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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Interview] LG 트윈스 임훈 코치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01.1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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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한 살림꾼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을 나타내는 인사가 아니었다. 임훈에게 ‘안녕’은 또 다른 만남, 또다시 시작을 의미했다. 프로 15년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임훈은 코치라는 직함을 달고 야구계에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현역 시절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임팩트 있는 플레이어로 팬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긴 그가 지도자로서 나서는 첫걸음에 <더그아웃 매거진>이 함께했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표권향 Location 대단한미디어



#‘끝이 아닌 연장선’ 선수에서 코치로

지난 10월 임훈은 현역 생활을 마쳤다. 그라운드에 선 시간은 15년이었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은퇴였다. 동료와 지인들이 더 아쉬워했다. 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와 위치를 알기에 빠른 결정을 내렸다. 본인은 홀가분 하다는 견해다.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길, 어려서부터 그려왔던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살이 조금 쪘다. 마음이 편해진 것인가 아니면 여유가 생긴 것인가.

선수 생활을 15년 동안 오래 하다가 약간의 휴식기가 오니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2018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 다른 해와 다른 비시즌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다.

시즌 종료와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들도 만나고 육아에 힘쓰는 중이다. (웃음) 2019시즌부터 내가 맡은 부분이 있고 이 분야에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영상을 보며 공부하고 있다.

현역 연장과 코치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다. 코치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건 내 몸 상태다. 매년 재활군에 가지 않았는가. ‘아, 이제 내가 선수로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직에 대한 제의를 받고 억지로 힘들게 이어가려는 욕심보다 차라리 빨리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후배들이 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얼른 한자리 내주고 나는 나의 꿈을 위해 다시 한번 달려가 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LG는 어린 선수를 육성하는 팀으로 굳혀졌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도 영향을 끼쳤는가.

그런 점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선수들과 경쟁했을 때 건강한 상태라면 할 테지만 지금 내 몸을 보면 오히려 팀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부상도, 몸이 아픈 것도 내 탓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따져봤을 때 이게 맞지 않겠냐고 판단했기에 은퇴를 결심했다.

많은 이의 조언도 있었다. 어떤 이의 말이 결정짓게 했는가.

누구의 말에 따라 결정한 건 아니다. 내 결정이 제일 컸다. 아내가 “오빠가 선택한 거로 해”라며 믿어준 덕분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아직 한창 더 뛰어도 될 나이이며 실력이다. 아쉬움은 없는가.

처음에는 아쉬웠는데 지금은 잘 됐다고 생각한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시작한 것으로 생각하니 나쁘지 않다.



코치가 된 후 위로를 받았는가, 축하를 받았는가.

친구들로부터 응원을 많이 받았다. 한화 이글스 (정)우람이, SK 와이번스 (최)정이, (윤)희상이, (한)동민, (임)창민이 등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처음에는 내가 못 받았다. 이후에 통화할 때 다들 “왜 더 하지”라고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설명했고 특히 몸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그래, 네가 선택한 것이니까. 넌 잘하니까”라는 말이 지배적으로 많았다.

소식을 듣고 주변 반응도 궁금하다. 특히 SK와 LG 선수들 사이에서 ‘엄마’ 역할을 했다.

다들 아쉬워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왜 그렇게 빨리 그만두냐”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잘했다. 너는 잘할 것이다. 그런 것에 특화돼있다”라며 응원해줬다. 후배들을 챙겨주는 게 몸에 배어 있고 좋아하기 때문에 코치가 돼서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 제안받은 건 2군 코치였다. 그런데 육성군을 맡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신인 선수를 케어하는 게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술적인 것보다 멘탈,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예전부터 올곧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선수들이 더 따르는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코치’는 어떤 모습인가.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많이 들어야만 조언해줄 수 있다. 사실 코치가 선수를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들으면서 나도 배우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해서 잘 쳤으니 너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선수만의 장점이 있을 것이고 그걸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코치의 역할이다.

본인만의 방법론 중 하나인가.

2군 생활을 위해 야구를 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1군에 올라가 선수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멘탈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선수들에게 이 부분을 강조하고 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코치로서의 삶에 기대가 많을 것 같다.

사실 준비를 많이 해왔다. 코치가 돼도 야구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도 배우면서 성장할 기회라고 본다.



#나를 울게 하는 그 이름 ‘팬 그리고 동료’

신일고 3학년 당시 1루수 3번 타자로서 4번 나지완과 2003 황금사자기 우승팀으로 이끈 주역이었던 임훈. 왼손 투수가 필요한 경우 등판했다가 1루수로 돌아가는 등 맹활약했다. 꿈에 그리던 프로의 꿈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2004시즌 신인 드래프트 2차 5라운드(전체 35순위)로 SK에 입단했다. 하지만 외야 자원이 넘쳤던 SK에서 입지를 굳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KBO리그 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리턴픽을 경험하기도 했던 그는 LG로 트레이드돼 현역 생활을 마쳤다. 하지만 선수단 내 그가 맡은 역할은 리그 최고의 동료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현역 시절 빠른 발이 넓은 수비 범위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요한 순간 호수비로 팀을 구했다.

흔히 ‘수비를 나가면 긴장된다’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런 불안함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정확한 송구, 강한 어깨, 타구 판단 등에 자신 있었다. 수비는 부담이 없지만, 타격은 꾸준히 해결해야 하는 숙제였다.

그렇다고 타격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한번 치기 시작하면 몰아쳤고 특히 단타를 장타로 만드는 능력도 탁월했다. 선수 생활을 총평한다면.

빛나는 슈퍼스타가 아니기에 야구장에서만큼은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가 2군이든 1군이든 최고의 플레이보다 최선의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라운드에 나섰다. 이런 생각은 프로 야구 선수라면 첫 번째로 가져야 하는 것 같다.

이런 마음이라면 벌크업을 해볼 만도 했을 것 같다. 워낙 가지고 있는 신체 조건이 좋지 않은가.

고민한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모든 선수가 똑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홈런을 많이 쳐야 하며 출루를 잘해야 하고 도루의 가치는 떨어졌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잘 맞지 않았다. 선수마다 장단점이 있기에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 데 집중했다.

겉으로 순탄해 보여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임훈 하면 리턴픽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롯데 자이언츠로 갈 때는 ‘어, 가는구나’라고 생각했고, 다시 SK로 간다는 소문을 들었을 땐 사실 안 가고 싶었다. 여기 있다가 다시 SK로 돌아가면 지금과 같은 기분으로 야구를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다행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구단과 선수들이 도와줘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계산된 시나리오라는 소문도 있었다. 구단보다 본인이 감당해야 할 상처가 컸을 것 같다.

잘 왔다고 하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조금 힘들었다. 그 힘듦이 오래 가진 않았지만… 그런 성격도 아니고! ‘내가 이 팀에서 이 정도 구나’라는 생각에 위축됐다. 20인 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잡는 계기가 됐고 나에게는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당시 SK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기 때문에 다시 부른 것 아닌가.

그렇다. 결국, SK로 돌아가서 친구, 후배, 선배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 운동 외적으로도 행복한 추억이 깃든 팀이다. 결론적으로 잘 간 것 같다.

잠시 떠났다가 돌아온 SK에서 2012년 드디어 주전을 꿰찼다. 본인이 생각할 때 가장 찬란했던 시즌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2014시즌이 제일 좋았다. 가장 많은 변화를 준 시즌이었다. SK에 있을 땐 한 시즌이 아니라 내내 즐거웠다. 정이, 우람이, 희상이, (김)광현이 지금 동민이도 있고 (박)정권이 형, (김)강민이 형, (조)동화 형, (박)재상이 형 등 우승 멤버들! 한국시리즈도 4년이나 같이 나갔으니까 그땐 그냥 재밌었다. 야구장에 나가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마냥 행복했다.



2015년 7월 LG로 트레이드될 때 SK 팬들이 굉장히 아쉬워했다. 임훈의 응원가를 잊지 않겠다는 댓글도 많았다.

댓글을 잘 안 보는데 트레이드되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팬들이 많이 응원해주고 있다고 했다. 물론 댓글들이 전체적인 입장은 아니겠지만…. (웃음) 덕분에 마음을 다스리고 새로운 팀에 적응을 잘할 수 있었다. LG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색깔을 잘 보여준 것 같다.

당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목소리가 밝았다. 밝은 척 한 것인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는가.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했다. 다행히 LG 팬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밝아졌다.

그때 “나 원래 서울 사람”이라고 했다. 서울팀으로 올 때 기분은 어땠는가.

양상문 전 감독님께서 SK의 좋은 팀 문화와 분위기를 아이들에게 알려주라고 주문하셨다. 나 또한 이를 위해 노력했다. 내 돈 들여서 밥을 사주고 힘든 친구가 있으면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이런 일들이 있었기에 일전에 ‘엄마다’란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LG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자리를 통해 그동안 응원해준 모든 야구팬에게 인사 부탁한다.

사실 크게 생각하고 인터뷰에 응한 건 아닌데, 팬들에게 한마디를 하라고 하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15년 동안 야구를 하면서 좋은 적도 많고 힘든 적도 많았습니다. 못할 때도 격려해주신 팬들의 응원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코치로서 제 인생을 사는데,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서 후배들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앞으로 LG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항상 가을 야구에 진출해 한국시리즈까지 가는 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5년 동안 응원해주신 SK, LG 팬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사랑의 노트’ 한 계단씩 올라가자

임훈은 현역으로 입대해 신병교육대 조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보통 조교라고 하면 ‘독사’, ‘악마 조교’ 등의 별명이 붙지만, 그는 부드러운 인상과 친근한 성격으로 훈련병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지금까지 그 당시의 훈련병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고 하면 말 다 한 것이 아닌가. 그런 그가 이젠 육성군 코치로서 가장 힘든 프로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들을 만난다. 코치로서 보여줄 그만의 카리스마가 선수들에게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후배 사이에서 가교 구실을 했다. 친정팀인 SK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LG의 어린 선수들까지 아우르더라.

후배들이 잘 따라줬다. 트레이드되고 나서 팀 주축 선수인 (오)지환이라든가 정주현, 이형종, 채은성, 이천웅이 나를 잘 따랐다. 내가 식사하자고 말했을 때 흔쾌히 같이 나왔다. 그때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마다의 고충을 내가 케어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야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여기도 사회이지 않은가. 사람 사이의 유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서로의 끈끈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건전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등 노력했다. 후배들 앞에서 재롱(?) 섞인 춤과 노래를 선보이기도 했다.

친한 사람이 없어 내 나름대로 노력했다. 모두와 잘 지내고 싶었다. 이런 모습이 후배들에게는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이미지가 심어졌나 보더라. 후배들도 개중에 했던 말이 ‘이래서 SK가 야구를 잘했던 거군요’였다.

후배들이 왜 임훈을 따른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항상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게 열어놓고 다가간다. 먼저 오픈하니까 후배들도 편안하게 오픈한다. 거기에서 서로 마음이 붙다 보니 이런 유대 관계가 생기는 것 같다. 계산적인 삶이 싫다. 그런 사람들도 싫다. 그냥 ‘내가 너 좋은데? 너는 나 안 좋아해도 돼. 나는 너 좋다. 우리 만나보자’ 이렇게 살고 있다.

SK 선수들도 여전히 임훈을 찾는다. 최정이 이번 FA 계약 때 조언을 구했다. 그가 6년 계약을 할 수 있던 데는 임훈의 역할이 컸다던데.

아이 그런 건 아니고! (웃음) 정이는 어차피 야구를 잘하는 친구다. 내가 한 말 때문에 계약이 성사된 건 아니다. 계약은 에이전트가 하는 것이지, 나는 개인적으로 정이한테 “네가 최고다. 너 자신을 구속하지 마라. 그런데 왜 자꾸 구속하느냐?”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번에도 만나서 멋지게 마무리를 잘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최고였는데, 이젠 코치로서의 인기도 기대해도 되겠는가.

내가 하기 달린 것이다. LG에서 선수로서 있을 때 보니까 내 위로 5명밖에 없더라. 오래 하긴 했는데, 더 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래, 그만하자’라고 결정하고 코치로 왔다. 그런데 코치가 되니 또 막내더라! (웃음) 새롭게 다시 막내 시절을 거치면서 시간이 흐르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선수 시절에도 같은 생각을 했다. ‘한 번에 열 계단을 오르지 말고 한 계단씩 오르자! 그렇게 오르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 내가 열 계단을 올라왔구나’라고 생각하자고 말이다. 앞으로도 이 마음가짐을 가지고 전진할 것이다.

한 팀이라고 하지만 자라온 환경, 성격, 실력, 연봉이 모두 다르다. 특히 잔류군에는 무거운 마음을 가진 선수들이 많을 텐데, 어떻게 팀을 꾸려나갈 계획인가.

사실 1군과 2군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어떠한 부분을 깨우치느냐 안 깨우치느냐에 달렸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웃으면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야구라는 게 결국 3시간의 경기 시간 중 자기한테 오는 플레이는 5~6분밖에 안 된다. 그 시간에 집중하는 거지 경기 내내 집중하면서 144경기를 어떻게 다 소화할 수 있겠는가. 마음을 열어놓고 많이 들을 것이다. 그동안 노트 필기를 해왔는데 이 노트에는 야구 이야기뿐 아니라 선수의 표정과 그걸 보고 느낀 내 감정과 생각까지 다 적혀 있다. 친구들이 나를 찾아와 이런저런 일이 있다며 먼저 고민 상담을 요청할 수 있도록 열어놓을 것이다.

육성군 타격 코치를 맡았다. 사실상 선수단 총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술 같은 건 프로 선수라면 당연히 스스로 해야 한다.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한 친구들이 있다면 우선 들어보고 원하는 방향대로 맞춰줄 생각이다. 무엇보다 항상 멘탈! 마음으로 다가갈 것이다.

본인에게도 목표가 있을 것 같다.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되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구든 바라보는 곳이 같을 것이다. 그곳을 향해 뭐가 되겠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선수 때처럼 잘하든 못하든 묵묵히 한 계단씩 올라갈 생각이다.

                       더그아웃 매거진 93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93호(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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