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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 우리 선수] ① 한국국제대학교 & WF 배성진

손병하 입력 2018.07.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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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 우리 선수] ① 한국국제대학교 & WF 배성진

(베스트 일레븐)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가는 팀을 꼽으라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나 전북 현대·수원 삼성·FC 서울 등 K리그 대표 명가들을 거론할 것이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말하라고 하면, 현재인 기성용·손흥민과 미래인 이승우·이강인 등의 이름을 언급할 것이다. 맞다. 거론한 팀들과 선수들은 한국 축구의 대단히 귀한 자산이다. 그러나 한국 축구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에는 몇몇 유명 클럽과 선수만 있는 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리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는 팀과 선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쩌면 그곳에서 그들이 흘리는 땀이 있었기에, 전북이나 손흥민 같은 빅 클럽과 빅 스타가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베스트 일레븐>은 유명하지 않은,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팀들과 선수들을 주목하기로 했다. 그들도 엄연히 한국 축구의 중요한 구성원이며, 자원이기 때문이다. ‘우리 팀, 우리 선수’는 유명하지 않으나 오직 ‘축구’ 하나만 보고 달리는 그들의 노력과 땀을 조명하는 코너다. 우리가 음지에 있는 그들에게 작은 관심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면, 그들이 더 큰 발전으로 응답할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 한국 축구의 한 구성원으로 땀 흘리고 있는 그들을 소개하는 일은 충분히 의미 있다는 생각이다. 그들도 귀한 우리 팀이고 우리 선수니 말이다.

그 첫 번째 순서를 위해, 경상남도 진주를 찾았다. 그곳에서 ‘무명’에서 ‘유명’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 중인 배성진과 한국국제대학교(총장 이우상) 축구부를 이끌고 있는 이창엽 감독을 만났다.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무명’이지만,
배성진의 축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더위가 막 시작하려던 지난 6월 말이었다. 서울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 경상남도 진주시에 도착했다. 교육의 도시 진주를 찾은 건 ‘우리 팀, 우리 선수’에 잘 어울리는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주에서 한국국제대학교 축구부와 그 팀에서 주장 못잖은 역을 담당하며 내일을 그리고 있는 측면 공격수 배성진을 만났다.

배성진은 1995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23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고, 이후 여러 성장통을 겪으며 대학교 3학년인 현재까지 축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크게 빛났던 적은 없다. 그래서 유명 대학에 입학할 수도 없었고, 한때 축구를 그만두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신었던 축구화를 완전히 벗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고, 한국국제대학교에 편입해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처음 축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청량초등학교 코치 선생님이 정식으로 축구를 해보라고 권유하시더군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마냥 축구가 좋았기 때문에, 저도 별 망설임 없이 축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평범한 소년이었던 배성진은 축구부 코치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막 축구부에 들어갔을 때엔 기존 선수들보다 부족했으나, 그래도 잠재성이 있었기에 빠르게 성장했다. 그의 성장은 동명초등학교 축구부 코치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머잖아 전학을 가게 됐다. 학생 신분이기에 전학이지, 프로였으면 스카우트된 것이나 진배없다. 분명 초등학교 시절 배성진은 재능이 있었다.

“동명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신장중학교로 진학했어요. 저를 동명초등학교로 데려온 코치님이 신장중학교로 가시면서, 저를 데리고 가신 거죠. 그런데 확실히 중학교는 레벨이 좀 다르더군요. 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잘한 친구들이 진학하는 것이다 보니, 확실히 레벨이 달랐어요. 그래도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어요. 당시 신장중학교는 김기종 감독님이 지휘하고 있었는데, 저를 많이 믿어주셔서 힘이 됐어요. 덕분에 저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게 바탕이 돼 실력이 늘 수 있었죠.”

그러나 배성진은 중학교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물론 오롯이 그의 탓만은 아니다. 당시 신장중학교 축구부는 창단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생팀이었는데, 팀의 한계가 배성진이 더 큰 날갯짓을 못 하도록 제한했다. 그래도 배성진은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 하남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 당시 이규중 감독이 지휘하던 하남고등학교는 전국 대회에서도 이름 꽤나 날리는 학교였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1학년 때는 아예 경기를 못 뛰었고요, 3학년이 돼서야 주전으로 올라선 것 같아요. 그때 생각하면,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하남고가 성적도 꽤 좋았는데, 선배는 물론 후배들에게도 많이 배웠죠. 그런 거 있잖아요. 좋은 선수들이랑 함께 하면, 함께 하는 선수의 기량도 같이 발전하는 거요. 그랬어요. 그땐.”

하남고등학교 진학 후엔 힘든 시간이 더 많았다. 1학년 땐 실력이 부족해 벤치를 지켰고, 2학년 땐 발목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급한 마음에 다 회복하지 않았음에도 경기에 출전하다가 덧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부상과 씨름하고 나니 어느덧 2학년도 훌쩍 가버리고 말았다. 이제 남은 건 고교 1년, 이때 뭔가 보여주지 못한다면 대학 진학의 꿈은 물론이고 프로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급했다.

“3학년 때 비로소 주전으로 올라섰는데, 제가 마음이 많이 급했어요. 보여준 게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실수도 많았고요. 그래도 최선을 다한 때문인지, 권역 리그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죠. 우리 팀은 왕중왕전에도 나갔고요. 비록 왕중왕전에서는 1라운드 탈락이란 씁쓸한 성적표를 받았지만, 꽤 많은 걸 배우고 얻은 시간이었어요.”


배성진은 3학년 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원하는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배성진이 가고 싶었던 대학교에서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축구 명문 대학교로 진학하고자 했으나,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이후엔 방황의 시간이 시작됐다. 깨진 꿈을 다시 맞출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그러던 중 하남고등학교에서 함께 축구했던 친구들 중 두 명이 포르투갈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학 진학 실패 후 방황했어요. 그때 참 힘들었어요. 그러던 중 하남고등학교에서 축구했던 친구 두 명이 포르투갈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망설임 없이 떠났죠. 축구 선진국에서 뭔가 배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연고로 한 프로팀이었는데, 그 팀 유스팀에 입단해서 1년 동안 축구를 배웠어요. 그곳에서 피지컬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축구를 어떻게 하는지 눈을 뜨게 됐죠. 정신력의 중요성도 배웠고요. 참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갑작스러웠던 포르투갈 유학은 그가 다시 축구를 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 낯선 포르투갈 땅에서 언어도, 문화도, 식생활도 다른 그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었지만 축구를 좀 더 잘하기 위해 견뎠다. 오직 축구를 더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틴 시간이었다. 포르투갈에서 1년 동안 축구 유학을 마친 후, 또래보다 한 해 늦게 안동과학대학교 축구부에 입단했다. 비록 처음 꿈꿨던 수준의 대학교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대학 진학이란 첫 번째 목표를 이룬 배성진이다.

“대학교에서는 1학년 때는 좀 힘들었어요. 다시 한국의 축구 문화에 적응해야 했거든요. 제가 1년 늦게 대학교에 입학하는 바람에 2학년 선배들과 동갑이었거든요? 거기서 오는 거리감 같은 것도 좀 있었고요. 그래도 1학년을 잘 버티고 나니 2학년 때는 나아졌어요. 저도 팀도 꽤 잘했죠. 그런데 2년이 참 빨리 가더라고요. 별로 보여준 게 없는데, 2년제 대학교라 올해 졸업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사실 지난해 말부터 축구화를 벗으려 했어요.”

2년 동안 별로 보여준 게 없다 보니, 그를 찾는 곳도 없었다. 대학교 편입도 알아보고, 프로팀도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축구화를 벗으려고 했다. 바로 그때,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한국국제대학교 축구부에서 그를 찾았다. 지휘봉을 잡고 있던 이창엽 감독이 배성진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편입을 제안한 것이다. 프로에서 꽤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창엽 감독의 러브콜에 그의 마음이 움직였다.

“축구로 안 된다면, 다른 먹고 살 거리를 찾아야 했어요. 축구로 돈을 벌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겠지만요. ‘안 되는 건 안 되나 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창엽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죠. 2년제를 마쳤으니, 편입해서 2년 더 축구하자고 말이죠. 사실 처음에는 이미 축구를 안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거절했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번은 축구로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나’란 생각 말입니다.”

배성진은 현재 한국국제대학교 축구부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축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큰 빛을 본 적은 없으나, 축구로 밥을 먹고 살겠다며 아직도 축구에 도전하고 있다. 어렸을 때,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가던 때 아버지의 사업이 큰 부도를 맞으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축구를 시작한 자신을 원망했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배성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도전 중이다.

프로, 아니 내셔널리그라도 좋다. 축구로 돈을 벌어 부모님께 떳떳한 아들이 될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좋다. 빛나는 스포트라이트가 있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니더라도, 수천에서 수만 명의 관중이 환호하는 프로가 아니더라도, 그에게는 지금 축구화를 신고 뛰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배성진은 묵묵히 오늘도 피치 위를 달리고 있다. 배성진의 축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창단 15년,
신흥 강호로 발돋움 중인 한국국제대학교

2010년 8월,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제8회 전국 추계 1·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한국국제대학교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3년 창단한 신생팀이 전국 무대를 거의 휘어잡은 것이다. 당시 한국국제대학교의 대회 준우승은 큰 화제였다. 물론 한국국제대학교는 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명이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있는 유수의 강팀과 비교하면 아직 초보 수준이다. 이제 창단 15년째이며, 2010년 깜짝 우승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국제대학교는 빠르게 발전 중이다. 특히 이창엽 감독이 팀을 지휘하면서부터는 발전 속도가 부쩍 빨라졌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대전 시티즌과 경남 FC에서 뛰었다. 대전에서만 200경기 넘게 뛰었는데, 창단 초창기 K리그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던 그 대전에서 주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이 감독의 현역 시절은 영리한 플레이와 유려한 패싱력이 일품이었던 선수로 기억된다.

그런 이 감독이 2016년 한국국제대학교에 부임했다. K리그2에 있던 충주 험멜에서는 김종필 감독을 보좌하며 프로축구 팀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 감독 부임 후 한국국제대학교는 빠르게 레벨을 높이고 있는 중이다. 이 감독은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는데, 언젠가는 고향에서 후배들을 길러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한국국제대학교는 이 감독의 그 바람과 꼭 맞는 팀이었다.

“프로에서 뛰면서 언젠가 한 번은 고향에서 봉사하고 싶었어요. 한국국제대학교는 제가 항상 지켜보던 팀이었죠. 고향에 있는 팀이기도 하고, 늘 여건이 넉넉하지 않아서 언젠간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시기가 잘 맞아서,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재 한국국제대학교의 수준은 대학 레벨에서 중간쯤 되는 것 같습니다. 선수들 수준도 많이 올라왔고요.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레벨을 높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국제대학교는 이 감독과 함께 성장 중이다. 한국국제대학교는 짧고 빠른 패싱력을 기본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를 지향하는데, 현역 시절 이 감독의 플레이와 유사하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빌드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고 있다면서, 이런 과정을 반복 숙달하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감독은 자신이 키우고 있는 제자들에 대해 얘기했다.

“아직 우리 팀이 약해서 최고 수준의 선수는 없지만, 앞으로 프로에서도 제 몫을 할 수 있는 선수는 꽤 있습니다. 측면 공격수를 맡는 배성진은 기술이 좋아요. 영리하고요. 오른쪽 사이드백을 보는 서경훈도 괜찮고, 중앙 미드필더 윤대원은 이미 경남 FC에 지명됐죠. 참, 이승영이란 선수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잘 커서 프로에 입단하게 되면 정말 좋겠어요. 그럴 수 있도록 제가 더 열심히 지도해야죠.”

이 감독은 한국국제대학교가 좋은 성적을 내서 전국 대회에서 이름을 떨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했다. 바로 후배들이 꿈을 펼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국제대학교 안에서 좋은 기량을 발휘해, 프로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선수 개인보다 팀을 더 우선시했는데, 그것보다는 선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이 가진 굳은 철학이다.

“요즘은 아이들을 키우는 데에서 보람을 찾고 있습니다. 경기 때, 훈련에서 고함지르며 가르친 플레이가 나오면 그 희열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잘 커서 스스로도 빛을 보고, 한국국제대학교도 빛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요즘 대학교 축구부가 다 어려운데, 축구부를 위해서 많이 애써주시는 강경모 이사장님께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졸업한 진주상고 축구부도 그분이 창단하셨거든요. 참 고마우신 분입니다.”

이 감독은 아직은 무명인 한국국제대학교를 국내에서 손꼽히는 축구 명문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물론 그 이전에 후배들을 잘 길러, 그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게 돕겠다고 했다. 이 감독의 바람대로 한국국제대학교가 전국 대회에서 우승하고, 훌륭한 프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는 ‘축구 명문교’가 되길 기대한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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