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인생 2막] 재활 센터장으로 변신한 하은주 "부상 선수들 마음?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맹봉주 기자 2018. 11. 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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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운동선수에게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미래를 가꿔 나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스포티비뉴스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사는 8명의 각계각층 인사들을 만나 선수 생활 이후 삶에 대한 조언을 들어 봤습니다. 선수들이 어떻게 인생 2막을 그려 나가야 할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꿈꾸고, 준비하고,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기획·제작됐습니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영상 한희재 기자] 선수 생활 내내 부상과 싸워왔다. "몸 상태가 어때요?"라는 말은 경기 후 기자들이 그녀에게 묻는 필수 질문이 됐다.

국가대표 출신 센터 하은주(36, 202cm). 일본 무대를 거쳐 2006년 신한은행에 입단한 하은주는 국내 최장신 여자 선수로 프로 입단 때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하은주가 이끈 신한은행은 2007년 겨울리그부터 2011-12시즌까지 통합 6연패에 성공하며 여자농구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신한은행에서 하은주는 총 세 차례 챔피언결정전 MVP(2008-09, 2010-11, 2011-12시즌)에 오르며 팀 골밑을 든든히 지켰다. 안방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오래 선수 생활을 이어 가진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녀를 괴롭혀온 무릎이 문제였다.

“은퇴하기 3년 전부터 선수 생활을 그만하기로 결심했어요. 늘 시즌이 끝나면 은퇴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팀 상황 상 쉽게 그만두기 힘들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수 생활을 세 시즌 더 한 게 잘한 일 같아요. 은퇴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었고 한 순간, 한 순간 운동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 국가대표 센터에서 재활 센터장을 변신한 하은주 ⓒ 한희재 기자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 선수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하은주는 달랐다.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할지가 명확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재능을 보였고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엘리트 선수도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일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하은주는 고등학교를 일본에서 나왔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놓고 고민할 때, 일본 내 최고 농구 명문 학교로 꼽히는 오오카가쿠엔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온 것이다. 치료 및 재활 비용을 포함해 장학금 일체를 지원해준다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일본에서 운동생활을 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운동선수가 운동만 하면 안 된다는 거였죠. 일본은 엘리트 선수들도 학교 공부에 충실해요.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일정 점수 이상이 나와야 졸업을 할 수 있거든요. 저도 일본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운동선수로서 스포츠에 대해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 스포츠심리학으로 전공을 삼았죠.”

신한은행 합류 후에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시즌이 끝나면 일본 대학을 오가며 수업을 들었다. 일본 세이토쿠 대학을 졸업한 하은주는 은퇴 후 국내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은 후 미국으로 떠났다.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에서 스포츠 심리학 박사 후 과정을 밟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하은주는 왜 스포츠 심리학에 꽂혀있던 것일까?

“선수들의 심리에 관심이 컸어요. 특히 부상 선수들은 정신적인 문제들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은 선수가 힘들어서 심리 상담을 받겠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봐요. 정신력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극복하라고 하죠. 미국은 다르더라고요. 오픈 마인드에요. 선수들이 숨기지 않고 자신의 문제점들을 얘기하죠. 한국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게 미국은 아니었더라고요.”

한국과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학업을 모두 마친 하은주는 올 초 한국에 돌아와 재활 센터를 차렸다. 오랫동안 공부한 스포츠 심리학을 부상 선수들이 재활하는데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재활 센터를)차릴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웃음)? 선수 시절, 경기장에 가면 기자들이 항상 물어보던 게 있어요. '하은주 선수 무릎 어떠세요?'란 질문이었죠. 선수 생활 내내 안 아픈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부상을 달고 살았어요. 저처럼 부상에 지쳐있는 선수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어요. 아파서 재활할 때면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때 제가 옆에서 조금이나마 힘을 줄 수 있을 때 보람을 느껴요. 제가 누구보다 부상 선수들의 마음은 잘 알 거든요. 또 내가 그들의 선수 생활을 연장시켰구나하는 자부심도 있고요. 제가 선수 시절 겪었던 아픔이나 실패가 재활 센터 운영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 신한은행이 왕조를 구축하던 시절, 하은주는 팀의 중심 선수였다 ⓒ WKBL
▲ 하은주의 높이를 막을 적수는 없었다 ⓒ WKBL

여자농구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정하는 선수들이 많다.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에서도 20대 초, 중반에 선수 생활을 그만 둔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하은주의 은퇴 후 삶은 일반적인 운동선수들과는 다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던 공부에 매진했고 지금은 재활 센터장으로서 부상 선수들의 복귀를 돕고 있다. 지금 은퇴를 고민하거나, 은퇴를 결정한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은퇴를 결정한 선수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 달라"는 물음에 하은주도 눈빛을 반짝였다.

“은퇴를 결심한 선수들은 불안할 거예요. 밥 먹고 한 거라곤 운동밖에 없으니까요. 또 부모님이나 지도자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듣는 얘기가 있어요. '운동 아니면 뭐 먹고 살거야?'란 말이죠. 입버릇처럼 하는 주위 사람들의 이 말에 세뇌가 되요. 하지만 막상 밖에 나오면 정말 할 게 많아요. 이 세상은 기회가 많아요. 운동선수들은 끈기와 체력이 강점이에요. 일반인들은 절대 따라오지 못하는 점이죠. 운동선수 출신이라고 하면 무시 받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안 그래요. 운동선수들 특유의 인내심으로 노력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10년 한 것을 5, 6년 만에 따라갈 수 있을 거예요.”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기획·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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