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열심히 했으니까"..마운드 내려온 곽정철은 이제 웃는다 [김은진의 다이아몬드+]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2018. 11. 2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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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제공

2016년 4월초, 김기태 KIA 감독은 한 선수 때문에 코끝이 찡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투수 곽정철(32)이 원정지였던 수원에서 엔트리 제외된 뒤 인사하러 온 이야기였다.

곽정철은 그해 시범경기에서 5년 만에 1군 마운드에 섰다. 부상으로 수술을 받은 뒤 긴 재활을 거쳐 다시 일어선 시즌이었다. 구위도 워낙 좋아 불펜의 핵심으로 기용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정규시즌 개막 이후 단 2경기 만에 손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는 혈행장애가 재발했다. 당초 1군에 두고 나아지기를 기다리려 했던 김기태 감독은 경기 중 벤치에서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곽정철의 모습을 목격한 뒤 어쩔 수 없이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어렵게 재기하자마자 또 한 번 시련을 맞은 와중에도 팀 분위기를 망치지 않겠다며 서둘러 혼자 광주로 이동하던 길이었다. 곽정철은 “몇 경기 던지지 못하고 또 빠지게 돼 죄송하다”고 인사하며 눈물을 쏟았다. 김기태 감독은 “나까지 울 뻔했다”며 선수로서 곽정철의 훌륭한 마음가짐을 칭찬하면서도 그에 따라주지 못하는 불운을 안타까워했다.

곽정철은 2016년 8월을 마지막으로 1군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해에는 갑상선 수술까지 받았다. 9번째 수술이었다. 그동안 어깨, 팔꿈치, 좌·우 무릎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2005년 1차 지명으로 KIA에 입단한 곽정철이 아프지 않고 던진 유일한 기간이 2007~2010년이었다. 건강한 곽정철은 좋은 투수였다. 그 사이 기량이 절정에 올랐고 2009년에는 철벽 필승계투조로 KIA를 12년 만에 통합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8월 다시 어깨 부상이 찾아오면서 재활과 복귀를 오가는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했다. 곽정철은 “나중에 죽으면 신을 만나 싸우고 싶다”고 농담하며 어처구니 없이 계속되는 시련들을 이겨보고자 했다.

지난해와 올해, 곽정철은 그래도 2군에서나마 던질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 6월 또 부상이 찾아왔다. 이번엔 팔꿈치였다. 결국 7월에 뼛조각을 제거하며 선수 인생 10번째 수술을 받은 곽정철은 결단을 내렸다. 한 시즌을 풀로 버틸 수 있는 몸이 되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곽정철은 “뼛조각 제거 수술 자체는 정말 간단한 수술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퇴원하고 재활을 하는데 한 번 더 해보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며 “지금 내 자리가 후배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데 더 버티는 것은 민폐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시간에 대해 후회가 전혀 없었기에 내려놓자고 결론을 내렸다”고 돌이켰다.

길었던 싸움을 끝내기로 결정한 곽정철은 그 길로 구단에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KIA 구단은 받아들였고 생각지 못했던 코치직을 제안했다.

곽정철은 이제 KIA 2군의 불펜 코치다. 지난 25일까지 후배들과 함평에서 훈련하며 이미 코치 데뷔식을 치렀다. 감사한 마음으로 이제 지도자로 변신하기 위해 본격적인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너무도 많이 아팠지만 그만큼 많이 노력했기에 곽정철은 2군의 젊은 투수들에게 그 자체로 좋은 본보기이기도 하다. 곽정철은 “엊그제까지 ‘형’으로 부르며 같이 운동했던 후배들이 어색해하면서도 ‘코치님’이라고 불러준다. 고맙다”고 웃으며 “선수들이 야구만 잘 하려 하고 관리를 등한시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줘서 나처럼 수술대에 오르지 않게 해주고 싶다. 기회도 아프지 않아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곽정철은 그동안 거쳐간 감독, 코치들은 물론 동료 선수들마저도 모두 인정하는 노력파다. 2005년 입단 이후 14년을 부상과 싸우면서 아무리 괴로워도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야구 생각밖에 하지 않고 살았다. 어떤 선배들은 “어쩌면 너무 열심히 하고 야구 생각밖에 안 하는 것이 정철이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쉬움은 전혀 없다. 5년 만에 1군 마운드에 오른 뒤 시범경기임에도 벅찬 마음에 울었던 곽정철은 다시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게 된 지금 홀가분하게 웃고 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곽정철은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볼걸’ 하는 생각이 지금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회도 미련도 없다. 아쉬운 것은 단 하나, ‘조금만 즐기고 놀면서 해볼걸’ 하는 생각은 든다. 후배들에게는 ‘운동할 땐 하고, 놀 때는 놀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웃었다. ‘좋은 투수’가 되고자 정말 열심히 노력했던 곽정철은 이제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또 새로운 노력을 시작할 참이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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