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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그 한국 축구'가 맞나요?

임기환 입력 2018.11.2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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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그 한국 축구'가 맞나요?

(베스트 일레븐)


‘한국 축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상대 박스 바깥에서만 돌고 도는 강강술래 빌드업(을 가장한 볼 돌리기), 고구마 먹듯 목이 메어오는 답답한 마무리, 습관적으로 탈선하는 궤도 이탈 크로스, 사소해서 그런지 사소하게 범하는 골대 앞 실수들.

이따금씩 감탄사가 나오는, 꽤나 빠르고 정돈된 플레이들도 나오곤 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가끔씩’이었다. 그게 몇 경기나 일관되게 꾸준히 나온 경우는 드물었다. “한국 축구 왜 이래?”에서 “한국 축구 원래 그랬지”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기억이다. 우리가 오래 알아 왔던 한국 축구의 익숙한 모습이다.

그랬던 한국 축구가 이젠 꽤나 생소하다. 생소하다는 건 이전과는 다르다는 의미인데, 다행히 그 ‘다름’이 고무적이다. 우선 빨라졌다. 뒤에서 공이 도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수평의 축구’가 ‘수직의 축구’로 전환되며 생긴 변화다. 쓸 데 없는 빌드업 과정이 사라지며 군더더기가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빠르고 간결해졌다.

선수 한 두 명의 드나 들어 생긴 변화는 아니다. 스타일과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오래 끌질 않는다. 대부분 원투 터치 내에서 연결을 끝낸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만 하더라도 시야를 멀리 두지 않고 무리한 돌파를 감행했던 황희찬의 경우, 공을 오래 끄는 단점이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선수 본인도 그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실제 파울루 벤투 감독의 지시로 나아졌다고 했다.

이뿐 아니다. 남태희를 비롯한 일부 몇몇도 공을 잡으면 끄는 성향이 있었다. 그러나 벤투 감독 체제의 대표팀에선 그런 모습들이 꽤 줄어 들었다. 어태킹 서드(상대 공격 1/3 지역)로 갈수록 템포가 빨라져야 공격이 먹힐 공산이 커진다. 센터 라인을 넘고 나면 수직으로 빠르게 속도를 올리는 모습이 잦아졌다.

이 철학을 구현할 새로운 얼굴로는 대표팀 신예 황인범이 가장 돋보인다. 왜소한 체구의 황인범은 그간 한국 축구의 3선에선 볼 수 없던 스타일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 스타일이 아직까진 제법 성공적이며 신선하게도 다가온다. 그가 가진 탈 압박, 방향 전환, 볼 간수, 센스 등 체격 빼고는 모든 면에서 대표팀에 들 만한 자질을 입증했다.


메트로놈처럼 동료와 패스를 주고받고, 패스의 속도와 질감을 달리 해 전방에 공급하는 역량도 지녔다. 원투 터치 내에서 경기 리듬과 템포를 조율할 줄 안다. 아시안게임을 뛰면서 성장했고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보다 더 왜소한 주세종도 2018 러시아 월드컵을 갔다 온 선수답게 이전의 애매한 플레이를 벗고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들은 기성용과 구자철 등 기존 주축 선배들이 빠진 빈 자리를 아쉬움 없이 메웠다.

‘2018 한국 축구 올해의 발견급’인 황의조는 한국 축구의 고질적 골 가뭄을 일거에 해소했다. ‘이런 선수가 왜 진작 뽑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잘해주고 있다. 소속 팀 감바 오사카에서 여섯 경기 연속 골,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세 경기 연속 골. 2018 아시안게임 득점왕(아홉 골) 황의조의 마무리 능력은 이미 아시아권에 가둘 수 없을 정도다. 호주 정도 되는 아시아 정상급 수비진을 상대로도 훌륭한 피니시를 선보였다. 이미 황의조는 대표팀의 최전방 제1 옵션으로, 다치지만 않는다면 아시안컵 본선 참가가 대단히 유력하다.

2선에 아무리 새 얼굴이 들어와 공격 작업이 매끄럽고 활발해졌다 하더라도 골을 넣지 않았다면 한국 축구는 언제나 같은 표정이었을지 모른다. 그라나 황의조의 가세로 그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황의조를 향해 공만 가면 해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든다. 그 기대에 황의조는 한두 경기가 아닌, 무려 열 경기 넘게 부응해냈다. 황의조를 위한 타이틀곡 제목을 헌정하고 싶다. 툭탁골. 툭 잡고 탁 밀어 넣으면 들어간다. 촌스럽지만 꼭 맞다.

한국 축구는 호주-우즈베키스탄 2연전을 통해선 시들었던 이청용마저 고개를 드는 경사를 누렸다. 이청용의 부활은 국내 축구 팬이라면 누구든 애타게 기다리고 응원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상급으로 기대감이 컸고, 지금도 믿기지 않는 부상으로 인해 화려한 시기가 꺾여버린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청용은 이번 2연전을 치를수록 ‘왜 이청용인가’하는 물음에 하나씩 대답해 나가는 듯했다. 여유로웠고 부드러웠고 급이 달랐다.

이밖에 눈에 잘 띄진 않아도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 나가는 골키퍼 포지션의 전개, 측면 수비의 잦은 공격 가담 빈도, 중앙 수비의 후방 빌드업 등이 벤투 감독 부임 이후 바뀌고 있는 패러다임들이다. 김진현이 됐든, 김승규가 됐든, 조현우가 됐든, 경기에 나서는 골키퍼는 땅볼 패스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주된 루트는 아니지만 노릴 땐 노려보라는 메시지가 시도에서 읽힌다. 이 모든 게 벤투 체제에서,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고 있다.

벤투 감독은 부임 이후 여섯 경기를 치르면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9월 코스타리카전 2-0 승리를 시작으로, 칠레전(0-0), 우루과이전(2-1), 파나마전(2-2), 호주전(1-1), 우즈벡전(4-0)까지 상승 무드를 이어나갔다. 과거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달성한 무패 기록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슈틸리케 감독은 미얀마나 라오스 같은, 아시아에서도 하위권에 드는 나라를 상대로 실체를 가렸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칠레나 우루과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강자로 분류되는 호주, 우즈벡을 상대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칠레의 수준높은 압박을 당당히 이겨냈고, 우루과이의 수비 라인을 호기롭게 뚫었다. 지난 두 번의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우리를 턱밑까지 위협했던 우즈벡은 갖고 놀았다. 그 결과 한국 축구 감독 데뷔 이후 최다 무패(여섯 경기) 기록도 세울 수 있었다.

사실 기록은 기록일 뿐이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이미 한 번 충분한 학습 효과를 얻지 않았던가. 슈틸리케 감독이 이끈 한국은 67.57%(25승 5무 7패)라는, 브라질까진 아니더라도 아르헨티나나 포르투갈을 보는 듯한 승률을 자랑했다. 그러나 실은 속빈 강정이었다. 물론 벤투호가 현재까지 보인 행보는 슈틸리케호완 차이가 크다. 내용과 결과 사이에 괴리가 거의 없다. 거두절미하고 재밌다. 체제가 바뀌고 치른 새로운 여섯 경기, 한국 축구가 잃어버린 재미를 찾았다.

글=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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