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DUGOUT Dream] KIA 타이거즈 최원준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8.09.1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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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어른이 되어


누군가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알이라는 세계를 깨고 나와야만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도 한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이 사전적 정의대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른의 자격을 갖춘 이 22살의 청년은 지금까지 이미 천 번을 넘게 흔들린 걸까.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Subin Shin  Location Gwangju-KIA Champions Field



타이거즈를 꿈꾸던 소년

3년 전 그의 이름이 드래프트장에 울려 퍼졌을 때 모든 KIA 타이거즈의 팬은 환호했다. 메이저리그가 탐냈을 정도의 실력 있는 유망주가 넝쿨째 굴러들어왔기 때문이다. 1순위 KT 위즈가 LA 다저스에서 돌아온 남태혁을, 2순위 한화 이글스에서 대졸 투수 김재영을 택한 탓이었다. 모든 부분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던 그는 졸업 전 백인천상과 이영민 타격상을 받으며 팬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그런데 이런 타격감을 자랑하는 그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야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서울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제 스스로 꽤나 괜찮은 투수라고 생각했어요. 빠른 구속과 공격적인 피칭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고요. 하지만 막상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 저보다 잘 던지는 투수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죠.”


하지만 한 개의 문이 닫히면 한 개의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그런 그에게 김병효 감독은 야수로서의 또 하나의 문을 열어주었다. ‘방망이를 한번 쳐보는 것은 어떻겠냐’라는 제안이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수월하지는 않았다. 투수로서 자주 접하지 못했던 송구가 문제였다. 타격도 쉽지만은 않았다.


“제가 야구를 시작했을 때 타격 실력이 부족해서 투수의 길을 선택했어요. 다시 시작했을 때는 역시나 어려웠죠.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유정민 감독님께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 조언들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KIA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죠. 그 조언들을 아직도 가슴에 새기고 있어요.”


선발투수는 투수 한 명이 경기를 장악하는 주인공 같은 매력이, 타자는 안타를 칠 때의 짜릿한 기분이 좋다고 말을 했다. “양현종 선배만 봐도 투수의 매력이 보여요.”라는 그는 투수로서의 자신에게는 0점을 주며 프로와 아마추어는 다르다고 못 박았다. 같은 팀 후배인 투수 유승철에게 “내가 너보다 더 잘 던질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승철이가 늘 자신만만해요. 그래서 놀려주고 싶었죠. 승철이의 오기를 자극하기 위해서 장난을 치는 것인데 승철이는 항상 진지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웃음) 장난을 칠 때마다 늘 화를 내서 저도 계속 놀리고 있어요. (하하) 물론 프로와 아마추어는 다르기에 제가 승철이보다 더 잘 던질 수 없죠. 그래도 놀리는 게 재밌는걸요.”


이렇게 또래 이야기를 하는 그는 영락없는 22살의 어린 선수였다. 그의 또래인 22살들은 입대 혹은 제대를 앞두거나, 대학과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새내기다. 연애, 여행, 봉사, 친구와의 추억 등 20대 초반의 특권을 만끽할 새도 없이 야구에 전념하게 된 그는 오히려 이 생활이 좋다고 말한다.


“저도 물론 대학 생활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대학 생활을 거치지 않고 프로에 바로 입단하게 된 지금이 행복한 것 같아요. 이른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감사해요.”


그는 많은 선배와 좋은 인프라에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대학 친구는 없지만, 팀에 좋은 친구들이 많다는 말도 함께였다.


“프로에 오기 전에는 넥센 히어로즈의 (주)효상이랑 가장 친했어요. 물론 지금 역시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아요. 휴일에는 거의 자고,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또 자요. (웃음) 지금 제 나이가 입대를 할 나이죠. 저는 음… 당장 갈 생각은 없지만, 아직 고민 중이에요.”


19살, KIA의 부름을 받기 전부터 KIA를 응원했다던 그는 자신이 이 유니폼을 입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다. 그가 입단하기 전부터 KIA의 팬이었다던 그의 가족들은 아직까지 타이거즈의 열렬한 팬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광주분이세요.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팬이셨고요. 저도 부모님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KIA를 좋아하게 됐죠. 가족이 응원하는 팀에서 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영광이에요. 제가 투수로서 존경했던 윤석민 선수와 함께 뛰고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요. 지금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요. (어떤 점이 달랐나요?) 마운드에 계셨던 선배님은 위압감이 넘쳤어요. 하지만 재활군에서 함께 운동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재밌고 말이 많으시더라고요. (웃음)”


어린 호랑이가 되어

KIA의 최고참 타자인 정성훈은 80년생이다. 97년생 최원준과는 무려 17살 차이가 난다. 84년생 최형우와도 14살, 준 선임인 김선빈 안치홍과도 7, 8살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이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배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모든 선배가 저를 많이 챙겨주세요.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시죠. 최형우 선배는 캠프 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인터뷰마다 언급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명기 선배는 캠프 때 저와 같은 방을 썼죠. 그때부터 제가 선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어요. 명기 선배를 잘 알지 못했을 때는 말수가 적으신 분이라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방을 같이 쓰다 보니 전혀 아니었어요. 야구에 관해서 굉장히 진지하셨고 말이 많으셨어요. (웃음) 같이 야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배우게 되었죠. 아, (김)선빈이 형이랑 (안)치홍이 형도 빼놓을 수 없어요.”


최원준은 본인이 언급하지 않았어도 모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며 웃었다. 훈련장에서 봤던 친밀한 모습이 꾸며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가 작년에 실책을 좀… 많이 했어요. (침묵) 그런데 실책을 한 날 (이)범호 선배님에게 문자가 와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네 나이 때 실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너는 나보다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다. 자신 있게 눈치 보지 않고 플레이했으면 좋겠다.’라고 왔는데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KIA는 선후배가 사이가 정말 끈끈해요. 실수해도 선배들이 다독여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죠.”



이번 시즌 KIA 타선에 젊은 피가 수혈되기 시작했다. 최원준의 입단 동기인 류승현을 포함해 박준태, 한승택 등 어린 선수들이 1군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앞으로 팀을 이끌어갈 어린 호랑이들이 경쟁자보다는 동료로 느껴진다고 말을 꺼냈다.


“(류)승현이가 1군에 왔어요. 친한 친구가 1군에 왔고 또 잘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자극도 되고 각자의 장, 단점을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배워가고 있어요. 함께 성장할 친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동료의식이 먼저인 것 같은 최원준이지만 그는 사실 승부욕이 너무 커서 흠이라고 이야기한다. 야구를 시작한 것도 그 승부욕이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최원준은 야구가 아닌 축구 꿈나무였다. 하지만 그의 학교에 야구부가 생기면서 발이 빠르다는 이유로 야구부에 가입했다. 축구가 지겨웠던 그에게도 타이거즈를 사랑하던 아버지에게도 희소식이었다. 그때쯤 야구를 보기 시작한 그에게 야구는 새로운 매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여러 요소보다도 그를 키운 것은 너는 야구를 못할 거라는 친구의 태도였다. 승부욕이 강한 최원준은 지기 싫어 야구에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KIA의 영건이 되었다.


“저는 승부욕이 너무 과해서 문제예요. 코치님들도 그런 모습을 줄여야 한다고 하셨고 그래서 티를 안 내려고 노력 중이에요. 좋지 못한 결과가 나왔을 때 화를 많이 내요. 표정만 봐도 티가 나죠. 기록을 의식하지 않지만 당일 경기에서 실책을 하거나 타격에서 부진하면 제 자신이 원망스럽고 화가 나서 티가 나요. 그런 부분에서 지적을 많이 받았죠.”


하지만 그런 승부욕이 지금의 최원준을 만들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가 20살에 SNS에 쓴 ‘유니폼이 매일 더러워졌으면 좋겠다.’라는 글 또한 승부욕에서 비롯된 말일지 모른다.



“그 글을 쓸 당시 프로의 벽을 느꼈어요. ‘분위기에 말린다’라는 말이 있죠. 잘하는 선배들의 벽 앞에 압도되고 주눅 들면서 많은 방황을 했어요. 타격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더러워진 유니폼이 제가 그날 무언가를 했다는 뜻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 글을 적었죠.”


그의 이런 악몽 같은 시기를 이겨낼 수 있던 원동력은 김민호 코치였다. 그는 김민호 코치를 만난 것이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민호 코치의 아들 김성훈(한화)과 비슷한 나이인 그는 그 또한 김민호 코치가 아버지 같다고 말한다.


“그때 다행히 김민호 코치님이 2군에 계셨어요. 저에게는 너무나도 큰 힘이 되어주셨어요. 제겐 아버지가 같은 분이시죠. 코치님과 함께할 때 아버지와 같이 운동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모두가 넌 안 된다고 말할 때 코치님은 할 수 있다고 말해주셨고 저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 주셨어요. 그 자신감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고요. 이 자리를 빌려 코치님은 저의 은사님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이름이 주는 무게

이제 2018 KBO리그 정규시즌도 끝이 보이고 있다. 매일 갱신되는 폭염 앞에서 땀 흘리는 그는 가을을 그리고 있다. 작년, 우승이라는 큰 선물을 받은 21살의 어린 선수는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더운 것은 괜찮아요. 추위를 좀 많이 타서요. (작년 가을 야구가 힘들었을 것 같네요.) 그때는 구경만 해서요…. (웃음) 어린 나이에 우승을 했다는 것에 감사해요. 우승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은퇴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영광이에요.”


2017시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던 그는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017(이하 APBC)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최원준은 APBC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자신의 입지를 증명했고 또 성장했다. 승선 당시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트린 결과였다.



“APBC 대표팀의 나이는 저와 비슷했지만, 각 팀의 주전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 선수들에게 자신 있게 플레이하는 법을 배웠죠. (박)민우 형(NC다이노스), (이)정후와 (김)하성이 형(이상 넥센 히어로즈)처럼 팀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보며 자신감을 배웠어요. 서로 많이 친해지기도 했고요. (웃음)”


하지만 APBC 국가대표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그는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 109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최종 엔트리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그는 끝내 선발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APBC 경기가 끝나고 “이 선수들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까지 함께하고 싶다”라고 말했던 선동열 감독의 말이 팬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지만,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제가 팀에서 주전 선수가 아닌데 아시안게임 승선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제가 팀을 대표하는 주전 선수가 된다면 그때는 제 스스로 욕심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아시안게임 휴식기에는 야구를 열심히 하면서 보내겠죠? (웃음) (2020 도쿄 올림픽을 기대해봐도 되나요.) 음…. 그때 주전 선수가 된다면 욕심을 내보겠습니다. 하하.”


지금은 주전이 아니라는 그의 말처럼 그에게는 현재 고정된 자리가 없다. 고교 시절 유격수였지만 수비가 불안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프로에서는 외야수로 포지션을 옮겼다. 하지만 현재 그는 외야만 담당하지 않는다.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수비를 보고 있다. 한 경기에서도 2~3번 내‧외야를 넘나들며 포지션을 변경하기도 한다. 이에 어떤 이들은 한 포지션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틸리티 백업으로 옮겨 다닐 경우 선수의 재능을 썩힌다고 소리를 높이고, 누군가는 선수가 경기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라고 항변하다. 그런 목소리들 사이에 서 있는 그는 말을 아낀다.


“저는… 주전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포지션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감독님이 제 타격감을 살려주시기 위해 여러 포지션에서 기회를 주시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잘 맞는 포지션은 어디인가요.) 외야 수비, 내야 수비 모두 쉬운 것은 아니에요. 아직 많이 부족해서 김민호 코치님에게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KIA의 미래, 슈퍼스타, 제2의 안치홍 등 여러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당사자는 야구 앞에서 한없이 겸손한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을 자랑하기보다는 오히려 갈 길이 멀다고, 더 노력해야 한다며 손사래를 친다. 2016년 퓨처스리그 도루왕이었던 20살 때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군에서는 많은 도루를 했지만, 1군에서 도루하는 것이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자신감이 많이 부족해요. 가장 자신 있는 점도… 없어요.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아요. 수비에서 안정적인 선수가 되고 싶은 것이 제 바람입니다. (그래도 이번 시즌 수비가 많이 발전했어요.) 올 시즌 초반에는 코치님들도 수비가 좋아졌다고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저도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6~7월을 지나며 착각이라는 것을 느꼈죠.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목표 달성을 한 것이 있다. 바로 만루 홈런이다. 작년 호마당(KIA 타이거즈의 팬 페스티벌)에서 만루 상황을 살리고 싶다고 이야기한 그는 벌써 그 말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지난 6월 넥센전에서 제이크 브리검을 상대로 짜릿한 만루 홈런을 뽑아내며 경기를 역전으로 이끌었다.


“‘내가 운이 참 좋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살면서 만루 홈런 한 번 치기도 힘든데 말이죠. (웃음) 비밀인데 홈런인 줄 모르고 뛰다가 넘어가서 조금 당황했어요.”


그렇게 어른이 된다

부진할 때마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다. 매일 잘할 수도 없고 매일 못하지도 않는다.’라고 되뇐다는 그는 아직도 유니폼에 자신의 이름을 마킹을 한 팬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하다고 말한다.


“KIA는 팬이 정말 많아요. 이 점이 야구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도움이 돼요. 또 많은 분이 제 이름을 유니폼 뒤에 새겨주셨어요. 저를 응원해주시고 힘을 주셔서 말 그대로 ‘감동’이에요. 제가 더 잘해야죠.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야구장에 찾아와 주셔서 늘 감사해요. 팀이 낮은 순위에 있는데도 더 목소리를 높여주셔서 감사하고요.”


낯을 많이 가린다는 그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KIA 선수 중 영어를 가장 잘한다는 그에게 영어에 대해 물어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팀 동료인 외국인 타자 로저 버나디나의 SNS에 댓글로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며 ‘Baby Choi'라는 자신의 애칭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영어 한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또 한 번 당황하며 말을 아꼈다. (같은 팀 동료인 최형우는 Big Choi, 최원준은 Baby Choi로 불린다.)


“영어를 잘하지는 않아요. 어렸을 때 영어에 관심이 있어서 조금 배웠던 게 지금까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영어 한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어… (당황) 가장 자주 하는 영어는 why are you looking at me?(너 왜 나 쳐다봐?), what are you talking about?(무슨 소리야?) 정도예요. 장난을 많이 치니까요. (웃음) 제가 버나디나에게 먼저 영어를 물어보기도 하고 버디가 단어만 말해도 찰떡같이 제 말을 알아듣기도 해서 영어로 장난을 많이 치게 돼요”


인터뷰가 진행될 당시 KIA는 7위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가을야구의 막차인 5위와 두 게임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지난 시즌 챔피언이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낮은 순위다. 팬들의 기대가 한풀 꺾였음에도 최원준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물론 작년보다 낮은 순위에 있어요. 하지만 선배님들은 분위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야구를 하려고 하세요. (최원준 선수는 어떤가요.) 저는… 실수를 하거나 타격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스스로 주눅 드는 면은 있어요. (고민) 하지만 아직 40경기 넘게 남았기에 확실히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좀 더 힘을 내서 꼭 가을야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찬 각오였다. 지금부터 10년 후인 2028년에도 최원준은 32살의, 어쩌면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했을지 모를 어린 나이다. 아직 어떤 미래를 그려도 이루어질 법한 그는 그 미래에 지도자를 그려보기도 한다.


“물론 현역 선수로 활약할 수도 있지만,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지도자의 길에 대해서 어렸을 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김민호 코치님을 만나면서 달라졌죠. ‘지도자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어주셨어요. 저도 코치님처럼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미래를 그리고 있어요. 조계현 단장님도 그 꿈에 힘을 주셨죠. 항상 ‘너는 타이거즈의 미래다’와 같은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말에 온기를 느껴 저도 꼭 단장님 같은 따뜻한 지도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KIA의 감독 자리는 어때요.) KIA… 는 저에게 너무 큰 목표 같아요. (웃음) 저는 유소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하지만 그전에 연속 안타 기록을 갖고 싶어요. 이명기 선배의 기록은 꼭 깰 거예요! (웃음)”


28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명기에 도전하는 어린 선수의 눈은 반짝였다. 자신 있냐는 물음에는 다시 웃으며 넘겼지만, 그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는 충만했다. 그렇다면 최원준이 꿈꾸는 선수로서의 마지막 모습은 무엇일까.


“그냥… (고민) 끝까지 성실한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그게 전부예요. 싱겁나요.”


싱겁지만 이미 성실한 최원준 다운 말이었다.


***

책의 제목처럼 천 번을 흔들려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최원준은 이미 어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천 번을 흔들려 어른이 되어도 우리는 다른 바람에 좌절하고 상처받는다는 것을. 지난 8월 14일 경기 최원준은 대타로 나선 타석에서 안타를 치지 못하자 더그아웃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의 야구 인생에서 앞으로 이렇게 눈물지을 날은 수도 없이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면서도 최원준은 알을 깨고 진짜 세상을 나가려 한다. 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최원준의 성장을 함께 하고 있다.



           더그아웃 매거진 89호(9월호)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9월호(89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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