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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베트남은 지금 거대한 용광로..박항서발 축구 열풍

송지훈 입력 2018.12.1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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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을 구하기 위해 스즈키컵 결승전이 열릴 미딩 국립경기장 앞에 진을 친 축구팬들. 송지훈 기자

“가족과 함께 스즈키컵 결승전을 꼭 보고 싶은데 표를 한 장도 구하지 못했다. 일단 경기장 앞에서 밤을 새며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다.”

14일 저녁 베트남 하노이 미딩 국립경기장 정문 앞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은 더듬거리는 영어로 “표를 싸게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알려달라”고 했다. 주변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대부분 비슷한 이유라고 했다. 인근 베트남축구협회(VFF) 건물 근처에도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과 이들을 대상으로 암표를 팔려는 사람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결전을 앞둔 하노이는 뜨거웠다. 박항서(5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몰고온 축구 열기다. 베트남은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우승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앞서 치른 원정 1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2-2로 비겼다. 15일 열리는 결승 2차전에서 비기더라도 0-0이나 1-1이면 우승컵을 품에 안을 수 있다. 골득실이 같을 경우 원정득점이 많은 팀에 우선권을 주는 대회 규정 덕분이다.

스즈키컵 결승전을 앞두고 미딩 국립경기장 주변 통신 시설을 점검하는 엔지니어들. 송지훈 기자

지난 2008년 이후 10년 만의 정상 탈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베트남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암표값부터 치솟았다. 지난 주 100달러(12만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던 결승 2차전 2등석 티켓 가격은 어느새 500달러(60만원)까지 뛰어올랐다. 베트남 공무원들의 평균 월급이 30만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월급의 두 배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경기장 주변을 지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운전자들에게 암표 판매를 시도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국내에는 일찌감치 모든 티켓이 매진됐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현장에서 확인하니 사실이 아니었다. 베트남축구협회 홍보담당자는 “경기 당일 판매분이 남아 있다. 단, 몇 장을 판매할 지는 모른다”고 했다. 베트남축구협회에는 ‘티켓분배위원장’이라는, 우리 시각으로는 무척 생소한 직책이 있다.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주축 미드필더 르언 쑤언 쯔엉이 함께 출연한 금융회사 광고. 송지훈 기자

홈에서 열리는 대표팀 경기의 티켓 분배를 책임지는 역할인데, 온라인 및 현장 판매의 비율과 규모를 결정하는 게 오롯이 그의 몫이다. 초청권 발행 규모도 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라 가능한 역할인 셈이다. 경기장 앞에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은 혹시 모를 현장 판매분에 기대를 걸고 하루 전에 일찌감치 줄을 선 셈이다.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건 축구팬들 뿐만이 아니다. 박항서호가 스즈키컵에서 승승장구하며 한국과 베트남의 미디어가 뒤늦게 앞다퉈 취재 신청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베트남축구협회 홍보담당자는 "스즈키컵 취재 신청은 공식적으로 대회 개막 한 달 전에 마감했다. 베트남이 4강에 오른 이후 수백 명의 추가 신청자가 나왔지만, 적정 범위를 초과했다는 판단에 따라 모두 불허했다"고 말했다.

하노이 시내는 온통 ‘박항서 물결’이었다. 시내 곳곳에서 박 감독이 출연한 광고판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박 감독의 얼굴이 랩핑된 버스와 택시도 흔했다. 택시 기사 티 우엔 씨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박항서 감독의 이미지는 ‘약속을 지킨다’, ‘따뜻하다’, ‘함께 간다’, ‘친절하다’ 등 긍정적인 요소들 뿐”이라면서 “스즈키컵에서 우승하면 박 감독에게 베트남 시민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하노이=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미딩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 축구대표팀 훈련 취재 후 현지 기자들이 기사와 사진을 송고하기 위해 경기장 인근 계단에 진을 쳤다 . 송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