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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특종]슬픈 금메달리스트를 더욱 슬프게 하는 친일논란-손기정이 친일이라니?

고진현 입력 2019. 01. 31. 06:30 수정 2019. 01. 3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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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장면.<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세상에서 가장 슬펐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더욱 슬프게 하는 모략이 터져 나와 가슴 아프다. 스포츠 영웅이기전에 투철한 민족주의자로 평가받는 손기정(1912~2002년)에 대한 친일 폄훼 논란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단골메뉴다.

지난 주 손기정의 육성이 담긴 음반이 모회사가 주최하는 경매에 출품되면서 또다시 불거진 친일 논란은 역설적으로 그의 대쪽같은 민족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 오히려 다행스럽다. 이 음반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 끝난 뒤 ‘콜롬비아 레코드사’가 발매한 것으로 앞면에는 손기정의 육성이, 뒷면에는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성악가이자 대중가요 가수인 채규엽(1906~1949년)이 부른 마라톤 우승 축하노래가 실려 있다. 손기정의 친일 논란은 그의 육성이 담긴 ‘우승의 감격’에 나오는 “이 승리는 결코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전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고 할 것이외다”라는 구절 때문이다. 음반 제작 경위와 손기정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부족한 이들이 단편적이고도 지엽적인 문장 하나로 손기정의 위대한 삶을 왜곡하고 매도할 수도 있어 스포츠서울은 관련 사료를 총동원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앞장서기로 했다. 일단 친일 논란에 휩싸인 손기정의 기념 음반을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를 낱낱히 규명하는 것을 첫 출발로 삼았다. 앞으로 스포츠서울은 1936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의 삶을 심층적으로 취재해 가려져있던 그의 투철한 민족의식과 꼿꼿했던 항일정신을 독자들에게 전해드릴 것을 약속드린다.
<사진1> 손기정 기념음반 취입 관련 매일신보 기사.
◇ 음반 제작 경위
사료를 꼼꼼히 챙겨보면 답은 나와 있다. 이 음반은 제국주의 일본이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우승을 이용해 자국민들에게 웅혼(雄渾)한 자부심을 불어넣기 위해 제작됐다. 메이지유신이후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치며 아시아 최초로 제국주의 반열에 오른 일본으로선 손기정의 올림픽 마라톤 제패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소재로 안성맞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은 급거 음반 제작을 기획했다. 매일신보 1936년 10월 15일자 7면에 손기정의 음반 제작 관련 기사까지 실렸다.<사진 1>
<사진2>손기정 기념음반에 한자로 일본육상경기연맹 감수라고 씌여있다. <제공 |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따라서 음반 제작은 베를린에서 배를 타고 그해 10월 8일 일본 도쿄에 도착한 손기정이 직접 의도했다기 보다는 이미 위로부터 기획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음반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레코드 중앙 하단에 적힌 ‘일본육상경기연맹 감수’라는 게 진실의 키 포인트다. 문구 모두를 일본육상경기연맹이 감수했다는 사실은 손기정이 주어진 원고를 그대로 읽었다는 결정적 방증이다.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가 보관하고 있는 음반 및 ‘우승의 감격’ 원고 및 레코드 광고에도 한자로 ‘일본육상경기연맹 감수’라고 명시돼 있다.<사진 2, 4>
<사진3>1936베를린올림픽 당시 손기정이 한 한글 사인<제공 | 손기정기념재단>
◇ 한자 사인의 의미
손기정은 베를린올림픽 내내 외신과 팬의 요청에 한글 사인을 고집했다.<사진 3> 자신은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승의 감격’ 원고에는 손기정이라는 사인이 한자로 적혀 있다.<사진 4> 이는 곧 ‘우승의 감격’이라는 육성 원고가 뭔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진행됐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추론이 가능하다. 손기정의 한글 사인은 베를린올림픽을 취재한 외국 기자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전후를 면밀히 취재했던 미국의 작가 리처드 만델(Richard Mandell)은 그의 저서 ‘나치 올림픽(The Nazi Olympics)’에서 “손기정은 어려서부터 민족 독립주의자이며 전후(戰後) 조선 독립 운동의 리더로서도 큰 공적을 올렸다”면서 “손기정과 남승룡은 베를린에서도 기자들에게 자신들이 일본인이 아니고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키려 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당시 손기정은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공식 서명을 할 때는 모두 한글로 썼으며 그 옆에 조선 지도를 그려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서술했다.
<사진4> 육성 원고에 적혀 있는 손기정의 한자 사인 <제공 |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 강압적 지시라는 결정적 힌트
손기정이 낭독한 ‘우승의 감격’이라는 육성 원고는 2분 43초 분량이다.


뼛속 깊이 투철한 민족주의자였던 손기정으로선 일본이 강요한 원고를 내려가다가 마음에 내키지 않는 부분에서 아마도 목소리를 낮추는 등 몽니를 부렸던 것 같다. 원고 말미에 있는 “이 승리는 결코 내 승리가 아니라 전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고 할 것이외다”라는 구절에서 이상한 소리가 감지된다. 2분 28초 쯤 원고에도 없는 “크게”라고 하는 말이 들리고 2분 30초에 또 한번 “크게 해라”는 소리가 고스란히 녹음돼 있다. 이는 손기정의 녹음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다. 아마도 손기정은 자신의 승리가 전 일본 국민의 승리라고 말하기 싫어 목소리를 낮추며 여러차례 문제를 일으켰던 모양이다. 아마도 녹음 관계자는 이 원고 옆에 “크게”, “크게 해라”는 지시사항을 써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영리하고 기지가 넘쳤던 손기정은 이를 의도적으로 녹음해 원고를 써준대로 읽었다는 사실을 역사의 흔적으로 남겨두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 올림픽 훈련 사진
베를린올림픽 현지 훈련에서도 손기정의 항일의식은 대단했다. 사토 코치를 비롯해 시오아쿠, 남승룡과 함께 훈련할 때도 혼자 일장기가 없는 투박한 옷만 고집했다.<사진 5>
<사진5>1936 베를린올림픽 현지 훈련에서 손기정은 유일하게 일장기가 붙어 있지 않은 투박한 옷을 입어 논란을 빚었다. 왼쪽부터 남승룡,시오아쿠,손기정,사토 코치. <제공 | 손기정기념재단>
유니폼 탓에 사토 코치와 사사건건 부딪쳤던 손기정은 귀국 때도 올림픽 선수단복을 입지 않았다. 일장기가 붙어 있는 일본 선수단복을 입지 않기 위해 양정고보 5학년 담임이었던 황욱 선생님에게 연락을 취해 양정고보 교복을 전해받았다. 1936년 10월 17일 비행기를 타고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한 손기정은 아니나 다를까 일본 선수단복이 아닌 양정고보 교복을 입고 취재진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사진 6>
<사진6>양정교보 교복을 입고 여의도비행장에 도착한 손기정이 꽃다발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안종원 양정고보 교장,손기정의 큰 형 손기만씨.손기정. <제공 | 손기정기념재단>
일본이 손기정을 한국으로 보내는 과정을 살펴보면 손기정의 사상문제가 꽤 심각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이미 베를린올림픽에서부터 손기정의 항일사상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일본은 조선인들의 결집을 우려해 비행기를 이동수단으로 택하는 교묘한 술책을 썼다. 당시 여의도 비행장은 그야말로 외딴 섬. 손기정을 철저히 격리 조치하겠다는 일제의 간악한 노림수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손기정은 일제의 입장에선 사상이 불순한 ‘불령선인(不逞鮮人)’이었겠지만 조선의 입장에선 민족의 기개를 드높인 영웅이요 투사였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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