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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People] 삼성 라이온즈 박한이

조회수 2018. 10. 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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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장 착한 욕심쟁이

좋은 타자는 어떤 선수일까. 답은 다양하다. 홈런을 잘 치는 강타자도, 나가기만 하면 2루를 노릴 수 있는 빠른 발을 가진 선수도,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칠 만큼 정교한 타격을 자랑하는 타자도 다 좋은 타자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박한이는 왜 좋은 타자일까. 아마도 타격, 파워, 주루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꾸준하게 야구 하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이하늘  Location 대구-삼성 라이온즈 파크



끝내주는 남자


이번 시즌 이틀 연속 끝내기를 기록하면서 ‘끝내주는 남자’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당시 상황이 기억나는가.

그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첫날은 투아웃 만루 찬스였다. 감독님께서 노스텝으로 쳐보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주셔서 그대로 했던 게 잘 먹혔다. 둘째 날 끝내기 상황에서는 원래 번트 사인이 났었다. 그런데 수비 위치를 보니 잘 치면 빠질 수 있겠다 싶었다. 사실 번트를 잘 대더라도 결국 한 명은 아웃카운트와 맞바꿔야 하지 않나. 그게 조금 아깝기도 해서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를 했던 게 잘 먹혀들었다.


첫 끝내기 당시에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세레모니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사실 그 끝내기 전까지 슬럼프가 약간 왔었다. 또 이번 시즌에 만루 찬스에서 해결을 한 적이 거의 없기도 했고. 또 그 상황에서 만루 기회가 나에게 오니까 징크스 생각이 들어 타석에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딱 끝내기가 나오니까, 그 한순간으로 ‘아,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그런 동작이 나왔다.


꼭 그 두 차례의 끝내기 때문이 아니라도, 중요 상황에 강한 ‘클러치히터’라는 이미지가 있다.

스스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분들께서 또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니, 자신 있게 ‘네, 제가 클러치히터입니다’라고 이야기하기는 좀 멋쩍다. 다만 그런 이미지가 있다면, 찬스 상황에서 투수와의 승부를 나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가져오게 하는 것 같다.



혹시 비결이 있나?

투수와 타자의 싸움에서는 다양한 구종 중 하나를 고르는 노림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쁜 공을 치게 되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실투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든 그라운드 안으로 보내려고 생각한다. 땅볼이든 뜬공이든 안으로 공을 집어넣어야 그 싸움의 결과를 알 수 있지 않나.


삼성이 가을야구 가시권에 왔다.

전반기가 끝나기 직전 롯데 자이언츠와의 3연전에서 스윕을 했다. 개인적으로 그때부터 상승세를 탔다고 생각한다. 그즈음부터 선수단 전체적으로 의지가 매우 강해졌다. 열심히 하는 모습, 혹 지더라도 팬들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자체가 야구선수가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고, 또 그런 모습이 나오다 보니 좋은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사자의 심장


삼성에 처음 지명될 당시부터 지금까지 원팀맨의 대명사로 자리하고 있다. 삼성이라는 팀이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만약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 있었다면, 내가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삼성이라는 팀은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높은 자리로 올려준 고마운 은인이자, 스승이다. 감독님과 코칭스태프들, 프런트, 그리고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들까지. 야구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그 덕분에 지금까지 야구할 수 있었다. 이런 만남도 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이 있었기에 내가 있다.


신인 계약 당시 팀 역사상 최고액을 받고 계약했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을 만큼 큰 액수니, 그만큼 당시 팀에서 얼마나 기대했는지를 알만하다. 입단 당시 분위기도 다른 신인과는 달랐을 것 같다.

그런 게 어디 있나. 그냥 무서웠다. (웃음) 학생 때 봤던 선수들이 입단 당시에는 최고참 선배가 돼있었다. 하늘과 같이 우러러봤던 선배들 앞에서 야구를 하려고 하니 참 무섭고 어려웠다. 또 입단 당시에 팀 멤버가 워낙 좋았다. 긴장을 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설렘도 컸다. (신인 최고액이었는데도 선후배 관계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당연하다. 그 긴장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처음 신인으로 들어와서 인사할 때의 공기를 잊을 수가 없다.



기동력이 약한 당시 팀을 위해 장타 욕심을 버리고 점차 기동력을 갖춘 작전 수행형 중장거리 타자로 변신했다.

1번 타자 역할을 본격적으로 부여받으면서 그렇게 변하려고 노력했다. 입단하고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3년 차부터 ‘출루를 많이 하면 그만큼 득점도 많이 하고, 팀의 1번 타자 역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점점 안타 개수보다도 출루율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 물론 그만큼 홈런 기대치는 자연스레 낮아졌다.


팀의 요구에 맞춘 셈인데, 개인의 욕심과 충돌하지는 않았나?

당시에 어떤 욕심도 없었다. 팀의 주문이 왔던 때가 마침 처음으로 슬럼프가 왔던 시기였다, 탈출을 위해 뭐라도 해야 했는데 마침 그렇게 말씀을 해주셔서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3할도 처음 쳐봤고. 개인 최고 득점 기록도 달성했다. 그렇게 한 번 잘하고 나니 맛을 들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계속 스타일을 유지했다. 지금도 출루 자체를 노린다는 마음이 강하다. 이제 그 스타일을 바꾸기는 어려운 것 같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7차례 우승 자리에 언제나 서 있었다.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나는 순간을 꼽아본다면?

그걸 어떻게 꼽나. (웃음) 모든 순간이 기억난다. 2001년 입단 첫해부터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서 긴장 참 많이 했다. 당시에는 준우승에 그치면서 아픈 경험을 했다. 다음 해에 결국 우승을 했다. 당시에도 참 힘들게 우승했는데… (허허) 그 이후에도 한국시리즈를 숱하게 경험했지만, MVP와는 또 연이 없었다. 그쯤 되니 나도 MVP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결국 2013년에 우승하면서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MVP를 받아봤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모든 한국시리즈는 한 개라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순간, 나쁜 순간 다 너무나도 소중한 기억이다.



역대 한국시리즈 최다 기록 타이틀을 거의 독식하고 있다(안타/타점/득점/루타/사사구). 가장 마음에 드는 타이틀이 있다면?

다 소중하다. 한국시리즈 한 번도 못 가보고 은퇴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운이 좋게 열 번도 더 갔다. 그만큼 한 게임 한 게임 최선을 다했다. 잘하든 못하든 한국시리즈는 버릴 기억이 없고, 기록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하나를 꼽으라고 해도 그건 못하겠다.


팀 영구결번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영구결번이라는 건 야구선수 인생의 최고의 명예 아닌가. 내가 죽어서도 남는 명예이니만큼,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욕심낸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팬분들이 나를 어떻게 인정해주시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팬들께서도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웃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은퇴하는 때가 되어봐야 알지 않을까.


팀과 두 번의 FA 계약을 이른바 ‘혜자 계약’으로 하면서 ‘착하니’라는 별명이 생겼다. 당시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

잘 모르겠다. 당시에 감독님께서 ‘빨리 계약해라!!’라고 반 협박을 하셨다. (농담) 첫 FA 당시에 우승하고 아시아시리즈가 있었는데, 뛸 선수가 많이 부족했다. 빨리 계약하고 합류하라고 하시니, 내가 뭘 어쩌겠는가. 나도 이 팀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크게 따지지 않고 계약했다. 인생에서 돈이 중요한 건 맞지만, 돈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게 팀에 대한 의리였다. 그래서 계약을 할 수 있었고, 팬들이 그걸 보고 별명을 지어주셨더라.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라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 지금까지 생긴 별명 중에 좋아하는 게 3개 있는데 ’꾸준함의 대명사‘, ’착한이‘, 이번에 새로 생긴 ’끝내주는 남자‘. 그 세 가지가 재미있다.



몇 년간 상승하는 FA 시세에 비해 아쉬운 가격일 수도 있는데, 이를 또 나눠서 기부활동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쓰러운 사람들이 TV에 나오는 걸 보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또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내와 상의를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둘이 생각이 맞았다. 그래서 하게 된 것뿐이다.


꾸준함의 대명사


이렇게 오래 야구를 할 수 있는 건 역시 꾸준함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지니고 있어서 아닐까. 꾸준함 하면 떠오르는 ‘16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이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내 평생 야구를 하면서 그만한 기록은 없다. 달성 당시에 매우 좋았고 기뻤다. 당시에 옆에서 다들 못 할 거라고 얘기했었다. 그런데 그걸 해냈다. 하지만 기록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무릎에 무리가 많이 왔다. 그래서 작년엔 결국 시즌을 제대로 뛰지 못했고 기록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이 기록 때문에 ‘꾸준함의 대명사’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작년에 결국 기록이 중단됐는데, 아쉬움이 그만큼 컸을 것 같다.

아쉬움이 컸던 건 맞지만, 막상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몇 안 된다. 내 몸이 스스로 ‘이게 한계다’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미련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크지 않다. 이제는 오히려 기록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 편히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 그 기록이 끝났다고 내 야구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지 않나. 다른 기록도 있으니 그 기록들을 향해서라도 야구는 계속돼야 한다.



타격이라는 작업이 매우 섬세한 작업이다. 꾸준하지 않으면 대기록도 불가능했을 것 같은데, 매일매일 컨디션은 어떻게 조절하나?

크게 챙기는 건 없다. 144경기를 하면 슬럼프가 두세 번씩은 온다. 그걸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슬럼프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길면 스스로도 너무 힘들고, 팀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나는 슬럼프가 오면 일단 죽어라 연습한다. 그런데도 안 되면 그냥 손을 놔버린다. 하루 이틀 정도는 아예 배트를 안 쥔다. 무조건 부딪히기보다는, ‘무’로 돌아간다는 느낌으로 다시 시작하는 거다. 안 되는 걸 억지로 한다고 되겠는가? 한 번씩은 방망이를 놓고, 좋은 생각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박한이 하면 또 특유의 루틴을 기억하는 팬이 많다.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어떻게 나는지 궁금하다.

많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건 내 징크스다. 다른 선수들도 똑같이 자기만의 징크스가 있고, 그걸 깨버리면 어쨌든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이 루틴을 안 하면 타석에 들어섰을 때 불안하다. ‘와 이거 이래서 되겠나?’, ‘괜찮나?’ 이런 생각만 든다. (몸이 벌써 어색한가 보다.) 그렇다. 안 해보려고 몇 번을 시도했다. 전지훈련이나 연습경기에서 시도했는데 안 되더라.


최상의 플레이를 위해서 선수들이 다양한 장비를 착용한다고 들었다. 지금도 모자에 스포츠 고글이 있는데, 평소 자주 착용하는가?

그렇다. 특히 낮에 하는 훈련 때나 낮 경기에서는 거의 계속 착용한다.



눈부심 방지를 위한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 거로 아는데, 그중에서도 고글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기본적으로 고글 렌즈가 눈 전체를 덮으면서 사방에서 오는 빛을 잘 막아준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브랜드는 오클리인데, 눈부심이 훨씬 덜 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선택했었다. 애용하는 브랜드다.


그래도 운동을 하다 보면 땀이 흐르면서 고글이 불편하다고 느낄 때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운동할 때 거추장스럽게 걸리거나 흘러내리거나 하는 느낌에 예민하다. 지금 쓰는 고글은 테가 접촉면을 확실하게 잡아주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게임에서 착용을 하면서도 불편한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옛 대구시민야구장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의 구조가 달라서 해가 다르게 비친다고 들었다.

그렇다.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팬들의 관람 편의를 위해 설계상으로 선수가 해를 마주 보는 구조로 지어졌다고 들었다. 그래서 옛 시민야구장보다 수비 때 눈부심이 더 심한 편이다. 노을이 질 때, 내 주 수비 위치인 우측 외야에서는 햇빛이 뜬공을 삼키곤 한다. 그래서 렌즈를 이전보다 진한 색으로 맞춰 쓰고 있다.



고글이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없나?

야구라는 종목이 사실 언제나 위험한 상황의 연속인 운동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고글은 선수를 보호해주는 보호구 중의 하나다. 공에 맞았을 때 충격을 덜어주는 보호대처럼, 눈부심으로 인해 날아오는 공을 시야에서 놓치는 걸 방지해주는 역할을 고글이 하는 거다. 위험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고글 덕분에 부상의 위험을 덜 수 있다.


야구장 바깥의 착하니


두 아이의 아빠다. 아빠로서의 박한이는 어떤 모습인가?

다정한 편이다. 딸들도 아빠를 좋아하고, 잘 때 아빠랑 같이 자고. (엄청 귀엽겠다.) 그렇다. 내 자랑이라면 자랑이겠지만, 딸에게는 정말 다정하다.


야구장에 출근해서도 딸 얼굴이 아른거릴 것 같다.

그래서 시합 들어가기 전에 꼭 한 번씩 영상통화를 한다. 딸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엔도르핀이 생긴다. 시합 들어가면 결과가 잘 나오기 전에는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나에게는 딸과 인사하는 게 기분을 좋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경기를 풀어나가기도 편하다. (딸들이 뭐라고 해주는가?) 뭐라고는 안 한다. 그냥 얼굴 보는 게 좋다. 그냥 ‘파이팅, 사랑해’라는 말이면 된다.


가족이 생기기 전과 후, 마음가짐이 좀 다를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책임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야구장에서는 야구만 잘하면 되고, 또 그 당시에는 중간 연차였기 때문에 선배들에게 맞추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심하게’ 왔다. 야구가 내 인생의 전부라면, 그 야구를 못 하고 뒤처졌을 때 내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하게 됐다. 아빠라는 사람이 딸들 보기에 부끄러운 사람이면 안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고 난 이후에는 공 하나를 치더라도, ‘이걸 못 치면 죽는다’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됐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또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은퇴했을 때 아빠는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아내와 같이 불혹의 나이로 가는 시점이다. 같이 나이가 드는 느낌은 어떤지?

같이 늙었다는 거지 뭐. (웃음) 서로 소통하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동갑이다 보니 친구 같은 면이 많다. 힘들 때 서로 의지를 많이 하는 게 같이 늙어갈수록 더 그렇다. 옛날에 나는 대화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같이 살다 보니 늘더라.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다.


야구로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먹는 거로 푼다. 집안 자체가 다 ‘고기 집안’이다. 또, 야구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오는 건 슬럼프가 오거나, 그날 유독 야구가 잘 안 된 날이다. 그래도 내일이 되면 또 야구를 해야 한다. 그날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자꾸 남겨두면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게임이 끝나면 그날 기억은 잊는다. 끝나고 밥 먹고, 딸이랑 얘기하고 같이 자고 하면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


야구선수로 남은 날이 많지 않다. 남은 기간 이루어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한국시리즈를 한 번 더 하고 싶다. 개인 기록은 야구를 계속하다 보면 알아서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어린 후배들이 한국시리즈를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큰 무대를 한번 경험해보면 맛을 느끼고, 그러면 야구선수로 또 한 뼘 성장하게 마련이다. 그 무대로 가는 길을 돕고 싶다.


20년 프로 인생을 돌아봤을 때, 스스로에게 얼마나 만족하는지?

아직 은퇴를 한 건 아니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60점? (생각보다 박하다.) 박한 건 아니다. 80, 90점이 된다는 건 그만큼 후회가 없다는 건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은 시즌이 거의 없다. 그래도 많이 올라왔다. 몇 년 전에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30점 얘기했다. (하하)



야구 선수 이후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

이제부터 슬슬 생각해야 한다.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전에는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은 아직 잘 모르겠다. 시즌 끝나면 그런 생각할 여유가 좀 더 생기지 않을까 싶다.


야구팬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박한이는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나?

은퇴 이후, 또 내가 죽은 후에도 단 하나 듣고 싶은 말은 ‘꾸준함의 대명사’이다. 박한이는 꾸준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렇게 할 거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삼성 라이온즈 박한이입니다. 팀이 몇 년간 조금 부진했습니다만, 올해는 견뎌내고 중위권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야구장 많이 찾아오셔서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수들도 팬들이 보내주시는 응원과 사랑에 많이 힘이 납니다. 또 그렇게 받은 만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더 노력하게 됩니다. 부디 많이 찾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꼭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더그아웃 매거진 90호(10월호)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10월호(90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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