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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륭의 원사이드컷] 네! 이게 한국 축구의 '스타일'입니다!

김태륭 입력 2018.06.28. 12:16 수정 2018.06.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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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F조 3차전
한국 v 독일 매치 리뷰


슛을 내주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상대가 먼저 돌파하면 뒤늦게라도 어깨는 물론, 얼굴까지 내밀었다. 마음속 두려움에서 비롯된 '한 번에 먹는' 태클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침착했고 부지런했으며 마지막까지 집중했다. 모든 상황에서 평소보다 한발 더 뛰었다. 그렇게 이어진 '한발'이 117km가 되어 기적의 원동력이 되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피파랭킹 1위 독일을 꺾었다. 그것도 월드컵 무대에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한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16강에 진출하여 특별한 기억없이 사라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업적을 이뤘다. 이 승리는 세계 축구계에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며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스타일

한국 축구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꽤 오랫동안 우리 스스로 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그동안 남들의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네덜란드식 축구? 스페인식 축구? 지난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는 계속해서 새로운롤모델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오히려 정체성을 잃고 길을 헤맸다. 피지컬, 조직, 기술 등 팀의 스타일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들의 수준이 나쁘진 않았으나 결코 우수하지도 않았다. 최근 몇 년간 아시아 무대에서도 상대를 압도하지 못한 이유이다. 꽤 오랫동안 한국 축구는 매우 어정쩡했다.

그런데 지난 밤 가슴이 뛰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그 누구도 정의하지 않았지만 속도, 협력, 희생이 느껴지는 '우리'의 축구였다. 독일 전은 한국이 2010년 이후 세계 수준의 팀들을 상대로 치른 경기들과는 접근법 자체가 달랐다. 상대가 잘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늪축구'가 아닌, 우리가 잘하는 것을 극대화하여 30% 의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경기내내 영향력을 행사했다. '상대'보다 '우리'에 집중했다.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된 결과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분명 더 높게 평가 받을 것이다.

케이로스 체재에서 확실한 스타일을 만든 이란이나 수년간 자신들의 축구를 만들어온 일본과 달리 한국은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철학이 없었다. 이란은 4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세계의 강호들을 괴롭혔고, 개막 직전 감독을 바꾼 일본은 원래 자신들이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16강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한국은 02' 월드컵 이후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 축구의 중심에 있는 국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A대표팀은 물론 연령별 대표팀에도 외국인 코칭스텝을 선임했고, 각종 지도자 강사 및 유청소년 육성 단계에서 그들의 인적 자원과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국의 것'에 '네덜란드의 것' 혹은 '스페인의 것'을 추가하여 한국축구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의 것'이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것이 추가되다보니 오히려 혼란이 왔다. 한국 선수가 스페인에서 스페인 지도자에게 지도를 받는다해서 스페인 선수처럼 축구를 할수는 없다. 이승우, 백승호, 이강인은 스페인에서 성장하여 발전했지만 그들은 스페인이 아닌 한국의 선수들이다. 교육법과 환경이 다르기에 한국에서 육성된 선수들과 몇 가지 다른 특징을 갖고 있지만 그들 역시 한국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장단점을 갖고 있다. 

치밀한 독일, 세밀한 일본, 자유로운 프랑스처럼 축구는 민족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실제로 독일 대표팀의 전력분석관들은 상대를 분석할 때 그 나라의 역사와 인문학을 우선적으로 검토한다고 한다. 민족적 기질이 플레이 스타일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성공사례가 한국에도 반드시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 우선이다.

점유율 낮아도 된다. 축구 예쁘게 안해도 된다. 이번 월드컵에서 반칙 수가 많았다는 비판도 있는데 더 많이 해도 된다. 퇴장도 없었고 상대를 해하는 비신사적인 반칙도 없었다. 과한 반칙은 룰에 근거하여 경고를 받았다. 모든 의견을 존중하지만 "한국이 반칙이 많아 경기도 지고 매너도 졌다."같은 의견은 이해할 수 없다. 축구를 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독일 전 한 경기 승리가 하루 사이에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인식을 변화시켰는가! 세계 무대에서 한국 축구가 나아갈 길? 어제 경기가 정답이다.

독일 전에서 발휘된 속도, 협력, 희생을 축구 관점으로 정의하여 정리해야 한다. 4-4-1-1 과 5-4-1 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혼용해야 하는지, 상대가 밀집된 우리의 수비를 측면부터 공략할 때 풀백과 측면 미드필더가 어떻게 위치해야 하는지, 공격으로 빠르게 전환할 때 공격수는 어느 쪽으로 빠지고 후방에서는 어떤 질의 킥을 시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물론 속도,협력,희생은 기본이다. 이게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스타일'에 대한 정의가 될 수 있다.


한국의 패스맵 - 홍철은 킴미히를 막아냈고 이용은 전진했다. 이재성은 한국의 산소탱크 역할을 해냈다.

# 117km의 활동량 그리고 기본에 충실한 전략

대표팀 선수들의 투혼이 경기의 전술 및 전략 요소를 가려버렸다. 전체 활동량이 반드시 좋은 경기내용과 결과로 이어지진 않지만 선수들이 117km 를 뛴다면 어떤 감독도 특별한 전략적 묘수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뢰브 감독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말한것처럼 한국은 전술적으로 완벽했다. 앞선 두 경기에서 나타난 독일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 철저히 기본에 충실한 것이 주효했다.

① 공을 뺏긴 기점에서 수비 시작점(높낮이)을 11명 전체가 잘 설정했고,

② 구자철, 장현수 같이 전술적으로 한 명 이상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선수들이 잘 버텨냈으며,

③ 수비 시, 무리한 도전보다 철저한 지연을 통해 협력 수비로 독일의 볼 길을 차단했고,

④ 공을 뺏은 후 마구잡이 걷어내기가 아닌 목적을 둔 패스를 시도했으며,

⑤ 평소보다 모든 포지션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졌다.

볼 점유율 차이가 컸기에 어느 지점부터 수비 시작점을 설정할 것인지 여부가 중요했다. 투톱을 기용했지만 손흥민과 달리 구자철은 사실상 수비형 스트라이커 역할을 수행했다. 구자철은 전반에만 6km 를 뛰며 독일의 기초 빌드업 속도를 제어했다. 미드필더로 출전한 장현수 역시 훌륭했다. 한국이 수세에 몰릴때는 윤영선과 김영권 사이로 내려와 수비에 힘을 보탰다. 독일은 오른쪽 측면 공격에 집중했는데 전반전에는 홍철과 문선민의 간격이 멀어져 몇 차례 위험한 장면이 있었다. 문선민은 공격수의 특성상 내려선 상황에서 팀으로 함께 하는 수비에 약점을 드러냈다. 누구보다 활발했지만 수비 상황에서 타이밍을 잡을 때 어색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신태용호 출범 후 어느 경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졌다. 경기 중 선수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말이 중요하지만 사전에 약속된 손짓이나 제스쳐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적극적인 의사소통은 자신감과 동료간의 신뢰로 이어진다. 조현우, 김영권, 정우영 등 코어라인에 위치한 선수들이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팀의 산소탱크 이재성은 55회의 볼 터치와 33번의 패스를 기록하며 한국이 공을 갖고 있을 때 가장 중요한 유닛이 되었다. 나열하기 힘들만큼 모든 선수가 훌륭했다. 조현우, 김영권, 손흥민에 대한 언급은 따로 필요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 클리어링에 목적이 있었다. 물론 상황이 긴박하여 공을 걷어낸 장면도 많았지만 공을 빼앗은 후 한두번의 짧은 패스 과정을 거쳐 전방을 향한 긴 거리의 전진 패스가 시도됐다. 이는 선수들이 경기 내내 전략의 목표를 잊지 않고 상황인식을 하여 침착함을 유지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결코 수비만한게 아니다.

# 축구선수, 인간, 아들, 남편, 그리고 아버지

이번 대표팀만큼 국민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지 못한 팀은 없었을 것이다. 아시아 예선부터 고비가 많았고 개막을 앞두고는 중요한 선수들을 연이어 부상으로 잃었다. 평가전 내용도 좋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본선 1,2차전에서도 패했다. 어제 경기 직전까지 대표팀에 대한 비판과 비난 그리고 조롱은 이어졌다.

"축구가 아닌 선수들의 인격을 왜 짓밟고 희롱합니까?"

이런 현상에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전 감독이 일침을 가했다. 23인의 태극전사들은 어제 경기를 마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월드컵은 모든 축구 선수들의 꿈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월드컵을 치르면서 행복감을 느꼈을까? 꿈을 이룬것이라면 당연히 행복감이 커야하는데 과연 부정적인 감정보다 행복감이 컸을까? 국가대표라고 해서 모든 비판과 비난을 감당할 의무는 없다. 이들 또한 축구선수이기전에 인간이고, 누군가의 아들이며 남편이자 아버지다. 이들은 누구보다 강한 사람들이다. 비판과 비난을 정면으로 맞았지만 그런 아픔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 단기간에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번 대표팀은 역대 그 어떤 대표팀보다 정신적으로 강한 팀이다.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 해설위원은 공통적으로 한국 축구의 시스템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변화를 요구했고 변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4년 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23명의 검투사들을 팬티에 목검 하나 달랑 쥐어주고 세계에서 가장 큰 콜로세움에 내던졌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고 비록 팔다리가 떨어져나갔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챔피언을 쓰러뜨렸다. 부디 4년 후에는 우리를 대표하는 검투사들이 누구보다 화려하고 단단한 갑옷과 예리한 창을 들고 보다 폼나게 싸우길 희망한다. 

2018년  6월 27일, 러시아 카잔 아레나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F조 3차전

한국 2 - 0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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