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축구

주목할 베트남의 체력, 박항서는 마법이 아닌 맥을 짚었다

임성일 기자 입력 2018.12.17. 15:17 수정 2018.12.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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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입상이나 수상과 거리가 멀었던 베트남 축구가 연달아 성과를 냈다. '매직'이라 설명하지만, 사실 준비된 노력의 결실이다. © AFP=News1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이전까지 입상이나 수상과는 거리가 있던 베트남 축구가 제법 큰 국제대회에서 준우승(1월, AFC U-23챔피언십), 4강(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그리고 우승(12월, AFF 스즈키컵)이라는 놀라운 열매를 연속적으로 따냈으니 베트남 전체가 들썩이는 게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지금껏 베트남 축구사에 이런 쾌거는 없었다.

볼수록 신기한 이 성과가 모두 2018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일이다. 3~4년 장기 플랜을 세우고 차근차근 투자해 발전시킨 뒤 수확한 결실이 아니기에 또 놀랍다. 지금 상황을 딱히 설명하기 힘든 까닭에 '박항서 매직'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도자 박항서가 정말 마술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 진짜 마법이 펼쳐졌을 리는 없는 일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지금 베트남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내고,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속성 코스를 밟아 팀을 빠른 시간 내 업그레이드 시켰던 준비된 노력의 결실이다.

세세하게 들어가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으나 주목할 것은 선수들의 달라진 체력 그리고 그 힘을 통해 발전된 조직력이다.

스즈키컵을 통해서, 그리고 앞선 U-23챔피언십이나 아시안게임에서 파악된 베트남 축구의 가장 큰 변화는 선수들의 활동량이다. 기본적으로 많이 뛰었다. 경기 초반 바짝 뛰다 마는 '오버페이스'가 아니라 90분 내내 스피드와 스태미나를 유지했다는 게 놀랍다.

1월 U-23 챔피언십 결승에서 베트남은 우즈베키스탄과 만났다. 준결승에서 한국을 4-1로 대파한 우즈벡은 대회 최강 전력이란 평이었다. 베트남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폭설이 내렸으니 배경도 좋지 않았다. 그 와중 120분 혈투를 대등하게 소화했다. 결과는 1-2 베트남의 석패. 연장후반 14분 통한의 실점을 허용해 무릎을 꿇은 아쉬운 결과였다.

비록 패했으나 당시 베트남 선수들의 투혼은 충분히 놀라웠다. 특히 그들은 토너먼트 8강과 4강에서 각각 이라크와 카타르를 승부차기로 꺾고 마지막 무대에 올랐다. 3경기 연속 120분 경기를 치렀다는 것인데, 믿기 힘든 움직임을 보여줬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도 그랬다. 일본을 꺾은(1-0) 이변을 예로 든다. 당시 주도권은 분명 일본이 쥐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베트남이 가드만 올리고 있던 경기는 아니다.

일단 잘 막았다. 일본 특유의 패스연결이 효과적으로 이뤄졌으나 베트남 수비는 좀처럼 틈을 내주지 않았다. 조직적으로도 단단했고 개인 마크도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역습도 좋았다. 공을 빼앗았을 시에는 빠르게 치고 올라가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빈도가 적잖았다. 많이, 함께 뛰며 잘 막아낸 뒤 소유권을 쥐었을 때 곧바로 역습을 취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 경기 후 일본의 '스포츠호치'는 "슈팅수도 일본이 7개, 베트남이 13개였고 공 점유율도 상대가 64%였다"고 짚은 뒤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일본을 철저하게 대비, 전방에서부터 압박 플레이를 펼쳤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베트남 선수들의 체력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 AFP=News1

스즈키컵에서도 이런 패턴은 이어졌다.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경기 초반부터 후반 막바지까지 선수들이 한결 같은 자세로 뛰었으며 개개인이 도드라지려는 것보다는 팀으로 움직였다.

마냥 정신력의 힘으로 해석하긴 힘들다. 충분히 체력적인 대비를 했고 그래서 조직력을 높인 결과다. 2002 한일월드컵 때 의무팀장으로 히딩크 사단의 4강 신화에 힘을 보탰던 최주영 재활 트레이너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베트남 대표팀에 합류한 배경까지 고려한다면, 박항서 감독 머리에 '체력과 조직력이 기본'이라는 계산이 잡혀 있었을 공산이 크다.

냉정하게 접근할 때 베트남 축구의 절대적인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세련미와는 거리가 있다. 스즈키컵에서 만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실력이 대단하진 않았다는 것도 고려해야한다. 그래도 사이에서 경쟁력을 보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특히 실점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적인 승리 방정식을 따르려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내년 1월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노리는 벤투호도 염두에 둬야할 일이다. 체력은 기본이다. 그리고 이 악물면 발휘되는 게 아니라 과학적, 체계적인 훈련이 요구되는 요소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기술도 조직력도, 모두 개개인의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발휘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트남의 우승은 마술이 아니라 맥을 잘 짚은 결과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