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베트남의 16강 진출, 북한 득점이 '결정적' 도움 됐다
[오마이뉴스 심재철 기자]
축구도 사람의 일이라 어떤 마법 같은 순간이 이어지기도 한다. 박항서 매직이 베트남을 넘어 북한 선수들에게도 통했나보다. 앞선 두 게임을 치르며 0득점 10실점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던 그들이었기에 사실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북한 선수들은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최선을 다해 자존심을 지켰다. 그 결과 베트남의 16강 진출에 북한이 가장 결정적인 조연 역할을 다한 셈이 됐다.
▲ 훈련 지도하는 북한 김영준 감독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북한 축구대표팀 김영준 감독이 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SSAD 알 맘자르 훈련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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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득실차-다득점 기록까지 똑같다니
말도 안 되는 큰 점수차가 벌어지지 않는 한 이 두 팀이 16강에 오르는 기적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조금 더 가능성이 있는 팀은 레바논이었다. 간단히 계산해보니 4-0 승리 조건만 갖춘다면 레바논(골 득실차 0)이 베트남(골 득실차 -1)을 밀어내고 16강행 막차를 탈 수 있는 형편이었다.
두 게임을 치르면서도 골맛을 못 보고 만난 양팀은 기적의 16강행을 바라며 이른 시간에 골을 터뜨리기 위해 초반부터 강하게 부딪쳤다. 그런데 예상 외로 북한이 먼저 골맛을 봤다.
경기 시작 후 9분만에 간판 골잡이 박광룡이 레바논 페널티 지역 반원 밖 직접 프리킥을 오른발로 낮게 감아차 넣은 것이다. 레바논 골키퍼 칼릴이 자기 왼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잔디 위 미끄러지는 공을 겨드랑이 사이로 통과시키고 말았다.
16강에 오르기 위해 실점 없이 8골 이상을 더 넣어야 하는 북한 선수들은 그것보다 대회 첫 골을 기록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3게임 모두 패하더라도 1골은 넣고 돌아가겠다는 마지막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반면에 먼저 골을 내줬다고 해서 레바논 선수들이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5-1로 점수판 뒤집기를 이룬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 게임에서 북한이 카타르에 무려 6골이나 내줬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레바논 선수들은 북한 골문을 거세게 몰아쳤고 그 중 4골이나 성공시켰다. 하지만 레바논 골잡이 알헬위의 마지막 골이 후반전 추가 시간 8분만에 나온 것이 한스럽게 남았다.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흘러나온 공을 오른발로 시원하게 차 넣었지만 그들은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베트남과 골 득실 기록(4득점 5실점 -1)이 똑같이 나온 것이다. 다득점 숫자까지 일치하니 그 다음 규정이 페어 플레이 점수였다. 쉽게 말해 주심으로부터 받은 옐로 카드 숫자가 적어야 16강행 티켓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리명국의 슈퍼 세이브, 그리고 옐로 카드 2장
레바논은 북한과의 이 게임에서 두 장의 옐로 카드(30분 멜키, 90+9분 하이다르)를 받았는데 바로 이 2장으로 그들의 운명이 갈린 것이다. 페어 플레이 규정, 옐로 카드 숫자에서 베트남은 5장, 레바논은 7장이 된 것이다.
사실 이보다 앞서 레바논은 점수판을 4-1 그 이상으로 만들 기회가 있었다. 후반전 추가 시간이 이례적으로 길게 이어졌는데, 90+4분에 레바논의 후반전 교체 선수 라빈 아타야에게 상대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 북한 대표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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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추가 시간 6분도 더 지나서 추가 시간의 추가 시간이 이어질 때 레바논의 마지막 골이 터졌지만 주심으로서는 레바논 선수들에게 시간을 더 줄 수는 없었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 16강 탈락에 분루를 삼킨 레바논 날개 공격수 모하마드 하이다르가 주심에게 거세게 항의하다가 받은 대회 일곱 번째 옐로 카드는 그들의 페어 플레이 점수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결정적인 순간들만 놓고 보더라도 이 게임 추가 시간에 북한의 리명국 골키퍼가 만든 슈퍼 세이브 순간이 박광룡의 프리킥 골과 함께 베트남의 극적인 16강 진출에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 잘하고 있어 12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경기장에서 열린 2019 AFC 아시안컵 UAE 조별 라운드 D조 2차전 베트남과 이란과의 경기에서 박항서 감독이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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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FC 아시안컵 E조 결과(18일 오전 1시, 샤르자 스타디움)
★ 북한 1-4 레바논 [득점 : 박광룡(9분) / 펠릭스 멜키(27분), 알헬위(65분), 하산 마툭(80분), 알헬위(90+8분)]
- 경고 : 북한(안성일, 김철범, 리혁철, 김용일) / 레바논(멜키, 하이다르)
◇ E조 최종 순위표
1위 카타르 9점 3승 10득점 0실점 +10 *** 16강 진출!
2위 사우디 아라비아 6점 2승 1패 6득점 2실점 +4 *** 16강 진출!
3위 레바논 3점 1승 2패 4득점 5실점 -1
4위 북한 0점 3패 1득점 14실점 -13
◇ 16강 진출 팀 목록(조 3위 중 성적 좋은 4팀 와일드 카드)
A조 : 1위 아랍에미리트, 2위 태국, 3위 바레인(승점 4점, 2득점 2실점)
B조 : 1위 요르단, 2위 호주, 3위 팔레스타인(승점 2점, 0득점 3실점)
C조 : 1위 한국, 2위 중국, 3위 키르기스스탄(승점 3점, 4득점 4실점)
D조 : 1위 이란, 2위 이라크, 3위 베트남(승점 3점, 4득점 5실점)
E조 : 1위 카타르, 2위 사우디 아라비아, 3위 레바논(승점 3점, 4득점 5실점)
F조 : 1위 일본, 2위 우즈베키스탄, 3위 오만(승점 3점, 4득점 4실점)
- D조 베트남과 E조 레바논의 골 득실 기록 일치, 페어 플레이 점수로 베트남 16강
◇ 16강 이후 대진표
37번 게임 ☆ 베트남 - 요르단 (20일 오후 8시, 알 막툼-두바이)
38번 게임 ☆ 중국 - 태국(20일 오후 11시, 하자 빈 자예드-알 아인)
39번 게임 ☆ 이란 - 오만(21일 오전 2시, 모하메드 빈 자예드-아부다비)
40번 게임 ☆ 사우디 아라비아 - 일본(21일 오후 8시, 샤르자 스타디움-샤르자)
41번 게임 ☆ 호주- 우즈베키스탄(21일 오후 11시, 칼리파 빈 자예드-알 아인)
42번 게임 ☆ 아랍에미리트-키르기스스탄(22일 오전 2시, 자예드 스포츠 시티-아부다비)
43번 게임 ☆ 한국 - 바레인(22일 오후 10시, 라시드 스타디움-두바이)
44번 게임 ☆ 이라크 - 카타르(23일 오전 1시, 알 나얀-아부다비)
45번 게임(8강) ☆ 37번 승리 팀 - 40번 승리 팀
46번 게임(8강) ☆ 38번 승리 팀 - 39번 승리 팀
47번 게임(8강) ☆ 43번 승리 팀 - 44번 승리 팀
48번 게임(8강) ☆ 41번 승리 팀 - 42번 승리 팀
49번 게임(4강) ☆ 45번 승리 팀 - 46번 승리 팀
50번 게임(4강) ☆ 47번 승리 팀 - 48번 승리 팀
51번 게임(결승전) ☆ 49번 승리 팀 - 50번 승리 팀(2월 1일 오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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