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People] 두산 베어스 정수빈

조회수 2018. 11. 3. 16: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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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의 남자

‘정수빈’ 야구는 몰라도 이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을 수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입단부터 팬들의 쏟아지는 관심을 받으며 화려한 시작을 알린 그는 20대 중반 이미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며 리그 중심에 섰다. 하지만 중심에서 조연으로 군대로 떠난 것은 한순간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관심과 우여곡절을 겪은 프로 10년 차 정수빈이 제대 후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잠실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 그가 새로운 가을을 맞이했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신수빈 Location  잠실야구장


이등병의 편지


2015시즌 한국시리즈 MVP의 영광 이후 2016시즌 커리어로우. 정수빈은 그해 겨울 경찰청 야구단에 입대한다. 팬들은 이제 그가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을 소리 높여 외쳤다. 입단 이후부터 내내 잠실의 주인공이었던 그는 조연이 되어 그곳을 떠났다. 그가 떠난 주연 자리에는 새로운 선수들이 속속히 등장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다시 돌아온다고 했던가. 제대 이후 정수빈의 활약은 눈부셨다. 2016년의 부진은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수빈이 돌아왔다’였다.


늦었지만 제대 축하한다. 잠실야구장에 돌아왔다.

고맙다. 프로 10년 차라 그런지 이곳이 많이 낯설지는 않다. 야구를 오래 하다 보니 어디서도 적응은 쉽다.


그래도 제대 후 첫 타석은 떨렸을 텐데.

정말 떨렸고 긴장도 되었지만, 설렜던 감정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박건우, 허경민과 90년생 트리오 아닌가. 다시 잠실에서 함께 한다.

제대 후 돌아왔을 때 모든 선수가 반가워했지만, 특히 두 친구가 가장 반겨줬다. ‘너 왜 왔어’, ‘정말 금방 갔다 왔다’고 장난을 치더라.


원래 남의 군대는 빠르다. 돌아오니 트레이드마크인 응원가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듣다 보니 익숙해졌다. 지금 응원가도 좋다. (새 응원가는 외웠는가) 물론이다. 수빈… 두산의 정수빈… 음음…. 사실 가사를 잘 모르겠다. (웃음)


군에 있을 때 입단한 신인들과는 어색하지 않은가. 박치국이 박건우는 건우 형으로, 정수빈은 정수빈 형이라고 성을 붙여서 부른다.

내가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다. 더 친해질 거다. 치국아! 이제 친해지자. 정수빈 형이 아니라 수빈이 형이라고 해줘. (웃음)


이런 모습을 보면 두산은 선수들끼리 정말 친한 것 같다.

선수들끼리 친한 동네 친구 혹은 가족처럼 지낸다. 내부적으로 똘똘 뭉칠 수 있어 정말 좋다. 이런 분위기가 경기력에도 묻어 나온다. 두산이 강팀이 된 비결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경찰청에 있던 사이에 조수행, 정진호 등 외야의 어린 선수들이 부쩍 성장했다.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두산이라는 팀은 선수층이 워낙 두텁다. 어떤 선수가 나와도 제 몫을 다 한다. 잠실 외야에 맡겨놓은 자리가 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박)건우나, (김)재환이 형 정도가 되어야 주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남은 자리는 한 자리뿐이고 이 자리 경쟁에서는 절대 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 덕분인가. 제대 이후 좋은 활약을 보였다.(정수빈은 제대 후 타율 0.376 2홈런 23타점 기록했다.)

경찰청에서 보낸 시간 덕분이다. 입대하기 전 많이 힘들었다. 군대에서 야구에 대한 생각을 덜며 오히려 흥미를 찾았다. 마음을 다잡아 좋은 결과가 나왔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성장한 것인가.

입대하기 전 성적이 좋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군대에 갈 때 ‘2년 동안 야구에 대한 흥미를 되찾자’고 목표를 세웠고, 다짐을 이뤘다. 이제는 야구하는 것이 재밌다.


그렇다면 기술적인 부분은 어떤 점이 성장했나. 타격 자세가 잡혔다고 들었다.

예전에는 타격 자세를 자주 바꾸는 선수였다. 이 자세에서 잘 안 풀리면 다른 자세로, 그 자세도 안 되면 저 자세로 바꿨다. 나만의 자세도, 야구 스타일도 없었다. 그래서 입대 이후 나는 어떻게 쳐야 하는 선수인가. 어떤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야 하는가를 늘 생각했다. 그런 고민 덕분에 나의 야구 스타일이 정립되었다. 앞으로는 타격 자세를 많이 바꾸지 않을 것 같다. 나만의 것이 생겼다.


들어보니 생각을 많이 하는 성격 같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잘 받는 스타일이다. 빨리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더라. (웃음) 스트레스는 쌓이고, 풀 방법은 없으니 힘들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이런 부분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군대가 참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은데, 경찰청 자랑을 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인터뷰한 그대로다. 마음 편하게 2년 동안 야구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는 곳이다.


새로운 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자랑이 될 것 같은데.

맞다. 여러 팀에서 모였기 때문에 일면식도 없었던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다. (누구와 가장 친해졌나.) 선배 중에는 (이)흥련이 형(두산), (홍)성민 이형(롯데 자이언츠), (이)대은이 형(KT 위즈)이 있고 후배 중에는 (박)준표(KIA 타이거즈)와 많이 친해졌다. 사실 경찰청 선수들과는 전부 끈끈하다.


그러고 보니 박준표도 정수빈과 친해졌다고 언급했었다.

원정을 다닐 때마다 항상 방을 같이 썼다. 좋은 추억이 많다. 가끔 외출을 받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다 같이 밖에서 영화 보고, 당구도 치고, 게임도 하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 참 좋았다. 이렇게 소소하게 놀았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아련)


그렇다면 훈련소 에피소드는 없나. 4주간 어린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 친구들은 내가 선수인지도 몰랐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웃음) 나와 같이 부대를 쓰던 한 친구가 우리 팀의 팬이더라. 그 친구 덕분에 내가 선수인 줄 알았지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야구선수라는 것을 절대 몰랐을 것이다. 한 달 동안 너무 편하게 지내서 내가 야구선수인지 동네 형인지 못 느꼈을 것 같다. (웃음)


전직 아이돌


두산의 신인 선수들은 팬들에게 ‘아기곰’이라고 불린다. 신인드래프트에서 뽑힌 선수들이 자신 스스로를 아기곰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 별명은 정수빈에게 가장 오랫동안 불렸던 별칭이었다. 다른 별칭으로는 잠실 아이돌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정수빈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호타준족의 어린 타자는 호수비와 주루 센스, 가을야구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선보이며 잠실의 아이돌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두산은 농군을 하는 선수가 꽤 있다.

나도 농군을 한다. 긴바지를 잘 못 입는다. 빨리 뛰어야 하는 선수인데 긴바지를 입으면 많이 불편하더라. 그래서 이렇게 입는다. (그렇다면 목걸이에도 의미가 있는가.) 협찬이다. (웃음)


그런가. (당황) 이런 솔직한 점이 매력인가. 군대에 갔을 때도 팬들에게 인기가 끊이지 않았다.

글쎄…. (고민) 야구선수가 아닌 일반인 같아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웃음) 야구할 때만 조금 달라 보이는 모습을 팬들이 좋아해주시는 게 아닐까. 나도 이유를 잘 모르지만 응원해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잘생긴 외모도 한몫한다. 100점 만점에 100점? (웃음)

아니다. 50점이다. (웃음) 잘생기지도 않았고 못생기지도 않은 만만한 50점이 나에게 딱이다. (두산에서 100점짜리 선수는 누구일까.)건우가 잘생겼다. 재환이 형도 잘생겼고. 나는 절대 아니다.


50점이라고 하지만 입단부터 두산의 아기곰이 되었다. 이제는 그 타이틀을 함덕주 선수에게 넘긴다고.

덕주는 어리지만 우리 팀의 주축 선수가 될 만큼 야구 실력도 좋고 귀엽다. 그러니 이제는 덕주가 아이돌이지 나는 아니다.


잠실 아이돌의 은퇴 선언인가.

사람들은 은퇴하라고 하는데 나는 내가 아이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나이가 있으니 아이돌 타이틀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본다. (웃음)


함덕주처럼 어리고 잘하는 선수들을 보면 자신의 과거가 생각날 것 같다.

많이 생각난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1군 무대에서 뛰었다. 그런데 그때의 나보다 더 어린 선수들이 활약하는 것을 보면 감탄하게 된다. 나는 어린 시절 긴장도 많이 했다.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긴장도 하지 않고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많은 주목을 받지 않았나.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는데.

정말 좋았고 감사했다. 칭찬과 응원도 많이 해주셨고…. 내 이름이 언급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주목과 관심이 원동력인가.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하지만 이제는 팬들의 관심과 기대가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정수빈이 그동안 쌓인 팬들의 기대를 한 번에 부합시킨 것은 2013년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이었다. 그는 여러 개의 호수비로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끈다. 이병규의 안타성 타구를 지우는 점프 캐치가 승리의 발판이었다. 이어 2014년 첫 전 경기 출장 시즌에서 0.306의 타율을 기록하며 자신을 다시 증명했다. 수비와 공격 모든 면에서 제 위치를 지킨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다.


기세는 15년도 가을까지 이어졌다. 정수빈은 스스로 가을에 강하다고 한 말을 증명하며 준플레이오프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의 한국시리즈 성적은 14타수 8안타 1홈런 5타점, OPS는 무려 1.647이었다. 5차전 우승을 확정 짓는 3점 홈런은 그에게 한국시리즈 MVP라는 영광도 안겨주었다. 탄탄대로였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볼까. 2014-15년도는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다. 어떤 점 때문이었을까.

야구를 하면서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나한테는 그때가 가장 좋았던 해일뿐이다. 그다음 해는 좋지 않았고…. 그때가 나에게 좋은 해였다고만 생각하지 어떤 특별한 비결이 있지는 않았다.


15년도 가을야구 MVP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에 잘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추위를 안 타나.

추위는 정말 많이 탄다. (웃음) 하지만 내가 몸에 열이 많아서 추운 날씨와 잘 맞는 것 같다. 비결은 없다.


이번 가을도 자신 있나.

우리에게 이제 한국시리즈가 남아있다. 15년도 한국시리즈 MVP를 받았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고 스스로 큰 경기에서 더 자신이 있다. 이번에 경기를 뛰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스스로도 기대가 된다.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호수비다. 타고난 것인가 노력의 산물인가.

음…. 타고났다기보다는 수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스스로 수비에서만큼은 남들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혼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덕분에 남들이 잡지 못할 것도 잡을 수 있는 것 같다.


조금 예민한 질문 한 개만 하겠다. 노력을 많이 하지 않는 선수 이미지가 있다.

음…. 남들이 보기에 내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비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보여주는 모습만이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정말 많이 한다. 또 언제, 어느 곳에서도 야구 생각뿐이다. 남들은 겉에서 보여야만 노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만의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대에서도 ‘수빈이 형 야구 많이 안 한다’는 소리도 들었었다. 하지만 나는 할 때 확실히 한다. 대충하지도 않는다.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억울)


서른 즈음에


프로 10년 차. 아직 우리에게 어린 모습으로만 남아있는 정수빈도 두 달 후면 서른이 된다. 남들보다 많은 관심과 성장통을 거쳐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 그 변환점에 선 정수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프로 10년 차다. 1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

한국시리즈 MVP를 받은 경기가 아닐까. 평생 남는 역사에 내 이름을 올렸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10년 전 20살의 정수빈을 기억하는가. 인터뷰에서 ‘스포츠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한다’고 말했다.

그때는 TV에서만 보던 무대에서 내가 뛴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고 신기했다. 경기를 뛰면서도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이제는 제대만으로도 뉴스의 주인공 아닌가.

정말 이상하다. (웃음) 아직도 내가 스무 살, 처음 입단했을 그때 같다. 그런데 내가 벌써 프로 10년 차에 나이가 서른이 되다니…. 시간이 정말 빠르다. 한편으로는 ‘은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10년 전과 지금 비슷한 감정도 든다.


어떤 점에서 비슷한가.

사실 연차가 쌓이면서 어린 시절의 마음들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군대에 다녀오고 나니 그 마음이 기억났다. 지금은 스무 살의 정수빈처럼 경기장에 오는 것이 설레고 내가 있는 이곳이 새롭고, 내가 야구선수라는 것이 신기하다. 초심이 돌아왔다.


아직 먼 얘기지만, 은퇴하고 난 후 지도자의 길도 생각해보았나.

물론 그런 생각도 해본다. 내가 가진 야구 노하우를 어린 선수들에게 알려줄 기회 아닌가. 육성에 도움이 되고 싶다.


허경민이 곧 결혼을 한다. 결혼 생각은 없는 건가.

할 사람이 있어야…. (웃음) 결혼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미안하다. 그렇다면 허경민의 결혼에 박건우와 무엇을 해주기로 했는가.

크게 하나를 해주기로 했다. 둘이 제일 좋은 냉장고를 사줄까 고민 중이다. 가장 친한 친구 기도하고 나중에 돌려받을 것 아닌가. (웃음)


그렇다면 다음 10년 후로 넘어갈까. 그때의 정수빈은 어떻게 기억에 남고 싶은가.

음…. (고민) 그냥 20살 때의 모습. 풋풋했던 어린 시절 그대로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때의 어린 정수빈을, 팬분들이 불러주시던 잠실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해주시면 행복할 것 같다. 10년 후 내가 40살이 되어도 말이다.


오래 기다린 팬들에게도 한마디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벌써 제대 이후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 남은 경기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고 남은 경기에서도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활약으로 두산이 우승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해볼까. 야구, 얼마나 좋아하나.

좋아한다는 표현보다는 … 다른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야구는 직업이고 팬분들의 기대고 내 삶이다. 이제는 야구는 나에게 책임감이 되었다.


***

책임감을 말하는 정수빈은 야구가 마냥 신기하고 좋았던 20살 때와는 많이 달라 있었다. 야구가 좋던 소년은 이제 야구가 자신의 삶이라고 말하고, 관심을 책임감으로 받아들인다. 지금 더 성장했고 더 좋은 활약을 하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정수빈은 10년 전의 모습을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그때의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 마음을 안고 시작하는 정수빈의 가을은 이제 다시 시작된다.


            더그아웃 매거진 91호(11월호)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11월호(91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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