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톡 영상]②이진영, 역대유일 '20년-3할-2천G-2천H' 그리고 쌍방울

이재국 기자 2018. 12. 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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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영이 스포츠타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또 하나의 별이 졌다. 올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국민 우익수’ 이진영(38). 1999년 쌍방울에 입단한 뒤 SK와 LG를 거쳐 2018년 KT에서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약육강식의 정글 속에서 무려 20년을 버텨온 그는 통산 3할대 타율(0.305)과 2000경기, 2000안타의 위업을 달성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2006년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 2회 WBC 준우승 등 숱한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하면서 한국야구 르네상스 시대의 한 축을 이뤘던 ‘국민 우익수’는 ‘야잘잘’이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고 정든 무대를 퇴장했다.

한 해를 마무리를 하는 시점,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손님을 만났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20년간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이진영. 팬들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준 ‘국민 우익수’이기에. <①편에 이어>

#3. 3할타자

이진영을 떠올리면 늘 3할을 칠 수 있는 타자로 기억된다. 계산이 서는 선수, 믿음을 주는 선수였다. 은퇴 시즌에 규정타석에 미달됐지만, 0.318로 마무리했다. 통산 타율 0.305로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20년, 2000경기, 2000안타…. 현재 KBO리그에서 이 기록을 모두 달성한 선수는 장성호(20년-2064경기-2100안타), 정성훈(20년-2223경기-2159안타)과 함께 3명밖에 없다. 선수라면 누구나 한 가지라도 달성하면 좋을 기록을 이진영은 3가지나 해냈다. 여기에 통산타율 3할까지 더하면 KBO리그 역사상 유일한 선수가 바로 이진영이다. 장성호는 0.296, 정성훈은 0.293으로 통산타율을 마감했다.

이진영은 기록들을 열거하자 박수를 쳤다. 스스로 생각해도 뿌듯한 듯했다.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의미의 박수였다. 그는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대단한 기록인 것 같다. 20년간 (프로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면서 “항상 형들 만나면 그렇게 얘기한다. 촌(군산)에서 올라와서 출세했다고. 쌍방울의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해 이런 기록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다. 아쉬움이 남는 기록들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이진영 ⓒ 스포티비뉴스

아쉬운 기록은 뭐가 있을까. 통산 기록을 찾아보니 미완성으로 끝난 듯한 기록 2개가 눈에 띈다. 바로 통산 타점과 통산 득점이다. 그런데 숫자가 흥미롭다. 979타점과 979득점으로 똑같다. 1000에 21개가 모자란다.

이진영 역시 “참 재미있는 기록인 것 같다”면서 “2000경기와 2000안타도 동시(2017년 6월 16일 수원 한화전)에 달성했다. 1000타점과 1000득점도 기록이 비슷비슷하게 오르내려서 함께 달성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면서 “어쨌든 지금은 못하게 됐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은퇴하기 전에 했어야지’라는 답이 생기더라”며 웃었다.

스스로 “욕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개인기록에 대한 욕심. 그러나 후회는 없다.

“어느 순간부터 개인 기록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더라. 개인 기록에 욕심을 부리면 팀에 도움이 되는 게 없다. 간혹 그런 선수들이 있다. 개인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팀의 승패와는 전혀 상관없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 특히 고참, 선배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후배들한테 더더욱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플레이를 하자고 다짐했다. 어떤 모습이 좋은 모습인지는 나와 있지 않나. 열심히 치고 열심히 뛰고, 태만하지 않는 플레이. 20년 동안 해보니까 기본이지만 사실 그게 잘 안 되더라. 물론 첫 번째는 야구를 잘 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이 아니라, 팀에 도움이 되는 기록들이 중요하다. 후배들에게 ‘아, 이 선배가 이 나이에도 잘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하는, 그런 부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2004년 1리 차이로 타격왕 밀린 '만년 2인자'

누적기록은 화려하지만, 그는 늘 2인자에 머물렀다. 한 번도 1위를 하지 못했다. 이진영은 “통산 경기출장 기록도 정성훈에 이어 2위”라며 웃었다. 그가 1위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2004년 타격왕 경쟁. SK 시절이던 그해 이진영은 0.342의 타율을 기록한 뒤 부상으로 시즌을 먼저 마감했다. 당시 타격왕은 현대 외국인타자 클리프 브룸바로 0.343을 기록했다. 1리 차이로 타격왕을 내주고 2위에 만족해야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진영은 “솔직히 타격왕에 대해 많이 기대를 했었다. ‘1위를 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SK와 현대는 공교롭게도 10월 5일 수원에서 시즌 최종전을 치렀다. 이날 경기 전까지 이진영은 0.342, 브룸바는 0.341로 이진영이 1리 앞서 있었다. 그러나 1회 첫 타석에서 볼넷으로 나간 브룸바가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SK 선발투수 신승현을 상대로 중전안타를 치면서 타율이 0.343으로 올라가 오히려 1리 차이로 역전돼 버렸다.

이진영은 “신승현 선수가 브룸바에게 안타를 맞더라. 그때 난 집에서 양치질을 하면서 TV로 경기를 봤는데, 신승현 선수가 (브룸바에게) 안타를 맞는 모습을 보고 칫솔로 목을 찔렀다. 너무 흥분해 가지고”라고 설명하면서 “그것도 내 운명인 것 같다. 촌놈이 타격 2위를 한 것으로도 만족해야지”라며 웃었다.

◆마지막 쌍방울 선수

이진영은 그동안 ‘마지막 쌍방울 현역선수’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다. 1990년 창단해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세상을 살다간 ‘쌍방울 레이더스’는 팬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만년 하위팀에서 1996년과 1997년 돌풍을 일으켰던 돌격대는 그러나 모기업의 재정 악화로 1999년을 끝으로 해체의 운명을 맞이했다. 1999년에는 신인조차 1차지명한 군산상고 출신의 이진영만 계약했을 정도다. 다른 팀 선수들이 호텔에 묵을 때 쌍방울 선수들은 여관방을 전전했고, 식사도 다른 구단에 비해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그 역사의 현장을 몸소 체험한 마지막 돌격대 현역선수 이진영이 은퇴하면서 이젠 쌍방울의 흔적도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이진영에게 ‘1999년 쌍방울 시절의 이진영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춥고 배고프고 힘든 부분이 많았던 팀인데, 거기서 잘 견뎌줬다”며 웃었다. 그 역시 쌍방울을 떠올리면 뭔가 가슴 한 구석이 짠해지는 듯했다. 그는 “쌍방울에서 힘든 시절을 경험한 것이 프로선수 생활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된 것 같다. 힘든 시기가 지나고 단단해졌다. 쌍방울은 20년 동안 야구를 할 수 있게 큰 힘이 돼준 뿌리라고 해야 하나? 야구를 잘 할 수 있는 뿌리, 그 역할을 해준 것 같다”며 쌍방울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③편에서 계속>

▲ 이진영(오른쪽)이 스포티비뉴스 이재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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