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석의 축구 한잔] '쎄오'와 수원의 숙제, 멋진 이별하기

김태석 2018. 10. 18. 07: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태석의 축구 한잔] '쎄오'와 수원의 숙제, 멋진 이별하기



(베스트 일레븐=수원 월드컵경기장)

▲ 김태석의 축구 한잔

수원 삼성은 K리그에서 가장 큰 팬덤을 가진 팀이다. 성적 여부를 막론하고 일거수일투족이 큰 관심을 받는 클럽이다. 팬들의 사랑은 늘 뜨겁고, 그러다 보니 기대치가 커 의도치 않게 오해하고 때로는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만큼 관심과 애정이 많기에 가능한 일이겠으나, 때로는 그 마찰이 지나칠 정도로 소모적이라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는 처지에서 안타까울 때도 많다.

최근 수원의 최대 이슈는 바로 서정원 감독일 것이다. 2018 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전북 현대전을 앞두고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던 서 감독의 결정에 수원은 물론이며 K리그도 발칵 뒤집어졌다. 불과 경기 이틀 전, 경남 FC를 힘겹게 승리한 후 전북전에서 모든 걸 걸겠다고 다짐했던 서 감독이었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수원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 감독은 16일 수원 보도자료를 통해 사퇴 발언을 번복하고 다시 수원 사령탑에 복귀했다. 유례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또 한 번 많은 이들이 깜짝 놀라야 했다.

많은 말이 오갔다. 일각에서는 수원의 뜨겁다 못해 지나칠 정도의 팬심이 서 감독을 궁지로 몰았다는 말하며, 다른 시각에서는 수원 구단 프런트들이 자신의 잘못을 서 감독에게 오롯이 전가하고 뒤로 빠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 바로 서 감독의 목소리와 수원 구단의 대처에 대해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는 점이다. 무엇이 그를 힘들게 했고, 무엇이 그런 충격적인 결정을 내리게 했는지, 돌아온 지금의 마음은 어떤지, 향후의 계획은 어찌되는 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의 돌연 사퇴와 번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위기다.

17일 저녁 7시 30분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8 KEB하나은행 FA컵 준결승을 앞두고 ‘돌아온’ 서 감독을 만났다. 15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어렵게 항공편을 구해 귀국길에 올랐다는 서 감독의 표정은, 그가 사퇴 전 공식 석상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비추었던 경남전 전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는 설레는 마음, 한동안 방황했지만 그래도 내가 이 팀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한 달 보름 전에 드러냈던 극도의 피로를 여전히 다 떨치지 못한 듯했다. 충격적 사임 발표와 기묘한 복귀 모양새는 여전히 서 감독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 감독이 유례없이 사퇴 번복하고 팀에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두고 싶었고, 다시 돌아올 줄 몰랐다. 구단에서는 내 사표 수리를 하지 않았다. (박찬형) 대표이사님께서도 열흘 간격으로 자꾸 만나자고 하셨다. 그럴 때마다 완강하게 답했다. 선수들에게도 계속 메시지가 왔다. ‘내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다’라고 하더라. 유럽에 나가기 전에는 염기훈·신화용·조원희·양상민이 집으로 찾아왔다. 함께 차를 마셨는데, 내게 돌아와 달라고 부탁하더라. 하지만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복귀는)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구단에도 어서 다음 감독을 알아보라고 말했다. 그래도 계속 내게 복귀를 권유하더라. 그 모습에 너무 미안해 마음이 흔들렸다. 팬들과 이별 과정도 찝찝했기에 더 그랬다. 다른 팀도 아니고 수원은 내가 현역 시절부터 몸담은 클럽이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팬들이기에 마음을 바꿨다.”

여기서 짚어야 할 대목은 서 감독을 향한 수원의 대처와 그 이유다. 서 감독이 직접 언급한대로 수원은 서 감독이 사퇴 발표를 한 후에도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사실 서 감독 사퇴 발표 자체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서 감독의 돌연 사퇴 의사 표현 때문에 수원 사무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었다. 서 감독의 사퇴 발표일은 8월 28일이었다. 이날은 2018 AFC 챔피언스리그 8강 1라운드 전북 현대 원정 경기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경기 전날 기자회견에는 각 팀 감독과 대표 선수가 나온다. 대표 선수는 보통 주장이 나서지만, 감독의 등장은 불변이다. 따라서 수원이 굳이 서 감독 사퇴에 관한 공식 발표를 하지 않더라도, 기자회견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 감독의 사퇴를 ‘셀프 인증’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부득이하게 이병근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올린다는 발표부터 해야 했던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원이 감독 교체를 위한 수순을 밟은 게 아니었다. 이 코치의 감독 대행 임명은 감독 부재 상대인 만큼 말그대로 ‘대행’을 맡긴다는 수준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즉, 수원은 공식적으로 지금껏 서 감독을 해임한 적이 없으며, 서 감독의 사퇴를 승인한 적도 없다. 그저 서 감독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비웠을 뿐이며, 수원은‘번 아웃’ 상태였던 서 감독의 힘든 심신을 이해해 용인해주었을 뿐이다.

지금도 수원의 자세는 변함없다. 수원은 서 감독과 계약 기간을 되도록 지키고 싶다는 속내를 갖고 있다. 클럽의 레전드에 대한 예우이며, 레전드 인정 여부를 떠나 현역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래도록 수원에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서 감독이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2018 AFC 챔피언스리그나 FA컵에서 우승하게 된다면 서 감독에게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명분도 부여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 정도로 인내와 배려심을 발휘한 클럽의 사례는 찾기가 힘들다.

“분명히 말할 게 있다. (돌아왔다고 해서) 이 자리에 남는 건 절대 없다. 이번 시즌만 마무리 짓고 나가겠다. 지금은 힘든 상황인 만큼 내년을 위해 구단이 새로운 감독을 물색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부디 좋은 감독님이 오셨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수원 팬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죄송하다. 하지만 이번 시즌 마지막까지는 응원해주셨으면 한다.”

하지만 서 감독의 뜻은 확고하다. ▲ 자신의 강경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간곡하게 요청을 거듭하는 구단의 태도를 차마 마다할 수 없었고, ▲ 아무리 마음이 아팠다고 해도 오래도록 인연을 맺고 있는 팬들과 이별이 이런 식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 자신에게 믿고 따르는 선수들의 충성심과 노력을 끝가지 외면하지 못했을 뿐, ▲ 2018시즌이 끝나면 다시 떠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사람 좋고 인연을 중시하는 서 감독의 성품, 지쳤고 상처받은 서 감독의 현재 심경이 만들어 낸 절충안인 셈이다. 감격적인 AFC 챔피언스리그 혹은 FA컵 우승을 통해 서 감독의 심경이 또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수원이 서 감독의 이 결심만큼은 되돌리기 힘들어 보인다.

때문에 이제부터 수원과 팬들은 서 감독의 돌연 사퇴와 복귀라는 현상에 집착해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올해 성적 여부를 떠나 한 클럽의 레전드이자 헌신한 지도자와 멋진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남은 시즌을 보내는 게 서로를 위한 길이 아닐까 싶다. 당면한 승부를 후회 없이 치르고 멋지게 이별하기, 이를 통해 ‘쎄오’의 위상을 수원의 역사에서 흠집 없이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만 서 감독의 뇌리에도 수원은 여전한 넘버원 클럽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 베스트 일레븐 닷컴
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Copyright © 베스트일레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