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칼럼] KIA의 꽃은 지지 않는다

조회수 2018. 10. 17. 14: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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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딩 챔피언 기아 타이거즈의 가을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시즌 막판 2주를 달궜던 치열한 5위싸움의 결과로는 허탈하게, 단 하루로 기아 타이거즈의 가을야구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한 경기 속에서도 기아 타이거즈의 야수 최고참 이범호 선수는 두 개의 홈런을 때려내면서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출처: OSEN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이틀 앞두고 있던 10월 14일, 이범호 선수는 고척돔이라는 변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넥센과는 올시즌 상대전적에서 우리가 앞섰다. 특히 광주에서는 우리가 게임을 잘했다. 그런데 고척에서는 이상하게 게임이 잘 안 풀렸다. 우리가 5위이다보니 이번 와일드카드 결정전 두 경기가 모두 고척에서 열리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된다.” 이범호 선수의 이야기대로 올시즌 기아는 넥센에 상대전적 9승 7패로 앞섰지만, 고척스카이돔에서의 8경기는 3승 5패로 넥센이 우세했습니다. “고척은 내야수가 수비하기 가장 힘든 구장이다. 그라운드가 딱딱해서 타구가 굉장히 빠르다. 챔피언스 필드의 천연잔디에서 계산하는 다른 타구가 온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많은 경기를 치르지 않은 원정팀에게는 집중이 가장 중요하다.”

인조잔디를 사용하는 고척돔 그라운드
관중석에서 바라본 고척돔 전경

특히 이번 가을 이범호 선수의 목표는 야구를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경기에 들어가면 과연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경기를 즐기고 싶다. 결과에 쫓기지 않고 이 가을야구 자체를 즐기고 싶다. 그러면 이번 포스트시즌 원정도 길게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만일 기아가 승리를 거뒀다면 이범호 선수의 포스트시즌 원정은 10월 20일, 토요일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 겁니다. 만일 고척에서 두 경기를 모두 승리한다면 기아는 광주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전으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니까요.

경기후 그의 목소리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광주에는 이번 주말에 내려가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다. 참, 맘대로 안되는 것 같다.” 그는 이정후, 임병욱, 김혜성 같은 넥센의 젊은 선수들의 배짱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출처: MK스포츠

“사실, 어린 선수들이 이런 큰 경기를 임할 때, 타석에서 타이밍을 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경기가 중요할수록 타자는 더 잘 치려고 하다보니 공을 신중하게 끝까지 보고 타격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타이밍이 늦어진다. 큰 경기의 초반에 점수가 잘 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넥센의 젊은 타자들도 경기 초반에는 다들 그랬다. 직구는 늦고, 변화구에는 빠르고. 그런데 두번째 타석부터는 달라지더라. 금방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본인의 연타석 홈런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첫 홈런은 몸쪽 직구였고, 두번째 홈런은 바깥쪽 직구였다. 코스를 설정해 놓고 장타를 노리는 스윙을 했다. 내 타석의 결과는 좋았지만 팀이 졌다. 아쉽다.” 그의 아쉬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기면 대전에 갈 수 있었지 않나. 대전은 내가 프로야구를 처음 시작한 곳이기도 하고. 요즘 한화 분위기도 좋고 그래서 꼭 함께 야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내 맘대로는 되지 않았다. 인생이 다 그런 것인지.”



그렇다면 이범호 선수는 과연 이번 와일드카드에서 그가 이야기했던 대로 경기를 즐겼을까요? “잘 모르겠다. 야구를 그렇게 오래 했어도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그게 잘 안된다. 매번 겪어도 경기가 시작되고 첫 타석에 설 때의 긴장감은 똑같다. 그러다가 타석에 들어갈수록 긴장감이 조금씩 떨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원했던 것처럼 이 가을을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통산 준플레이오프 홈런 1위(7개), 통산 만루홈런 1위(17개, 한국시리즈까지 포함하면 18개), 3루수 통산 최다홈런기록의 보유자인 이범호라는 베테랑의 마음도 이렇습니다.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도 승부의 세계로 돌입하면 즐길 수 없다는 이야기는 KBO리그의 가을야구가 얼마나 힘든 무대인가를 짐작케 합니다.


“당분간 푹 쉬고 싶습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한 마디였습니다. 2년전부터 이범호 선수가 중계진에게 입버릇처럼 되뇌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찬이랑 내가 아직도 우리팀의 중심타선에 있으면 안된다. 우리가 계속 중심타선이라는 이야기는 팀이 약하다는 말이다. 어린 친구들이 빨리 커 올라와서 우리를 밀어내야 한다.” 물론 현재 이범호 선수는 중심타선에 배치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지난 시즌부터는 주로 6번이나 7번에서 활약했지요. 그럼에도 그는 어느 타순에서 나오건 여전히 중심타선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감은 가을야구에서도 여전히 빛났습니다. 봄, 여름에 피어났던 꽃들도 계절이 바뀌면서 이제 시들고 단풍이 물들어오는 가을입니다. 그러나 기아 타이거즈의 ‘꽃’ 이범호는 가을에도 여전했습니다. 꽃은 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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