운동을 해왔다. 그런데 축구는 힘들었고, 농구는 너무 높았고, 탁구는 공이 너무 작아서 재미없었다. (웃음) 반면 야구는 경기 시간도 길고 공도 적당한 크기에 글러브도 있다. 구기 종목인 데다 도구도 많으니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그 당시 프로야구 선수들이 입고 있던 유니폼이 예쁘고 단정해 보였다. 그래서 제일 끌렸던 스포츠가 야구였다.


보통 자식이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하면 부모님의 걱정이 크다.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했는가.

처음에는 반대하셨다. 야구했을 때 지금의 선수만큼 성공할 수 있을까란 걱정 때문에 고민하셨다. 그러나 야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 계속 매달렸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공부할 땐 학업에 열중하고, 야구할 땐 운동에만 집중해서 성적은 떨어뜨리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야구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도 그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가?

공부는 부모님도 포기하셨다. (웃음) 야구 하나만 미친 듯이 해보기로 했다.


보통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포지션을 결정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부터 투수로만 집중했다.

어렸을 땐 돌아가면서 수비 위치를 변경했었다. 그러다 중학생 때 각 수비 위치에서 더 잘하는 애들이 있었다. 그때 투수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마운드 위에 올라가서 공을 던졌는데, 삼진을 잡고 아웃을 잡았을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이야기지만, ‘투수는 야구에서 귀족’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투수를 해야 돈을 많이 번다고 했다. 재미있는데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투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미래를 투자할 만큼 투수의 매력은 무엇인가.

투수는 우뚝 솟아있는 제일 높은 위치에 혼자 서있다. 마운드 위에서 있으면 돋보이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 상대 선수들이 아무리 던지고 치더라도 날 믿어주는 동료, 수비들이 있으니까 체감할 수 있는 든든함이 두 배다. 동시에 책임감도 느끼기에 제일 재미있다. 투수가 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감도 넘친다.

정수찬 투수코치님께서 마운드 위에서만큼은 뻔뻔하게 ‘내가 최고다’라는 생각을 많이 심어주셨다. 덕분에 분위기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황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재활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팔꿈치 수술 후 복귀해서 정상적으로 야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재활하기 싫어졌었다. 야구를 그만해야 하나란 생각에 힘들었다.


보통 한 번씩 일탈을 시도한다. 과감하게 숙소 탈출을 실행에 옮기던데.

우리 학교 야구부에서 도망친 선수는 단 한 번도 없다. 다들 재미있게 야구하고 있다. 특히 단합이 잘 된다. 다 같이 놀고, 밥 먹고, 대화한다. 거의 선후배 없이 친구처럼 지낸다. 방도 섞어서 쓴다. 학교 숙소나 원정경기 숙소에서도 1, 2, 3학년이 섞여 3인실에서 지내고 있다.


스포츠 중에서 특히 야구는 단체 스포츠다. 야구를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리더십과 단결력을 제일 먼저 배웠다. 야구는 팀워크 운동이다. 나 하나만 생각하지 않고 나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하며 때론 동료들을 끌어줘야 한다.


지난해 대표팀 기록과 합치면 거의 199이닝을 던졌다. 몸이 성치 않았을 텐데 어떻게 관리했는가.

막상 마운드 위에서 던질 땐 힘든지 모른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시합이고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한다. 이닝을 마치고 내려올 때에야 힘들었다는 느낌을 살짝 받지만, 그보다 못 던진 날에는 다른 투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지난 황금사자기에서 5이닝 1실점 후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야탑고와 우천으로 서스펜디드게임에 들어간 날이다. 투구 수 제한이 바뀌면서 최대 공 개수가 105개다. 76개부터 4일 휴식인데 딱 76개를 던지고 내려왔다. 4일 휴식할 것이면 더 던졌어야 했는데 5이닝 후 갑자기 힘이 빠졌다. 비가 조금 많이 내렸고 날씨가 안 좋아서였는지 밸런스가 무너졌다. 나 때문에 등판 예정에 없던 투수 2~3명이 급하게 준비해서 미안했다.


투수는 몇 이닝을 소화하고 몇 개의 공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공 개수도 중요하지만, 팀이 지고 있거나 비기고 있을 땐 끝까지 책임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기고 있다면 승리투수 요건인 5이닝까지는 무조건 채우고 다른 투수들이 편하게 던질 수 있도록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내려오는 것이 맞다.


그러다가 어깨에 탈이 날 수도 있다. 부상의 위험도 감수하겠다는 것인가.

그래도 마운드 위에서 다 던지고 내려왔을 때 후회가 없어야 한다. 만약 다치게 되면 재활하면 된다. (웃음) 물론 재활로 인해 다음 등판까지 준비 기간이 길어지겠지만 그날 경기에서 후회 없이 던졌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무쇠로 만들어버린 체력

재활에만 몰두했던 2015년과 2016년은 지옥과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약해지는 정신력이 서준원을 나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장애물보다 그를 응원하는 지원군이 더 많았다. 마침내 2년의 긴 터널을 뚫고 나왔고,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다. 150km/h대 강속구처럼 나아가는 그의 행진은 쭉 이어졌고, 현재 고교리그를 압도하는 괴물투수로 성장했다. 꿈의 무대인 프로의 장도 그에게는 무난히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팬층이 전국구로 두터워졌다. 아마 지난해 청소년야구대표팀에서의 활약 때문인 것 같다.

경기 시작 전 아버지가 챙겨주신 청심환을 챙겨 먹었다. 호주와의 개막전에서는 청심환을 두 개 먹었다. 긴장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거실에 TV가 있는데 어머니는 부엌에 혼자 앉아서 소리만 들으셨다고 한다. 첫 승부였기에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대한민국 고교야구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형들을 등지고 서 있다는 것에 든든하고 편안했다. 내가 안타를 맞아도 형들이 수비와 타격으로 도와줬다. 점점 잘 풀리면서 삼진을 잡았다. 타격과 수비가 완벽했기에 잘 던질 수 있었다.


빠른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에 제구력이 탁월하다. 어떤 이들은 이를 보고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말했다.

처음 들어봤다! (웃음) 남들과는 다르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밖에서 야구를 잘한다고 떠벌리고 다니거나 들쑤시고 다닌 적은 없다.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하면 진짜 잘하는 것이지만 학교 안에서 잘한다고 해서 나 혼자 빛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구보다 이것만큼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가.

멘탈이다. 마운드 위에 서면 아무 생각이 없다. 안타나 홈런을 맞아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년 황금사자기 용마고와의 4강전에서 홈런을 맞았을 땐 흔들렸다. 0-0에서 2-0이 됐고 결국 2-1로 졌다. 우리 학교에서는 최민준 형과 내가 4경기 무실점하고 있었는데 내가 2점을 내줬다. 결승에 갔더라면 우승도 노릴 수 있었는데… 형들에게 죄송했다.


현재 광주동성고의 김기훈과 고교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고 있다.

(김)기훈이와는 같은 2학년으로 대표팀에 다녀왔다. 당시 2학년은 우리 두 명밖에 없었기에 잘 붙어 다녔다. 제일 좋은 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다. 하지만 야구할 땐 지고 싶지 않아서 라이벌 의식을 조금 느끼는 것 같다.


조심스러운 질문인데, 부산과 광주가 만났다. 예전 故 최동원 감독과 선동열 감독을 연상케 한다.

얘들하고 장난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결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새 그런 건 없어져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없었던 시절이었고,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웃음) 야구할 땐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언젠가 한 번 만날 것 같고 그때 좋은 승부를 하면 된다. 라이벌 의식은 있지만 죽자고 붙는 건 아니다.


지난 2019년 신인 1차 지명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선택을 받았다.

롯데에 입단하게 돼 정말 감사하다. 연고지가 부산이고, 멀리 안 가도 되니까. (웃음) 1차 지명의 큰 영예을 얻어 기쁘다. 기대도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라고 하는데, 실망을 시켜드릴 수도 있지만 큰 실망은 안 시켜드리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프로에 입단한 뒤의 목표는 무엇인가.

1군에 등록되는 것이다. 작년 롯데 1차로 지명받았던 한동희 선배가 프로에 가자마자 잘 적응해서 1군 경기를 뛰고 있다. 나도 그렇게 먼저 올라가는 것이 목표다.


2년 선배인 윤성빈의 경우 큰 주목을 받았지만, 2군에서 시작했다.

급하게 마음먹지 않고 구단의 지시에 따르겠다. 구단 역시 나중을 생각해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2군도 프로선수다. 단지 사람들의 관심이 적을 뿐이다. 1군도 2군도 같은 프로선수이니 어디에 있든 열심히 할 것이다.


지난 시즌 신인이었던 곽빈과 강백호는 꾸준히 1군을 지키고 있다.

몸 상태를 최고로 만들었기에 아픈 데가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입단 후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려 보여줄 수 있는 날에 지금까지 배운 것을 후회 없이 보여주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 같다.


#프로로 가는 길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 호주와의 개막전 선발 마운드에 올랐던 날을 잊지 못했다. 이날 경기에서 7이닝 동안 무려 8개 삼진을 잡으며 무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됐다. 경기 후 잠들기 직전까지 설렜던 하루를 보냈다는 서준원은 덩치만 컸지 남들과 다를 것 없는 10대였다. 수줍어하다가도 야구 이야기를 하면 눈에서 불꽃을 터뜨렸다. 프로에 대한 환상보다 기대와 목표가 컸다.


중학교 3학년 때 토미 존 수술을 했다. 그런데 경남고가 포기하지 않고 입학을 허가했다.

처음에는 부산고에 갈 수도 있었다. 개성중학교 한진수 감독님과 부산고 박유모 감독님께서 많이 힘써주셨다. 부산고는 3년 장학금과 함께 일 년 야구부 회비를 면제해주고 장비 스폰서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한 방향이었기에 좋은 조건을 포기하고 경남고로 왔다.


고교선수에게 주는 최고의 대우였는데?

롤모델인 한현희 선배가 야구했던 곳이 경남고다. 이 때문에 다른 생각 없이 거기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 년의 재활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남게 해준 전광열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경남고에 있으면서 (3년) 장학금을 받은 만큼 야구로 보답하겠다.


왜 한현희가 좋은가.

가끔 많은 실점할 때도 있지만, 잘 던지든 못 던지든 마운드 위에서는 자신감이 넘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라는 것에 제일 큰 인상을 받았다. 나도 저 선수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던져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프로에 경남고 출신 선배들이 많다. 매년 겨울 동문회를 하는데 만난 적이 있는가.

후배니까 당연히 내가 먼저 가서 인사했다. 한현희 선배가 “이름이 뭐냐”고 물었고 “(사투리 버전) 아, 니가 준원이냐? 니는 왜 나를 좋아하는데?”라고 물었다. 항상 선배가 내 롤모델이라고 말해서인지 날 알고 있었다.


경남고 선배이면서도 비슷한 유형인 심창민과 한현희가 있다.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

두 선배가 비슷한 이야기를 해줬다. 마운드 위에서는 항상 자신감이라고! “뒤에는 든든한 수비수들이 있으니 너는 너의 공을 던져라”고 말했다. 자신감을 강조했다.


프로에서 상대해보고 싶은 선수는 누구인가.

신인이기에 어느 타자든 좋을 것 같다. 같은 팀끼리의 대결이라면 이대호 선배님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친다는 타자다. 남다른 테크닉이 있을 것이다. (경남고 선배인데 만난 적은 없는가?) 학교에 있으면 선배님들이 자주 찾아오셔서 다 만나봤다. 그런데 포스에 눌려 무서워서 말을 못 했다.


예전에 서울고 강백호에게 홈런을 맞았는데, 데뷔 첫해부터 1군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

(강)백호 형과 대표팀에서 같이 생활했었고 형네 집에서도 놀아봤고 아버님도 뵀다. 백호 형은 자기만의 타격폼이 있어서 어딜 가나 야구를 잘할 것 같은 스타일이다. 생각이 많아서 누가 뭐라 해도 크게 흔들리는 것 같다.


강백호와의 첫 맞대결에서 초구는 무슨 구종을 던질 것인가.

초구라면 직구를 던지는 것이… (웃음) 형에게 홈런을 맞기 전날 전화통화를 했었다. 백호 형이 “우리는 그냥 남자답게 승부하자”라고 말했고 나는 “직구 3개면 됩니까?”라고 대답했다. 진짜 그렇게 던졌다가 맞았다. 초구와 두 번째 공까지는 바깥쪽으로 잘 들어갔는데 마지막 공이 실투였다. 그 공을 형이 안 놓친 것 같다. 얼마 전에 양현종 선배도 두 타석 모두 직구만 던져서 잡아내는 것을 봤다. 감탄했고 나도 집중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준원 선수의 합류로 롯데가 윤성빈, 이승헌에 이어 최근 3년간 경남권 우완 빅3를 모두 얻게 됐다.

어딜 가든지 항상 자신 있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안 되니까 맡겨진 범위에서 책임을 다하겠다. 마운드에 설 기회를 준다면 야구로써 보답하겠다.


요즘 신인선수의 계약금액이 꽤 높다. 계약금을 받으면 제일 먼저 뭐 하고 싶은가.

남들과 똑같이 부모님께 다 드리고 가족여행을 갈 것이다. 설 연휴에 친적집에 간 것이 다다. 가족여행은 살면서 딱 한 번 다녀왔다. 야구한다고 바빠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필리핀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국내든 해외든 제일 좋은 호텔을 예약하고 최고 맛있는 음식을 주문해서 효도관광을 시켜드리고 싶다. 가족여행도 가고, 두 분 만의 시간을 위해 자리도 마련하고 싶다. 또 운전면허를 따서 나는 아빠 차(산*페)를 물려받고, 아빠께는 새 차로 바꿔드리고 싶다.


효자다!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예쁘다.

재활할 당시 마음이 안 맞아서 자주 다퉜다. 지금 돌아보면 제일 감사하고 죄송하다. 가장 힘들었을 때 제일 응원해준 분이 부모님이다. 그때 ‘야구는 네가 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 끝까지 가야 잘할 수 있다. 부모는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네가 밀려 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다. 꼭 성공해서 많은 효도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크다.


야구선수 서준원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잠깐 반짝하는 선수가 아닌 1군에서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선수! 기록에 대한 목표도 있지만 어느 보직이든 1군에서 꾸준하게 머물러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응원하는 팬들에게 인사 부탁한다.

다시 한번 1차 지명으로 롯데에 합류하게 돼 정말 기쁘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계신 팬들과 구단 관계자분들께 실망 안 시켜드리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신인답게 항상 성장하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서준원은 예상대로 롯데에 1차 지명됐다. 서준원은 “연고지 팀인 롯데에서 정말 뛰고 싶었다. 야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꿈꿔온 일이 드디어 이뤄졌다”며 기뻐했다. 그는 “남은 시즌 동안 부상 없이 잘 마무리 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서준원에게 경사가 겹쳤다. 그는 9월 미야자키에서 열릴 제 12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선수로 뽑혔다. 고교 야구의 마지막 장식을 완벽하게 마치하길 기대하며 앞으로 꽃길만을 걷길 응원한다.


            더그아웃 매거진 87호(7월호) 표지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7월호(87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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