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DUGOUT Report] 한화 이글스 박윤철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8.11.2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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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gles is my destiny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드라마에서 들어봤을 법한 대사다. 하지만 그 일이 나에게 벌어진다면 어떨까? 적어도 박윤철은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한 번 연이 닿은 팀. 그리고 정확히 4년 뒤, 그 팀을 다시 만나 이제는 함께 하기로 했다. 그는 말했다. 정말 운명이라고.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최윤식  Location 라마다플라자 수원


#결국엔 한화 이글스

박윤철과 한화의 인연은 2015 KBO리그 2차 신인드래프트 때 시작됐다. 당시 그는 2차 10라운드 전체 103번으로 한화의 지명을 받았다. (2015시즌 신인드래프트는 KT 위즈 특별 지명으로 인해 103번까지 지명됐다.) 하지만 그는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연세대학교에서 담금질을 한 4년 뒤, 그는 똑같은 2차 10라운드에서 한화의 부름을 받았다.


돌고 돌아 다시 한화의 선택을 받았어요.

이 정도면 운명이죠. (웃음) 고등학교 때도 지명을 받으면서 프로구단 하면 한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번에 한화에 4년 전과 똑같은 10라운드에 지명을 받아서 되게 이슈도 됐고요. 한화에 가는 게 저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해요.


10라운드까지 가는 끝에 이름이 호명됐어요. 많이 초조했나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요. (하하) 드래프트 장에 초청을 받고도 지명을 못 받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긴장을 많이 했어요. 옆에 고등학교 애들은 다들 지명받아서 유니폼 입고 앉아 있었는데, 저는 계속 이름이 안 불리더라고요. 9라운드가 끝났는데도 호명이 안 돼서 더 떨렸죠.


그렇다면 박윤철 선수는 몇 라운드 지명을 예상했나요?

저는 늦어도 6라운드나 7라운드에는 지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올해 성적이 괜찮았거든요.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스카우트분들이나 감독님들 기준에는 많이 못 미쳤던 것 같아요. 그래도 지명을 받고 프로에 들어간 게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부족했던 부분은 프로에 가서 더 잘하는 모습으로 보여드리려고요.



한화에는 연세대 선배인 박상원 선수가 있어요.

(박)상원이 형과는 대학 때부터 같이 운동을 했어요. 그러면서 서로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고요. 상원이 형이 제 폼을 보면서 ‘네 폼에서 이런 부분은 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럴 때는 팔이 무디다’와 같은 조언을 많이 해줬는데, 시즌 중에 형의 의견을 토대로 고쳐나가면서 호투도 많이 하게 되고, 제가 득을 봤죠.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줬어요. 한화에 들어가도 상원이 형이 있어서 겉돌지 않고 팀에 일찍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화가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했어요. 혹시 보러 갈 계획 있나요?

그럼요. 그런데 이제 다음 시즌을 위해서 몸을 열심히 만드는 게 우선이에요. 이번 시즌 선배님들이 워낙 잘하셔서 개인적으로 우승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준플레이오프나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다 한 번씩 보러 가고 싶어요.


#서울고의 우완 트로이카

서울고등학교 재학시절 박윤철은 넥센 히어로즈 최원태, 두산 베어스 남경호와 함께 막강한 마운드를 구축하며, 아마야구를 호령했다. 2014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는 최원태를 대신해 두 번째 투수로 나와 6이닝 1실점 9탈삼진을 기록. 서울고에 창단 최초 황금사자기 우승을 안겼고, 그 역시 대회 우수투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황금사자기 결승전 전날 감독님에게 연락을 드렸던 게 당시 화제가 됐어요.

선발투수로 올라가고 싶다고 감독님에게 연락을 드렸어요. 근데 감독님이 원태를 선발로 쓰셨어요. 그래서 몸을 풀다가 라인업 보고 들어가서 쉬고 있었거든요. 불펜에서 팔 풀고 있을 때 감독님이 ‘네가 어제 감독님한테 죽기 살기로 던지겠다고 했으니까 죽기 살기로 던져라’라고 하셨어요. 부담도 됐지만, 결과적으로 잘 풀려서 다행이었죠. 중요한 경기였고, 제 야구 인생에서 결승전에 올라간 게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우승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당시 감독님한테 전화했을 정도로 간절함이 있었나요?

주말리그에서는 제가 3승인가를 했을 거예요. 그런데 막상 황금사자기 본선에서는 잘 못 던져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해 스스로 많이 속상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책임감과 승부욕이 강한 것 같아요.

책임감보다는 승부욕이 강해요. (웃음) 마음을 비우다가도 마운드에 올라가면 욕심이 생겨요. (웃음) 승부욕이 좋을 때도 있는데, 안 좋게 돌아오기도 해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서울고 후배들에게 물어보니 참 착한 선배라고 말해줬어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맙네요. 되게 무뚝뚝한 선배였을 텐데…. (그러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어떤 선배였나요?) 과묵한 선배? (하하)후배들한테 말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잘못한 게 있어도 어느 정도 참다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싶으면 다 같이 모여 있을 때 이야기해요. 그전까지는 후배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터치를 안 해죠.


착한 선배 박윤철 선수는 야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초등학교 때 체육 선생님 권유로 시작했어요. 학교에서 반 대항 대회처럼 티볼 대회를 한 적이 있어요. 하다 보니까 되게 재밌더라고요.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같이 모여서 캐치볼도 하고 애들끼리 시합도 하고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야구부 감독님 전화번호를 알려주셨어요. 그렇게 야구부에 들어가게 됐죠.


본격적으로 투수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야구를 시작하고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야수를 같이 했어요. 투수만 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고요. (투수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일단 타자보다 자신이 있었고요. 중학교 2학년 말쯤에 아마추어에도 지명타자 제도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투수만 하게 됐어요.


야구를 하는 데 있어서 부모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을 것 같아요.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죠. 싸우기도 많이 했고요. (반대를 많이 하셨나요?) 반대보다는 공부도 놓지 말라고 하셨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힘들었어요. 운동을 쉬면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남들이랑 똑같이 하면 안 된다고 하셔서 쉴 때마다 다퉜던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부모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아버지랑 트러블이 있었는데, 제가 야구 안 한다고 그랬거든요. 그때 아버지가 현기증이 나셨는지 쓰러지신 거예요. (충격이 컸을 것 같아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죠. 그 모습을 보고 이왕 하는 야구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한 이유가 있나요?

아버지가 야구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세요. 그래서 이런저런 영상을 보시고 저한테 알려주세요. 그런데 선수마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제가 “아빠 그거는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나랑 안 맞아”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싸움이 됐어요. (아버님이 스포츠를 좋아하시나 봐요.) 제가 야구를 시작하면서 저보다 프로야구 경기를 더 많이 보세요. (웃음)



#연세대의 에이스로!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해 2018년. 4학년 박윤철은 연세대학교의 에이스로 성장하며,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와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팀이 3위와 준우승을 하는 데 일조했다. 2018시즌 19경기에서 그가 기록한 성적은 12승 2패 평균자책점 2.33.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단 하나의 자책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서울고 재학시절부터 대학 진학을 생각했다고 들었어요.

선배 중에 야구를 잘하는 형들이 많았는데, 좋은 라운드에서 지명받고도 프로에 가서 1군 무대의 높은 벽을 느끼는 걸 자주 봤어요. 그래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을 하다가 대학에 가서 공부를 좀 더 한다면, 남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진학을 결심하게 됐죠.


대학에 들어와 ‘이것만큼은 좋았다’라고 생각하는 게 있나요?

가장 좋은 건 역시 연세대라는 좋은 학교의 졸업장을 받는 거죠. 그리고 대학교 친구들도 사귈 수 있고, 교수님들하고도 친분을 쌓을 수 있어 좋았어요.


그래도 친구들이 프로에서 많이 뛰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을 것 같아요.

아니라면 거짓말이죠. (웃음) 부럽기도 하고 ‘나도 저 만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누가 제일 부럽던가요?) 원태죠. 이번에 아시안게임에서 잘 던져서 군 면제도 받았고, 연봉도 많이 받잖아요. (하하)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 팀에서 꾸준하게 좋은 활약 하는 모습이 가장 부러웠어요.


연세대 입학 이후 두 번의 부상으로 1, 2학년 때 많은 활약을 못 보여줬어요.

오른쪽 어깨와 무릎에 부상을 당했어요. (어깨는 어쩌다가 다치신 건가요?) 대학교 1학년 동계 훈련 때 시합을 했는데, 던지는 도중에 어깨에 통증을 느꼈어요.


투수에게 어깨부상은 치명적이에요.

그렇죠. 처음에는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수술 후에 재활에 집중했고, 지금까지 구속 저하나 통증 없이 잘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재활로 1, 2학년 때 나오지 못했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하루 종일 보강 운동만 하는 게 곤욕이었죠. 진짜 공이 던지고 싶었어요.



부상이 있었지만, 극복하고 올해 맹활약을 펼쳤어요. 좋은 성적의 비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비법이라기보다는 투수 코치님이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너무 모범생적인 답인데요.) 하하. 근데 정말이에요. 이번 시즌을 돌이켜보면 코치님의 도움이 컸어요. 작년에는 휴식이나 여러 부분에서 제가 건의를 많이 한 편이었는데, 올해는 그렇게 안 해도 코치님이 알아서 해주셨던 것 같아요. 전적으로 코치님을 믿고 따랐던 게 비결입니다.


믿음이 원동력이었군요. 그렇다면 3학년 때보다 성장한 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구속도 조금 늘었는데, 볼 배합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시합에 들어가면 코치님께서 볼 배합을 해주시거든요. 그걸 보면서 제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이 두 가지 말고도 4학년 때는 평균자책점이나 사사구, 피안타율 같은 전체적인 기록들이 좋아져서 작년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성장한 1년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연세대학교 추억을 되돌아볼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2학년 때 정기전이요. 재활을 끝내고 대학교에 처음 들어와서 등판한 게 정기전이었거든요. 그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올라왔는데, 제가 그만 역전 적시타를 허용해서 졌어요. 후회가 많이 남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재활 이후에 첫 등판이라 긴장도 많이 됐을 것 같아요.

재활 이후에 대한 부담보다 제가 살면서 그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야구하는 게 처음이었어요. (웃음) 잘 던졌으면 참 좋았을 텐데…. (후회) 결과가 좀 안 따라준 게 아직도 아쉽네요.


올해도 정기전이 있었는데 아쉽게 우천으로 무승부 처리가 됐어요.

마지막이라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우울) 후배, 동기들과 다 같이 연세대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비가 와서 허탈했죠.



#새로운 시작

무승부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박윤철은 이제 한화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구단에 합류하기 이전 그는 2018년 대학리그에서의 빼어난 투구를 통해 U-23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발탁되어 태극 마크를 달았다. 프로야구 입단과 함께 국가대표까지! 겹경사가 아닐 수 없다.


U-23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합류하게 됐어요. 소감이 궁금해요.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예요. 고등학교 때 청소년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히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최종명단에서 탈락했어요.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는 뽑히지도 못했고요. 그래서 태극마크는 감회가 남다른 것 같아요.


비슷한 나이대지만, 프로 선수들과도 함께 훈련하게 됐어요. 느낌이 어떤가요.

선수층이 젊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요. (웃음) 선수들끼리 장난도 많이 쳐요. 훈련할 때는 진지하고요. 이런 점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인 것 같아요. 아마추어는 분위기가 좋으면 즐거움에 취해 해이해지거든요. 프로는 분위기가 좋다가도 훈련에서만큼은 진중해요. (배울 점이 많아 보이는 선수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룸메이트인 (신)병률이 형이요.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컨디션 조절하는 방법을 형한테 많이 배웠어요.


가장 상대해 보고 싶은 나라가 있다면 어디인가요?

당연히 일본이죠. 국가대표라면 일본 국가대표선수들과 진검승부를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예선, 결승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 올라가도 일본과 시합할 때 꼭 마운드에 오르고 싶어요.


비장함이 느껴지네요. (웃음) 국가대표로서 목표는 무엇인가요?

일단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인데, 해외 선수들은 워낙 힘이 좋아서…. (머뭇) 결과는 해봐야 알겠지만 꿈을 크게 갖고 정상을 목표로 팀원들과 좋은 성과 만들고 오겠습니다.


국가대표에 앞서 지난 4일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한화 선수단과 팬분들을 만났어요.

환영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더그아웃에 계셨던 선배님들을 보면서 ‘언젠가 빠른 시일 내에 저기서 같이 시합을 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프로에 첫발을 내디딜 박윤철 선수! 야구선수로서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던지는 스피드에 비해 구위가 좋아요. 근데 이게 아마추어 선수들만 상대했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빨리 프로 선수들과 상대해서 확인해보고 싶어요. 그때야 진정한 저의 장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투수의 기록 가운데 어떤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승리죠! (단호) 아무리 못 던지더라도 팀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해요, 물론 다른 성적도 훌륭하면 좋지만, 저는 승이나 홀드, 세이브처럼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기록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프로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타자는 누구인가요?

손아섭 선배님이요. 타석에서 항상 끈질기게 투수들과 대결을 하시잖아요. 저도 상대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대표팀에 합류해서 들었는데 (강)백호가 그렇게 잘 친다고 다른 선수들이 말하더라고요. 기회가 된다면 백호와도 경기에서 만났으면 좋겠네요.


연세대 동기 전진우, 김창용 선수와도 이제 적으로 만나요.

두 친구 모두 재능도 있고, 성실해서 평소에 해왔던 것처럼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운동하면 언젠가 야구장에서 만날 것 같아요. (야구장에서 만나면 어떻게 상대할 건가요?) 그건 비밀이고요. (웃음) 서로 약점을 너무 잘 알아서 다른 타자들보다 신중하게 대결할 거예요. 절대 봐주지 않겠습니다.



프로에서의 출사표를 듣고 싶습니다.

당연히 프로에 들어가면 모두 신인왕을 꿈꾸잖아요. 마지막 라운드에 지명받았지만 1년이 지났을 때는 신인들 중에 최고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단 1군 캠프를 따라가야 해서, 국가대표팀 이후 남은 두 달 동안 몸 열심히 만들 예정이에요. (시즌에 돌입한 이후에 목표는 어떤가요?) 최대한 빨리 1군에 합류해서 전 구단을 상대로 1승씩은 꼭 하고 싶어요. 너무 욕심인가요? (웃음)


꼭 이루어지길 응원하겠습니다. <더그아웃 매거진> 공식 질문입니다. 박윤철 선수에게 야구란 무엇인가요.

야구란 인생이에요. ‘야구를 안 했으면 뭘 했을까’라고 생각조차 안 해봤어요. 야구만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함께할 제 인생입니다.


***

인터뷰 초반 수줍음 많은 24살 청년이었던 박윤철. 야구 이야기를 시작하자 내면에 품었던 그의 열정은 2019년 그가 마운드 위에서 펼칠 투구처럼 당차고 확실했다. 인터뷰 마지막, 박윤철은 다음 시즌 그의 이름을 연호할 한화 팬들에게 다음 시즌 포부를 밝혔다.

“한화 이글스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다음 시즌부터 한화의 유니폼을 입게 된 박윤철입니다. 올해 한화가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11년 동안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한화를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를 포함한 이번에 뽑힌 신인 선수들 역시 선배님들처럼 최선을 다해서 1군 무대에 올라 열성적인 응원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더그아웃 매거진 91호(11월호)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11월호(91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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