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김연아처럼' 한국 피겨 역사 개척하는 차준환

이석무 2018. 12.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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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피겨스케이팅의 희망 차준환(오른쪽)이 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금메달리스트 네이선 첸(가운데), 은메달을 따낸 우노 쇼마(왼쪽)와 함께 시상대 위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17살 소년 차준환(17·휘문고)이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다시 썼다. 10여년 전 ‘피겨퀸’ 김연아처럼 볼모지나 다름없는 남자 싱글 부문에서 개척자로 나서고 있다.

차준환은 지난 8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018~1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싱글에서 총점 263.49점을 기록,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전날 쇼트 프로그램에서 89.07점으로 중간순위 4위였던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91.58점에 예술점수(PCS) 83.84점을 합쳐 174.42점을 받아 최종 순위 3위로 올라섰다. ‘점프 천재’ 네이천 첸(미국·282.42점), 평창올림픽 은메달 우노 쇼마(일본·275.10점)와 나란히 시상대에 올랐다.

차준환이 이번 대회에서 기록한 프리스케이팅 점수와 합계 점수는 모두 개인 최고점이었다. 처음으로 출전한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였지만 흔들리지 않고 제 실력을 100% 발휘하는 담대함을 뽐냈다.

그랑프리 파이널은 한 시즌 그랑프리 대회 성적을 합산해 상위 6명만이 출전하는 ‘왕중왕전’이다. 한국 남자 선수가 그랑프리 파이널에 참가한 자체가 차준환이 처음이었다.

차준환 이전에 한국 선수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메달을 딴 것은 김연아가 유일했다. 김연아는 4차례 그랑프리 파이널에 참가해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차준환은 아직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하다. 이제 시니어 무대 데뷔 2년 차다. 이번 그랑프리 파이널에 출전한 6명 가운데 차준환이 가장 어렸다. 함께 경쟁한 31살 노장 세르게이 보로노프(러시아)와는 14살 차이나 난다.

차준환은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 피겨의 희망으로 주목받았다. 어린 시절 아역배우로 활동했던 차준환은 초등학교 때 피겨에 입문하자마자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다. 초등학교 때 3회전 점프 5종(살코·토루프·루프·플립·러츠)을 모두 마스터했다. 중학교 때 이미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형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차준환의 잠재력이 본격적으로 폭발한 것은 2015년부터다. 중학교 2학년이던 2015년 12월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랭킹 대회에서 국내 남자 싱글 역대 최고점(220.40점)을 갈아치우며 1위를 차지했다. 이어 ISU 주니어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선 한국 남자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성공시켜 정상에 올랐다. 당시 기록한 239.47점은 주니어 남자 싱글 역대 최고점이었다.

차준환은 이후에도 주니어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그해 주니어 그랑프리 7차대회에서 우승했고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3위에 올랐다. 단숨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피겨 유망주로 자리매김했다. 남녀를 통틀어 김연아 이후 11년 만의 주니어 그랑프리 메달이었다.

차준환이 유망주에서 세계 톱클래스 선수로 발돋움한 계기는 브라이언 오서(캐나다) 코치와의 만남이었다. 오서 코치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 간 김연아의 개인코치를 맡았다.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데 오서 코치의 도움이 컸다. 차준환은 중학교 2학년이던 2015년부터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크리켓 스케이팅 & 컬링 클럽에서 오서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오서 코치는 현역 시절 ‘미스터 트리플 악셀’이라 불릴 정도로 최고의 점프를 자랑했다. 오서 코치는 차준환에게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하려면 쿼드러플 점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했다. 쿼드러플 점프에 부담을 가졌던 차준환도 오서 코치를 믿고 도전에 나섰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차준환의 몸이 버티지 못했다. 시니어 무대 데뷔를 앞두고 스케이트 부츠가 맞지 않는 문제까지 겹쳤다. 무리하게 쿼드러플 점프 훈련을 하다가 오른쪽 발목과 왼쪽 고관절 부상이 찾아왔다.

국제대회에서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부진이 이어졌다. 국가대표 탈락 위기까지 몰렸다. 하지만 마지막 3차 선발전에서 완벽한 연기로 대역전드라마를 쓰면서 극적으로 평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차준환의 선수 인생에서 큰 터닝포인트가 됐다. 선발전이라는 큰 고비를 넘긴 차준환은 평창에서 높이 날아올랐다.남자 싱글 선수 중 최연소로 출전해 새로운 개인 최고점을 썼다. 15위라는 역대 한국 남자 싱글 최고 성적을 거뒀다.

평창에서 수확한 자신감은 차준환이 더 큰 선수로 올라서는 밑거름이 됐다. 비시즌 동안 기술과 체력을 착실히 보완했다. 특히 부상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체력적인 부분에 크게 신경 썼다.

차준환은 지난 9월 캐나다 오크빌에서 열린 ‘어텀 클래식 인터내셔널’ 대회에서 개인 최고점을 갈아치우며 은메달을 따냈다. 그랑프리 시즌을 앞두고 돌풍을 미리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결국 차준환은 두 차례 그랑프리 시리즈 대회에서 동메달 2개를 따내며 남자 첫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을 이뤘다. 여기에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최고의 연기로 동메달 획득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차준환은 대회를 마친 뒤 “첫 그랑프리 파이널 도전에서 동메달을 따서 너무 기쁘다”며 “즐기려고 했지만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개척자라는 수식어가)부담은 되지만 그 부담을 더 열심히 해야하는 이유로 만들려고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21일부터 국내에서 개막하는 회장배 대회 출전을 위해 11일 귀국하는 차준환은 “올해는 다치지 않는게 목표다. 매년 발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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